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스타 죽녹원의 대숲 길과 바로 인근의 관방제림, 말이 필요없는 메타세쿼이아 길 등 '숲길'이 첫째다. 세 곳은 하나의 길로 이어져 요즘 여행트렌드의 대세라는 걷기에 딱 좋은 곳이다.
다음은 가사문학의 산실 송강정 면앙정 식영정의 '정자 순례길'와 소쇄원. 풍류의 고장답게 물 좋고 풍광 좋은 곳엔 어김없이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땡볕을 피해 정자 그늘에서 땀 식히다 보면 시 한 수 저절로 터질지도 모른다.
마지막은 슬로시티 삼지내마을의 고씨 문중 고택들을 끼고 도는 정겨운 '돌담길'. 우르르 몰려와서 사진 찍고 몰려나가는 그런 관광지가 아니다. 앞만 보고 내달려온 지난 세월을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성찰의 쉼터다.
가는 봄은 아쉽지만 성큼 다가온 여름을 담양에서 미리 식혀보자.
■슬로시티 삼지내마을
삼지내마을을 입력한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은 담양군 창평면사무소 앞에서 길 안내를 종료했다. 도움을 청하러 들어간 면사무소에는 슬로시티 안내를 전담하는 해설가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면사무소 건물 오른쪽에 소담한 정원이 있고 작은 문을 통과하자 그 안으로 고택과 돌담길을 품은 삼지내마을 슬로시티가 열려 있었다. 백제 시대부터 형성되었다는 이 마을의 낮은 담장들은 일부는 무너진 옛모습 그대로 담쟁이덩굴을 이고 있고 일부는 새로 손질된 채 꼬리를 물고 마을 속으로 사라졌다. 대부분 토석담이다. 지금은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동행한 이인한 해설가가 복개된 삼지내의 복원공사라고 일러준다.
마을 초입 자연생활연구소라는 간판이 걸린 두레박공방의 최금옥 씨는 출타 중이었다. 산에서 나는 제철 풀들과 그 뿌리가 지닌 치유력을 살려내는 약초밥상을 연구하고 있다. 예약하면 천연염색 체험도 가능하다.
두어 집 건너에는 야생화를 키우며 이를 효소로 만드는 임은실(61·011-9600-7400) 씨의 야생화 연구소가 있다. 500평쯤 될 거라는 임 씨 집 정원과 텃밭은 야생초 천지, 그 자체로 전시관이다. 광주에서 야생화 사진가로 활동하다 10여 년 전에 이 마을에 들어온 임 씨의 방과 창고에는 야생화효소 진액이 든 항아리와 병이 가득하다. "효소는 숙성시킬수록 좋아요. 우리가 흔히 마시는 매실 진액도 마찬가지예요. 숙성할수록 몸에는 더 보약이지요." 당뇨에 좋다는 여주진액을 10년간 묵혔다는 차는 단맛이 사라지고 여주향만 남아 있었다. 알음알음 효소를 약으로 퍼주던 임씨는 지인들의 권고로 지난해부터 연구소를 관광객들에게 공개했다. 열 손가락 손톱에 낀 흙때에서 야생화에 대한 그녀의 애착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한 달에 두 번 체험교실도 연다.
돌담길 돌 때마다 살짝살짝 엿보이는 가옥 마당의 살구나무에 초록 열매가 풍성하다. 마을 군데군데 서 있는 아름드리 고목이 참 멋지다. 평일이라서 그럴까. 마을은 조용하다. 몇 안되는 관광객들도 여유롭다.
마을에서 처음 만나는 고택은 고재선 가옥이다. 맞배지붕을 인 사랑채도 안채도 일자형으로 전통적인 상류층 가옥의 품위를 한껏 뽐내고 있다. 창평이 고 씨 집성촌이라 고택들도 모두 고 씨 성을 가진 양반댁이다. 위풍당당 솟을대문이 눈에 띄는 춘강 고정주 가옥은 얼마 전 주인이 바뀌었다. 대문지붕이며 헛간의 지붕이 낡아 위태위태해 보인다.
