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외국에서는 꽃을 보는 관상용으로
우리에겐 식용으로 키워지는 작물 중 하나가 쑥갓이라고 하네요.
수경으로 키우던 쑥갓 줄기를 3개 물꽂이를 해봤습니다.
줄기에서도 뿌리가 내린다길래.
하지만 시간이 흘렀음에도 뿌리가 내리지 않고 있어요.
"쑥갓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것을 하여?"
수경식물 재배기로 씨를 뿌려 키우면
자라는 속도가 빨라 대략 1~2달 정도이면 정리하고
다시 씨앗을 뿌리는지라 꽃을 보기가 애매하여서리 ~
몇 줄기를 잘라 뿌리를 내려 인공토에 심으려는 중이여요.
"수경재배하던 것을 그대로 흙에 심으면 될 것 같은데 왜 복잡하게?"
인공토로 환경을 바꿔주면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뿌리가 내려야 하는데요.
새 뿌리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공기나 토양 중에 있는 곰팡이나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 죽습니다.
빠르게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죠.
믿음의 뿌리가 내린다는 것에 대해 연상이 되어서
적어봤습니다.
살아가다가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그 문제를 가지고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주님입니다.
빠르게 응답해주시면 좋으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댜려야 하고요.
지식적으로는 쉬운 것이지만
실제적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쉽다고만은 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기도를 하면 들어주시는 것이 많다고 여기지만
다 저의 원함대로 흘러갔다고는 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저의 원함과는 다른, 반대의 상황이 나오던데
그럴지라도 지나가보면 그것이 은혜였다는 것이 알아질 때가 생깁니다.
사단이가 교활하고 영악하다는 것을 압니다만
어느 정도까지인가? 라고 물으신다면, 아는 것이 제한적이라 ~
잘 모릅니다.
만일 사단이가 공격해올 때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규범이나 통례 상
악한 모습으로만 다가온다면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나
선한 것인양, 의로운 것인양 다가올 때가 많다는 것을 압니다.
'코끼리의 비스켓' 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쉽게 부스러질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이 되어지는데
주님의 안에서가 아닌 주님의 밖에서 사단이를 만나면
우리가 바로 코끼리의 비스켓과 같지 않겠는지요?
"이건 뭔 시츄에이션이래~~~?"
내용을 적었다가 날린 부분이 있는디요~~~
이모티콘은 귀여워서 그냥 남겨둡니다. 의미 없음~~~요.
"왜 삭제하는데?"
적다가 다른 일도 하고 그러는데요.
그러다보면 생각의 흐름 등이 끊어질 때가 생깁니다.
그런 경우 쥐어 짜내어서까지 적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전에 어느 성서 영화를 봤어요.
보는 내내 계속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거슬리는 등의 거부감이 있었으나
미련스레 끝까지 보았어요.ㅋ~
결론부를 보면서 왜 그러했는지에 대해 알았긴 합니다만.
요한계시록에 대한 영화였습니다.
내용 중 요한이 서신을 여러 교화들로 보냅니다,
이때 서신이 섬 외부로 나갈 수 있었던 것에는
로마군 장교와 이스라엘 아가씨의 사랑이 있었다는 식의 내용으로
결말을 끌고 가대요. 럴수럴수 이럴수가~~~~~
인도사람들과 중동 사람들 중 비슷하게 생간 경우가 있는데
인도 사람들이 만든 것인지(?)
마지막 장면에서는 밧모섬이 파라다이스처럼 변화되어지면서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끝이 났습니다.
인도 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맥락이 있건 없건
떼창과 떼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한번 보면 끝까지 봐야 하던 습성~
옛 사람의 습관을 따라 미혹된 자가 만든
미혹을 일으킬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겁니다.
유사한 상황을 몇 번 더 경험하면서
불편함이나 거부감이 생길 땐 끝까지 보지 않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의 이야기가
두서없이~ 맥락없이~이리저리 튀면서 자신이 몰아가는대로
저를 끌고 가려한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사 도리와 규범으로는
그러하다 해도 계속 이야기를 끊어버리면 무례한 사람이 되겠죠.
"아줌마, 아줌마는 왜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마음대로 생각햐~~~~그런 이해력을 가지고 대체 뭘 해~~
진짜 머리가 나쁘네~~그 머리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라는
직설적인 비난을 접해봤습니다.
걍 속으로 웃고 말았습니다.
저 분은 흥분부터 하는 다혈질인가비네~~하면서요.
