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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7—붕까라-이애리수, 전경희
어떠한 村令監(촌감)이 前線帶(전선대)에다 十圓(십원)짜리 한장을 매달아 놓고
속히 보내달라고 付託(부탁) 하고 왔더니 心思(심사)가 고약한놈 집어 쳤구나
붕까라 붕까라 붕까라 붕까라 붕
오늘은 會社(회사)의 月給(월급)날인데 이름아침 일찍이 月給(월급)을타서 妓生(기생)
집에 갈거나 술먹으려 갈거나 마누라에게 물어봤다 周牢黥(주뢰경) 쳤다
붕까라 붕까라 뿡까라 붕까라 붕
財産(재산)이나 百萬圓(백만원)을 언뜻모아서 꽃 같은 美人(미인)을 마누라삼아
新婚旅行(신혼여행)은 飛行機(비행기)로 할거나 虛榮(허영)의 꿈을꾸다 오줌쌌구나
붕까라 붕까라 뿡까라 뿡까라 붕
東大門(동대문)밖 淸凉里(청량리)로 散步(산보)를 가다가 묵직한 돈지갑을 얻어가지고
얼시구 좋다 하고보고 보고 또보니 電車(전차)에치여 널브러진 맹꽁아
맹꽁 맹꽁 맹꽁 맹꽁 맹
1930년 victor-record 발매 sp음반-作詞(작사) 作曲(작곡)未詳(미상) 이애리수, 전경희 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전경희, 이애리수노래<사랑가>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그무렵 發行(발행)된 victor-record 歌詞紙(빅터레코드 가사지)----------------------------------------------에는
V49097-a 流行歌(유행가) 붕까라 合唱(합창) 李愛利秀(이애리수) 全景希(전경희) 伴奏(반주) victor 管絃樂團(빅터 관현악단)
V49097-b 流行歌(유행가) 사랑가 合唱(합창)------------------------------------------------------------------------------------------
라고 表記(표기)되 있으나 노래 歌詞(가사)로 보아서 漫搖(만요)라 해도 틀린말은 아닐것입니다
音盤番號(음반번호) v49097 는 그 有名(유명)한 <강남제비>가 실린 v 49097 다음이어서 興味(흥미)롭습니다
헌데 곡을 創作(창작)한 사람들이 表記(표기)되 있지않아서 매우아쉽습니다
上記(상기)曲(곡)의 實在的(실재적) 갈래인 漫搖(만요)는 一種(일종)의 comic song-코믹송-으로 당시 留聲機音盤(유성기 음반)에 受祿(수록)된 喜劇(희극)갈래와 影響關係(영향관계)를 주고받으면서
登場(등장) 하였습니다
특히 “漫搖(만요)” 라는用語自體(용어자체)는 當代人(당대인)들에게 많은 人氣(인기)를 얻었던 喜劇(희극)갈래인 漫談(만담)에서 나온것인데 만담이 諧謔(해학)과 諷刺(풍자)를
그特徵(특징)으로 하는것처럼 諧謔(해학)과 諷刺(풍자)의 內容(내용)을 노래로 만든 것을 指稱(지칭)한다 할수있습니다
用語自體(용어자체)는 漫談(만담)에서 나왔으니 만요의 發生(발생)은 當代人(당대인)에게 人氣(인기)를 얻었던 만담 才談(재담) 난센스, 스케치 등의 喜劇(희극)갈래 와의 聯關(연관)속에서
찾을수 있을것입니다
漫搖(만요)는 當時(당시)의 喜劇(희극)갈래속에 揷入歌謠(삽입가요) 形態(형태)로 존재하는게 많았고 獨立的(독립적)인 갈래로 漫搖(만요)나 漫曲(만곡) 이라는 曲種表記(곡종표기)아래
別途(별도)로 存在(존재)하기도 했습니다
만요는 基本的(기본적)으로 當時(당시) 時代相(시대상)을 반영하는 側面(측면)이 優勢(우세)했습니다
특이 漫搖(만요) 太半(태반) 이 當時社會(당시사회)에서 웃음을 誘發(유발)시킬수있는 要素 (요소)를 捕捉(포착)하여 노래로 만든것입니다
漫搖(만요) 라는曲種(곡종)을 달고 출현한 大衆歌謠(대중가요)로 가장이른 時期(시기)것은 1933년, 2월 발매된 콜롬비아레코드발매 임헌익노래<어린 新郞(신랑)>과 <깡깡博士(박사)> 가 보입니다
<붕까라>는 “붕까라 붕까라 뿡까라 붕까라 붕” 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후렴을 사용하고있는데 그內容(내용)도 우습고 荒唐(황당)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아침 월급타서 妓生(기생)집에 갈지 술먹으러갈지를 자신의 마누라에게 물었다가 주리경 당하는 모습이나 百萬圓(백만원)을 모아서 꽃 같은 美人(미인)을 마누라 삼아 新婚旅行(신혼여행)은
飛行機(비행기)로 가겠다는 虛榮(허영)의 꿈을 꾸다가 오줌을 싸고마는 남자의 모습처럼 우습고도 황당한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마지막으로 4절에서 우습고 황당한 내용은 絶頂(절정)에이릅니다
散步(산보)를 하다가 묵지한 돈지갑을 주운 主人公(주인공)이 너무좋아서 돈지갑을 보고 또보다가 그만 電車(전차)에 치이고마는 것입니다
詩的話者(시적화자)는 그런 主人公(주인공)을 “널브러진 맹꽁이”에 比喩(비유)하고 맹꽁 맹꽁 맹꽁 맹꽁 맹” 이라는 맹꽁이의 울음소리로 노래를 끝멪습니다
이처럼 이곡은 始終一貫(시종일관) 웃음을 誘發(유발)하면서 當代小市民(당대소시민)의 虛荒(허황)된꿈이나 그꿈의 末路(말로)를 웃음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노래의意味(의미)를 찾을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보드라도 이곡이 초창기 韓國歌謠(한국가요)에서 漫搖(만요) 의 出發點(출발점)에 서있는곡 중의 한곡이라 할만합니다
漫搖(만요)를 標榜(표방)한 것은 아니나 當時(당시) “漫搖(만요)에 特長(특장)을 보인가수”로 김정구씨기 있습니다-------
라는 글이 보이는바 김정구씨는 “漫搖(만요)를 標榜(표방)한 歌手(가수)”라고 訂定(정정)함이 옳습니다
曲(곡)을 吹入(취입)한 이애리수와 전경희는 조카와 외삼촌 사이이며 全景希氏(전경희씨)는 劇團(극단) 취성좌, 조선연극사 등에서 活躍(활약)한 喜劇俳優(희극배우)였습니다
낙화유수-583에
1058—Dinah-다이나-b
오! Dinah-다이나- 나의사랑 마음의 그리운 아름다운 그대
아! 그대여 다이나 어여쁜입술을 나에게 다오 나에게 다오
밤마다 그대의 눈동자 그리워하면 산란타 이마음 다이나
나에게 다오 kiss-키스-나의마음 산란타 나의사랑 다이나--------------------------------------------------------------<Dinah-다이나-> 이송 改詞(개사) 아크스트 作曲(작곡) 三又悦(삼우열)노래
Jazz song-재즈송-가운데에는 사랑의기쁨이나 사랑하는 사람에대한 禮讚(예찬)을 담은 노래가 많습니다
上記曲(상기곡) “Dinah-다이나-“도 그러한 例(예)에 該當(해당) 한다 할수있습니다
이곡은 飜案歌謠(번안가요)임은 이미 “다이나-a” 에 說明(설명)드렸으니 이를 參考(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에델워터스 노래로 發表後(발표후) 그時期(시기) 美國 演藝界(미국 연예계) icon-아이콘-이었던 bing Crosby-빙크로스비가 吹入(취입)하고나서 大大的(대대적)으로 流行(유행)하고
日本(일본)에서도 飜案(번안)되 發表(발표)되고 특히 다크미네가 부른버전이 가장크게 人氣(인기)를 얻습니다
그러자 그는 1935년경 okeh-record 서 또다시 韓國語(한국어)로 再飜案(재번안) 發表(발표)합니다
이때는 三又悦(삼우열)이란 藝名(예명)을 使用(사용)했습니다
이버전이 人氣(인기)를 얻으면서 韓國人(한국인)들로부터 fan-letter팬레터-를 많이 받았다 합니다
이곡은 1936년에는 Columbia-record 서 1934년<處女總角(처녀총각)>을 발표 人氣暴發(인기폭발)의 歌手(가수) 강홍식이 안명옥과 듀엣으로 發表(발표)해 流行(유행)에 불을 부쳤습니다
이와 거의同時(동시) polydor-record 서 강덕자의 목소리로 이어서 1939년 다시 okeh-record 서 抒情的 作詞家(서정적 작사가) 김운하 改詞(개사)로 김능자가 1월경 또다시 발표했습니다
1930년대 執中(집중)하여 우리나라에서 무려 네차례나 發表(발표)되었다는 건 이곡의 人氣(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알려주는 證票(증표)가 될것입니다
三又悦(삼우열)이 부른 이곡은 “Dinah-다이나-“라는 女人(여인)에 대한 禮讚(예찬)으로 이루어진 作品(작품)입니다
그내용을보면 詩的話者(시적화자)가 처음부터 始終一貫(시종일관) 다이나에 대한 過剩(과잉)된 感情(감정)을 噴出분출)하고 있음을 알수있습니다
“오!”나 “아!”와 같은 感歎詞(감탄사)의 連發(연발)이나 다이나를 여러 번 부르는 데에서도그와 같은 事實(사실)을 確認(확인)할수있습니다
게다가 그表現(표현)을보면”어여쁜 입술을 나에게다오” 라든지”나에게 다오 kiss-키스-“ 와같이 感覺的(감각적)인 表現(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수있는데 여기서도 感情(감정)의
過度(과도)한 噴出(분출))을 느낄수있습니다
또한 인래에서는 倒置法(도치법)의 사용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散亂(산란)한 이마음” 내지는 ”나에다오 kiss-키스-“와 같은 도차법의 활용은 시적화자의 興奮(흥분)된 감정을 强調(강조)
할뿐만아니라 安定(안정)되지않고 들떠있는 詩的話者(시적화자)의 마음 狀態(상태)마저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대”라는 詩語(시어)의 活用(활용)이나 “오”와 같은 終結語尾(종결어미)의 사용도 感情(감정)의 噴出(분출)을 助長(조장)하는 요소라 할수있습니다
이처럼 이재즈송은 基本的(기본적)으로 사랑이 充滿(충만)한 世界(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세계는 過剩(과잉)된 感情(감정)의 噴出(분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詩的話者(시적화자)는 dinah-다이나- 에대한 사랑과 情熱(정열)을 숨기지 못한채 다이나를 여러 번 부르고 露骨的(노골적)으로 사랑을 渴求(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낀다는건 일단 肯定的(긍정적)인 情緖(정서)에 該當(해당)된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하게 분출되어 흥분된 상태로 이어진다면 이는 享樂(향락) 내지는 快樂(쾌락)의 정서와 類似(유사)한 형태를 띨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이나는 사랑의 가장 激烈(격렬)한 感情狀態(감정상태)인 興奮(흥분)된 感情(감정)을 표출해서 기쁜마음을 表現(표현)하면서도 그기쁨이 지나쳐서 感覺的快樂(감각적쾌락
) 으로 치닫고있는듯한 느낌을 가질것입니다
이는 詩的話者(시적화자)가 自身(자신)의 마음이 散亂(산란)하다고 말한데서도 確認(확인)됩니다
산란함은 어지럽고 들뜬상태로 과도한 감정의 분출이 感覺的 快樂(감각적 쾌락)으로 이어지면서 느껴지는 感情中(감정중의) 하나입니다
다이나를 통해서 지적할 수 있는 jazz song-재즈송- 노랫말의 特徵(특징)은-----過剩(과잉)된 感情噴出(감정분출), 異國的(이국적)인 情緖(정서)를 드러내는 詩語(시어) 의 使用(사용)
,기쁨과 享樂(향락)으로 充滿(충만)한 世界(세계)---가 그것입니다
1058—伊太利(이태리)의 庭園(정원)-b
맑은 하늘에 새가울면 사랑의 노래를 부르면서 山(산)넘고 물건너 임오길
기다리는 이태리 庭園(정원) 어서와 주세요
저녁종소리 들려오면 selenade-세레나델-부르면서 사랑을 속삭이려 임오길
기다리는 이태리 庭園(정원) 어서와 주세요
1936년, 9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이하윤개사 에르원작곡 최승희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이하윤작사 최승희작곡 최승희노래<鄕愁(향수)의 舞姬(무희)>가 함께 보입니다
當時(당시) Columbia-record 發行(콜롬비아 레코드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704-a jazz song-재즈송-伊太利(이태리)의 庭園(정원) 異河潤(이하윤) 作詩(작시) 에르윈 作曲(작곡) 崔承喜(최승희) 伴奏(반주) 日本(일본) Columbia tango band-일본 콜롬비아 탱고 밴드-
C40704-b jazz song –재즈송- 鄕愁(향수)의 舞姬(무희) 異河潤(이하윤) 作詩(작시) 崔承喜(최승희) 作曲(작곡)---------------------------------------------------------------------------------------
--------------라고 紹介(소개) 하고있습니다
상기 歌詞紙(가사지)에도 表記(표기)되 있듯이 이곡은 이하윤이 作詞(작사)를했는데 그가作詞(작사)한 다른 曲種(곡종)의 大衆歌謠(대중가요)와는 異質(이질)의 文學的(문학적)
志向(지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當代最高 舞踊手(당대최고 무용수)였던 최승희가 불렀다해서 有名(유명)하기도 한 이곡은 그題目(제목)에서부터 異國的(이국적)인 情緖(정서)가 물씬 풍기는 作品(작품)입니다
특히 이작품은 슬픔과 離別(이별)로 點綴(점철)된 悲慘(비참)한 世界(세계)가아닌 기쁨과 사랑으로 充滿(충만)한 世界(세계)를 보여주고 있어서 눈길을 끕니다
비록 現在(현재) 임은 不在(부재)하고 있으나 詩的話者(시적화자)는 임이 올것이라는 것을 疑心(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적화자가 임을 기다리는 이태리정원은 임을 기다리면서 孤獨(고독)만을 돼새김질하는 비참하고 어두운 공간이 아니라 “맑은 하늘에 새가우는” 平和(평화)로운 공간입니다
게다가 그곳에서 임을 기다리는 시적화자는 임에게 selenade-세레나데-를 부르면서 어서 오라고 積極的(적극적)으로 請(청) 하는데 다른갈래의 大衆歌謠(대중가요)와 對照(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jazz song-재즈송-은 다른갈래의 大衆歌謠(대중가요)에서는 찾을 수 없는 獨特(독특)한 質感(질감)의 言語(언어)로 새로운 文學的(문학적) 志向(지향)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새로운 文學的 志向(문학적 지향)은 기쁨과 享藥(향략)의 세계와 닿아있습니다
다소 享藥的(향약적)인 재즈송이 當代(당대)에 享有(향유)될수 있었던 것은 1920년대말부터 都市(도시)를 中心(중심)으로 漫然(만연)하였던 近代文明(근대문명)의 徵候(징후)와 새롭게 出現(출현)한
都市的情緖(도시적 정서)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전봉관저 “1930년대 한국 도시적 서정시 연구” 論文(논문)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Jazz song-재즈송-은 jazz 趣味(취미)내지는 jazz 雰圍氣(재즈 분위기)와 照應(조응)하면서 서울을 中心(중심)으로 人氣(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에대한 批判的(비판적)인 視角(시각)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서구는 이른바 jazz 趣味(재즈취미)를 高速度文明(고속도 문명) 사랑의노래의 副産物(부산물) 現代人(현대인)의
犯罪享藥 生活(범죄향략 생활) 이라며 否定的(부정적) 視角(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別乾坤(별건곤) 1929년, 9월호에 의하면-----
興(흥)에겨운 曲調(곡조)를 體毛(체모)도 廉恥(염치)도 잊어가면서 몸짓 손짓 다리짓 콧짓 그야말로 제멋이 내키는대로 지랄을 하다시피 아뢰는 것을 jazz band-재즈밴드-라 부른다
그리하여 재즈취미의 根源(근원)은 이 재즈밴드에 서 발하고 있는것이니 우리 大京城(대경성)에도 이미 이 世紀末的(세기말적) 어깻바람이 나는氣分(기분)이 沈潤(침윤)된 것은 눈에 보이는
事實(사실)이다 樂團(악단)의 몇客(객)들로 조직된 koeean jazz band-코리안재즈밴드- 의 公演(공연)이 있을떄마다 젊은피에 끓는 男女(남녀)들에게는 어지간히 큰 歡呼(환호)를 받았었다
------중략--------- 禮節(예절)이니 規律(규율)이니 하는 듣기만하여도 가슴이 막히는 케케묵은 수작은 그들의 귀에는 들어갈 틈이없다
오직 바나나 그늘밑에서 엉덩이를 가리고 여름의 太陽(태양)을 祝福(축복)하는 土人(토인)들의 그마음으로 돌아가 單純(단순)히 한가지 즐김에 빠져서 精神(정신)을 못차리도록 뛰고
놀아버릴 뿐이다
1059—情熱(정열)의 散步(산보)-a-채규엽
九十春光(구십춘광) 쉬 간다하네 꽃그늘 지는동산에 가세
夕陽(석양)이좋아 쓸쓸한 黃昏(황혼) 사랑의노래 높이 부르며
젊은이 가슴 피가뛸 때에에 임의 얼골도도 빨갛게 타네
바람도 불고 고운님 입김김 달콤한 이꿈 어이깨랴
散步(산보)가세 달밝은 거리 붉은 불들은 玲瓏(영롱)해질 때 Jazz-재즈도
