- 대림 제1주간 -
☆ 2013년 가해 12월5일 (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청주]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이사 26, 1 - 6
† 복음 : 마태 7, 21. 24 - 27
★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의 시대가 오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온 산에서
주님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노래를 부를 것이라 예고한다. 그날이 오면
힘없는 이들이 오히려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참된 믿음이란 “주님, 주님!” 하고 부르는 겉모습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려는 내적인 자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차이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만큼이나 크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개의 집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모래 위의 집과 반석 위의 집인데,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면, 모래 위의 집은 무너지고 반석 위의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뜻하지 않은 풍파를 겪는다
해도, 심지어 죽음의 물결이 밀려온다 해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쓰러지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각과 청각의 중복 장애를 가진 키릴 악셀로드 신부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악셀로드 신부는 선천적으로 청각
장애를 안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시각마저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가 강연할 때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청각
장애인 박민서 신부가 통역하였습니다. 악셀로드 신부가 영어 수화를
하면 박 신부가 우리나라 수화로 표현하였습니다. 악셀로드 신부는 박
신부의 두 손을 잡고 그의 영어 수화를 몸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강연하는
동안 두 사제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그 어떤 만남보다도 아름답고
평화로웠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두 사제의 육체적 고통을 이기게
하였을까요?
악셀로드 신부의 강연의 제목은 ‘이 세상에 할 일이 있다, 나도!’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통하여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가운데 자신의 고통을 이겨 내며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온몸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반석
위의 집처럼 비바람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 평화를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귀하고 소중한 상위층입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가족문제, 직장문제 그밖에 사람들과의 관계의 어려움 등을
토로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렵고 힘든 것은 모두 다 마찬가지이다.
나 역시 요즘에 어렵고 힘든 일이 많다.”고 말하자, 그 친구는 곧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잖아.”
이 말에 곧바로 “그러면 너는 좋아하는 일이 아니야?”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친구는 “아니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라고
답하네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결혼하고, 어쩔 수 없이
자식을 낳은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일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복을 어떻게 간직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렇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너무나 귀하다는 자존감을 간직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스스로 하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그마치 전체의 46.7%라고 합니다. 2명 중 한 명은
자기 자신을 하류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이들의 절반은 앞으로
경제적 지위가 상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기 자신이 주도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가는 힘든 삶을 사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느님에 의해 사용되어지는
너무나도 귀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고가로 판매되는 작품들을 보십시오.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가격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유명 연예인이 사용했던 물건 하나하나가 나중에
비싼 가격으로 경매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누가
만들고 사용했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세상의 어떤 유명인보다도 더 크고 위대한 분이십니다. 이분께서 나를
만들고 사용하고 계신데 그런 내가 어떻게 하류층입니까? 당연히
하류층이 아닌, 귀하고 소중한 상위층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신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인 사랑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자신없어
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웃에게
사랑을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오늘 복음 말씀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주님, 주님!’이라고만 말할 뿐인 사람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자신감을 가지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을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상위층이십니다.
큰 집이 천 칸이라도 밤에 눕는 곳은 여덟 자뿐이요, 좋은 논밭이
만경이나 되어도 하루 먹는 것은 두 되뿐이다(명심보감).
주님의 귀한 자녀인 여러분에게 교황님께서 좋은 약을 권하셨네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강력하게 추천하신 약
신앙의 해 폐막을 한 주 앞둔 지난 주일날, 교황님께서 신자들의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위해 강력하게 추천하신 약입니다. 성 베드로 광장에
모였던 모든 신자들이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이 선물상자를 받았습니다.
받는 이들의 얼굴마다 미소가 한가득 번졌고, 어떤 이들은 감격에
가득차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습니다. 상자 안에는 거룩하신 자비를
구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흰색묵주, 자비의 예수님 상본, 그리고 4개
언어(이태리어, 영어, 스페인어, 폴란드어)로 된 사용설명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Attenzione!
영혼을 위한 약입니다!
주 재 료 – 성모송 50, 주님의기도 5, 영광송5, 성모 찬송경
주 성 분 – 하느님의 은총
복 용 량 – 과다복용하기를 권장
복용횟수 – 하루 1회~4회
복수복용 – 가능하면 또 다른 기도나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와
함께 섭취하기를 권장함
부 작 용 – 없음
유효기간 – 부패될 우려 없음
이상증상 – 과 복용 시 기쁨이 터져 나오거나, 갑자기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거나, 애덕행위에 뛰어드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음
제 조 원 –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마리아님(from Wydawnictwo
św. Stanisława BM)
품질보증 – 로마가톨릭교회
주의사항 – 어린이들의 손이 가까이 닿는 곳에 두십시오!