실제론 주장을 반복하면서 강압하길래 더 들을 필요가 없었어요.
지금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일까,
다른 존재가 그리 끌어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 답을 바로 알았긴 합니디만.
"어캐 알았는디~~~~~"
주님이 계시오니~~~알았습죠. ^^
듣는 중에 화가 날 것 같아 대적과 함께 속으로 기도를 했고,
바로 대화의 주도권을 제가 쥐면서 제 페이스로 끌고 갔었어요.
다혈질의 사람은
감정이 앞설 때가 많아 쉽게 틈이 생길 것 같습니다.
제 아이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어요.
그곳의 업주가 그랬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와서 신경질을 내고 소리를 질러도
사는 것이 힘들고 퍽퍽해서 그러는 것이려니 하고
기분 나빠하거나 반응하지 말고 바로 잊어버리라고.
저녁과 밤시간에 일을 했었어요.
서울의 강남지역이었는데 주변이 유흥가였다보니
소위 "삐끼' 등이 와서 담배와 물을 사가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징이 급하고~
상대를 무시하면서 반말로 소리를 지르고~였답니다.
당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디서 내 자식에게 감히 ~~~~' 그런 생각이 아닌,
"네가 어디서 그런 것을 보겠니.
참는 것을 익히기 위한 과정이고 경험이라고 여겨~~" 했었죠.
자식을 귀히 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참는 것을 알지 못하면 사회인이 되었을 때 어려움이 많을 것이니
좋은 것을 배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데 이 녀석이 술을 좋아하는 것 같아욥
군대에서 먹었던지라 통제되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최전방 부대에 있었기에
군에서는 친한 병사들끼리 외박일을 조율하여 부대 인근의 펜션을 빌려서는
목사님 표현대로 부어라~~ 마셔라~~ 죽어라(?) 했던데 따른 습관 같은.
"가족끼리 같이 대작하고 그랴~~~~?"
저희 가족은 저를 포함 술을 먹지 않습니다.
가끔 할아버지와 손자의 위치에서 식사 중에 마시는 정도가 다 입니다.
요즘 직장에서의 회식 문화는
코로나 시기 동안 깨졌기에 식사만 하고는 끝납니다.
생각해봐요~~
요즘 애들은 같이 모여서도 각자의 폰을 보면서 따로 놀기 달인들인데다
비용도 그자리서 1/n 으로 내는 경우가 많은데
연공서열이 존재하는 회식 문화에 대해 익숙하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남자 직장 상사가 여직원 어깨에 손을 대기라도 하면
바로 성희롱을 당했다고 하는지라 남자들이 도망다니기도 합니다.
회식을 해도 1차 이상은 넘어가지 말라고 하죠.
전에 아이와 지하철을 함께 탔어요.
저녁 시간대, 콩나물 시루 수준의 서울 지하철 9호선요.
아이가 폰을 두손으로 눈 위치까지 높이 들고 보는기라요~~
"팔 아프지 않아?" 그랬더니 .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대남(20대 남자)들이 지닌
사회적인 핍박을 당하는 삶의 현장이자 설움으로
생존을 위해서라도 손을 어중간한 위치에 두지 않기 위한
전략이자 전술이랍디요. ㅋ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세상은 고의적이지 않은 것에도 그다지 관대하지 않을 수 있어서
뭐든 사전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일 것인데요.
술취하면 사람들이 풀어지고 실수하기 쉬워서
더 불리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어쨌든 술을 마신 후에는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정도 잡니다.
취하면 유머러스해지면서 말이 많아지던데
말을 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바로 자도록 습관을 잡아주니까
취하지 않을 선에서 멈추는 절제함이 나타나더라고요.
"집에서만 그라고 나가서는 다를 수도 있잖여~~~"
회식을 했다거나,
친구들과 만났어도 늦지 않은 시간에 제정신으로 옵니다.
지난 몇년 동안 취한 모습을 못 봤습니다.
아직까지는 그 아이가 주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긴 하나
그래도 주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보호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늘 있으니까요.
이를 보면서
우리의 많은 부분들은 훈련되어지는 것임이 알아집니다.
믿음의 부분 또한 예외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내함을 익히는 것도, 절제함을 익히는 것도, 사랑을 배우는 것도 등등
강제함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시기에
스스로 익히지 못하고 훈련되어지지 못하면 결국 '나'만
남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으니까요.
