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사를 구경하고 나왔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바로 옆에 있는 맹샤라고 부르는 맹갑(艋舺)야시장을 구경하였는데 밤이 아
니라서 볼 것은 없다.
인터넷에서는 화시지에 야시장이라고 나오는데 같은 아마도 같은 시장인 듯하다.
맹갑 야시장이라고 표시가 된 시장
30분 동안 발 마사지를 받고 오각선반이라는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로 갔는데 외부와 내부가 초현실주의 미술품처럼 만들
어져 있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식당과는 분위기가 다르고 좀 색다르다.
이곳에서 여행사에서 준비해준 케이크와 고량주로회갑과 칠순을 겸한 조촐한 파티를 했었는데 분위기가 그럴 듯해서 당사자
들도 만족이다.
오각선반 레스토랑의 겉모습
내부의 모습...5층 정도되는 것 같다.
내부 장식들
밤에 보는 오각선반
케익을 자르고...
기념사진도 찍고...
아래는 용산사에 대한 설명이니 다음에 대만을 가서 용산사를 보실 분은 꼭 한 번 읽어 보고 가시기를...
현재 용산사는 타이베이시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1738년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절 중국 복건성 이주민들에 의해 처음
세워진 사찰입니다. 2차세계 대전 중에 소실되어 전후인 1957년에 다시 재건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절들과는 달
리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 및 토속 신앙 등 각종 종교의 색채가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습니다. 또한 분위기 역시 조용하고
고즈넉한 기타 사원과는 달리, 도심 중앙에 위치한 이곳 용산사는 1년 내내 기도를 올리고 이 곳을 방문하는 참관객들에 의해
매우 번잡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곳 용산사가 대만 사람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절의 대전에 위치한 관세음보살 때문입니다. 2차 대전 중
공습경보가 발령되자 이곳 타이페이의 주민들은 부처의 가호를 받기 위해 용산사로 대피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엄청
나게 많은 모기떼들이 나타나 용산사에 머물기 어렵자 주민들이 다른 대피장소로 이동하였는데, 주민들이 모두 이동하자마자
용산사에 폭격이 떨어져서 절이 초토화 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전쟁이 끝나고 주민들이 용산사로 돌아왔는데, 폭격을 맞은 절
에 오로지 관세음보살 상만이 아무 피해가 없어 주민들은 폭격을 피하게 한 관세음보살의 가호라고 생각하여 용산사를 다시
재건하고 관세음보살을 크게 모셨다고 합니다.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중국 궁전의 건축 양식 중 하나인 삼진사합원의 양식을 따 지어졌으며, 산문 / 전전 / 조정 / 중정 / 대전
/ 후정 / 후전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돌아올 회’ 혹은 ‘날 일’자와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용산사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중국 남방 지역과 대만의 전통 건축 기술이 융합된 건축 예술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습
니다. 특히 전전(前殿) 특유의 팔각 천장 장식(조정, 藻井) 및 대만 유일의 주동 용 기둥과 대전(大殿)을 떠받치고 있는 황금 기
둥의 나선형태의 천정 장식 등은 매우 희소한 양식입니다. 또한 지붕에 있는 화려한 색채의 주로 용 형태의 장식은 중국 남부
와 대만의 전통 양식인 교지도라고 하는데, 이 또한 용산사의 고풍스러움과 화려함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요소라 할 수 있습니
다. 이처럼 용산사의 전체적인 구조는 석조와 목조, 채화 등으로 이루어져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여 대만 전통 사찰의 아름다움
과 예술적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용산사에는 불교 / 도교 / 유교 세 종교의 신들이 모셔져 있는데, 각각 전전, 대전, 후전 3개의 전에 나뉘어져 있으며, 수 백여
존의 신들과 7개의 큰 향로가 있습니다. 용산사의 7개 향로는 관음로(불교의 대보살이자 대만 가정오신의 수존, 자비로 중생들
을 구원), 천공로(= 옥황상제 : 천계를 다스리는 신이자 도교 최고의 신), 마조로(항해의 수호여신 및 재물신 = 천상성모, 천성성
모, 천후, 천기 등), 수선존왕로(바다의 수호신), 주생랑랑로(순산의 신), 문창로(승진과 시험의 신), 관성로(= 관우, 상업과 무의
신)로써 참배 순서는 이 향로에 차례로 향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7개 향로 중 높이가 비교적 높고 대전 근처에 있는 향
이 옥황상제를 기리는 천공로이고, 그 앞에 면적이 가장 크고 전전 근처에 위치한 것이 바로 관성대제를 모시는 관음로로써, 이
곳 용산사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신들의 향로이자 가장 먼저 참배할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후전의 가운데 위치한 마
조로와 천상성모당에서부터 참배하여 그 후에 우측의 수선존왕로, 좌측의 주생랑랑로에 향을 올리고, 다시 우측의 문창로와 문
창제군전에, 좌측의 관성로와 관성제군전에 참배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참배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순서에 대한 설
은 다양한 편이라 사람마다 조금씩 그 순서가 다르므로, 굳이 참배를 드릴 마음이 없으시다면 그저 발길이 가는 대로 구경하시
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각 전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지면, 전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삼천전, 용문, 호문으로 구성됩니다. 용문과 호문은 용산
사의 출입문으로, 대만 사람들은 흔히 용의 입으로 들어와 호랑이의 입으로 나가면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삼천전의 삼은 이 전각의 문의 개수를 뜻하고, 천은 ‘내 천’자를 사용하여 전각 문의 외형을 상징하여 삼천전이
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 곳 삼천전은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 세 존의 불상을 모신 곳으로 삼천전의 중앙에는
금강저를 들고 있는 인왕이 서 있으며,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각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의 사대천왕이 절을 수
호하고 있습니다.