이 약을 오늘부터 복용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영양제보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약이니까요.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 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대림 제1주간 목요일
2013년 가해 12월5일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는 소나무와 전나무만 푸르다.’ 예전에
가톨릭회관의 엘리베이터에서 본 글입니다. 따뜻한 여름에는
모든 것들이 푸르지만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는 소나무와 전나무만
푸르다는 뜻입니다. 다른 것들은 가을이 오면 잎이 떨어지고 겨울이
오면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잃어버리면
평소에 자주 찾아오던 친구들이 멀어지게 됩니다. 먼저 전화를 걸던
친구들도 소식이 뜸해지고, 모처럼 전화를 해도 잘 받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인격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재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잃어버리면 더욱 외로워집니다. 그 사람이 가진
권력의 힘에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면 가족들마저
함께 하기 힘들어집니다. 요양병원에서 도우미들과 함께 지내는
환자들을 보았습니다. 가족들이 가끔 오기는 하지만 늘 곁에서
간호하기가 힘든 현실입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도시에 화려한 건물들을 건축하였습니다.
도로, 교통, 문화, 예술의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였습니다.
신용카드로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채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에 누가 함께 사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파트는 층간 소음 문제로 심각한 다툼을 벌이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학연,
지연, 혈연, 이념’의 벽을 높이 세우기도 합니다. 우리가 만든 이
풍요로운 세상은 어쩌면 모래위에 세운 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이사를 오면 주변에서 기쁜 마음으로 이삿짐을 함께 나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장례가 나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상주가 되어서
굳은 일을 함께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음식을 하면 작지만 이웃과
함께 나누던 때가 있었습니다. 잘못을 한 젊은이는 동네 어른의
훈계를 마음에 새기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동네에서 함께 뛰놀고,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이것은 불과 40년 전의
모습들입니다. 우리가 버리고 싶어 했던 바로 앞의 과거입니다. 마치
목욕물을 버리려다 욕조 속에 있던 아이마저 버린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나눔, 가난한 이와 더불어 사는 모습을 공동체
안에서 실현하였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었고 과부와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료, 교육, 복지는
교회의 이런 나눔이 발전하여 병원, 학교, 사회복지시설로 성장한
것입니다. 산업의 발전과 대량 생산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자본주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어린 아이들이 노동의 현장에서 학대를 당하였고,
많은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급여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고용주의
편의에 따라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은 발전하고
좋아졌는데 그 혜택이 균등하게 돌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교황님들은
‘노동헌장, 새로운 사태, 지상의 평화’와 같은 회칙을 통해서 예수님의
삶을 따라야 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지금의 근로기준법과 노동자들을
위한 배려는 교회의 이런 주장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내 가족, 내 이웃, 우리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은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잊어버리고 나의 영혼만 구원 받으면
된다는 생각도 예수님께서 원하신 방법이 아닙니다. ‘넷째왕의 전설’
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출발한 사람은 3명이 아니라 원래는 4명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4번째 왕은 가는 길에 가난한 이, 장애인, 아픈 사람을 만났습니다.
선물로 준비한 보물을 길에서 만난 사람을 위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결국 넷째왕은 선물이 없어서 예수님을 찾아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길에서 도와준 그 사람들이
바로 나였습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하고, 세상의 어두운 곳, 소외된 곳, 가난한 이,
병든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영성체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네.” 재물, 권력, 명예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련의 바람, 고통의 바람, 근심의 바람이
불면 곧 무너지고 마는 집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집은 시련의 바람이 불어도, 고통의 바람이 불어도,
근심의 바람이 불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기타]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삶입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삶입니다.'
2013년 가해 12월5일 대림 제 1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마태오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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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생이 질문한다.
“신부님, 세례를 받아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갑니까?”
나의 답변은 망설임 없다.
“아니, 그렇지 않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때 주어지는 거야.”
“그러면 요한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14,6)」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
당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말씀은 세례를
받고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구체적을 알아서 믿어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천주교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250년이 안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과 그분의 말씀이 이 땅에 처음으로 소개되기
전까지의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몰랐으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말인가? 분명 아름답게 살다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라는
이름을 몰라 모두 지옥에 갔다 한다면 그런 하느님은 믿지 않아도 좋다.
또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예수님의 이름조차 모르는
오지의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비록 예수님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그들 안에는 하늘 무서운 줄 알고 땅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을 믿는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이다.당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은 당신께서 보여주셨던 마음과
삶의 가치를 따르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분께서 보여주신 마음과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
비록 예수님을 접하지 못한 이들이라도 이 세상에는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들을 우리는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부른다. 반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이름으로 살면서도, 예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엉터리 그리스도인들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의 생각이 혼선을 빚을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한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의식하면서 옷을 입히더라도 입혀야 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다. 그분이 원하시는 길, 그분이 말씀하시는 진리, 그분이
말씀하시는 영원한 생명의 의미를 항상 생각해야만 한다.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서울] 변함없이 의연해지려는 분들
2013년 가해 12월5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변함없이 의연해지려는 분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로 인생을 비유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라고 인생을 비유할 수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습니다. 칠면조도 등장되고 화장실 갈 때와 올 때라는 게 그렇지요.
신앙인은 바로 이런 선상에서 변함없이 의연해지려는 분들입니다.
세상의 풍파에도 끄떡없는 그런 신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위한 방법을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마태오 7,24)”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수원]
오산 성당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ca-osan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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