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드골 에투알역, 조명 빛과 축축함.
여자들이 에스컬레이터 발치에서 장신구를 샀다.
통로에 분필로 테두리를 그린 자리가 있고, 바닥에 <먹을 게 없습니다. 저는 가족이 없어요>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표시해 놓은 남자 혹은 여자는 떠나고 없었고, 분필로 그어 놓은 원안은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안을 밟지 않으려고 피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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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쇼핑몰의 현금 자동 인출기 앞에 줄 서 있다.
가림막 없는 고해 성사소. 지급기 화면이 뜨면, 모두에게 적용되는 동일한 동작.
기다리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번호판을 누르고, 기다리고, 돈을 챙기고, 집어넣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떠나가기.
화면에 뜬 문구. <귀하의 카드를 판독할 수 없습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나도 모르게 질책받을 행위를 저질러 고발당한 것처럼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있다.
왜 내 신용 카드가, 바로 내 카드가 판독이 되지 않는지 나는 모른다.
기계가 하라는 대로 다시 동작을 되풀이해 본다.
또다시 < 귀하의 카드를 판독할 수 없습니다〉. 〈판독할 수 없는>이라는 말이 주는 공포.
판독이 되지 않는 가짜가 나인 셈이다.
나는 돈을 찾지 못하고 카드만 챙겨서 장소를 뜬다.
사람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현금 인출기를 부수는 심정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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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빌 단지의 고층 건물들 근처 고속 도로에, 아스팔트에 새긴 듯 깔려 죽은 고양이.
승강기에서 나와 지하 주차장 3층으로 들어서니 웅웅대는 환풍기 굉음.
강간을 당해서 비명을 지른들 들릴까.
창문을 낸 곳마다 불빛으로 환한 검은색 3M 미네소타 건물 앞을 차로 지날 때 떠오른 기억.
신도시에서 살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늘 길을 잃었고, 기겁하여 중간에 멈추지도 못 하고 계속 차로 달렸다.
쇼핑몰에서는 내가 A, B, C, D 중 어느 입구로 들어왔는지를 기억해 뒀다가 나갈 때 그 출구를 다시 찾아 내려고 애를 썼다.
또한 주차장의 어느 열에 차를 세워 뒀는지를 잊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차를 찾지 못한 채 콘크리트 평판 아래서, 저녁이 될 때까지 헤맬까 봐 두려웠다.
많은 어린이가 대형 슈퍼마켓에서 길을 잃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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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조와 전개에서 치명적 결과를 예견할 수 있고, 젊은 여자는 <문을 부술 수가 없었어, 옛날 건물이라 육중하거든> 같은 의미심장한 부대사건들, 끔찍한 현재로 이어지는 그저께, 어제 같은 시간 적 지표들을 풍부하게 집어넣는다.
그러다가 이야기를 멈추고, ‘그런데 말이야’로 놀라움을 가장하며 <좋아>로 이야기를 재개, 소소한 혀놀림, 손동작. 눈을 내리뜨고 있다가 이야기의 첫 번째 청자, 즉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하지만 이제는 가짜 청자인 것이, 진정한 청자는 열차 중앙 통로에 몰려 있는 군중이니까)을 간간이 쳐다보는 그 얼굴에 어린 쾌감.
외설적인 이야기 방식, 이야기 행위에서 느끼는 쾌락의 노출,
결말로 이르는 과정의 속도 늦추기, 청중의 욕망 끌어 올리기. 모든 이야기는 성애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마침내, 죽은 지 일주일 된 노파의 시신을 발견했다.
(내가 현실에서 늘 문학의 징표들을 찾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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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헤어 살롱에서 머리를 감겨 주는 직원 이 한 말.
「지금 유행이 예전 유행보다 훨씬 더 예뻐요, 10년 전에는 옷을 보기 싫게 입었어요.」
청춘이 자신의 시대와 이뤄 낸 완벽한 합일, 새로운 것의 우월함에 대한 믿음
아름다운 것, 그것은 <방금 나온>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자신을 믿지 않으며, 미래는 더더욱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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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늘 곁에 있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목소리와 그들의 억양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갑자기 엄격해지던 그들의 표정이 다시 눈앞에 떠오른다.
당시 그 말은 실체가 없었다. 그들은 둘 다 옆에 있었으니까.
내가 공부하기, 물건을 낭비하지 않기 등등을 할 수밖에 없게 을러대는 것처럼, 그저 멀게만 느껴지던 위협.
이제, 그 말을 떠올려 봐도, 역시 실체가 없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위협이었는데, 그들 둘 다 죽고 없다.
‘우리가 더는 곁에 없으면 너도 알게 되겠지!’ 그 문장만이, 부조리하고 잔혹하며 이제는 다른 이들이 입에 올리는 그 문장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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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안에서, 젊은 남녀가 마치 그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듯 격렬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껴안기를 번갈아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때때로 두 사람은 도전적으로 승객들을 바라본다.
소름 돋는 느낌.
문학이 내게는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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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즐거움이 그들의 경제적 능력의 과시에서 오는지, 혹은 잘 먹고 삶을 즐 기는 사람의 면모, 즉 그들의 식욕의 과시에서 오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식욕은 다른 욕구, 그러니까 성적 차원의 욕구를 가리키며 어쩌면 식욕이 성욕의 자리를 차지했을 수도 있다.
(서로 아무런 말도 없이, 저녁 마다 거푸 죽을 때까지, 마주 보고 음식을 먹는 그들의 모습이 쉽게 상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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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하고 기다란 다리에 두툼한 입술을 지닌 젊은 남자가 중앙 통로 쪽 의자에 앉아 있다.
옆 좌석의 여자는 두세 살가량의 어린사내아이를 무릎에 앉혔는데, 아이가 놀라서 말문이 막힌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묻는 말, “저 아저씨는 문을 어떻게 닫아요?”
아마도 아이가 RER를 처음 타본 모양이다.
둘 다, 그러니까 젊은 남자와 아이는 나를 내 삶의 어느 순간들로 데려간다.
대입 자격 시험이 있던 해 5월에, 키가 크고 입술이 두툼한 D.가 우체국 근처에서 수업을 듣고 나 오는 나를 기다리던 때로.
그보다 나중에, 내 아들들이 어렸고 세상을 발견하던 시기로.
어떤 때는, 슈퍼마켓의 계산대에 줄 서 기다리는 여자에게서 어머니의 말과 몸짓을 다시 만났다. 그러니까 바로 바깥에, 전철이나 RER의 승객들과 갈르리 라파예트나 오샹의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사람들 안에 나의 지나온 삶이 침잠되어 있다.
자신들이 내 역사의 일부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심조차 않는 무명의 사람들, 내가 결코 다시 보게 되지 못할 얼굴들, 육체들 안에.
아마도 거리와 상점의 군중에 섞여 든 나 역시 타인의 삶을 지니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