요란 pavement-페이브먼트- 고운 내님과 어깨 겨누고
Platanus-플라타나스- 넓은 잎새로 새빨간 蒼空(창공) 우러러보니
별님도 고히 祝福(축복)을하네 꿈같은사랑 속삭임을
1937년, 3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김동진사 작곡미상 채규엽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에는 김동진작사 채규엽노래<靑春(청춘)의 香氣(향기)>가 실려있습니다
두곡다 飜案曲耳(번안곡)이나 原曲(원곡)을 알수없습니다
당시 Columbia-record 發行(콜롬비아 레코드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756-a jazz song-째즈송- 情熱(정열)의 散步(산보) 金東進 作詩(김동진 작시) 0山貞吉(0산정길) 編曲(편곡) 蔡奎燁(채규엽) 伴奏(반주) Columbia 管絃樂團(콜롬비아 관현악단)
C40756-b jazz song-째즈송- 靑春(청춘)의 香氣(향기)---------------------------------------------------------------------------------------------------------------------------------------------------------------
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Jazz song-재즈송-에서 드러나는 享藥(향약)적인 世界(세계)는 熱(열)에 들뜬듯한 感情(감정)의 過剩噴出(과잉분출)과 異國的(이국적)인 정서의 表出(표출)등으로 이어집니다
上記曲(상기곡) “情熱(정열)의 散步(산보)”는 詩的話者(시적화자)가 사랑하는 임과 散步(산보)를 하면서 이어지는 行步(행보)를 1절에서 4절까지 一貫(일관)되게 그리고있는 노래입니다
이노래는 題目(제목)에서부터 感情(감정)의 過度(과도)한 噴出(분출)이 느껴집니다
特(특)히 빨간색이주는 强烈(강렬)한 image-이미지-를 통해 過剩(과잉)된 감정의 분출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붉은색은 熱情(열정) 熱烈(열렬) 活力(활력)을 뜻하고 강한刺戟(자극)등을 象徵(상징)하는데 이작품에서도 全體的(전체적)으로 붉은색이 주는 이미지가 强烈(강렬)하게 表出(표출)되 있습니다
1절의 “黃昏(황혼)” 2절의 “빨갛게타네” 3절의 “붉은불” 4절 “새빨간 蒼空(창공)” 등이 모두 그러한 예에 該當(해당)합니다
이와 같은 붉은색 이미지는 이작품을 全體的(전체적)으로 熱情的(열정적)이고 活力(활력)이 가득찬것으로 만들고있습니다
요컨데 이곡은 붉은색 이미지와 사랑에빠진 靑春男女(청춘남녀)를 통해서 향략적인 이미지를 表現(표현)하고있읍니다그런데 향략의식 自體(자체)가 재즈송에와서 새롭게 출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 모습은 다르지만 雜歌(잡가)에서도 이미 享藥意識(향략의식)의 一旦(일단)을 엿볼수있습니다
노자 노자 노자 아하~ 젊어노잔다 나도많아 病(병)이나 들면 못노리다
寧邊(영변)에 藥山(약산)에 동대로다 아하~ 부대 平安(평안)히 너 잘있거라
나도 명년 陽春(양춘)은 佳節(가절)이로다 또다시 보자
오동에 복판이로다 아하~ 거문고로다 둥당징 소리로구나 저절로 난다
달아 달아 달아 아하 虛空(허공)周天(주천)에 영긴달아 임의 장전이로다 영기신 달아--------b 로 寧邊歌(영변가) 歌詞(가사) 繼續(계속)----!!
위의 작품은 西道雜歌(서도잡가)인 寧邊歌(영변가)인데 정열의산보와 마찬가지로 향략적인 情緖(정서)를 表出(표출)하고있습니다
音盤(음반)에 실린 寧邊歌(영변가)는 전체 5절로 이루어져있는데 각절은 有機的(유기적)으로 연결된다기 보다는 서로 獨立的(독립적)으로 存在(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그런데 雜歌(잡가)인 寧邊歌(영변가)와 jazz song-재즈송-인 정열의 산보에서”지금놀아 야하는”는 理由(이유)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변가에서” 나이가들어 病(병)이들면 놀지못하니 지금놀자”고 한것과 마찬가지로 정열의산보에서”九十春光(구십춘광)이 쉬간다고하니” ”젊은가슴에 피가뛸떄”에 젊음을 즐기자고 하는것이다
두작품은 모두 나이가들면 놀지못하니까 젊을때놀자는 意識(의식)에 基盤(기반)을 두고있습니다
그러므로 두작품의 享樂性(향략성) 은 모두 젊을 때 놀아야한다는 意識(의식)에서 胚胎(배태)되었다고 볼수있습니다
1060--情熱(정열)의 散步(산보)-b
간다 간다 간다 아하` 나는 가노나 妻子(처자)은 여기두고서 나 돌아간다
日落咸池(일락함지)에 黃昏(황혼)되고 月出(월출) 동령이로구나 달 솟아난다
아서라 마렴으니 네 그리를 말아라 사람의 人情(인정)의 괄시를 네그리 말아
南山(남산)을 바라보니 는 다 滿發(만발) 하였는데 웃통 짧고 아래 아래통
펑퍼짐한 날 살려다오
양덕맹산 흐르는물은 浮碧樓(부벽루)로 감돌아든다 삼산은 반략 牡丹峯(모란봉)
이요 이수는꺼겅충 뛰어라 綾羅島(능라도)섬이로다 ---columbia-record 發賣(발매) 이금옥노래 寧邊歌(영변가)
“寧邊歌(영변가)”와 “情熱(정열)의 散步(산보)” 가 모두 젊어서 놀아야한다는 意識(의식)에서 出發(출발)하였으나 두作品(작품)이 보여주는 享藥意識(향략의식)의 質感(질감)은 매우 다릅니다
寧邊歌(영변가)의 享藥意識(향략의식)이 無常(무상)함과 形容(형용)할길없는 悲哀(비애)의 感情(감정)과 連結(연결)된다 면 정열의산보에서 드러나는 향략의식은 사랑의 과
기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영변가의 향략의식이 一種(일종)의 不在(부재)와 缺乏(결핍)에서 비롯된 虛無主義(허무주의)와 連結(연결)된다면 정열의산보에서 드러난 향략의식은 임과사랑을 前提(전제)로한 充滿(충만)
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수있습니다
여기에서 “영변가”와 “정열의산보”가 志向(지향)하는 향략의식의 差異點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두작품이 지향하는 향략의식이 다른 것은 雜歌(잡가)와 jazz song-재즈송-이라는 갈래가 지니고있는 特徵(특징)에서 비롯한 現想(현상)으로 볼수있을것입니다
잡가중에는 그것을 享有(향유)하는 當代人(당대인)의 고달픈生涯(생애)가 投影(투영)된 작품이 있는데 영변가 또한 그런 作品中(작품중) 의 하나일 것 입니다
寧邊歌(영변가)에서”妻子(처자)는 여기에 두고서 나 돌아간다” 는 表現(표현)이나”아서라 말아라 네 그리말아라 사람의 人情(인정)의 恝視(괄시)를를 네그리 말아라” 와 같은 表現(표현)에서
當代人(당대인)의 서글픈 삶을 感知(감지)할수 있습니다
어떤 理由(이유)에서인지는 시적화자는 처자와 떨어져 살수밖에없는 狀況(상황)에서 일종의 被害意識(피해의식)에 사로잡힌채 自身(자신)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世上(세상)향해 외치는 것입니다
아무 힘없는 아이들에게까지 自身(자신)을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시적화자의 몸부림에서 시적화자의 悽絶(처절)한 悲哀(비애)를 느낄수 있습니다
이에半解(반해)서 정열의산보에서는 영변가에서 드러나는것과 같은 삶의悲哀(비애)나 被害意識(피해의식)는 전혀 찾아볼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의 感情(감정)에 흠뻑빠져있는 靑春男女(청춘남녀)가 밤거리를 散步(산보)하고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을뿐입니다
특리 近代文明(근대문명)을 象徵(상징)하는 詩語(시어)와 異國的(이국적)인 이미지의 시어, 外來語(외래어)의 사용이 두드러지는데 jazz-재즈-와 pavement-페이먼트-, 그리고 platanus-플라타나스-
와 같은 詩語(시어)에서 그러한 事實(사실)을 確認(확인)할수있습니다
이러한 異國的(이국적)인 情趣(정취)를드러내는 시어와 사랑으로 충만한 청춘남녀의 모습을 통해 정열의삼보는 영변가와는 다른 質感(질감)의 향략의식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雜歌(잡가) 외 jazz song-재즈송-에서는 모두 향략의식이 드러납니다
그 향략의식이 “노세 노새 젊어서 노세”라는 생각에서 發源(발원)하였다는 점에서도 두갈래는 類似(유사)한 面貌(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詠歎法(영탄법)의 活用(활용)이나 과도한 감정분출도 향략의식을 드러내고있는 잡가와 재즈송에 共通的(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잡가에서의향략의식이 주로 虛無感(허무감)의 表出(표출)로 이어지는 半面(반면)에 재즈송에서는 충만함 내지는 사랑의 기쁨으로 연결됩니다
이른바 “노세” 類(류)의 歌謠(가요)는 歌謠史(가요사)에서 悠久(유구)한 歷史(역사)를 자랑하는 레파토리로 雜歌(잡가)에 이르러서는 한층 豊富(풍부)한 변주와 울림을 획득한것으로
評價(평가)되는데 재즈송은 일단 “노세”류의 歌謠史(가요사) 의 系譜(계보) 를 繼承(계승)했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러나 재즈송에서 향략의식은 재즈송이 단대의 都市的(도시적)인 感受性(감수성)과 만나면서 잡가와는 다른 새로운 질감을 드러내는데 이르렀습니다
이는 異國的(이국적)인 情緖(정서)를 드러내는 詩語(시어) 의 使用(사용)과 과도한 사랑의 表出(표출)등에 의하여 形象化(형상화)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時代的狀況(시대적상황)을 考慮(고려)할 때 재즈송에서 나타나는 향략의식은 時代錯誤的(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잡가에는 삶의 비애에서 비롯한 眞情性(진정성)이 드러나는 반면에 재즈송에서는 그와 같은 진정성이 脫却(탈각)되었다며 否定的(부정적)인 評價(평가)를 내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當時都市(당시도시)를 중심으로 漫然(만연)하였던 향략풍조의 反映(반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재즈송이 시대의 한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意義(의의)를 認定(인정)할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재즈송은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의 多樣化(다양화)란 側面(측면)에서도 짚고넘어갈 必要(필요)가있는 갈래임이 分明(분명)합니다
1062—愉快(유쾌)한 시골令監(영감)- a 姜弘植(강홍식)
시골 令監(영감)께서 서울구경을 떠나셨는데 자못 愉快(유쾌)한 場面(장면)이 많았겠다 에헴!
시골令監(영감) 처음타는 汽車(기차)놀이라 車票(차표)파는 아가씨와 昇降(승강)을하네
이 世上(세상)에 에누리없는 가 어디있나 깎아대자고 졸라대니 원 이런 窒塞(질색)이 하~~~
汽車(기차)란 놈 뛰~하고 떠나갑니다 令監(영감)님이 깜짝놀라 돈을 다내며 깍지않고 다낼 테니
날좀 태워줘 저汽車(기차) 붙들어요 돈 다낼 테니 하~~~~
다음 車(차)는 滿員(만원)이라 자리가 없어 옆에칸을 슬쩍보니 텡텡비었네 옳다구나 땡이라구
슬쩍 앉았더니 票檢査(표검사)에 二等(이등)이라고 돈을 더물어 하~~~~
이럭저럭 서울에를 倒着(도착)하여서 人力車(인력거)를 타시는데 發販(발판)에 앉아 위로 올라 앉으라니
令監(영감)님 말씀 二等(이등)타면 돈더받게 나는 싫코마 하~~
1936년 6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 범오작사 George w.johnson 작곡 姜弘植(강홍식)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범오작사 아크스트작곡 강홍식, 안명옥 노래<Dinah-다이나> 가 함께 살려있습니다
上記(상기)曲(곡)<愉快(유쾌)韓(한) 시골令監(영감)>은 飜案曲(번안곡)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초까지 미국에서 유행하고 여려차레 음반으로 발매되었던 “the laughing song”가 原曲(원곡)
입니다
노래를 自作(자작)부른 johnson-존슨-은 美國黑人 大衆音樂 家–미국흑인음악가- 중에서 草創期(초창기) 主要人物(주요인물)로 꼽힙니다
노래가 발매된 그무렵 Columbia-record 發行(콜롬비아 레코드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680-a jazz song-재즈송-Dinah-다이나- 범오작시 아크스트작곡 강홍식,안명옥 伴奏(반주) columbia jazz band 콜롬비아 재즈밴드)
C40680-b 재즈송 愉快(유쾌)한 시골令監(영감) 범오작시 Johnson 작곡 강홍식 伴奏(반주) Columbia jazz band(콜롬비아 재즈밴드 )----------------------라 소개 하고있습니다
1936년 Columbia-record 每月新譜(콜롬비아 레코드 매월신보)-----------------------------------------------------------------------에는
六月新譜(6월신보)
40680 재즈송 Dinah-다이나- 범오작사 아크스트작곡 一枚(1매)
愉快(유쾌)한 시골令監(영감)
傑作(걸작)을 網羅(망라)한 六月(유월)新譜(신보)-------------------------------------------------------------------라 선전하고 있습니다
1936년 八月新譜(8월신보)------------------------------------------------------------------------------------------에는
四0六八0-40680- jazz song-재즈송- Dinah-다이나- 一枚(1매) 姜弘植(강홍식) 安明玉(안명옥)
----------------------jazz song-재즈송-愉快(유쾌)한 시골令監(영감) 姜弘植(강홍식)
最近(최근)의 傑作盤(걸작반)!!---------------------------------------라 廣告(광고)하고 있습니다
이곡의 가사지를 보면 jazz sond –재즈송-으로 표기되있는바 그시기 재즈송이란 의미는 外國歌謠全部(외국가요전부)를 통틀어 호칭했으므로 지금과는 다른해석을 해야힙니다
노래 內容上(내용상)으로 보아서 이노래는 漫謠(만요)에 該當(해당)한다고 할수있습니다
1063—愉快(유쾌)한 시골 令監(영감)-b
1950대 中半(중반) 演藝街(연예가)에선 過去(과거) 對話漫談(대화만담) 型式(형식)에서 進一步(진일보)해 才致(재치)있는 gag-개그-를 驅使(구사)하는 comedian-코미디언- 梁錫天(양석천)
과 楊薰(양훈)의 존재가 돋보이기 시작 했읍니다
一名(일명) “홀쭉이와 뚱뚱이”의 활약은 群鷄一鶴格(군계일학격)인 格調(격조)있는 社會諷刺(사회풍자) 로 人氣(인기)를 끌기시작 했습니다
1930년대 후반에 對話漫談(대화만담)의 始祖(시조)라 할수있던 김원호와 손일평의 콤비가 있었는데 김원호는 體格(체격)이 훌쭉한 편인데 비해 손일평은 몸집이 비대한 편이어서
미국 무성영화의 명콤비 로디와 하레와 비교할 때 韓國版(한국판) “홀쭉이와 뚱뚱이”라 했었습니다
양석천과 양훈은 한국판 홀쭉이와 뚱뚱이 제2세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이들은 日帝末期(일제말기)인 1943년 양석천은 半島歌劇座 員(반도가극좌원) 이었고 양훈은 성보악극단원이었고 동갑이었습니다
1948년 수많은 악극단이 明滅(명멸)할 때 양석천은 樂劇作家(악극작가) 김석민과 손을잡고 악극단 靑春部隊(청춘부대)를 창단했습니다
이때 양석춘은 양훈과 손을잡고 團體(단체)의 leader 格-리드격- 이 되었습니다
1953년 六二五空間(육이오 공간) 無窮花樂劇團(무궁화악극단)의 대표 양훈이 樂劇界(악극계)의 leader格(리더격) 이었습니다
헌데 이 樂劇團(악극단)의 財政的後援家(재정적 후원가) 로 정치깡패 林和秀(임화수) 였습니다
그時期(시기)가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고 온통 自由黨(자유당) 이승만 世上(세상)이었다 해도 그간 意識(의식)있는 코미디언으로 評價(평가)받던 그가 임화수의 後援(후원)을 받았단점은 두고두고
批判(비판)을 받아야할 處身(처신)입니다
임화수가 大規模(대규모)의 歌劇團(가극단) “自由歌團(자유가단)”을 조직 本格的(본격적)인 뮤지컬단체와 通俗的(통속적)인 樂劇團(악극단) new korea-뉴코리아-라는 두단체로 활발한
公演活動(공연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렇게 할수있었던건 임화수가 이승만 사람이고 自由黨世上(자유세상)이니 그누가 妨害(방해)할수 있었겠습니까??
