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주지봉-문필봉
주지봉(朱芝峰)-문필봉(文筆峰)
◆개요와 자연경관
-왕인박사, 도선국사, 최지몽 등 인재 배출의 요람-
예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추앙받는 월출산의 정기를 받은 영암은 최근 대불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등 서남권 새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 월출산에서 뻗어 나온 군서면의 주산인 주지봉과 문필봉의 정기를 받아 구림의 성기동(聖基洞)은 유명한 지명에 증명이나 하듯 왕인박사, 도선국사, 최지몽 등 성인과 도인들을 배출한 인재의 요람이다.
역사적으로 본 영암은 삼한시대에는 마한, 삼국시대에는 백제 월나군, 신라 경덕왕 때는 영암, 고려성종 때는 낭주로 바꿨다가 다시 영암으로 복귀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월출산은 달빛이 밝다는 뜻으로 달라산, 월라산 등으로 불렸으나 달뜨는 산을 뜻하는 월출산(月出山)으로 변했다. 주지봉 주변에는 월대암, 월곡, 월각산, 월송 등 달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주지봉과 문필봉을 갓 모양의 관(冠)봉, 뾰족한 붓끝 형상의 필(筆)봉과 두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있어 형제봉(성제봉)이라고 했다.
두 봉우리는 그동안 월출산의 유명세에 숨겨졌으나 산 주변에 87년 왕인박사유적지 조성과 아울러 도선국사가 세운한 도갑사, 천문학의 대가 최지몽을 모신 국암사 등 문화유적지가 널리 알려지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그밖에도 주지봉 주변에는 월곡리의 수호신이자 천연기념물 283호인 500년생 느티나무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도자기 굽던 구림리의 가마터, 그리고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던 육우당, 영모각, 죽정사우, 태호사, 사권당 등도 문화, 역사적으로 매우 유서 깊은 곳이다.
또한 고려후기에 번성한 도갑사는 도선국사가 유년시절을 보냈고 중국을 다녀온 뒤 문수사 터에 지었는데 국보 50호인 해탈문은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 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건축으로 청평사 회전문(보물 164호)와 비교되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특히 백제 근초고왕 때 출생한 왕인(王仁)박사는 8세에 주지봉 기슭의 문산재에 입문하여 유학과 경전을 수학하는 등 문장이 뛰어나 18세에 오경박사에 등용됐다. 문산재 위 월대암 밑에는 책굴과 왕인박사석상이 있다. 이굴은 베틀굴이라고도 하며 양산재를 지어 후진양성에 힘섰다. 그 아래에 왕인박사가 닥나무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었던 지침암(紙砧岩)이 있다. 그 무렵 백제는 고구려의 잦은 외침으로 국가 존망이 위태로워지자 17대 아신왕때 일본과 수교를 맺고 태자를 7년간 일본에 보내기도 했다. 일본 웅신천왕의 초빙을 받아 왕인박사가 32세때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도공과 와공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문화와 가요 등을 창시하여 아스카(飛鳥時代)문화 성립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그는 일본 황태자의 스승과 황실의 고문이 됐고, 성인으로 추앙받아 오오사카 천만궁 고려신사에 그를 모셔졌고 히라가다에 묘소가 있다. 필자는 2004년 10월, 일본의 왕인박사 유적인 천만궁을 답사했는데, 그 주변엔 매화나무가 군락을 이뤄 그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매화빵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자관광상품이었고, 맨홀뚜껑, 인도블록 등에도 매화가 그려져 있었다. 고국에서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고 구국의 일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문화를 매화꽃처럼 찬란하게 꽃피운 그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뿌듯해 온다.