한국이 좋아 귀화한 독일인 빈도림 씨가 운영하는 빈도림공방도 있다. 꿀초 밀랍화장품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슬로시티에 슬로푸드도 있다. 쌀엿이다. 마을 곳곳에 전통방식으로 쌀엿 만드는 집이 여럿 보인다. 옛날부터 유명해 이곳에 부임하는 관리들이 한양의 대감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지금은 딱히 주차장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지만 마을 입구에 방문자센터와 함께 주차장을 짓고 있다. 매주 둘째 주 토요일에 '놀토달팽이시장'이 열린다. 마을 안에 민박시설이 여러 곳 있으며, 슬로시티위원회(061-380-3807)도 있다. 홈페이지 http://www.slowcp.com
# '3亭' 돌다보면 詩 한 수 절로… 대숲·메타세쿼이아 길 명불허전이더라
■가사문학 본고장의 정자와 정원
담양은 면앙 송순이 시작하고 송강 정철이 꽃피운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삼지내마을을 나서 광주호 끝자락에 있는 한국가사문학관을 찾았다. 담양과 무등산 자락의 시문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모은 가사와 한국문학 서적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가사문학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옆엔 식영정(息影亭)이 있다. 그림자마저 떼어놓고 자신은 맘껏 자유롭게 노닌다는 뜻이 담겼다. 정철은 이곳에서 '눈 아래 펼친 경치 철철이 나타나니 듣거니 보거니 날마다 선계(仙界)로다'라고 노래한 성산별곡을 지었다.
정철이 당쟁으로 조정에서 물러난 후 창평으로 낙향, 선조를 그리는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을 읊조린 곳이 송강정(松江亭)이다. 주차장에서 보면 높은 언덕으로 오르는 긴 계단이 놓여 있고 그 끝에 자그마한 정자가 보인다. 날아갈 듯 날렵한 팔작지붕을 인 정자 주위에는 소나무가 빽빽하다. 정자 옆에는 사미인곡 시비도 서 있다.
송강정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면앙정(俛仰亭)이 있다. 정철의 스승 송순의 고향 봉산면 한적한 도로변 절벽 위에 정자가 우뚝 서 있다. 큰길에서는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가파른 길을 오르면 수령 200년의 아름드리 참나무 몇 그루가 정자를 호위하고 있다. 들판에는 영산강의 지류인 오례천이 S라인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이곳에서 유명한 면앙정가가 나왔다. 정자로 오르는 계단 옆에는 면앙정가의 일부가 비에 새겨져 있다.
정자 안쪽 현판에는 이런 한시도 적혀 있다.
俛有地 仰有天 亭其中 興浩然 招風月 揖山川 扶藜杖 送百年 /굽어보면 들판이 있고, 우러러보면 하늘이 있다/한가운데에 정자가 있으니 흥취가 호연하다/바람과 달을 초청하고 산천을 끌어들여/청려장 지팡이 짚고 백 년을 보내리라/
또 한 곳,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정원이 있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바로 소쇄원이다. 조광조의 죽음을 본 제자 양산보가 낙향해 터를 잡았다. 광주호 기슭 대숲길을 통해 50m 정도 오르면 오곡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토석담을 만난다. 나무다리를 건너면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문패가 걸려 있고 그 옆으로 제월당과 광풍각이 서 있다.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을 하는 공간이고 광풍각은 손님을 위한 사랑방인 셈이다.
정원이라 하지만 울창한 나무는 살린 채 정자와 건물만 고이 들여앉힌 소쇄원.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담장 밑을 통과해 작은 계곡을 만들며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하는 배치가 인상적이다. 인공연못을 파지 않고 자연의 멋을 충분히 살렸기에 더 아름답다. 소쇄원의 핵심은 광풍각이다. 처마머리만 살짝 치든 채 자연의 품에 폭 안긴 광풍각은 그대로 자연의 일부다. 잎이 무성한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앞에는 시냇물이 늘 소리 내 흐른다. 젊은 연인 한 쌍이 햇살을 피해 광풍각 마루에 누웠다. 그림이 될까 싶어 카메라를 들이대 보지만 나뭇잎들이 보일 듯 말듯 가린다.
■명불허전, 죽녹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담양 관광의 대표선수는 뭐니뭐니해도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다.