이때 양석천과 양훈이 variety show-버라이어티쇼-무대에서 時局諷刺(시국풍자)에 格調(격조)높은 對話漫談(대화만담)을 해서 觀衆(관중)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종래 흔히있는 comedy-코미디-하면그야말로 nonsense comedy-넌센스코미디-의 連發(연발)로 어느한쪽이 iq-아이큐-가 모자라는 바보스러운 어릿광대놀이였습니다
한데 훌쭉이와 뚱뚱이콤비는 wit-위트-있는 다분히 社會啓蒙的(사회계몽적)인 화제를 가지고 諷刺的 對話(풍자적대화) 가 연속되면서 危險水位(위험수위)에 이르러서는
180도 方向轉換(방향전환) 하는 멋진 개그로 웃음속에 여운을 남기는 highbrow-하이브로 comedy-코미디가 特徵(특징)이었습니다
中間(중간)中間(중간)에 양석천의 노래솜씨와 양훈의 樂器演奏(악기연주) 흉내와 팝송또한 화제거리였습니다
양석천의 trademark-트레이드마크- 같은 노래 漫謠風(만요풍)의<시골 令監(영감)>라는 노래또한 一品(일품)이었습니다
이곡이 바로 上記歌謠(상기가요) ”愉快(유쾌)한 시골令監(영감)” 입니다
헌데 時局諷刺(시국풍자)라면 결국 그時期(시기) 獨裁者(독재자) 이승만의 自由黨(자유당)을 諷刺(풍자)하는것일테고 이단체 단장이 이승만의 골수부하 임화수였는데 이러한 危險水位(위험수위)를
넘나드는 時局(諷刺(시국풍자)가 과연 可能(가능)했을까?? 임화수가 그냥두고보지 않았것은 뻔한데----김희갑씨 구타사건을 봐서---
疑心(의심)이 많이 듭니다
이노래는 上記 說明(상기 설명) 처럼 “홀쭉이와 뚱뚱이”의 양석천이 流行(유행)시킨후 後日(후일) 코미디언으로 登場(등장)하는 徐永春氏(서영춘씨)도 專賣特許(전매특허) 처럼 불렀읍니다
양석천버전은 오길래와 함께한것으로 daedo-record 발매 lp음반-漫謠(만요) 傑作集(걸작집) side a 3번째에 <서울구경>이란 題目(제목)으로 실려있습니다
King star-record 발매 lp음반-웃음의꽃다발-에도 “서울구경”아란 제목에 오길래와 함께한 버전이 보입니다
서영춘씨 버전은 universal-record 발매 lp음반- 웃음따라 腰切腹痛-요절복통- side a 에 “서울구경”이란 題目(제목)으로
아세아레코드발매 lp음반- 코믹가요 카바레쇼-에 타이틀곡으로 보입니다
1064-愉快(유쾌)한 시골令監(영감)-c
“愉快(유쾌)한 시골 令監(영감)”은 一名(일명) <서울구경>으로도 불리며 “시골 令監(영감)님께서 서울구경을 떠나셨는데 자못 愉快(유쾌)한 場面(장면)이 많았다” 라는 辭說(사설)로 시작하는데
이어서 1절에서 4절까지 사골영감이 난생처음으로 汽車(기차)를 탈때부터 서울에 倒着(도착)해서 인력거를 탈때까지 左衝右突(좌충우돌) 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描寫(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골영감은 車票(차표)값을 깍아달라고 車票(차표)파는 아가씨와 昇降(승강)이하고 三等席票(3등석표) 로 二等席(2등석)에 앉아 있다가 돈을 더물기도 합니다
드디어 서울에 도착해서 人力車(인력거)를 타게된 시골영감은 돈을 더 물게될까봐 두려워 인력거의 발판에 앉는등의 喜劇的(희극적)인 行動(행동)을 演出(연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쾌한 시골영감은 近代文明(근대문명)의 受惠(수혜)를 받지못했던 시골영감이 처음으로 汽車(기차)를타고 서울구경을 가면서 左衝右突(좌충우돌)하는 모습을 喜劇的(희극적)으로
담아내고있는 作品(작품)입니다
이작품은 빠르고 輕快(경쾌)한 曲調(곡조)에 웃음소리까지 곁들여서 全體的(전체적)으로 愉快(유쾌)하고 明朗(명랑)한 雰圍氣(분위기)를 演出(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生角(생각)없이 웃기에는 무언가 未盡(미진)한 구석이 있습니다
다른사람이 볼때는 시골영감이 失手(실수)한것이고 그런 시골영감의 失手(실수)가 보는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영감에게 있어서는 서울의 낯선 風景(풍경)은
荒唐(황당)하기 그지없을 뿐입니다
어쩌면 이는 近代(근대)의 여러모습에 適應(적응)하지 못한채 漂流(표류)하는 當時(당시)의 一般的(일반적)인 大衆(대중)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그 때문에 이노래는 내용과 곡조가 모두 경쾌하고 유쾌하면서도 시골영감의 立場(입장)에서 노래를 듣다보면 그에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쓸쓸한 웃음마저 짓게 하는것입니다
“諧謔(해학)은 觀照意識(관조의식)의 作用(작용)을 통해 世界(세계)와人生(인생)의 여러가지 現想(현상)에 關與(관여)하는 것이고 대상의 위에서서 그實狀(실상)을 있는그대로 바라보고
矛盾(모순)에 基礎(기초)한 不快感(불쾌감)을 한층넓고 깊은 通察(통찰)로 融和(융화) 하고 解消(해소)하는것이다”라는 글이보입니다
따라서 諧謔(해학)은 基本的(기본적)으로 對象(대상)에대한 同情心(동정심)이나 憐憫(연민)을 불러 일으킵니다
上記曲度(상기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골영감”은 批判(비판)과 攻擊(공격)의 對象(대상)이 아니라 同情(동정)과 憐憫(연민)을 불러일으키는 存在(존재)에 가깝다 할수있습니다
漫謠(만요)는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大衆歌謠(대중가요)의 한갈래로 많은 人氣(인기)를 얻었습니다
特(특)히 nonsense-넌센스-, 漫談(만담), sketch-스케치- 등과 더불어 웃음을 誘發(유발)하는 樣式(양식)이라는 점에서 注目(주목)됩니다
만요에서 드러나는 웃음은 크게 두가지 양상으로 나눌수있습니다
즉 연민을 유발하는 웃음인 諧謔(해학)과 攻擊性(공격성)을 지니고있는 웃음에 해당하는 諷刺(풍자)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nonsense-넌센스-라는 語彙(어휘)는 국어사전과 영어권사전에서 演劇(연극)의 한갈래를 나타내는 말로 실려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日本(일본)에서 使用(사용)된 어휘가 移植(이식)되어 當代(당대)에 一時的(일시적)으로 使用(사용)된 暫定的(잠정적)인 名稱(명칭)이 아닌가 추정해 볼수밖에에 없습니다
그러나 “넌센스”로 明示(명시)된 작품의 분량은 豫想外(예상외)로 많아서 당시의 喜劇 genre-희극장르- 中(중) 가장높은 比重(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Nonsense-넌센스-는 喜劇的(희극적)인 人物(인물)이나 狀況(상황)을 內容(내용)으로 다루고있으며 남녀 2인이 주고받는 對話(대화)의 型式(형식)이 基本構造(기본구조)로 使用(사용)됩니다
남녀 2인은 주로 말다툼에서 始作(시작)하여 和解(화해)로 끝납니다
넌센스는 單純(단순)한 흉내가 아니고 劇(극) 의 plot-플롯-을 가지고 있다는점 두명의 出演者(출연자)가 登場(등장)한다는 점에서 1인이 등장하는 漫談(만담)과 다릅니다
Plot-플롯-이 있다는점 男女(남녀) 2인이 登場(등장)한다는점 에서 sketch-스케치-와 비슷합니다
葛藤(갈등)에서 시작하여 和解(화해)로 끝나고 있다는점에서 스케치와 다릅니다
넌센스의 主題(주제)는 反抗(반항) 報復(보복) 偶然(우연)의 一致(일치)라는 笑劇-소극farce- 의 주제에 가장 近接(근접)해있습니다
이중에서 넌센스의 주제인------- <偶然(우연)의 一致(일치로 인해 이들은 和解(화해)에 이릅니다>하고 이를 批判(비판)
親舊(친구)나 老人(노인)등이 제3자로 登場(등장)하여 이들의 葛藤(갈등)관계를 해결해주거나 새롭게 빚어진 상황이 과거의 오해를 풀고 새출발하게 만든것등
이 그것입니다
1065—오빠는 風角(풍각)쟁이- b-박향림
1938년, 12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박영호사 김해송곡 박향림노래로 실려있습니다
<종횡무진가요사 865>에 박향림의”오빠는 풍각쟁이” a 가 說明(설명)되있습니다
이노래는 諧謔的(해학적)인 웃음을 誘發(유발)시키는 作品(작품)이요 作詞家(직사가) 박영호의 才致(재치)있는 글솜씨가 돋보이는 漫謠(만요) 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는 이가요는 曲種表記(곡종표기)가 流行歌(유행가)로 되있으나 實狀(실상) 이작품은 comic song-코믹송-으로 漫謠(만요)에 該當(해당)됩니다
“風角(풍각)쟁이”는 市場(시장)이나 집을 돌아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樂器(악기)를 연주하며 돈을 얻으려 다니는 사람을 指稱(지칭)합니다
그러나 이 作品(작품)에서의 풍각쟁이는가 單純(단순)히 樂士(악사)를 指稱(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全體歌詞(전체가사)를 보면 알수있듯이 이노래에서의 “風角(풍각)쟁이”는 心術(심술)쟁이나 짜증쟁이처럼 一種(일종)의 卑語(비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女同生(여동생)으로 보이는 詩的話者(시적화자)는 노래전체에 걸쳐 오빠의 否定的(부정적)인 行態(행태)를 描寫(묘사)하고 批判的(비판적)인 言述(언술)로 評價(평가) 됩니다
作品(작품)속에서 오빠는 女同生(여동생)의 반찬을 빼앗아 먹을뿐만아니라 여동생의 便紙(편지)도 몰래훔쳐보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오빠는 明治座(명치좌)와 같은 劇場(극장)으로 공연을 보려갈때는 女同生(여동생)을 데려가지도 않으면서 여동생이 심부름을 시키면 얼렁뚱땅 넘어갑니다
게다가 오빠는 밤늦게 술에취해 들어오고 會社(회사)에는 遲刻(지각)하면서 月給(월급)이 오르지 않는다며 짜증만 냅니다
이와 같은 오빠의 否定的(부정적)인 形態(형태)를 여동생은~쟁이라는 表現(표현)을 통해서 非難(비난)합니다
그러나 非難(비난)의 水位(수위)가 무척낮아져 오히려 女同生(여동생)이) 오빠에게 투정을 부리는것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實際(실제)로 이노래는 박향림의 간드러진 콧소리와 歌詞(가사)의 內容(내용)이 絶妙(절묘)하게 調和(조화)를 이루면서 웃음을 誘發(유발)시킵니다
“~쟁이” 의 列擧(열거)와 노래중간 中間(중간)에 揷入(삽입)되어있는 “무어”와 같은 感歎詞(감탄사)의 連發(연발)은 노래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役割(역할)을 합니다
그리하여 시적화자는 오빠를 積極的(적극적)으로 非難(비난)하는 대신에”난몰라”나”남싫어”같은 表現(표현)을 통해서 투정을부리는 식으로 오빠에대한 섭섭함과 怨望(원망)을
解消(해소)하고 있습니다
만요에서 특히 注目(주목)할 것은 當時(당시)의 世態(세태)가 노래에 어떻게 反映(반영)되어서 그것이 어떤 式(식)으로 웃음의 源泉(원천)으로 作用(작용)하였는가를 살피는 일입니다
事實上(사실상) 만요는 웃음을 誘發(유발)시키는 노래갈래 이기 때문에 당시의 文化的 脈絡(문화적 맥락)을 모르는 사람은 그웃음에 同參(동참)할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이노래에 登場(등장)하는 불고기, 떢볶이, 오이지, 콩나물 같은 그러한 飮食文化(음식문화)를 共有(공유)하고 있는사람들 사이에서만 웃음의 源泉(원천)이 될수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길거리표 間食(간식)에 不過(불과)한 떢볶이가 당시에는 高級(고급)의 맛있는 반찬이었고 오이지와 콩나물은 當時(당시)에도 매우흔한 반찬이었는데 이는”오빠는 풍각쟁이”같은
漫搖(만요)가 당시의 世態(세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알수있는 것입니다
만요는 當時世態(당시세태)를 赤裸裸(적나라)하게 반영하는 側面(측면)이 강하므로 漫謠(만요)를 통해서 당시 여러가지 生活相(생활상)이니 社會相(사회상)을 을 엿볼수있습니다
예를들면 이곡에서 “月給(월급)쟁이”라는 오빠의 職業(직업)은 注目(주목)할 必要(필요)가 있습니다
1930년대는 月給(월급)쟁이가 相當數(상당수)의 여성이 選好(선호)하는 職業(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노래에서의 女同生(여동생)은 本意(본의)아니게 月給(월급)쟁이 오빠의 實狀(실상)을 赤裸裸(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는것입니다
월급쟁이 오빠는 明治座(명치좌)로 영화나 연극등을 보러가는등의 文化的(문화적)인 生活(생활)을 享有(향유)하는 반면에 술에취해 밤늦게 집에돌아오고 會社(회사)는 늦게 가면서도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며 짜증을 내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內容(내용)을통해 當時(당시) 월급쟁이 日常(일상)을 엿볼수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이노래는 基本的(기본적)으로 웃음을 誘發(유발)시키는 노래인 漫謠(만요) 입니다
그런데 그웃음이 攻擊性(공격성)을 지니고있는 諷刺(풍자)라기보다 부드러운 웃음에 該當(해당)하는 諧謔(해학)에 기깝다고 할수있습니다
시적화자인 女同生(여동생)은 基本的(기본적)으로 오빠에대한 따뜻란 視線(시선)을 지니고있기 때문에 오빠의 否定的(부정적)인 行爲(행위)에도 不拘(불구)하고 非難(비난)하가보다는
투정을부리는 것으로 一貫(일관)하고있습니다
1066—뚱단지 서울-劉鐘燮(유종섭)
Modern girl-모던걸-아가씨들 둥근 종아리 depart-대파트- 出入(출입)에 굵어만 가고
저 modern boy-모던보이-들에 굵은 팔뚝은 neon-네온-의 밤거리에 야위어가네
뚱딴지서울 꼴不見(불견) 믾다 뚱딴지 뚱딴지 뚱단지 seoul-서울-
만나면 hello-헬로- 소리 love parade-러브퍼레이드- 뒷골목 行廊(행랑)에 party-파티-
를 열고 하룻밤 romance-로맨스-에 멀미가 나서 go stop-고스톱- 네거리에 good-bye
-굿바이- 하네 뚱딴지 seoul-서울- 꼴不見(불견) 많다 뚱딴지 뚱딴지 둥딴지 seoul-서울-
집에선 비지밥에 꼬리치면서 나가선 洋食(양식)에 게트림하고 tea-room-티룸-과 café-카페-
로만 巡廻(순회)를하며 금붕어 새끼처럼 물만 마시네 뚱딴지 seoul-서울- 꼴不見(불견) 많다
뚱딴지 둥딴지 둥딴지 seoul-서울-
1938년, 9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고마부작사 정진규작곡 유종섭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文宵羊(문소양) 작사 김해송작곡 감해송노래 <도리깨 朴總角(박총각)>이 함께 실려있습니다
이무렵 columbiarecord 發行(콜롬비아 레코드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828-a 漫謠(만요) 뚱딴지 서울 高馬夫(고마부) 作詩(작시)鄭珍奎 作曲(정진규 작곡) 劉鐘燮(유종섭) 伴奏(반주) Columbia 管絃樂團(콜롬비아 관현악단)
C40828-b 朝鮮日報(조선일보) 當選歌(당선가) 도리깨 朴總角(박총각) 文宵羊(문소양) 作詩(작시) 金松奎作曲(김송규 작곡) 金海松(김해송) 伴奏(반주) Columbia 管絃樂團(콜롬비아 관현악단)
----------------------------------------------------------------라고 紹介(소개) <도리깨 朴總角(박총각)>이 그시기 조선일보 현상모집 당선가 임을 알수있게 합니다