전전을 지나면 2개의 향로와 함께 대전이 나타납니다. 대전은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으로써, 관세음보살은
불교에서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이기도 합니다. 외형에서도 일반적인 절과는 많이 다른 용산사이지만, 모시고 있는 불상의 위치
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절이나 일반적인 불교 사원 같은 경우에는 대웅전을 절의 중앙 가장 큰 자리에 두어 그
곳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그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경우가 많은데, 용산사에서는 특이하게도 그와 반대로 가장 큰
대전에 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을 관음보살로 자주 줄여 부르는데, 이는 당태종의 이름인 이세민의 ‘세’자와 겹쳐
민간에서 줄여서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용산사 가장 뒤 쪽에 위치한 후전에는 천상성모전, 문창제군전, 화타청, 관성제군전, 월노청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전과
대전과는 달리 후전에는 주로 도교의 신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후전의 중앙에 위치한 천상성모전은 바다의 여신이자 재물신인 마조를 봉양하는 전이고, 그 양 옆으로 문창전과 관제전이 위치
하고 있어 문무가 좌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모전 안쪽 중앙에는 천상성모, 즉 마조 상이 있으며, 양 옆에는 해의 신인
태양성군과 달의 신인 태음성군이 있고, 도교의 신이자 마조의 호법인 천리안과 순풍이가 있습니다. 천리안과 순풍이의 도움으
로 마조는 바다 위의 재난의 모습과 통곡의 소리를 보고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천상성모전 내부 우측에는 바다의 왕인 수선존왕, 권선징악을 행하는 성황예, 토지의 신이자 농업과 상업을 보호하는 복덕정
신, 비와 바다의 신은 용신이 위치하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순산과 육아의 신인 주생랑랑,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할매인 지두
부인, 잉태부터 육아까지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12노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천상성모전을 마주보고 우측에는 학문의 신이자 수험의 신인 문창제군을 모시는 문창제군전과 의술의 신인 화타를 모시는 화
타청이 있습니다. 문창제군은 학문의 신이어서 고대에는 사실 일반 서민들에게 큰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명나라 시
대에 접어들면서 과거 시험이 새로이 정비되고 활성화되어 많은 이들이 과거 합격에 응시하기 시작하면서 점차적으로 큰 인기
를 얻어 청나라 시기에는 대륙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신이었다고 합니다.
화타청은 삼국지를 읽으신 분이라면 모두 알고 있듯, 역사상의 실존 인물입니다. 당시 외과술에 대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을 받았으며, 후대에는 도교의 신으로 추앙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화타청 벽면에는 사신무 중 동쪽을 수호하는 청룡이 교지
도로 장식되어 용산사의 동쪽을 지키고 있습니다.
문창제군전의 반대편에는 무신이자 재신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관우를 모시는 관성제군전이 있습니다. 관우의 양 옆으로
는 관우의 장자인 관평과 그의 충성스러운 장군인 주창장군이 관우를 호위하듯 자리잡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 관평은 관
우와 함께 형주에서 오나라의 군대에 죽임을 당했고, 주창은 관우와 관평의 사망 소식을 듣고 스스로 자결을 하였다 알려집니
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관묘에 관우 외에도 관평과 주창의 상이 같이 모셔져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
르게 관우는 무신일 뿐만 아니라 재신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과거 관우가 의형인 유비의 부인과 함께 조조에게 몸을 의
탁하고 있을 때, 조조가 관우를 회유하기 위하여 많은 재산을 내렸으나 그것을 전혀 쓰지 않고 두었다가 유비의 생환 소식을
듣자마자 아무 것도 취하지 않고 바로 떠나 버린 적이 있는데, 이러한 금전적인 청렴함 때문에 관우에게 기원을 하면 반드시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준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 무신과 재신 이외에도, 관우는 요괴를 퇴치하는 신, 재난을
예지하는 신, 천계를 지키는 신 등 여러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숭배되고 있습니다. 한국에 위치한 동묘 역시 관우를 모시는 한국
의 대표적인 관묘입니다. 관우 우측의 삼궁대제는 도교의 신으로써, 본래 천궁대제, 지궁대제, 수궁대제 셋을 합쳐 삼궁대제로
칭하나, 이 곳 용산사에는 수궁대제만 모셔져 있습니다. 관우의 좌측에는 불교의 지장보살로써, 중생들을 지옥에서 구원하는
대보살로 숭배되고 있습니다.
관성제군전을 나서면 바로 옆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월하노인의 월하청이 있습니다. 월하노인은 흔히 알고 있다시
피 남녀간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는 전설 속의 노인으로, 월하노인의 주머니에 있는 붉은 색 실로 서로 묶인 남녀는 서로 원수
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고 합니다. 월하청의 벽면에는 반대편 화타청과 마찬가지로 사신무 중 서쪽을 수호하는 백호가 교
지도로 장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