담양군이 조성한 죽녹원은 대나무를 주제로 한 생태공원이자 삼림욕장이다. 담양읍 향교리, 면적은 약 16만㎡. 작은 산 하나를 둘러친 산책로 규모도 크고 정비도 잘 되어 있다. 아무리 더운 날도 대숲에 들어가면 초록빛 바람에 땀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대나무와 댓잎 서걱거리는 소리까지 시원하다. 주윤발과 양자경이 열연한 영화 '와호장룡'의 대나무숲 액션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대나무 사이사이로 죽순이 죽죽 올라오고 있다. 우후죽순이라 했던가. 빨리 자라는 녀석들은 하루에 1m 이상 올라오는 종도 있단다. 산책로는 각각의 이름이 붙어 있다.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운수대통길' '추억의 샛길' 등. 산책로에서 불쑥 만나는 판다는 좀 뜬금없다. 5월 초 대나무축제가 끝난 뒤끝이라도 찾는 이는 여전히 많다.
죽녹원 전망대에서 정면에 보이는 강이 관방천이고 제방을 따라 끝없이 길게 조성한 숲이 관방제림이다. 푸조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느티나무, 팽나무 등이 어우러져 있다. 수령은 200~400년까지 다양하다.
죽녹원과 관방제림을 뒤로하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향한다. 제대로 즐기려면 관방제림을 끝까지 걸어 메타세쿼이아로 가야겠지만 5월말 햇살치고는 너무 뜨겁다. 둑에 조성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서면 수도 없이 봐온 그 가로수길이 펼쳐진다. TV나 사진으로 본 길을 실제 걸어보는 것은 감흥이 전혀 다르다. 아직은 연초록색이 많이 남아 있다. 한여름 무성한 짙은 초록보다 훨씬 색감이 좋다. 4인승 6인승 자전거를 탄 가족들이 유유자적 길을 오간다. 커플들은 서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 여행수첩
■가는 길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슬로시티 삼지내마을을 가려면 창평IC로 빠져나오면 금방이다. 3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다. 죽녹원부터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대덕JC와 담양JC를 거쳐 88고속도로 담양IC로 나오는 게 빠르다.
부산에서 담양을 하루 만에 다녀오기는 벅차다. 제대로 둘러보려면 1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다면 운전자 한 명은 고생을 감수하고 새벽에 출발하자. 해질 때까지 관광을 즐기고 밤에 돌아오는 일정을 짜면 웬만한 주요 포인트는 놓치지 않고 담양을 즐길 수 있다.
■먹을거리
담양은 대통밥과 떡갈비가 유명하다. 담양의 거의 모든 음식점에서 대통밥은 기본 메뉴다. 대통에 다섯 가지 곡물과 은행·밤 등을 넣고 찐다. 대나무박물관 맞은편 송죽정(사진·061-381-3291)의 대통밥이 이름나 있다. 전라도식 밑반찬이 정갈하다. 대통의 크기가 지리산 대통보다는 작다. 담양읍사무소 근처 덕인관(061-381-2194)와 신식당(061-382-9901)이 떡갈비를 전문으로 한다. 창평쌀엿은 조선시대 양녕대군과 함께 창평에 온 궁녀들이 전수한 것이라고 한다. 먹을 때 바삭하며 입안에 붙지 않고 먹고 나서도 찌꺼기가 남지 않는 독특한 맛이다. 창평시장 안의 창평국밥은 시골장터에서 느끼는 오랜 전통의 손맛으로 가마솥에 끓인 국물을 뚝배기에 담아낸다. 누린내가 없고 국물이 맑고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잠잘 곳
슬로시티에 한옥민박집이 여러 곳 있다. 하루쯤 한옥체험을 해볼 만하다.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이 예쁜 한옥에서(사진·011-606-1283), 마당에 온갖 장아찌를 담아놓은 항아리가 인상적인 매화나무집 (010-7130-3002) 외에 돌담집(010-9086-1039) 달구지민박(010-9945-8115) 흙과 풍경(010-3628-0157) 등이 있다. 1실 7만 원부터.
금성산성 부근 담양리조트는 스파 시설과 호텔, 리조트를 겸해 담양의 숙소 중 가장 고급스럽다. 비수기 주중 13만 원부터. 객실을 이용하면 호텔에 딸린 온천 이용이 공짜다. (061)38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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