1938년, 8월25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콜롬비아 광고)----------------------------------------------------------에는
九月新譜(9월신보)
新民謠(신민요) 도리깨 朴總角(박총각) 金海松(김해송)
뚱딴지 서울 劉鐘燮(유종섭)--------------------------------------------라고 表記(표기) “도리깨 총각”을 新民謠(신민요)라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헌데 1940년 Columbia-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三月新譜(3월신보) 最近(최근) 0發賣(발매) 00目錄(목록), 四月新譜(4월신보)
四0八二八-40828 朝鮮日報(조선일보) 當選歌(당선가) 漫(만)謠(만요) 도리깨 朴總角(박총각) 一枚(1매) 金海松(김해송)
뚱딴지 서울 劉鐘燮(유종섭)-----------------------------------------------이라고 表記(표기)해 <도리깨 朴總角(박총각>을 “漫謠(만요)” 로 紹介(소개)해 混亂(혼란)을 惹起(야기)하고 있읍니다)
“뚱딴지 seoul-서울-“은 <愉快(유쾌)한 시골令監(영감)>이나<오빠는 風角(풍각)쟁이>와는 그 웃음의 質感(질감)이 달라서 注目(주목)이 됩니다
이曲(곡)은 그 題目(제목)에서부터 웃음이 묻어나는 노래입니다
게다가”뚱딴지~~seoul-서울-“이라는 後斂(후렴)에서 “뚱딴지”라는 익살스러운 語彙(어휘)와 그러한 어휘의 反復的 使用(반복적 사용)은 웃음을 더자어내는 役割(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노래가 但只(단지) 즐겁거나 재미있는 웃음만을 志向(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歌詞(가사)의 內容(내용)보면 쉽게알수 있습니다
이노래는 이른바 modern girl-모던걸-과 modern boy-모던보이-에 대한 批判(비판)으로 一貫(일관)하고 있습니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이라는 用語(용어)는 이미 1920년대부터 登場(등장) 하였습니다
別乾坤(별건곤) 1927년 12월호에 실려있는<modern-모던-이란 무엇이냐: 모던껄 모던뽀이 大論評(대논평)> 이라는 글에서 유광열 은 모던걸과 모던보이를 “近代兒(근대아)”로 指稱(지칭) 하고
近代兒(근대아)란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도포를 벗어버리고 洋服(양복)을 입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意識(의식)과 方向(방향)이 가장 새로운 意識(의식)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고
言及(언급)한바 있습니다
즉 近代的意識(근대적 의식)의 有無(유무)가 “모던걸” “모던보이”를 規定(규정)하는 잣대로 作用(작용)한다고 한것입니다
그러나 實際(실제)로 modern girl-모던걸- modern boy-모던보이-는 近代的意識(근대적 의식)보다는 fashion-패션-과 같은 外樣(외양)을 近代的(근대적)으로 꾸밈으로서
다른部類(부류)와의 差別性(차별성)을 드러내는 側面(측면)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1067—뚱단지 seoul-서울-b
그리고 近代(근대)의 象徵(상징)처럼 느껴지는 그들의 fashion-패션-과 行動(행동)은 當代人(당대인)들의 羨望(선망)과 아울러 批判(비판)도 함꼐받았습니다
특히 당시 左翼團體(좌익단체)에서는 modern girl-모던걸-의 fashion-패션을 가리켜 華奢(화사) 하고 遊蕩(유탕)하면서 好事(호사)로운 생활을 하는 遺産者유산자) 社會(사회)를
表象(표상)하는 有産者社會(유산자사회)의 近代的退廢軍(근대적 퇴폐군)들의 fashion-패션-“이라며 modern girl fashion-모던걸패션-을 階級間(계급간) 違和感(위화감)의 表紙(표지)라고
非難(비난)하기 하였습니다
이노래에서도 당시의 모던걸과 모던보이를 批判的(비판적)視角(시각)으로 바라보고 諷刺(풍자)하고 있습니다
百貨店(백화점)을 出入(출입)하느라 종아리만 굵어가는 모던걸과 밤거리를 헤매느라 야위어만 가는 모던보이의 팔뚝을 對照的(대조적)으로 描寫(묘사)함으로써 그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에서 depart-대파트-는 百貨店(백화점)의 日本式(일본식) 表現(표현)인데 당시 서울에는 여러 개의 百貨店(백화점)이 近代(근대)를 象徵(상징)하며 우뚝솟아 있었습니다
1934년당시 서울에는 화신 정자옥, 미쓰코시, 하라다, 마니까이, 百貨店(백화점)등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백화점이 물건을 사고파는 場所(장소)뿐만 아니라 이른바 結婚(결혼)市場(결혼시장)으로의 技能(기능)도 하였다는 점입니다
Shopgirl-숍걸-로 불리는 백화점의 女店員(여점원)들은 대개 普通學校(보통학교)卒業以上(졸업이상)의 intelligentsia-인텔리겐치아- 女性(여성)들로 구성되 있었습니다
그들은 낮은 賃金(임금)으로 過度(과도)한 勞動(노동)을했는데 그들이 그처럼 過度(과도)한勞動(노동)을 勘收(감수)하는 理由(이유)는 그곳에서 男子(남자)를만나 結婚(결혼)할
確率(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씁쓸한 뒷맛을 느낄수밖에 없는 理由(이유)입니다
當時(당시) 結婚率(결혼율)이 가장높은 미쓰코시 百貨店(백화점)의 경우 女店員(여점원)李(이)백화점에 就職(취직)한후에 바르면 1,2개월후 늦어도 7,8개월내지 1년안에 新郞(신랑)감을
만나 結婚(결혼)하고 百貨店(백화점)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當時(당시)나 지금이나 結婚(결혼)을 經濟的(경제적) 論理(논리)로 生角(생각)하는듯 하는건 마찬가지 입니다
<三千里(삼천리)> 紙(지) 1934년, 5월호 百貨店(백화점)의 美人市場(미인시장)에 실려있는 글인바 題目(제목)도 人間(인간)을 卑下(비하)하는듯한 印象(인상)을 주는듯 해서 씁쓰레합니다
이를 통해서 當時(당시) 近代(근대)의 象徵(상징)으로 새롭게 登場(등장)한 百貨店(백화점)의 新風俗圖(풍속도)를 엿볼수 있습니다
Neon-네온-또한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近代文明(근대문명)을 象徵(상징)하였습니다
“初夏(초하)의 거리를 꾸미는 靑(청), 黃(황) 錄燈(녹등)의 光彩(광채)를 放射(방사)하는 neon-sign-네온사인- 이것은 이름부터 現代的(현대적)인 것과같이 네온사인은 실로 現代都市(현대도시)
를 粧飾(장식)하는 가장 進步的(진보적) 照明品(조명품)입니다
얼핏보면 非常(비상)히 刺戟的(자극적)인듯 하나 자세히보면 볼수록 어디까지 맑고 찬 네온사인은 정히 現代人(현대인)의 신경을 상징한것이다—“
이상은 1931년 7월호 <신민> 에 실려있는 글입니다
Neon-sign-네온사인-이 서울의 밤거리를 비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말부터입니다
처음 네온사인이 등장하였을 때 사람들은 네온사인을 일클어”일종의 近代(근대)색이라 할만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百貨店(백화점)과 neon-sign-네온사인-은 그自體(자체)로 近代文明(근대문명)의 象徵(상징)이었다 할수있습니다
그러나 “뚱단지 서울”에서의 시적화자는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백화점을 들락거리고 네온의 밤거리를 헤매는 모던걸과 모던보이에 대해 결코 好意的(호의적)인 視線(시선)을 보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詩的話者(시적화자)는 그들의 形態(형태)를 꼴不見(불견) 이라며 嘲弄(조롱) 하고 있습니다
특히 2절에서 시적화자는 모던보이의 형태를 더욱 具體的(구체적)으로 그리면서 이들에대한 强度(강도)높은 批判(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近代(근대)의 外樣(외양)만을 흉내내는 모던보이는 하룻밤의 刹那的(찰나적)인 遊戱(유희)도 즐겨보지만 결국은 全的(전적)으로 自身(자신)의 것으로 體化(체화)하지 못한 근대의 徵候(징후)에
신물이나서 멀미를 할뿐입니다
마지막 3절은 가난한 모던보이 내지는 失業者(실업자) 모던보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난한 모던보이는 집에서는 비지밥을 먹으면서도 밖에서는 洋食(양식)먹고 게트림을하며 茶房(다방) cafe카페-로로 巡廻(순회)를 합니다
그는 茶房(다방)에가도 돈이없어서 차는 못마시고 금붕어 새끼처럼 물만 마시는데 이는 당시 모던보이의 實狀(실상)이기도 합니다
모던보이는 대개 資本家(자본가)義(의) 아들이거나 부르주아의 後裔(후예)들이었는데 일찍부터 近代文化(근대문화)의 세레를 받은 가난한 인텔리겐치아 들도 모던보이의 隊列(대열)에
合流(합류)하기위하여 노력하 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던보이 인텔리겐치아들이 失業者(실업자)가되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모던보이 行勢(행세)는 찻집에들러 커피한잔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上記(상기)曲(곡)<뚱단지 서울>에서는 당시 돈없고 할일없는 都市失業者(도시실업자) 룸펜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고 금붕어새끼 나 꼴불견이라 비난함으로써 그와 유사한 모던걸 모던보이
全體(전체)를 批判(비판)한 作品(작품)입니다
이처럼 이노래에서 誘發(유발)하는 웃음은 단지 찰나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웃음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體化(체화)되지않은 어설픈 근대의 휘장아래 감추어져있는 사람들의 형태를 적나라하게 까발림으로서 웃음을 유발시키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곡에서 드러나는 웃음은 풍자적인 웃음이며 풍자의 여러 語調(어조)中(중)에서도 주로 嘲弄(조롱)을 활용한하고 있다고 할수있습니다
諷刺(풍자)는 大體(대체)로 攻擊(공격)이나 直接的(직접적)인 批判(비판)이 가로막힌 與件(여건)속에서 사회의 非理(비리)나 人間(인간)의 非行(비행) 및 愚行(우행)등을 間接的(간접적)으로
嘲笑(조소)하거나 揶揄(야유)하며 非難(비난)하는 表現法(표현법)입니다
이時期(시기) 우리民族(민족)이 그런 與件(여건)속에서 살아야 했지않습니까??
1068—엉터리 大學生(대학생)-a김장미
우리옆집 大學生(대학생) 호떡主事(주사) 大學生(대학생)은 十年(십년)이 넘어도
卒業狀(졸업장)은 캄캄해 아서라 이사람아 참말 딱하군 밤마다 잠꼬대가 傑作(걸작)
이지요 戀愛(연애)냐 卒業狀(졸업장)이냐 戀愛(연애)냐 卒業狀(졸업장)이냐 아서라
이사람아 精神(정신)좀 차려라 응
우리옃집 大學生(대학생) 행수장사 大學生(대학생)은 工夫(공부) 다섯끝 다마쯔긴
오백끝 아서라 이사람아 참말 섭섭해 밤마다 잠꼬대가 傑作(걸작)이지요
工夫(공부)냐 다마쯔기냐 工夫(공부)냐 다마쯔기냐 아서라 이사람아 精神(정신)
좀 차려라 응
우리옆집 大學生(대학생)은 學校(학교)늠 못가도 혼부라는 한몫봐 아서라 이사람아
참말 기막혀 밤마다 잠꼬대가 傑作(걸작)이지요 紅茶(홍차)냐 소다스이냐 coffee-고히-냐 port lap-뽀드랍푸냐-
아서라 이사람아 知覺(지각)좀 들어라 응
여기에서 “혼부라”는 그 時期(시기) 日本人(일본인) 居住地域(거주지역) 이었던 本町 (본정)거리를 구경하며 散步(산보)한다는 뜻입니다
1939년, 3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 김다인사 김송규곡 김장미 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김다인사 김송규곡 김해송노래<希望(희망)의썰매>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曲(곡)이 發賣(발매)될무렵 Columbia-record 發行(콜롬비아 레코드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848-a 流行歌(유행가) 希望(희망)의썰매 金茶人(김다인) 作詩(작시) 金松奎(김송규) 作曲(작곡) 金海松(김해송) 伴奏(반주) Columbia 管絃樂團(콜롬비아 관현악단)
C40848-b 流行歌(유행가) 엉터리 大學生(대학생) 金茶人(김다인) 作詩(작시) 金松奎(김송규) 作曲(작곡) 金薔薇(김장미)----------------------------------------------------
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중”엉터리大學生(대학생) ”을 流行歌(유행가)라 表記(표기)하고 있으나 曲內容(곡내용)으로 보아서 漫謠(만요)에 가깝습니다
이노래는 題目(제목)에도 알수있듯이 옆집에사는 大學生(대학생)의 行態(행태)를 嘲弄(조롱)하는것으로 一貫(일관)하고 있는 가요입니다
옆집 대학생은 입학한지 10년이 넘도록 卒業狀(졸업장)은 깜깜하고 工夫(공부)보다 撞球(당구)치기를 더잘하며 café-카페-등에서 飮料水(음료수)만 마셔대는 人物(인물)입니다
게다가 그는 밤마다 “戀愛(연애)나 卒業狀(졸업장)이냐 戀愛(연애)냐 卒業狀(졸업장)이냐”라는 잠꼬대를 하면서도 精神(정신)을 못차리는 인물입니다
여기 “戀愛(연애)냐 卒業狀(졸업장)이냐”라는 表現(표현)의 反復(반복)은 웃음을 誘發(유발)하는 한要素(요소)가 됩니다
3절에서는 紅茶(홍차)냐 소다스이냐 고히-coffee-냐 port lap-뽀드랍푸-와 같은 飮料水(음료수)이름의 列擧(열거)를 통해서도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노래가 이 誘發(유발)시키는 웃음은 앞서 살펴본 ”뚱딴지서울”과 마찬가지로 諷刺的(풍자적)인 웃음이면서 嘲弄(조롱)의 語調(어조)가 드러나는 웃음입니다
話者(화자)는 옆집의 大學生(대학생)을 “호떡主事(주사)大學生(대학생)” “행수장사 대학생” “붕어새끼 대학생”이라고 嘲弄(조롱)하고 있습니다
또한 화자는 옆집의 大學生(대학생)이 하는 잠꼬대를 傑作(걸작)이라고 하였는데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不拘(불구)하고 傑作(걸작)이라고 추켜세움 으로서 조롱의
强度(강도)를 높혔다고 할수있습니다
이어서 話者(화자)는 옆집의 대학생의 行態(행태)를 보고서”딱하다”고 하고”섭섭하다”고 하며 ”기가막힌다”고 評價(평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자는”精神(정신)차려요”고 말하고”知覺(지각)좀 들어라”고 핀잔을 주고있습니다
그런 이노래에서 드러나는 풍자가 單純(단순)히 “옆집대학생” 만을 겨냥한 것은 아닙니다
그를 통하여 一部(일부) 知覺(지각)없이 行動(행동)하는 大學生全部(대학생전부)를 諷刺(풍자)한 것이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實際(실제)로 1930년대 초부터 이미 大學生(대학생)들의 café 出入(카페출입)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1932년, 7월<실생활>에실린 글을 통해서도 알수있습니다
1069-엉터리 大學生(대학생)-b
----鬪爭(투쟁)을 잊고 이런 café-카페-에 隱身(은신)하여 erotic-에로-를 핣는 그들의 생활은 그얼마나 頹廢的(퇴폐적)이며 歡樂的(환락적)이며 逃避的(도피적) 幻滅的(환멸적)인가!