그러나 아쉽게도, 왕인박사에 대한 우리나라 문헌은 거의 없고 일본 서기 및 고사기에 왕인박사에 대한 짤막한 기록이 있을 뿐 한치윤의 해동역사도 일본문헌을 인용했을 뿐이다. 다행히 구림의 산허리 냇가에는 조암(槽岩)이라 새긴 돌구유가 있고, ‘고최씨원금조기장’이라 새긴 바위와 와편이 많이 발견됐다. 산태골 남쪽 산자락은 왕씨부자가 살았던 왕부자 터다. 그리고 왕인이 성기동(성짓골)을 떠날 때 마을을 돌아봤다는 의미로 고향과 작별한 고개를 돌정고개란 이름이 생겼다. 또 왕인이 떠난 상대포와 도선국사가 떠난 탈천포는 4km의 거리로 도선의 예언대로 곡창지대로 변했다. 이를 근거로 성기동은 76년에 도지정문화재가 되었고, 87년 왕인묘를 설립 이 일대를 유적지로 정화했다.
한국지명총람에 나타난 도선국사의 출생과 구림리에 얽힌 전설도 흥미롭다. 낭주 최씨 처녀가 겨울에 냇가에서 빨래하다 떠내려 온 오이를 먹고 아들을 낳자 그녀의 부모가 국사암 갈대밭에 버렸다. 삼일 후 아기를 버렸던 곳에 가보니 수십마리의 비둘기가 둘러싸고 아기를 돌봤는데 바로 도선국사다. 12살 때 월암사에 불교에 입문해서 도를 닦은 후, 중국으로 건너가 일행스님에게 풍수지리와 도를 깨우치고 돌아와 도갑사 등 많은 사찰을 짓고 선행을 베풀었다. 그런데 중국황제가 백제에 도선같은 큰 인물이 많이 나올 것을 우려하여 백제에 신하를 보내 큰 인물이 배출될 산들의 맥을 끊어버렸다. 이를 간파한 도선이 백두산 상봉에 중국을 향해 철방아를 계속 찧었더니 중국의 큰 인물들이 계속 죽자 도선을 잡아들이라 명령했다. 도선이 고향을 떠나며 ‘흰덕바위가 하얗게 변하면 이곳이 바다가 들녘으로 변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예언대로 흰덕바위는 햐얗게 변해 백암(白岩)의 지명을 얻었으며 그 바다는 간척공사로 인해 농경지가 됐다. 구림리는 비둘기들이 도선국사를 보살폈다는 뜻으로 비둘기구(鳩), 수풀림(林)을 쓴다.
고려초 천문학의 대가 최지몽은 도선이 죽은 지 7년후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별을 보고 주역을 줄줄 외고 점성술로 유명했다. 왕건이 고려태조로 등극한 후 삼한을 통일할 원대한 뜻을 품고 있던 중 이상한 꿈을 꾸고, 최지몽에게 물었더니 삼한통일에 대한 해몽을 했다. 그의 말대로 삼한이 통일되자 궁중 고문의 높은 벼슬을 내렸다. 그를 기리고자 고향인 구림에 국사암이란 사당을 지었다.
최근 구림청년회(회장 이동진)에서 주지봉과 문필봉 주변에 이정표를 세우고 뜻있는 산악인들이 문필봉에 밧줄을 설치했으나 월출산국립공원에서 비지정 등산로라는 이유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등산객들은 왕인박사유적지와 인출배출의 요람 구림리 탐방과 아울러 주지봉과 문필봉이 연계된 등산을 갈망하고 있다. 따라서 등산객과 지역주민의 정서를 무시하는 월출산국립공원관리공단은 비지정등산로만 고집할 게 아니라 지역경제발전을 위해 등산로를 개발하던지, 아니면 관리권을 지방자치단체 등에 위임해야 옳을 성 싶다.
주지봉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국사봉과 삼계봉 사이에서 서쪽으로 가지 친 땅끝기맥이 선왕산, 궁성산, 활성산, 월출산, 도림산를 지나 서쪽으로 가지 친 산줄기에 주지봉과 문필봉을 솟구쳐 놓고 영암천으로 숨어든다. 물줄기는 영암천에 모여들어 영산강에 살을 섞고 남해에 골인한다. 행정구역은 영암군 군서면과 학산면이다.