목사님이 설교 중 인용해주신
베드로 후서 1장의 말씀을 복기 해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어렵지 않은 내용인듯 하면서, 어려운 부분이다 합니다.
'절제' 하나만 가지고도 금방 익힐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과는 달리
실제로는 많은 시간 속에서 연단되어져야 할테니까요.
사단이가 생각의 덩어리를 계속 쏟아붓고 있다고 해봐요.
그럴 땐 아무리 절제~~ 절제를 부르짖어도
쉽게 생각의 절제가 되기 어려울 것인디요.
평상시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면
생각이 쏟아진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어려울 것인 등
"당신도 계속 생각해보고 등 생각이 많잖여~~~"
그렇죠. 맞아요.
하지만 내가 내 생각을 이끌고 있는가, 끌려가고 있는가를 봐야죠.
대부분은 제가 주도합니다만,
어느 때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생각과 감정이 요동을 치려 합니다.
그럴 땐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 구분이 되어지기 시작하면
참소의 부분에서도 가벼워집니다.
내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왜 나를 질책하고 책망하고 그러겠어욥~~~~
개인적으로 성경의 말씀 중 어느 부분이 가장 두려운가 하면
베드로 후서 2장의 내용입니다.
특히 '잡혀죽기 위하여 난 이성없는 짐승 같은~'이란 표현에 그렇습니다.
":당신에게 하신 말씀이 아닌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에게 하신 것이잖여~~"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사랑이다~~~" 그럴 것입니다.
어디는 자비, 기독교는 사랑~ 식으로 도덕 교과서에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고 등과 함께 ........사회 과목인가요?
하나님은 언제나 자비하고, 관대하시고,
인내하시며, 포용해주시고, 모두를 사랑하시고~~~라는
인식과 이미지를 단번에 깨트리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아니한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 아니라
한쪽 방향으로만 인식하면 경외함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살아서의 심판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아무리 방종하고, 방탕했어도 탕자라고 우기면 그만이라,
말씀들이 뒤죽 박죽해지는 것은 물론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되어질 것 같습니다.
우리보다 위도가 높은 곳에 있는 김 머시기 정은의 경우라도
교인들이 죄다 매달려서 그를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가슴 등을 치면서 이리저리 굴려다니기까지 한다고 해봐요.
감동하심으로 기도의 응답을 통해 가능하겠는지요?
분명 하나님의 지니신 품성의
한 부분만 받아들이고 알면 안되는 것이겠죠.
하나님이란 이름의 우상을 만드는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그리 많이 심판하셨던 것을 보면서도
타민족의~~ 과거형~이기까지 해서 무섭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어요.
우와~~~성경의 내용이 디게 재미있다 그런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 현재형이고 미래형까지 되어지는
'잡혀죽기 위하여 난 ~~'이라는 표현을 접했을 땐
두려움으로 전율까지 왔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존재의 무가치함 보다도 훨씬 못한 것인데
우리들은 그 거짓에 계속 잡혀서 살았고
심지어 대를 이어 전하는 자의 자리에까지 있었더라고요.
장유유서, 붕우유신~~같은 진리가 아닌
유교적 사상을 진리로 받아들여 그것으로 진리인양 이야기를 하고
타인의 정죄하는 잣대와 도구로 사용해왔고
비판, 판단은 물론 간섭과 조종 등까지 하려고 했었으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면서리 철학을 형이상학
즉 상위의 개념인 것인양 착각하기도 하고 등등
그 죄를 어찌 다 이루말 할 수 있겠는지요?
힌두교의 상징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힌두교의 상징인줄 모르고 소지했을 경우 죄가 아닐 수도 있으나
아는 상태에서 소지했다면 죄가 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보면서 계속 연상을 하며 사단이를 부르고 있을런지도 모르잖습니까.
그 중 하나가 제 아이 옷에도 있었어요.
낡아서 버렸긴 하나 그거이~~~옷에 찍혀있던 문양이
힌두교의 상징에서 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어요.
언젠가 용이 양각된 벼루 등을 포함하여 많이 가져다 버렸음에도
내용을 적으면서 그랬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어마얏~~~~~
모르는 것은 약이고 아는 것은 병이라 카던데
무지함은 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임을 생각해봅니다.
알게 모르게 얼마나 죄된 것이 많이 파고 들어왔는가 합니다.
"그런 것에 민감하게 굴면 어캐 살아?"
그러긴 한데요.