朝蘚社會(조선사회)의 將來(장래)를 두어깨에 짊어진 朝鮮(조선)의 젊은이들이 現實(현실)의 모든 것을 逃避(도피)하려는듯이 카페의 푸른燈(등)아래서 waitress-웨이트러스-의 웃음에싸여
귀한시간을 浪費(낭비)하며 아까운 돈을뿌리고있고 그들의 意識(의식)이 混沌(혼돈)되어 감이 이미 한심한 現想(현상)이어든 더구나 修學(수학)에 熱中(열중)하여야할 학생의 몸으로
征服(정복) 정모채로 카페를 거리낌없이 出入(출입)하는 사람이 늘어감에는 실로 言語道斷(언어도단)의 감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이런현상을 그냥 관과할수없어 이에 社會(사회)측과 學校當局(학교당국)측과 警察當局(경찰당국)의 말을들어 이에 기재하고자 한다------
<實生活(실생활)> 歡樂境(환락경)인 café-카페-와 카페출입의 學生問題(학생문제)----에서 引用(인용)
1930년대에 이미 학생들의 카페출입이 社會問題化(사회문제화) 되었습니다
“엉터리대학생”에서의 大學生(대학생) 또한 당시 카페에 출입으로 돈과시간을 낭비하였던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노래에 등장하는 主人公(주인공)또한 工夫(공부)보다는 戀愛(연애)에 關心(관심)이 많고 하릴없이 거리를 헤매면서 카페출입만을 일삼았던 것입니다
諷刺(풍자)의 目的(목적)은 一般的(일반적)으로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作家(작가)의 個人的(개인적)이 滿足(만족)과 快感以上(쾌감이상)의것을 考慮(고려)하지않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공공전신으로 才能(재능)있는 사람을 鼓舞(고무)하여 可能(가능)한데까지
世上(세상)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대중가요는 原則的(원칙적)으로 대중을 相對(상대)하기 때문에 이노래와 같은 만요에서 드러나는 풍자가 단순히 個人(개인)의 滿足(만족)과 快感(쾌감)을 위한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풍자에는 “治療(치료)하고 回復(회복)시키는 힘이있다”는 사실을 念頭(염두)에 둘때 만요에서 드러나는 풍자도 消極的(소극적)이나마 대중을 어떤식으로든 說得(설득)하고 고무시키려
한것이라고 理解(이해)할수있읍니다
풍자는 本質的(본질적)으로 社會的(사회적)인 文學樣式(문학양식)이고 偉大(위대)한 풍자는 敎訓(교훈)과 즐거움에 의하여 연원한 生命力(생명력)을 얻는다고 합니다
만요에서의 諷刺性(풍자성)또한 敎訓(교훈)과 즐거움을 同時(동시)에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그 意義(의의)를 附與(부여)할수있습니다
이러한 만요처럼 풍자성을띤 文學文化樣式(문학, 문화양식)이 등장할수 있었던 背景(배경)을 추적해볼까요!!
日帝(일제)의 統治(통치)에 억눌려있던 植民地時代(식민지시대)에는 풍자와 같은 間接話法(간접화법)이 많이 試圖(시도)되고 活用(활용)되기 마련입니다
앞서 풍자는 直接的(직접적)인 批判(비판)이 가로막힌때 여건속에서 사용하는 非難法爾(비난)이라 설명드렸듯이---- 어디 일제강점기만 그랬나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시절은 어떻구요??
특히 1930년대 들어서 表現(표현)의 自由(자유)가 統制(통제)받자 문학쪽에서도 文學(문학)의 技法向上(기법향상)과더불어 諷刺文學(풍자문학)의 發展(발전)이 加速化(가속화)되기에 이릅니다
1930년대는 여러 社會政勢(사회정세)로 말미암아 그어떤작가도 충분한 創作意識(창작의식)을 지닌채 正直(정직)하게 창작을할 수 없는 矛盾狀態(모순상태)였습니다
이와 같이 표현의자유가 源泉的(원천적)으로 封鎖(봉쇄)된 상황속에서 최재서는 진지하게 여러회에걸쳐 諷刺文學論(풍자문학론)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풍자문학이 그시대에 적합할것이라는 것과 풍자문학에는 시대의 罪惡(죄악)을 正面(정면)으로 공격하지는 못할지라도 側面攻擊(측면공격)을 통해 사람을 찌르고 窒息(질식)시킬만한
辛辣美(신랄미)와 深刻美(심각미) 가있다고 主張(주장) 하고 있습니다
최재서뿐만아니라 소설가 김남천도”諷刺文學(풍자문학)이 現實(현실)의 어두움을 告發(고발)하는 가장 훌륭한 장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文學界(문학계)의 現實(현실)을 大衆歌謠(대중가요)에 그대로 代入(대입)하기는 어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1930년대의 大衆歌謠界(대중가요계)도 文學界(문학계)의 現實(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大衆歌謠(대중가요)에 대한 檢閱(검열)과 統制(통제)가 1936년 6월부터 시작되면서 大衆歌謠(대중가요)에서의 표현의자유도 源泉的(원천적)으로 封鎖(봉쇄)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直接的(직접적)인 비판이 去勢(거세)된 상황에서 대중가요 또한 諷刺(풍자)에눈을 돌리게됩니다
그리하여 大衆歌謠界(대중가요계)는 漫謠(만요)와 같은 comic song-코믹송-을 통해 웃음을 表面(표면)에 내세우면서도 世態(세태)를 반영하고 近代(근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여러
矛盾的(모순적)인 상황을 嘲弄(조롱)하기도 했습니다
1070—엉터리 大學生(대학생)-c
물론 漫謠(만요)에서의 批判對象(비판대상)은 日本人(일본인)이라기보다는 當時(당시)에 새롭게 出現(출현)한 近代文物(근대문물)과 都市文化(도시문화)속에서 드러나는 否定的(부정적)인
徵候(징후)들이 大部分(대부분) 이었다는 限界(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어차피 漫謠(만요)를 音盤化(음반화) 해서 販賣(판매)하는 資本(자본)이 日本人所有(일본인소유)였고 그들이 自身(자신)들을 批判(비판)하는 노래를 만들자는 要求(요구)에 贊成(찬성)할리
萬無(만무)했고 무엇보다도 總督府(총독부)의 惡辣(악랄)한 檢閱(검열)이 이를 審議通過(심의통과)해 줄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기에다 統制(통제)에 시달리다 보니 그즈음 歌謠作家(가요작가)들도 總督府(총독부)가 審議(심의)를 하기전 미리 自家審議(자가심의)로 그들입맛에 맞는 水準(수준)의노래를 創作(창작)
하기에 이르고 맙니다
그러나 앞서 言及(언급)하였듯이 풍자가 社會的文化型式(사회적 문화형식)으로 時代(시대)와 社會(사회)의 不條理(부조리)를 攻擊(공격)하고 奇怪(기괴)한 을 꼬집으며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과
惡德(악덕)을 비웃는 것 이라면 漫謠(만요)에서의 풍자도 이와 마찬가지로 당대의 不條理(부조리)한 상황을 조롱하면서 웃음을 誘發(유발)하는 있다는 점을 간과 할수없습니다
이처럼 漫謠(만요)에서 드러나는 웃음의 樣相(양상)은 크게 諧謔(해학)과 諷刺(풍자)로 크게나눌수 있습니다
Plessner-플래스너-는 웃음과 울음이 미학이나 심리학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人間本性(인간본성)의 이론이라고 했습니다
웃음과 울음이 하나의 막다른 상황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크든지 작든 지간에 자기를 억누르는 外的(외적)인 함에 對抗(대항)하여 克復(극복)의길을 人間內部(인간내부)에 조성해준다 것입니다
만요에서 드러나는 웃음도 단지 小毛賊(소모적)이고 意味(의미)없는 웃음만은 아닙니다
“漫謠(만요)” 의 웃음은 혼자서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나라 共感帶(공감대)를 바탕으로 하여 함께웃는 共同體(공동체)웃음이라 할수있습니다
또 世態(세태)를 反映(반영)하고 거기서 한걸음 더나아가 諷刺(풍자)를 통한 批判意識(비판의식) 마져 堅志(견지)하고 있습니다
<엉터리 大學生(대학생)>을 吹入(취입)한 singer 는 金薔薇(김장미)씨 입니다
그녀가 音盤(음반)으로 發表(발표)한 大衆歌謠(대중가요)는 별로많지 않습니다
주로 Columbia-record 서 활동하며 c40838 金尙作詩(김상대 작시) 全基玹 作曲(전기현 작곡) “열매나 걷고가소”를 金英春(김영춘)의<港口(항구)의 處女雪(처녀설)과 함께 發表(발표)하고
c40843 李善姬 作詞(이선희 작사) 李龍俊 作曲(이용준 작곡)의” 生草木(생초목) 사랑”을 劉鐘燮(유종섭)의 <想思月夜(상사월야)>와, c40847 金茶人(김다인) 作詞(김다인 작사)
金松奎 作曲(김송규 작곡)”쌍쌍打令(타령)”을 金海松(김해송)의<나무아미타불>과, c40864 李善姬 (이선희)작사 金松奎作曲(김송규 작곡)”눈물의 歎願書(탄원서) ”를 姜弘植(강홍식)
의<흐르는 酒幕(주막)>과 함께 c40861 金茶人作詞(김다인 작사) 李在鎬作曲(이재호 작곡) “娘子(낭자)머리 嘆息(탄식)”을 劉鐘燮(유종섭)의<우리는 風雲兒(풍운아)>와 c40867
金茶人作詞(김다인 작사) 李在鎬作曲(이재호 작곡) ”아득한 故鄕(고향)”을 金海松(김해송)의<눈물의 落葉(낙엽)詩(시)>와 c 40863 金茶人作詞(김다인 작사) 李在鎬 作曲(이재호 작곡)
”guitar-기타-는 운다”를 姜南舟(강남주)의 <거리의 新風景(신풍경)>과 각각 같이실어서 發表(발표)했습니다
이중에서 興味(흥미)로운 사실은 1938년 11월 columbia-record 發行(발행) 新譜紙(신보지)------------------------------------에는
十二月(십이월) 新譜(신보)
新譜發賣日(신보발매일) 昭和(소화) 十三年(십삼년) 一月(일월) 二十一(이십일)
40838 流行歌(유행가) 港口(항구) 의 處女雪(처녀설) 處女林 作詩(처녀림 작시) 金松奎作曲(김송규 작곡) 金英春(김영춘) 伴奏(반주) Columbia 管絃樂團( 콜롬비아 관현악단)
新 專屬(신 전속) 金英春(김영춘)<表紙寫眞(표지사진)>
가뜩이나 恨(한)이 많은 港口(항구)에 눈은 왜내리는가 떠도는 水夫(수부)의 향수를 한결 더처주는 눈물의 處女雪(처녀설)!!
가슴을 파고드는 안타까운 旋律(선율) 新人(신인) 金英春 君(김영춘 군)의 debut-데뷰- 快作(쾌작)이다
피라고 조르길랴 핀罪(죄)뿐이요 억지로 피워놓고 열매는 걷지 않으시렵니까?? 金薔薇 孃(김장미양) 의 첫선물!!
열매나 걷고가소 金薔薇(김장미)----------------------------------------라고 宣傳(선전)하고 있는바 映畵主題歌(영화주제가) <홍도야우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지마라>로 一世(일세)를 風味(풍미)한 歌手(가수)
金英春氏(김영춘 씨)가 김장미의 <열매나 걷고가소>音盤(음반)에 데뷰곡을 함께 실어 發表(발표)했음을 알수있습니다
1071—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b 金海松(김해송)
상투깎고 十年工夫(십년공부)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발톱깎고 十年工夫(십년공부)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네까짓게 버팅기면 나는 너를 홀딱할까 그런대로 나만 따르면
족두리나 씌워줬지 관삼보살 관삼보살 十年工夫(십년공부)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좁쌀먹고 十年工夫(십년공부)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도라지먹고 十年工夫(십년공부)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되잖은게 된척하면 굽힐 난줄아나 그런대로 나만 쫓으면 가마
라도 태워주지 관삼보살 관삼보살 十年工夫(십년공부)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흘천 따지 十年工夫(십년공부)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가갸거겨 十年工夫(십년공부)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지지리도 못생긴게 분바르면 고와질까 그런대로 나만믿으면
떡이라도 먹어보지 관삼보살 관삼보살 十年工夫(십년공부)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1939년, 2월 Columbia-record 발매sp음반- 金茶人 作詞(김다인 작사) 金松奎 作曲(김송규 작곡) 김해송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金茶人 作詞(김다인 작사) 金松奎 作曲(김송규 작곡) 金薔薇(김장미) 노래<雙雙打令(쌍쌍타령)>이 함께 실려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a는 <종횡무진가요사 370>에 있습니다
當時(당시) Columbia-record 發行(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847-a 漫謠(만요)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金茶人作詞(김다인 작사) 金松奎作曲(김송규 작곡) 金海松(김해송) 伴奏(반주)columbia管絃樂團(콜롬비아 관현악단)
C40847-b 新民謠(신민요) 雙雙打令(쌍쌍 타령) 金茶人作詞(김다인 작사) 金松奎作曲(김송규 작곡) 金薔薇(김장미)-------------------------------------------------
-----라고 表記(표기)되 있습니다
上記曲(상기곡)中(중)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은 傳統歌謠(전통가요) 즉 口傳民謠(구전민요)에서 型式(형식)을 借用(차용)한 漫謠(만요) 입니다
漫謠(만요)는 基本的(기본적)으로 世態(세태)를 赤裸裸(적나라)하게 반영하고 그時代(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特徵(특징)을 잘 捕捉(포착)하여 보여줍니다
그러나 만요가 당시의 社會相(사회상)을 담고있다고 해서 漫謠自體(만요자체)가 傳統歌謠(전통가요)와는 전혀 相關(상관)없는 完全(완전)히 새로운 갈래의 大衆歌謠(대중가요)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曲調(곡조)만 하더라도 노래별로 新民謠(신민요)와 trot-트로트-등의 曲調(곡조)가 아울러 사용되고 있으며 西洋音樂(서양음악)의 音階(음계)와 和聲(화성)이 音樂的(음악적)인
要素(요소)로 活用(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題目(제목)에서도 마찬가지로 知的(지적)할 수 있는 사항으로 題目(제목)만 보더라도 傳統的(전통적)인 것과 近代的(근대적)인 것의 區別(구별)이 可能(가능)합니다
상기곡<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은 雜歌(잡가) 山念佛(산염불)등에서 “나무아미타불” 이라는 後斂(후렴)을 借用(차용)한것으로 화자의 一方的(일방적) 진술을통해 對象(대상)을 揶揄(야유) 하는
方式(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가요의 詩的話者(시적화자)는 始終一貫(시종일관) 自身(자신)을 外面(외면)한 한여성을 揶揄(야유)하고 怨望(원망)하고 있습니다
이만요가 웃음을 誘發(유발)하는 이유는 여성에대한 揶揄(야유)와 怨望(원망)이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처럼 嚴肅(엄숙)하고 敬虔(경건)한 느낌을 자아내는 宗敎的(종교적)인 후렴과 衝突(충돌)
하면서 生成(생성)된 意外性(의외성) 때문이라고 할수있습니다
始終一貫(시종일관) “관삼보살 관삼보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지만 實狀(실상) 그念佛(염불)의 內容(내용)은 자신이 좋아했으나 자산을 따르지않는 여성을 야유하는것으로 되어있어 이것이
웃음을 자아내는 것입니다
揶揄(야유)의 內容(내용)도 웃음을 이끌어 내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네까짓게 버팅기면 나는너를 홀딱할까 그런대로 나만 따르면 족두리나 씌어줬지” 에서처럼 자신을 따르지 않는 여성에대한 원망과 더불어 끝까지 男子(남자)의 自尊心(자존심)을 버리지않는
虛勢(허세)가 엿보이는데 이또한 웃음을 誘發(유발)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절의”지지리도 못생긴게 분바르면 고와질까 그런대로 나만 믿으면 떡이라도 먹어보지”는 熟考(숙고)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文章(문장)을 額面(액면)그대로 男性(남성) 詩的話者(시적화자)가 여자의 外貌(외모)를 卑下(비하)한 것 이라고 하기에는 未盡(미진)한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문장은 卑下(비하)한 것 이라기보다는 女子(여자)에대한 詩的話者(시적화자)의 未練(미련)내지는 아직 버리지못한 女子(여자)에대한 情(정)의 表出(표출)로 보는것이 더 合當(합당)할 것입니다”
라는 글도 보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아님 그렇게 믿고싶은 것 입니까??