◆산행안내
1코스: 도갑사 입구 대경가든-양사제-월대암-주지봉-갈림길-문필봉-갈림길-주지골-왕인박사유적지, 3시간 소요, 5.5km
2코스: 왕인박사유적지-주지골-삼거리-주지봉-월대암-양사제-왕인박사유적지, 2시간30분 소요, 5.0km
이번산행은 전국 2,115개 산을 등정하고 우리나라 등산지도 제작에 힘쓰는 안산 김정길씨의 공로를 축하의 자리를 무등산닷컴 회원들이 준비하고, 전북산사랑회와 호남지리탐사회(회장 김정길)의 박영근고문, 양흥식대장, 박석돈원장, 장혜경총무, 김기섭사장, 한영아, 안성희, 윤희남, 박성순씨 등이 참여했다. 특히 주지봉은 박석돈 원장의 고향이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주지봉과 문필봉은 암릉이라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문필봉은 위험해서 오르기가 매우 힘들다. 그리고 여름이나 겨울철 산행은 주의를 요하며 월출산국립공원지역으로 비지정등산로다. 왕인박사 유적지 못미처 도로변에서 나무다리를 건너 대경가든에서 동쪽의 시멘트길을 오르면 송림이 울창하다. 구림에는 소나무가 많아 송암, 남송정, 북송정의 지명이 많다. 왕인박사가 문산재와 양사재에서 공부하고 후진양성을 하며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어 붓글씨를 썼다는 지침바위(紙砧岩)에 닿으면 커다란 바위 가운데가 오목하고 반반하다.
사찰분위기가 한껏 묻어나는 고즈넉한 문산재와 양사재에 닿으면 탐방객들이 많다.(대경가든에서 20분 소요) 무등산닷컴에 기행문을 많이 올리며 산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는 광주의 명경헌선생 내외분을 김환기씨가 소개했다. 왕인박사 수학지로 유교적 호칭으로 주지봉, 문필봉은 백제와당으로 유생들이 수학해서 인재가 많이 배출됐고 문인들이 각처에서 운집했다는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백일홍은 삼복더위를 입증하듯 흐드러지게 피고 동백나무는 야무지게 열매를 맺었다. 문산재 뒤 암벽을 오르면 선돌에 마애불상처럼 새겨진 왕인석상은 그 흔적을 기리기 위해 후대인들이 도포차림을 조각(높이 2.5m)했단다. 지금은 곡창으로 변해했지만 백제의 안녕을 위해 일본으로 배를 타고 떠났던 상대포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애국의 고귀한 숨결이 느껴진다. 그 옆에는 그가 공부했다는 넓은 천연석굴(7mx2.5m)이 있는데 입구는 좁았으나 굴 안은 십여명이 들어갈 정도로 넓었다.
거대한 너럭바위에 힘들게 올라서면 월출을 조망하기에 최적이라는 월대암이 눈앞에 버티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주변에는 월암리와 월곡마을 등 달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불현듯 교교히 떠오르는 달빛을 벗 삼아 월대암에 포근히 안겨 있는 양사재와 문산재에서 학문에 정진했을 왕인박사의 환영이 어른거리며 그가 일본으로 떠났던 옛 포구였던 상대포가 아스라이 다가온다. 그 포구는 최치원이 중국으로 배를 타고 떠났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구림은 인재배출의 요람이었고 상대포는 중국과 일본 등 해상교통의 요충지였다.
월대암에서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능선을 가면 양사재에서 오는 길의 이정표를 만난다. 월출산국립공원관리공단은 비지정등산로라고 출입을 통제하는데 반해 구림청년회에서 작은 팻말을 세우고 밧줄을 설치해서 산꾼들을 배려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공단이 존재하는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남쪽으로 직진하여 오르다 전망대 바위에서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양사재가 살포시 얼굴을 내밀고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월대암이 다가온다. 동쪽은 도갑산의 암릉 아래로 도갑사도 눈인사하고 그 뒤로 월출산의 웅장한 암릉이 비상하는 공룡처럼 꿈틀거린다. 주지봉과 문필봉으로 이어지는 암릉도 설악산의 축소판인 듯 금강산의 만물상을 옮겨다 놓은 듯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어서 오라 손짓한다. 연이어진 스릴 넘치는 암릉을 가다보면 지리산 천왕봉을 가려면 통천문을 통과해야 하듯 주지봉을 가려면 천연석문으로 이뤄진 비좁은 주지문(?)을 긴장하고 통과해야 한다. 지나온 암봉을 바라보니 온몸이 짜릿짜릿하다. 그래, 주지봉과 문필봉은 필시 영광의 땅의 숨겨진 보배다.