한자는 모른다고 하여 반야심경 등의 내용이 있는 족자를 들여놓고
매일 '필체가 머찌당~~' 하면서 들여다보고 있어도 될까요?
원시부족민들의 수호신을 의미하는 나무 조각상을
가져다 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기념품으로 팔던 것이라 별 생각 없이~~~~
그런 것이 내 집에 있어도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만일 제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누가 부적을 제 집에 두고 갔어요.
저는 알지 못하는지라~ 그래도 괜찮을까요?
최근 TV에서 잠깐 보았는데요.
어느 승이 죄다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의 키 정도 되는 종이에 그린 구렁이와 용이었어요.
굵은 붓으로 종이에 휘젓다보니 그런 것 같은데,
그리려고 하여 그리는 것이 아닌, 그리고 보면 그런 형상이 나온다는 겁니다.
당사자의 주장이 그러합니다.
그렇게 허구한날 숭악시런~그런 그림이 그려지는 그 사람은
그림을 통한 죄가 없을까요?
서울의 방배동에서 양재동으로 가는 이면 도로 가운데
어느 메 즈음 음식점 앞에 3개의 성인남자보다 조금 큰 듯한 동상이 있어요.
보기엔 흉칙하기 이를데 없는 그것들은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장의 모작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도 들고
'미이라'라는 공포 영화에서 나오던 고대 군인 모습의 좀비들 같기도 한
장군들처럼 보이는 무사의 동상입니다.
저처럼 섬찟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면 결코 좋은 형상이나 물건이 아니겠죠.
한국의 K팝 관련 남자 아이돌의 인기가 높습니다.
외국의 남자들도 좋아하던데 국위 선양이다~하면서 좋아해야 할까요?
우덜이 보기엔 조각미남 같은 외국의 남자들이
왜 동양의 자그마하고 화장까지 하여 예쁜 남자들을 좋아할까요?
우덜은 깔끔하게 생겼네 ~~정도이고
왠만한 애들을 꾸며 놓으면 저 정도는 되는데~~~그러는데 반해
서구인들의 눈에는 잘생기고 예뻐보인답디요~~~
인형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아이돌은 남자들이라도 대체로 체구가 작습니다.
키도 크고 팔다리가 긴 서구인들의 눈에는
앙징스러운 캐릭터로 인식되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인지 확인해보고자
한국에 와서는 기획사 근처에서 기다리기도 하는 등 그렇다죠.
K팝이란 이름으로 무엇을 확산시키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제 시각에서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현상을 만들고 강화시켜가고 있어요.
과거 서구의 팝 스타 등에서도 그랬지만
그들은 작고 앙징스러운 캐릭터들이 아니었어요.
"작은 것이 뭘 의미하는 것인디~~~~~"
글쎄요~~~~~~
해석이 분분하겠으나
'나보다~~~약자'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남자 입장에서 다른 남자에 대한 경계심 등을
작고 예쁜 모습을 통해 떨어뜨려 주는 겁니다.
생각을 해봅니다,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요?
저의 생각에 대해 물으신다면,
주님이 2천년 전의 낮은 모습으로서가 아닌
왕의 모습으로서 오셔야 하니까요.
다만 악한 도구가 되어진다는 것,
왜 그러한가의 이유에 대해 대략적이나마 알 듯합니다.
미혹이 심한 어느 집단을 압니다.
제가 인지하는 선에서 그들은 두번의 징계를 받았어요.
한번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회자되어지는 등
사기왜 배임 황령 같은 사건으로 떠들석 요란했었고
또 한번은 ~~역시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요란했어요.
처음엔 그들 안의 문제였는데
두번째의 것은 그들 밖으로까지 영향을 미쳤어요.
그들로 인해 나라까지 휘청이는 지경이었죠.
그 영향으로 광화문 앞을 가길 꺼려했었어요.
성황당마냥 나무에 왜 리본을 매놓는 것인지 등 이해가 안되었어요.
나무를 보면 어수선함과 심란함이 밀려들어와서리
근처에 갈 일이 있었을 때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서 갔었다는.
광화문 근처에 저의 모교가 있습니다.
조선의 끝자락에서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로 미션스쿨이었어요.
80년대에 다녔는데 같이 예배를 보거나 했던 적이 없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내용 중 90년대 들어서면서 은혜가 약해졌다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감사함이 무엇인지,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 망각해 버림~
학교의 출발은 병들어 길에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복음을 전해주면서 치료해주고, 교육을 시켜준 것이었다는데요.