1073—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c
事實上(사실상) 自身(자신)이 좋아하는 女子(여자)를 “지지라도 못생겼다” 고 表現(표현)하는 것은 如前(여전)히 그여자가 예쁘고 좋다는 것의 反語的(반어적) 表現(표현)으로 볼수도 있는것입니다
이 만요에서 웃음을 이끌어 내려고 사용한 技法(기법)은 對句法(대구법) 과 反復法(반복법)입니다
에를들어 “관삼보살 관삼보살 나무아미타불” 과 같은 後斂(후렴)의 反復(반복)은 이작품의 遊戱性(유희성)을 높혀주는 구실을 합니다
또한 “손톱깎고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과 “발톱깍고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은 서로 對句(대구)를 이루고 있는데 이또한 웃음을 자아내는 要素(요소)라 할수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對句法(대구법)이나 反復法(반복법)은 傳統的(전통적)인 才談(재담)에서는 頻煩(빈번)하게 활용하는 기법에 해당합니다
아울러 上記(상기)漫搖(만요가) 話者(화자)의 一方的(일방적) 陳述(진술)로 이루어진것도 만요가 對話(대화)를 통하여 상대를 공격하지않고 화자의 一方的(일방적)인 陳述(진술)로
諧謔(해학)미를 드러낸것과 類似(유사)한 側面(측면)이 있다할수 있읍니다
헌데 이 歌謠(가요) 에대해서 색다른 解釋(해석)을 하는 글도 보입니다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은 切切(절절)한 사랑노래다
曲(곡)이 發表(발표)된 1939년으로부터 10여년전 어느여인은 世上(세상)사랑에 傷處(상처)를 입어 削髮(삭발)하고 깊은 山寺(산사)로 입산 했습니다
衆生(중생)俗世(속세)에 덩그러히 남은 사람은 그녀를 熱烈(열렬)히 사랑한 노래속 話者(화자)입니다
이노래를 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김해송이 이들의 사랑을 代辨(대변)하는데 절간으로간 女人(여인)이 俗世(속세)로 돌아온다면 結婚(결혼)하겠다는 意志(의지)를 보여줍니다
“족두리를 씌워주지” “가마를 태워주지” “고기를 먹여주지”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그녀를 향한 사랑의 證據(증거)입니다
곡을 작사한 金茶人(김다인)은 조명암의 또다른 예명이라 하는데 박시춘씨는 회사에서 여러 사람이 공동작사를 했을때 사용한 이름이라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노래는 보는 視角(시각)에 따라 見解(견해)를 달리할수 있을법도한데 사실은 至高至順(지고지순)한 사랑노래이다
노래 內容(내용)은 切切(절절)한데 가락은 輕快(경쾌)합니다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노래에서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은 佛陀(불타) 아미타불에 蘬依(귀의)한다는 意味(의미)인데 이노래에서는 俗世(속세)를 등진다는 의미를 適時(적시)하지만 끝내는 還俗(환속)
할것이라고 읇조립니다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은 慈悲(자비)로 衆生(중생)의 괴로움을 救濟(구제)하고 極樂往生(극락왕생)의길로 引導(인도)하는 佛敎(불교)의 菩薩(보살)인데 이노래의 끝소절의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
은 사랑하는 여인이 修道生活(수도생활)을 접고 得道(득도)에 失敗(실패)하여 俗世(속세)의 자기곁으로 돌아오기를 念(염)하는 祈願(기원)으로 描寫(묘사)했습니다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이 발표된 이1930년대 韓國大衆 歌謠史(한국대중 가요사)를 들여다보면 時代風俗(시대풍속)을 諷刺(풍자)한 漫搖 (만요)가 크게 流行(유행)했음을 알수있습니다
<漫謠(만요)>는 익살과 諧謔(해학)을 담은 우스개노래로 一名(일명) comic song-코믹송-, nonsense song-넌센스 송-으로 불립니다
그밖에 “流行漫曲(유행만곡)”, “流行漫謠(유행만요)” “戱歌謠(희가요)”등으로도 불렸습니다
만요는 1930년대 유행가 樣式(양식)에서 公式的(공식적)인 名稱(명칭)으로 사용되어 音盤(음반)이나 歌詞紙(가사지)에 表記(표기)되어 있습니다
곧 당대유행가 갈래는 狹義(협의)의 유행가, 新民謠(신민요), 漫謠(만요), jazz song-재즈송- 등 4가지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만큼 漫謠(만요)는 當時(당시) 널리불리던 歌謠名稱(가요명칭) 입니다
이를 다합쳐 廣義(광의)의 流行歌(유행가)로 불렀습니다
만요는 日本(일본)에서 들어온 外國人(외국인) 漫談(만담)속에 끼여있는 揷入歌(삽입가)로 불려지다가 獨立的(독립적)인 노래)樣式(양식) 발전하였습니다
만요는 앞서 언급했듯이 時代(시대)를 諷刺(풍자)하는 익살스런 노래로 才致(재치)넘치는 歌詞(가사)에 樂曲(악곡)도 comic-코믹-하게 構成(구성)하였습니다
만요는 漫談(만담)을 音樂(음악)으로 만든 一種(일종)의comic song-코믹송-이었던 것입니다
日常生活(일상생활)의 소소한 내용을 諧謔的(해학적)인 터치로 담아내는 一種(일종)의 諷刺歌謠(풍자가요)입니다
1074—시큰둥 夜市(야시)-a 박향림, 남일연, 김해송
수박장수—수박사료 옳소 수박 애기낳는 수박이야 아들을 날라면 아들수박 따님을 날라면
따님수박 막골라잡고 十錢(10전)이야 아서라 저마누라 거동보소 아들난단 바람에 精神(정신)
이팔려 이수박 저수박 꼭지만 따놨네 헤이~ 맙소사 수박장수 헤이헤이~ 빵꾸가 났네 헛-
나쯔미깡 장수—나쯔미깡 옳소 미깡 이뻐지는 니쯔미깡 뚱뚱한 색시는 홀쭉미깡 홀쭉한
색시는 호박미깡 막골라잡고 五錢(5전) 이야 아서라 저 아가씨 廉恥(염치)좀 보소 예뼈진단
소리에 귀가 으쓱해 이미깡 저미깡 손때만 묻혔네 헤이~ 맙소사 미깡이나 장수 헤이헤이
뱀잡았구나 헛-
아스쿠리 장수—아스쿠리 옳소 그래 萬病通治(만병통치) 아스쿠리 우는애 달래는 아스쿠리
정든님 달래는 아스쿠리 一 錢(1전) 한푼에 한바가지 아서라 저멋쟁이 비위좀보소 임달랜단
소리에 얼이 빠져서 아스쿠리 통을안고 씨름을 하누나 헤이~ 맙소사 아스쿠리장수 헤이헤이~
신단지한다 헛-
1938년, 7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처녀림사 이용준사 박향림, 남일연, 김해송 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처녀림사 김송규곡 김해송노래<modern 妓生點考(기생점고) .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그當時(당시) Columbia-record 發行(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820-a 시큰둥 夜市(야시) 處女林(처녀림)詞(사) 李龍俊(이용준)曲(곡) 朴響林(박향림),南一燕(남일연),金海松(김해송) 伴奏(반주)Columbia 管絃樂團(콜롬비아 관현악단)
C40820-bㅡmodern 妓生點考( 모던 기생점고) 處女林(처녀림)詞(사) 金松奎(김송규)曲(곡) 金海松(김해송)---------------------------------------------------------------
라고 紹介(소개)하고있어서 上記(상기)歌謠(상기가요)를 “流行歌(유행가)”로 表記(표기) 했습니다
허나 1938년 6월26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콜롬비아 레코드 광고)--------------------------에는
漫謠(만요) modern 妓生點考(모던 기생점고) 金海松(김해송)
시큰둥 夜市(야시) 朴響林(박향림), 南一燕(남일연), 金海松(김해송)--------------------------이라고 紹介(소개)하며 曲種(곡종)을 漫謠(만요)라 表記(표기)하고 있습니다
이노래도 傳統的(전통적)인 웃음의 技法(기법)을 活用(활용)하고 있는 漫謠(만요) 입니다
“시큰둥 夜市(야시)”는물건을 파는 장수와 그光景(광경)을 目擊(목격)한 사람의 對話(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절부터 차례대로 수박장수와 나쯔미깡, 아스쿠리장수가 登場(등장)해서 自身(자신)이파는 物件(물건)을 紹介(소개)하는데 그內容(내용)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수박장수는”먹으면 아이낳는 수박”이라고 紹介(소개)하고 나쯔미깡 장수는”예뻐지는 나쯔미깡”이라고 宣傳(선전)하며
아스쿠리장수는”임마저 달래는 萬病通治(만병통치) 아스쿠리”라고 廣告(광고)하고 있습니다
장수들의 이와 같은 物件宣傳(선물건전)에 제각기 그물건이 아쉬운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아이를 낳지못하는사람”과”예뻐지고 싶은사람” 그리고”달래야할 임이있는사람”이 물건을 사기위해 몰려듭니다
그러나 物件(물건)에 달려든 사람들의 行爲(행위)는 그光景(광경)을 目擊(목격)한 사람에의해 비웃음을 삽니다
目擊者(목격자)는 아들낳는다는 소리에 얼이빠져서 이수박 저수박 꼭지만 따놓은사람 과”예뻐진다는 소리에 이미깡 저미깡에 손때만묻혀놓은사람” 그리고”임달랜다는 소리에 얼이빠져서
Ice cream-아이스크림-통을 안고 씨름을 하는사람”을 가각 비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만요에서 장수가 自身(자신)의 物件(물건)을 紹介(소개)하는 대목은 사설시조와 매우 類似(유사)합니다
1075—시큰둥 夜市(야시)-b
헌데 “시큰둥 夜市(야시)”에서 장수가 自身(자신)의 物件(물건)을 소개하는 대목은 사설시조 와 매우 類似(유사)합니다
宅(댁)들 동난지 사오 저 장수야 네향후가 무엇이랴 외난다 사쟈
外骨內肉兩目(외골내육양목) 이 上天前行後行(상천전행후행) 小(소)아리 八足(팔족) 大(대)아리 二足靑醬(이족청장) 아스슥하는 동난지 사오
장수야 하 거복이 외지말고 게젓이라 하렴은
宅(댁)들에 臙脂粉(연지분)들 소오 저장수야 臙脂(연지) 곱거든 사자 곱든 비록 아니하나 바르기곳 바르면 온갓 嬌態-교태-다 나서 임괴암즉하오니 사 발라보시오
眞實(진실)노 그러곳 할작시면 닷 말어지만 샤리라
위의 사설시조들은 각각 “게젓장수”와 “연지분장수”가 自身(자신)이 파는 物件(물건)을 紹介(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게젓장수는 자못 有識(유식)한척 漢字(한자)를 써가면서 게젓을 설명하지만 장수의 이와 같은 虛勢(허세)는 그얘기를 다듣고난 聽者(청자)가”장수야 하 거북하게 외지말고 게젓이라 하렴”
이라고 이룩함으로써 다른사람들의 비웃음을 삽니다
한편 연지분 장수는 연지분을”바르면 교태가나서 임이 사랑해주는 연지분”이라고 서전하자 聽者(청자)는”진실로 그럴것같으면 닷말이나 사겠다” 합니다
사설시조에서 장수가 과장되게 상품을 선전하는것과 화자내지는 청자가 조롱섞인 발화를 행하는 것은 “시큰둥 夜市(야시)”와 유사할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큰둥 夜市(야시)”와 가 등장하는 사설시조는 類似(유사)한 構造(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가요에 등장하는 나쯔미강은 여름귤로 귀한 과일를 意味(의미)하는데 먹으며 예버진다는 점에서 바르면 嬌態(교태)가나는 연지분과 연결될수 있습니다
또한 상기곡와 인용한 사설시조는는 共通的(공통적)으로 同音異義語(동음 이의어)를 活用(활용)해서 作品(작품)의 遊戱性(유희성)을 强調(강조)하고 詠歎法(영탄법)이나 誇張法(과장법)등을
適切(적절)하게 使用(사용)하여 웃음을 誘發(유발)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시큰둥 夜市(야시)”에서는 “나쯔미깡”과 유사한 語彙(어휘)를 만들기위해서 “옳소” 나 “호박” 뒤에도 미깡을 붙였는데 이와 같은 言語遊戱(언어유희)는 작품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게다가”아서라” ”맙소사” ”헛”등의 감탄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설시조에서”하”와가튼 感歎詞(감탄사)를 사용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유희성을 강조할뿐 아니라 對象(대상)에대한 비웃음을
强化(강화)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다만 “시큰둥 夜市(야시)”가 장수의말과 물건을 사려고 달려온 사람의 行爲(행위)를 바라보는 目擊者(목격자)의 발화로 이루어져 있다면 사설시조는 물건파는 장수와 物件(물건)을 사려는 사람의
直接對話(직접대화)로 內容(내용)이 이루어진다는 差異點(차이점)이 있습니다
즉 상기곡에서 장수의 말을듣고 그물건을 사기위해 달려온 사람의 행위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의하여 對象化(대상화)되어 批判(비판)된다면 사설시조에서는 물건을 파는사람과 물건을사는사람
의 對話(대화)를 통해 한사람이 다른사람을 直接 批判(직접비판)하거나 그들의 對話(대화)를듣는 우리로 하여금 批判(비판)의 자세를 취하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시큰둥야시와 사설시조가 웃음을 志向(지향)한다는 점에있어서 매우유사합니다
그리고 그웃음이 嘲弄(조롱)에 가까운 웃음이라는점에서 있어서도 同一(동일)합니다
이처럼 만요는 雜歌(잡가)에서 後斂(후렴)을 借用(차용)하기도 하고 사설시조와 유사한구조를 취하는등 傳統(전통)歌謠(가요)와의 交涉樣相(양교섭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큰둥 夜市(야시)>의 曲種(곡종) 인 “漫謠(만요)”는 基本的(기본적)으로 웃음을 誘發(유발)시키는 노래에 該當(해당)합니다
물론 만요중에는 單純(단순)히 웃음을 위한 웃음만을 추구하는 노래도 있는 것이 事實(사실)이나 그렇다고해서 모든만요가 찰나적인 享藥(향략)에 들뜨도록 하는노래는 아닙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만요중에는 當時世態(당시세태)를 赤裸裸(적나라)하게 반영하되 그것을 웃음으로 諷刺(풍자)함으로써 敎訓(교훈)과 즐거움을 同時(동시)에 주는 노래도 있고 대상에대한
同情(동정)과 憐憫(연민)을 통해 諧謔的(해학적)인 웃음을 추구함으로써 共感帶(공감대)를 통한 共同體的(공동체적)인 웃음을 誘發(유발)하는 작품도 상당수있습니다
