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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그건 안 돼!
뜬금없이 우아영이 말했다.
“감독님!”
기분이 잔뜩 우울한 이감독이 착 갈아 앉은 소리로 대답했다. 세상만사 다 귀찮은 목소리였다.
“왜? 미스우야?”
“인제 김치국 마시세요.”
“뭔 말이냐?”
“꽃잎은 꽃잎끼리라 그러잖아요?”
“그럼 꽃잎이 뒤죽박죽 핀다디야?”
“여자들 마음은 여자들이 더 잘 안다는 뜻이에요.”
“오호!”
“전 진숙이가 감독님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요. 그게 아니네요. 감독님이 그랬잖아요? 순정품이든 오이엠이든 수입품이든 오리지널이면 좋다구요.”
“그랬지.”
“그러니까요. 제가요. 우짜스키한테 바람 넣어 볼께요. 러시아면 어때요?”
이감독이 머뭇거렸다.
“결혼말이냐?”
“네에. 감독님은 재혼하셔야 돼요. 사모님 살아계실 땐 대머리지만 깔끔했는데요.”
“미스 우야. 다 좋은디, 고.”
“아 대머리 말이죠? 알았어요.”
“아영언닌 다 좋은데 감독님 대머리가 어때서 말끝마다 대머리야? 난 빤질빤질해서 좋은데. 그리고 감독님 머리가 홀라당 벗겨 진 것도 아니잖아?”
오진숙이 금방 또 이감독 편을 들었다. 아무리 여자마음 개떡처럼 잘 쉰다 해도 참 알 수 없는 변덕이었다.
우아영이 반박했다.
“반대가리나 홀라당이나 대머리는 대머리지. 허지만 감독님 대머리는 귀여워요. 인제 안 그럴께요.”
“그래라. 오 야 말처럼 내가 완전대머리도 아닌디. 자꾸 대머리 그러니까 눈물나올라칸다.”
“알았다니까요.”
우아영이 오진숙의 눈치를 한번 힐끔거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제가요. 지난번에 우짜스키 집에 갔었는데요.”
이감독이 관심을 보였다.
“잘 살디? 어지럽재?”
“아니에요! 칠칠맞아 보였죠? 보기하고 완전 딴판이에요. 진짜 깔끔하구요. 얼마나 살뜰한지 몰라요. 웬만하면 안 놀래는 제가요. 입이 딱 벌어지더라니까요. 진짜진짜 딱이에요.”
“뭐가?”
“현모양처 감이에요. 프로라구요.”
“결혼했던 여자래?”
이감독이 프로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못 알아듣고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프로페셔널 이란 뜻이에요. 완벽하다 이 말이죠. 그리고요. 품질은요 러시아제지만요. 진짜 정품 맞아요.”
오진숙이 삐쭉했다. 혀가 입술을 밀고 나와 혀 밑으로 파고 들었다. 마치 빨간 새끼 뱀이 돌 틈사이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걔만 정품이야? 누군 정품 아니래?”
오진숙을 무시하고 우아영은 말을 이었다.
“우짜스키도 감독님 싫어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그걸 어떻게 아남?”
“여자는 꽃잎끼리라 그랬잖아요? 컴퓨터에요. 대머리를 바탕화면 깔았구요. 벽에도 온통 대머리사진 도배했던데요.”
“걔가? 오호!”
이감독이 감동 먹은 코뱅뱅이 소리를 했다.
우아영의 말은 사실이었다. 벽은 온통 대머리사진이 더덕더덕, 컴퓨터 메인화면에도 대머리 사진이었다. 이름은 달랐지만 대머리그림은 틀림없었다. 우짜스키가 수집한 그림은 러시아 영화배우였고 이감독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감독은 우아영의 말을 곧이들었다. 이감독 대머리라고 주관적 주를 달지 않았는데 자신의 프로필 스틸로 덕지덕지 전시해 놓은 것으로 착각했다. 보통남자들의 전형적인 착각이었다.
이감독의 표정이 발가스름하게 상기했다.
“또 감독님 같은 대머리를 골든해드goldenhead라 그런대요. 러시아에서요.”
“호오! 사랑에 국경이 없다더니 걔가? 허긴 사랑에 철조망이 무슨 소용이냐? 로잔나 라는 영화 보면 말이다.”
바로 그때 별일이 일어났다.
오진숙이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아악!”
비명 같기도 하고 악쓰는 것 같기도 한 외마디였다.
이감독이 깜짝 놀라 귀를 막고 물었다.
“왜 그러냐? 오야?. 뱀 나왔냐?”
오진숙이 머리를 마구 흔들어대며 기관총처럼 속사했다.
“로잔나 나도 봤다구! 거긴 독일하고 폴란드잖아? 거긴 철조망 쳐도 코 닿는 데지만 우리나라하고 러시아는 다르단 말이야! 거리가 하늘하고 땅만큼 차이난단 말이야!”
우아영이 말했다.
“거리가 멀면 어떠냐? 비행기 뒀다 뭐한대? 거리가 아무리 가까워도 철조망 쳐서 평생 못가는 곳보다 낫잖아?”
“아영언닌 유럽 안 가봤구나? 그러니까 그러지.”
“넌 가봤니?”
“안가 봐도 난 다 알아! 다 안 다구!”
우아영이 오진숙 몰래 이감독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근데 니가 왜 생지랄이냐? 우짜스키 얘기에?”
“왜 못해? 내 맘이지!”
이감독이 함재기 이륙유도사처럼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낮추며 말했다.
“미스우! 우짜자고 우짜스키 꺼내가지고 오양을 왜 화나게 그러냐? 난 오 야가 화나면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날라칸다.”
“그럼 나중에 감독님하고 둘이만 얘기해요?”
오진숙이 버럭 소리쳤다.
“아영언냐 이년아! 니가 중매쟁이야? 누가 뭐래도 러시아년은 안 돼! 내 눈 새까맣게 뜨고 있는 한 어림없어 이년아! 우짜스키 그년은 도둑년이야! 절대 안 돼! 자꾸 우짜스키 꺼내면 죽여버릴테야!”
우아영이 톡 쐈다.
“니가 봤냐? 우짜스키 도둑질하는 거 니가 봤냐구?”
오진숙이 헤어랩하는 댄서처럼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손가락으로 이감독의 눈을 찌를 듯 대들었다. 그 서슬에 우아영과 기절초풍한 이감독이 한걸음 주춤거렸다.
오진숙의 대시는 발악이었다.
“봤다! 봤다구! 어쩔래?”
잽싸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이감독이 말했다.
“어어어? 나 나나한테 왜왜 이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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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주말이네요. 멋진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