돌아가서요.
악하니 악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미혹을 당하지 않은 한 어찌 보고도 모를 수 있으며.
회개하지 않으면 더 큰 거악이 온다는 것 또한 모를 수 없습니다.
악하니 악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인데
악을 만나서 악에 눌려버린다면 어찌 될까 싶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당신은 어칼껴~~~~"
일단 피하려 할 것이고, 피할 곳이 없다면 싸우려 하겠죠.
설령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영원한 멸망은 피할 수 있도록,
셰례 요한 등이 어떠한 최후를 맞았는지
모르는 분은 없으실 것인데요.
단지 사람의 눈으로 보면 허무하지 아니한지요?
보이지 않는 너머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면 그럴 것 같습니다.
말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를 봐도 글코, 야곱을 봐도 글코, 사울왕과 다윗을 보아도 글코
솔로몬을 보아도 글코 등
'사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가?'란 관점으로 들어가보면
부분의 부분일지언정 깨닫고 알아지는 것들이 생깁니다.
강제하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역시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알려주실 것이고요.
비록 죄더미에 들어 앉아 있어도 주님을 따르고자 하면
헤어날 길을 만들어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압니다.
주님은 무능한 분이 아니신데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르시는
무능한 분으로 만들기도 하고
뭐든 기도만 하면 다 들어주셔야 하는집사차럼 여기기도 하고 등
주님에 대한 미혹 역시도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그러한 종류의 미혹을 깨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던 1인이
바로 저입니다.
말씀을 보고 전율까지 느꼈다고 해도
그게 나에 대한 경고하심이 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도 시간이 걸렸고요.
"왜 빠르게 깨닫지 못하였는디?"
나와 상관없는 다른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
이단 교주 등 구체적인 상대를 정죄해 버렸으니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게 왜 문제인겨?"
.....................
.....................
그들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그들을 상대하면 되는 것이지
저는 판단하고 심판하는 위치에 있지 않은데요.
양신역사가 무엇인지
그러한 현상이 있다는 정도 외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전에 어떤 이가 그럽디요.
자신에게는 양신역사가 있어서 주님과 사단이가 교대로 온다고.
당시 저 ← 완전 어리버리 ㅜㅜ
모릉께로 그 말을 일부 믿었는데 지나고보니
그 사람은 미혹의 앞잡이 정도 되는 자리에 있었어요.
이후로 양신 역사란 속임이라고 여깁니다.
주님을 주님으로 삼아 말씀을 붙잡고 악한 자와 싸을 때
주님은 무능한 분이 아니시기에
결코 주님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신다고 여깁니다. .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나타난다면
미혹의 영이 주님인척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깁니다.
"주인인척 하는 것과
진짜 주인일 때의 차이가 있을까?"
ㅠㅠ
내가 이래 가지고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처럼~
무식이 뽀롱날까봐 길게 안 적으려 했는데요.
제가 아무리 생각을 하고 또 한들
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함을 참고하시고~~~~~~~
자기 마음의 중심을 스스로 들여다 봐야겠죠.
주님이 주인이시면 주님에게 순종하려 함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이 자신의 주인 자리에 있어
다른 것들을 따라가려 하고 있겠죠.
"그 상태를 자신이 잘 모를 수도 있잖여~~~"
그럴 수도 있으나
목사님 설교를 잘 들어보면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루 중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가 등으로요.
마음이 있는 곳으로 생각이 흐르는 법이니
주님의 사람이라면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생각하게 돠어지겠죠.
저 이러다 밤을 셀 것 가타욥.
하여서리 이젠 그만요~~~ㅎㅎ
"그런데 이리 적으면 힘들거나 하지 아니햐~~~"
즐겁고 재미있기에
은혜를 얻어가는 시간입니다.
"은혜를 얻는 비법이 뭐여?"
쉿~~~~~~~~
매우 중요한 것이오니
어디가서 함부로 이야기 하지 마세요
그거슨~~~~~
제 힘으로 살아오는 것이 가능했고,
변수가 없는 한 죽을 때까지도 가능할 것 같지만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것에 불과할 뿐
진실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주님에게 더 많이 가고 싶어 하는 마음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데 그 외에 무엇이 더 있겠나 합니다.
"헉~~~~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여기에 있당가~~~~~~"
ㅎㅎㅎㅎ
이젠 진짜 그만요~~~^^
|
첫댓글
감사합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