만요는 단지 無力感(무력감)을 카타르시스시키고 현실에의 만족을 유도하는노래 라는 否定的(부정적)인 성향만 지니고 있는 것은 결코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만요가 지향하는 웃음은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통해 비극적인 현실을 이겨내는 정서적 해결로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고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갑자기 出現(출현)한 것이아니라 우리민족이 삶의한께를 克復(극복)하기위하여 사용하였던 傳統的(전통적)인 기제를 계승하여 大衆歌謠(대중가요)의 한갈래로
새롭게 土着化(토착화)시킨 것이 漫謠(만요) 입니다
1076—世紀末(세기말)의 노래-이경설
거미줄로 한허리를 얽고 거문고에 흐른다 일만설움 푸른 穹蒼(궁창)아래 궂은비만 나려라
시들퍼라 거문고야 내사랑 거문고 까다로운 이거리가 언제나 밝아지려 하는가
가랑잎에 東南風(동남풍)을 실어 슬렁슬렁 떠나면 달 떨어진 萬頃蒼波(만경창파) 위에
까마귀만 우짖어 외로워라 이바다야 내사랑 바다야 뒤숭숭한 이바다가 언제나 밝아지려 하는가
靑山碧溪(청산벽계) 저문님을 찾아 목탁을 울리면서 돌아가신 어버이들 앞에 무릎꿇고 비노니 답답해라
이마을아 내사랑 마을아 어두워진 이마을이 언제나 밝아지려 하는가
1932년polydor-record 발매 sp음반- 박영호사 김탄포-김용환작곡 이경설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王平 補詞 (왕평보사) 文藝部(문예부) 編曲(편곡) 이경설노래< 방아打令(타령)> 이 함께 실려있습니다
이무렵 polydor-record 發行(폴리돌 레코드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Polydor 19024-a 流行歌(유행가) 世紀末(세기말)의노래 朴英鎬 作詩(박영호 작시) 金灘浦 作曲(김탄포 작곡) 李景雪(이경설) 伴奏(반주) 폴리돌 管絃樂團(관현악단)
Polydor 19024-b 民謠(민요) 방아타령 王平 詞(사) (왕평 사) 文藝部編曲(문예부 편곡) 李景雪(이경설) 伴奏(반주) 폴리돌 管絃樂團(관현악단)-------------------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33년,,12월22일 東亞日報(동아일보) polydor-record 廣告( 폴라돌 레코드 광고)--------------------------------------------------에는
流行歌(유행가) 名盤(명반) 世紀末(세기말)의 노래 獨唱(독창) 李景雪(이경설)-------------------------라고 大衆歌手(대중가수) 이경설을 를 獨唱(독창)이라 대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년후 1934년, 5월10일 東亞日報(동아일보) polydor-record 廣告( 폴리돌 레코드 광고)에는
花形歌手(화형가수) 吹入集(취입집) 이경설 獨唱(독창)
一 九0二四 世紀末(세기말)의노래
방아타령---------------------------------------
------라 紹介(소개) “花形歌手(화형가수)”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이어서 興味(흥미)롭습니다
1934년, 9월 東亞日報(동아일보) polydor-record 廣告(폴리돌레코드 광고)---------------------------------------에는
十月特別新譜(10월 특별신보)
故(고) 李景雪 孃이경설양) 遺作(유작)
19024 世紀末(세기말) 의노래 李景雪-이경설
방아타령-------------------------------------------------으로 表記(표기)하고 있어서 1934년 폐병으로 청주자택서 夭折(요절)한 이경설의 사망을 哀悼(애도)하는 特別新譜(특별신보)로
이곡을 발매하고 있음을 廣告(광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 4개월후 1935년, 1월25일 東亞日報(동아일보) 廣告(광고)-----------------------------------------------에는
品切盤(품절반) 入荷(입하)
19024 世紀末(세기말)의노래 故(고) 李景雪(이경설)------------------라 表記(표기) 제1대 “눈물의여왕” 이경설의 죽음으로 이음반이 品切(품절)이 될정도로 販賣量(판매량)이 늘어났음을 알게합니다
1932년에 박영호가 작사하고 김용환이 작곡하여 俳優(배우)이자 歌手(가수)로 활동하였던 이경설이 부른 上記曲(상기곡)은 當時(당시)에도 많은 人氣(인기)를 얻었는데 이는 上記(상기)
1935년 1월25일 동아일보 廣告(광고)에서도 確認(확인)됩니다
그리고 三千里(삼천리) 1935년, 8월호<人氣歌手(인기가수) 의 藝術史(예술)私生活(사생활) 戀愛(연애)>에서 김용환도 “世紀末(세기말)의노래”를 잘팔린 音盤(음반)으로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노래를 題目(제목)에서부터 時代(시대)에대한 否定的(부정적)인 認識(인식)이 反映(반영)되어 있음을 알수있습니다
특히 全體的(전체적)으로 比喩(비유)와 象徵(상징)을 통해 當代(당대)의 現實(현실)을 드러내고있어서 注目(주목)됩니다
이노래에서 “거문고”와 “萬頃蒼波(만경창파)”,그리고 “靑山碧溪(청산벽계)”등은 모두 祖國(조국)을 象徵(상징)한것으로 볼수있습니다
거문고는 사용한지 오래되서 거미줄이 생겼으며 萬頃蒼波(만경창파)에는 달이 떨어지고 靑山(청산)과 碧溪(벽계)에는 날이저문 狀況(상황)입니다
이는결국 植民支配 (식민지배) 아래있던 祖國(조국)의 現實(현실)을 象徵(상징)한것이라 할수있습니다
3절의 “목탁”이란 詩語(시어)를 통해서 시적화자의 身分(신분) 스님일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데 시적화자는 國權(국권)을 强奪(강탈)한것에 대해 祖上(조상)에게 死罪(사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詩的話者(시적화자)는 돌아가신 어버이들의 무덤앞에서 무릎을 꿇고 비는것입니다
1077—世紀末(세기말)의노래-b
“世紀末(세기말)의노래”느 祖國(조국)을 象徵(상징)하는 詩語(시어)와 當代(당대)의 現實(현실)을 描寫(묘사)하는 詩語(시어)을 積極(적극) 活用(활용)하고 있습니다
“거문고” “거리” “바다” “마을”등이 祖國(조국)을 象徵(상징)하는 詩語(시어)라면 ”까다롭다” “뒤숭숭하다” “답답하다” “ 외롭다” “어둡다” 서글퍼다” 등은 當代(당대)의 否定的(부정적)인 現實(현실)을
反映(반영)하거나 그러한 否定的(부정적)인 現實(현실)로 인해 詩的話者(시적화자)가 느낀 感情(감정)을 表現(표현)한 詩語(시어)입니다
그런데 詩的話者(시적화자)는 祖國(조국)을 象徵(상징)하는 “거리” “바다” “마을” 앞에 “내사랑”을 내세워 祖國(조국)을 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을 드러내는 同時(동시)에 어버이
무덤앞에서 무릎을 꿇고서 祖國(조국)을 强奪(강탈)당한 일을 謝罪(사죄)합니다
그러면서도 시적화자는 “언제나 밝아지려 하는가”라고 힘으로써 과연 밝아질수 있을까 라는 疑懼心(의구심)과 同時(동시) 밝아지지를 바라는 所望(소망)을 表現(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매우 消極的(소극적)인 것은 事實(사실)이지만 當代(당대)에 대한 正確(정확)한 認識(인식)과 그를 象徵的(상징적)으로 表現(표현)한 것은 그價値(가치)를 認定(인정)할만 합니다
당시의 批評家(비평가) 양훈은 朝光(조광) 1942년, 7월호 <流行歌(유행가)의 걸어온 길>에서 “世紀末(세기말)의 노래를 題目(제목)그대로 世紀末的(세기말적) 頹廢的(퇴폐적) 歌謠(가요)”라고
評價(평가) 했습니다
이렇게 評價(평가)한 것은 노래에서 드러나는 厭世的 雰圍氣(염세적 분위기)를 强調(강조)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結果(결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노래처럼 時代認識(시대인식)을 드러낸 大衆歌謠(대중가요)가 불릴수있었던 것은 音盤(음반)에 대한 일본의 檢閱(검열)이 미처 이루어지기 前(전) 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본은 1933년, 6월부터 音盤(음반)의 取締(취체)와 檢閱(검열)을 시작하였는데 그전까지 日本總督府(일본총독부)가 音盤産業(음반산업)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歌謠(가요)속 話者(화자)는 거문고에 가락을걸쳐 亡國-망국-의恨(한)을 읊조립니다”까다로운 이거리”는 일본 帝國主義者(제국주의자)들의 無嚴(무엄)한 行色(행색)과 朝鮮人(조선인)을 監視(감시)
하는 눈길을 隱喩(은유)한것입니다
”달떨어진 萬頃蒼波(만경창파)에 까마귀소리”도 같은 脈絡(맥락)입니다
뒤숭숭한 歲月風波(세월풍파)에 돌아가신 어버이 冥福(명복)을빌며 어두워진 이마음 언제 解放(해방)을 맞이할까 읊조립니다 한마디로 愛殘(애잔)합니다
삼천리지 1936년 4월호 실린글 “어떤 레코드가 금지를 당하나” 에 보면------昭和(소화)8년 1933년, 6월 비로소 처음 總督府(총독부) 當局(당국)에서 레코드검열계를 두기전에는 朝鮮(조선)안에서
레코드의 취제란 도무지 없었다
다시말한다면 그이전에는 外國(외국)에서 收入(수입)되는 레코드나 玄海灘(현해탄)을건너 도코방면에서 들어오는 여러가지 종류의 레코드는 아무런 監視(감시)나 制限(제한)이 없이 그냥 마구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이유로는 소화8년 이전으로 말하면 조선내의 레코드의 힘이란 極(극)히 微弱(미약)한것으로 一般社會人(일반 사회인)은 이레코드에다 그다지 머리를 돌리지 않았고 그必要性(필요성)을
깨닫고있지 못하고 있었던 時期(시기)였다
다시말하여 record 文化-레코드문화-에 대하여 너무 無關心(무관심)하여왔고 等閑視(등한시)하여 왔던 것이다
이를통해서도 當時音盤(당시음반)의 檢閱(검열)과 取締(취체)가 이루어진 저간의 事情(사정)을 엿볼수 있습니다
普通(보통)우리나라의 音盤産業(음반산업)이 처음부터 日本當局(일본당국)의 周到綿密(주도면밀)한 計劃(계획)아래서 이루어졌을것이라 生角(생각)하는데 事實上(사실상) 1933년이전까지
日本總督府(일본총독부)는 우리나라 음반산업에 無關心(무관심) 하였을뿐아니리 等閑視(등한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때문에 1933년 이전에는 음반에대한 取締(취체)나 檢閱(검열)이전혀없었고 外國(외국)의 그어떤노래도 아무 監視(감시)나 制限(제한)없이 들어올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총독부가 음반에 무관심했던 것은 音盤(음반)의힘이 매우 微弱(미약)하여 그것을 取締(취체)할 必要性(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32년<荒城(황성)의 跡(적)>과 같은 곡이 大大的(대대적)으로 人氣(인기)를끌고 음반이 우리나라에서 重要(중요)한 位置(위치)를 次知(차지)하게되자 日本(일본)總督府(총독부)도 音盤(음반)
取締(취체)와 檢閱(검열)을 始作(시작)하게됩니다
요컨데 上記(상기) 說明(설명) <世紀末(세기말)의노래>는 음반의검열과 취체가 시작된 1933년 以前(이전) 發賣(발매)되었기에 當時(당시)의 否定的(부정적)인 現實(현실)을 反映(반영)
할수있었던 것이라 설명할수있습니다
1078—서울노래- b 蔡奎燁(채규엽)
漢陽城(한양성) 옛터에 종소리 스며들어 나그네 가슴에도 노래가 서립니다
漢江(한강)물 푸른줄기 말없이 흘러가네 千萬年(천만년)두고흐를 서울의꿈이련가
밤거리 서울거리 neon-네온-이 아름답네 街路樹(가로수)푸른잎에 노래도 아리랑
꽃피는 漢陽城(한양성) 잍트는 서울거리 앞南山(남산) 피는구름 서울의 넋이련가
1934년, 6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조명암사 안일파곡 채규엽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김안서시 홍구야시작곡 채규엽노래<홍루원>이 함께 실려있습니다
당시 Columbia-record 發行( 콜롬비아 레코드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508-a 流行歌(유행가) 改作(개작) 서울노래 東亞日報동아일보) 當選歌詞(당선가사) 趙鳴岩(조명암) 作詩(작시) 安一波(안일파) 作曲(작곡) 蔡奎燁(채규엽) 伴奏(반주) 콜롬비아 管絃樂團(관현악단)
C49508-b유행가 紅淚怨(홍루원) 金岸(曙(김안서) 作詩(작시) 江口夜詩(강구야시) 作曲(작곡) 蔡奎燁(채규엽) 伴奏(반주) 콜롬비아 管絃樂團(관현악단)----이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1934년, 4월20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五月新譜(5월신보)
40508 流行歌(유행가) 紅淚怨(홍루원) 一枚(1매) 蔡奎燁(채규엽)
서울노래<東亞日報(동아일보) 當選歌詞(당선가사)----------------------------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4월19일 治安妨害(치안방해)로 禁止曲(금지곡곡)處分(처분)을 받은곡이 다음날 發賣(발매)했음을 밝히고있어서 疑問(의문)투성이 입니다
1934년 Columbia-record 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五月新譜(5월신보)
40508 流行歌(유행가) 紅淚怨(홍루원) 蔡奎燁(채규엽)----------------------중략-------------------
서울노래 東亞日報 當選歌詞(동아일보 당선가사) 蔡奎燁(채규엽)---------------------중략----------------
流行歌界(유행가계) 0將(장) 蔡奎燁氏(채규엽씨)의 豪華盤(호화반)!!------------------------------라고 선전하고있습니다
<서울노래>는 당시발행 留聲機音盤(유성기 음반) 歌詞紙(가사지)에는”東亞日報(동아일보) 當選歌詞당선가사)”라는 文句(문구)와 함께 제목위에 작은글씨로 改作(개작)이라고 附記(부기)되어 있습니다
“서울노래”는 처음에 東亞日報(동아일보)에서 開催(개최)한 新春文藝(신춘문예)縣賞募集(현상모집)에서 當選作(당선작)없이 佳作(가작)으로 選定(선정)된 곡이었습니다
東亞日報(동아일보) 1934년, 1월3일자에 “서울노래” 의 歌詞(가사)가 실려이는데 전체 6절로 이루어져있어서 原作(원작)과 改作(개작)의 比較(비교)가 可能(가능)합니다
그런데 音盤歌詞紙(음반가사지)에 受祿(수록)된 “서울노래”는 原作(원작)을 두번 改作(개작) 한것입니다
당시 콜롬비아에서 만든 音盤紹介(음반소개) 小冊子(소책자)를 통해서 音盤歌詞紙(음반가사지)에 受祿(수록)된 改作(개작)”서울노래” 以前(이전)에 原作(원작) “서울노래” 改作(개작)이 이미
한번 이루어졌음을 알수있습니다
다시말해서 原作(원작) “서울노래”는 總(총)두번 改作(개작)을 거친셈인데 위에 紹介(소개)한 “서울노래”는 두번의 改作(개작)을 거친후 以後(이후)의 歌詞(가사)입니다