거대한 바위 위에 노랗게 핀 원추리를 보니 어느새 마음이 노란 원추리 향연이 펼쳐지는 덕유산으로 달려가고 있다. 회춘바위 팻말이 있는 능선을 지나면 암봉이 끝나고 부드러운 흙길이 시작된다. 햇볕이 따가운 암릉보다 숲이 우거진 능선이 한결 시원하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는 주지봉에 닿으면 삼각점(해남 304)이 나무 그늘에서 쉬어가라 한다.(양사재에서 1시간 소요)
주지봉을 내려서면 붓을 거꾸로 세워 놓은 뾰족한 세 개 암봉이 마이산 탑사의 돌탑처럼 쌓아 놓은 듯해 바람이 불면 떨어질 것만 같아 무척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그런가하면 사람이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철옹성처럼 버티고 서 있다. 5분쯤이면 왕인박사유적지와 문필봉으로 가는 삼거리에 닿는다. 서쪽의 거대한 바위를 밧줄에 의지해서 거미처럼 기어 올라야한다. 그런데 밧줄이 오래돼 곧 끊어질 것 같아 안전사고가 우려되므로 철 계단이나 튼튼한 밧줄을 설치했으면 좋겠다. 20분이면 문필봉에 겨우 오를 수 있으나 눈비가 올 때는 문필봉 산행을 절대 삼가야 한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오찬을 즐기고, 출발하면 40분이면 낭주허씨 묘소에서 임도를 만나고 10분이면 왕인박사 유적지에 닿는다.(문필봉에서 1시간 소요)
무등산닷컴 회원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안산 김정길님의 2115산 등정과 남한의 등산지도가 완성되기를 기념하는 조촐한 잔치와 회원들의 정성을 모아 공로패 증정식이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산벗이 마냥 좋다. 그들의 마음이 부자다.
◆문화유적 및 명소
[왕인(王仁)박사 유적지]백제때 유명한 학자 왕인박사의 유적지로 일본 웅신천황(405년)의 초빙으로 천자문과 논어 등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의 왕자 사부와 황실의 고문을 맡아 전해 주었고 백재문화를 전수하여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되었다. 영광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이 탄생지로 박사가 마셨다는 성천옆에 유허비가 있으며, 왕인묘, 전시관, 문산재, 양사재, 학이문 등이 있다. 왕인박사의 업적을 조명하고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매년 100리 벚꽃이 만개하는 4월10일 경이면 왕인문화축제가 열린다. 특히 월출산 북쪽 영암에서 학산면 독전까지 20km의 벚꽃길은 전주-군산, 경남하동, 진해 벚꽃잔치 못지 않다. 구림-도갑사의 4km는 벚꽃과 함께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저수지를 낀 드라이브가 압권이다. 입장료는 1,000원 주차비는 대형 2,500원, 소형 1,500원이다.
◆교통안내
[드라이브]
•호남고속도로 광산나들목-나주.목포방면-(13번국도)나주-영암에서 우회-목포방면(819번 도로)-구림사거리-도갑사 입구, 대경가든앞(들머리)-왕인박사유적지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2번국도-891번도로-도갑사 입구, 대경가든-왕인박사유적지
[대중교통]영암-목포행, 또는 도갑사행 군내버스 20분간격 운행(15분 소요)
◆맛집
•갈낙탕: 영광 한우갈비와 개펄에서 잡히는 낙지가 조화를 이루는 영암별미의 음식이다.
•짱뚱어탕:기름진 개펄을 먹고 사는 짱뚱어를 재료로 만들어 맛이 진하고 개운하다.
•낙지구이:살아있는 세발낙지를 젓가락에 감아 양념해서 살짝 구어 연하게 씹히는 낙지 맛 이 일품으로 술안주에 제격이다.
•장어구이:월출산 맑은 물로 양식한 민물장어는 고단백식품으로 담백하고 감칠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