결국 “서울노래”는 두번의 改作(개작)을 거친 以後(이후)에야 음반으로 發賣(발매)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實際(실제)로 三千里(삼천리) 1936년, 4월호에 실린 禁止曲目錄(금지곡목록)에서 “서울노래”를 찾을수있는데 禁止理由(금지이유)는 總督府(총독부)의 一方的(일방적)主張(일방적주장)에 불과한
治安妨害(치안방해)입니다
禁止曲目錄(금지곡 목록)에서 確認(확인)한 바에 의하면 “서울노래”가 禁止曲處分(금지곡 처분)을 받은 것은 1934년, 4월19일입니다
그런데 5월신보로 발표된 다른곡들의 歌詞紙發行(가사지 발행)은은 4월20일로 되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노래” 歌紙發行(가사지 발행) 하루전날 이미 禁止曲處分(금지곡 처분)을 받은것입니다
즉 서울노래는 1934년 5월 신보로 소개되었으나 이미 4월19일에 禁止曲處分(금지곡 처분)을 받음으로써 첫번째 改作(개작)한 “서울노래”는 發賣(발매)조차 되지 않았던것으로 추정됩니다
허나!! 東亞(동아)日報(동아일보) 1934년 4월20일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5월신보”로 發賣(발매)한다고 실려있습니다
그리하여 “서울노래”는 또한번 改作(개작)을 거쳐서야 한달뒤인 1934년, 6월 發賣(발매)되었던 것입니다
이곡이 말도안되는 治安妨害(치안방해)를 이유로 금지곡처분을 받은 것은 노래속의 語彙(어휘)가 民族的(민족적)인 感情(감정)을 불러일으킬 素地(소지)가 있었기 때문으로 總督府(총독부)가
우리게레의 3.1獨立運動(독립운동)을 强制鎭壓(강제진압)했던 경험으로 지례斟酌(짐작) 한것으로 보입니다
1079—서울노래-c
1934년 Columbia-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四0五0八-40508- 紅淚怨(홍루원) 伴奏(반주) 日本 Columbia 管絃樂團(일본콜롬비아 관현악단)
서울노래
流行歌界(유행가계)의 0將(장) 蔡奎燁氏(채규엽씨)의 歌盤(가반) 過去(과거) 나 오늘날이나 斷然(단연) 0界(계)를 리드하고있다
侵犯(침범)할래야 侵犯(침범) 할 수 없는 것은 그이의 領域(영역)이고 움직여 볼래야 움직일수없는 것은 그이의 00이다
性格(성격)과 얼굴도 복스럽고 부드럽거니와 그의 音聲(음성)은 더한층 寂寞(적막)을 깨트리나 종소리같이 은근하고 明朗(명랑)하게 우리마음과 귀를 울려준다
氏(씨)가 綠陰(녹음)佳節(가절) 선물로 이 歌盤(가반)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A面(면) 紅淚怨(홍루원) 이노래는 님을따라 산설고 물설은 異域(이역)에서 외로히 헤매는 靑春(청춘)의 悲戀(비연)을 노래한것이다
B面(면) 서울노래 東亞(동아)日報(일보) 縣賞募集(현상모집)에 當選(당선)된 歌詞(가사)를 前日(전일) 京城帝大(경성제대)에서 4년간 만도린단을 指揮(지휘)한 安一波(안일파)씨가
名曲(명곡)을 配合(배합)하여 놓은 것을 우리의 채규엽씨가 五百餘年(500여년) 옛서울인 漢陽(한양)의 쓰린 追憶(추억)을 눈물겨웁게 불렀다
漢陽城(한양성) 옛터전 옛날이 그리워라 無窮花(무궁화) 가지마다 꽃잎이 집니다
漢江(한강)물 푸른줄기 五百年(500년) 꿈이지네 앞南山(남산) 烽火(봉화)불도 꺼진지 오랩니다
二行 略(2행략)------
종소리 스러진밤 나그네가 웁니다
밤거리 서울거리 neon-네온-이 아름답네 街路樹(가로수) 푸른잎에 노래도 아리랑
Salon-샤롱- restaurant-레스토랑- 술잔에 띄운 꽃잎 옛날도 꿈이어라 追憶(추억)도 쓰립니다
꽃피는 三千里(삼천리) 잎트는 三千里(삼천리) 아세의 바람아 서울의 꿈을깨라-----------------------------------라고 길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上記(상기) 每月新譜(매월신보) 에서 보듯이 “옛서울인 漢陽(한양)의 쓰린追憶(추억)을 눈물겹게 불렀다” 는 表現(표현)에서 알수있듯이
이가요는 民族的(민족적)인 感情(감정)을 불러일으킬만한 語彙(어휘)를 多數使用(다수사용)해서 創作(창작)된 노래다고 主張(주장)하는글과 그렇지 않다는 主張(주장)이 兩立(양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原作(원작) 서울노래와 처번째 改作(개작)서울노래 歌詞(가사)를 살펴볼 必要(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部分(부분)이 改作(개작)되었는지 를 比較(비교)하면 當時(당시) 檢閱(검열)과 取締(취체)에 걸린 項目(항목)이 무엇인지를 알수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言及(언급)한 Columbia-record 1934년 매월신보에 原歌詞(원가사) 가 6절로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改作(개작)서 4절로 縮約(축약)됩니다
改作(개작)에서 3절과 6절이 漏落(누락)되어 있습니다
原作(원작) “서울노래”서도 3절의 앞부분이 생략되어 있는데 이부분은 新聞社(신문사)가 自進 (자진)해서 削蹄(삭제)하였기에 現在(현재)로서는 그部分(부분)을 알수없습니다
허나 上記說明(상기설명)은 잘못되았습니다
總督府(총독부)의 削蹄要求(삭제요구)가 있어서 削蹄(삭제)를했지 新聞社(신문사)에서 自進(자진)해서 削蹄(삭제)했을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노랫말중 가장 問題視(문제시) 되었던 部分(부분)인지라 미리 削蹄(삭제)한것으로 보입니다
原作(원작)은 朝鮮王朝(조선왕조) 五百年-오백년-의 都邑地(도읍지)인 漢陽(한양)에 대한 追憶(추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漢陽(한양)은 지금 無窮花-무궁가지 마다 꽃잎이지고 푸른줄기 오백년의 꿈이지며 앞南山(남산) 烽火(봉화)불도 꺼진지 오래된 暗鬱(암울)한 곳으로 描寫(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暗鬱(암울)한곳에서 시적화자는 나그네되어 눈물을 흘리고있습니다
그러나 詩的化者(시적화자)는 單純(단순)히 눈물을 흘리는데 머물지않고 ”아세의 바람아 서울의꿈을깨라”며 憤然(분연)히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소 煽動的(선동적)으로 들리는 이久節 (구절)은 日本當局(일본당국)의 檢閱(검열)을 피해갈수 없었을것입니다
그 때문에 전체6절이 4절의노래로 縮小改作(축소개작)되기에 이릅니다
1080-서울노래-d
앞서 이노래가 1934년, 6월 發賣(발매)로 紹介(소개)한 것은 改詞(개사) version-버전-이고 禁止曲(금지곡)이 된 1934년 5월 發賣(발매)는 音源(음원)이 公開(공개)되지 않아 發賣(발매)되지
못한것으로 說明(설명)하고있으나 最近(최근)” 5월 發賣音源(발매음원)” 이 音質(음질)이 不良(불량)하나마 公開(공개)됨으로써 五月發賣(5월발매)가 定說(정설)로 되었습니다
1934년, columbia-콜롬비아 五月新譜(5월신보)------------------------------------------------------에는
當選名歌姬(당선 명가희) 豪華盤(호화반)
人氣白熱化(인기백열화)
四月二十日 (4월20일) 發賣開始(발매개시)
40506 號(호) 流行歌(유행가)
處女(처녀) 열여덟엔 一枚(1매) 鄭日敬(정일경)
섬색시
40507號(호) 流行歌(유행가)
朝鮮日報(조선일보)當選 歌詞(당선가사)
冬柏(동백)꽃 一枚(1매) 趙錦子(조금자)
離別(이별)서러워
40508 號(호) 流行歌(유행가)
東亞日報(동아일보) 當選歌詞(당선가사)
서울노래 一枚(1매) 蔡奎燁(채규엽)
紅淚 怨(홍루원)
40509號(호)
伽倻芩(가야금) 竝唱(병창) 一枚(1매)
토끼화상
바이얼린 二重伴奏(이중반주)
夏月夜(하월야) 一枚(1매) 金甲子(김갑자)
40510號(호)
Nonsense-넌센스-
이남편 그안해-아내---------------------------------------------------------라고 宣傳(선전) “서울노래” 가 未發賣(미발매)가 아닌 五月發賣(5월발매) 되었음을 確認(확인)해줍니다
그리고 1934년 6월경 신문에---“不良 record-불량레코드- 점차 滅絶(멸절) 當局(당국)의철저한 取締(취체) 에따른 業者自覺(업자자각)이 原因(원인)”이라는 타이틀 하에
1934년 上半期(상반기) 6개월간 處分(처분) 레코드—“혈루의 법정”<치안> “서울노래”<치안> “조선아 잘있거라”---라 報道(보도)하고 있습니다
결국 6절로 발표된 조명암의 동아일보 縣賞募集(현상모집) 歌詞(가사)를 다듬어 5월발매한 첫번째 <서울노래>가 治安妨害(치안방해)로 禁止(금지)曲(금지곡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개사를 통해 6월경 再發賣(재발매)를 하는데 音盤(음반)에보면 改作(개작)이라고 表記(표기) 되어있음을 <종황무진가요사 1078>에 說明(설명)드렸습니다
그리고 서울노래 6월 改詞前(개사전) 原曲歌詞(원곡가사)입니다
동아일보 산문에현상모집 가사로 실린 6절중 3절 6절이 생략된1~2절 4절~5절이 그래로 가사로 사용되었습니다
漢陽城(한양성) 옛터전 옛날이 그리워라 無窮花(무궁화)가지마다 꽃잎이 집니다
漢江(한강)물 푸른줄기 五百年(오백년) 꿈이 자네 앞南山(남산) 烽火(봉화)불도 꺼진지 오랩니다
사롱 레스토랑 술잔에 띄운꽃잎 옛날도 꿈이어라 追憶(추억) 도 쓰립니다
곡을 창작한 安一波(안일파)씨는 본명이 안익조씨로 愛國歌(애국가)를 만든 안익태씨 親兄(친형)입니다
醫大(의대)를 나와 Columbia-record 文藝部長(문예부장)을 역임하는등 화려한 경력을 지녔으나 육이오공간 미처 피난을못하고 인민군치하서 부역을 한죄로 총살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1082—木浦(목포)의눈물-a이난영
沙工(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三鶴島(삼학도) 波濤(파도)깊히 숨어드는 때
埠頭(부두)의 새악씨 아롱젖은 옷자락 離別(이별)의눈물이냐 木浦(목포)의 설움
三 栢淵(삼백연)願安風(원안풍) 은 露積峯(노적봉)밑에 任(임)자취 宛然(완연)하다
애달픈 情操(정조) 儒達山(유달산)바람도 榮山江(영산강)을 안으니 任(임)그려우는마음
木浦(목포)의노래
깊은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傷處(상처)가 새로워진다 못오는 임이면 이마음도
보낼것을 港口(항구)의 맺은節介(절개) 木浦(목포)의사랑
1935년, 9월 okeh-record 발매 sp음반- 문일석사 손목인곡 이난영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남풍월사 문호월곡 이난영노래 <봄아가씨>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音盤檢閱(음반검열)이 시작된 1933년 以後(이후)의 노래에서 日本(일본)에대한 抗拒(항거)가 전혀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1935년 말에 發表(발표)된 上記歌謠(상기가요) 는 日本(일본)에 대한 消極的(소극적)인 抗拒(항거)의 貌襲(모습)을 엿볼수있습니다
이무렵 okeh-record 發行(오케이 레코드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Okeh 1795-a 當選地方(당선지방) 新民謠(신민요) 木浦(목포)의눈물 一石詩(일석 시) 孫牧人曲(손목인 곡) 獨唱(독창) 李蘭影(이난영) 伴奏(반주) ok family music-오케이 패밀리 뮤직-
Okeh 1795-b 流行歌(유행가) 봄아가씨 南風月詩(남풍월 시) 文湖月曲(문호월 곡)----------------------------------------------------------------------------------------------------------라고
宣傳(선전) 이곡도 亦是(역시) 縣賞募集(현상모집) 當選歌謠(당선가요)임을 알게합니다
同會社 發行(동회사 발행)또다른 歌詞紙(가사지)---------------------------------------------------에는
Okeh 1795-地方新民謠(지방신민요) 木浦(목포)의눈물 文一石詩(문일석 시) 孫牧人曲(손목인 곡) 弟一回(제1회) 鄕土讚歌(향토찬가) 當選作品(당선작품) 獨唱(독창) 李蘭影(이난영)---
Okeh 1795-b 流行歌(유행가) 봄아가씨 南風月 詞 (남풍월 사) 文湖月 曲(곡) (문호월 곡월) 獨唱(독창) 이난영---------------------------------------------------------------------라고
宣傳(선전) “鄕土讚歌(향토찬가)” 모집을했고 當選作(당선작)으로 문일석의 작품이 當選(당선)되었음을 알게합니다
그리고 1년여 歲月(세월)이 흘러 1936년 7월 이가요가 “人氣上昇中(인기상승 중)”임을 알수있는 廣告(광고)가 발표됩니다
1936년 7월 okeh-record 發行(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 에는
八月新譜(8월신보)
人氣特久 盤(인기특구 반)
1795 流行歌(유행가) 木浦(목포)의눈물 李蘭影(이난영)---------------------------------라고 廣告(광고)하고 있으며 新民謠(신민요)에서 流行歌(유행가)로 呼稱(호칭)이 바뀌어있습니다
上記 說明(상기설명) “木浦(목포)의눈물”은 위 歌詞紙(가사지)에서 보듯이 “地方新民謠(지방신민요)”라고 表記(표기)되있으나 실제로 4,7음이 빠진 단은계를 사용하고있는 哀調(애조)
의 trot-트로트-에 가깝습니다
이가요는 ok-record 社(사) 가 朝鮮日報(조선일보)後援(후원)으로 全國(전국) 六大都市(육대도시)의 鄕土讚歌(향토찬가)를 모집하였을 때 當選(당선)된 作品(작품)입니다
3000여편의 응모작가운데 당선된시에 이어 노래도 모집을 했으나 마땅한곡이 없어서 노심초사 하던 손목인이 고복수에게 연습을 시키고있던<갈매기 港口(항구)>라는 곡에
당선가사를 얹어보니 마치 <갈매기항구>를 위해서 미리가사를 쓴듯 맞아떨어져 이난영에게 취입을 시켰다합니다
Columbia-record 서 가요콩클에 비록 3위에 入選(입선)했으나 철저하게 찬밥신세이던 고복수가 ok-eh-record 로 移籍(이적)했으나 여기서도 練習(연습)중이던 곡을 讓步(양보)해야
하는는 困辱(곤욕)을 치렀습니다
1083-木浦(목포)의눈물-b
이가요는 發賣(발매)되자말자 그時期(시기)로서는 天文學的數字(천문학적 수자)인 五萬枚(5만매)의 販賣高(판매고)를 올릴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는 이하윤도 <四海公論(사해공론)> 1938년3월호에 실린 “朝鮮流行歌(조선유행)가의 變天(변천) ”에서 流行歌界(유행가계)를 風味(풍미)하였다고 言及(언급)하고 있습니다
<木浦(목포)의눈물>은 목포의 촌구석의 無明少女(무명소녀) 이난영의 出世曲-출세곡-을 넘어서 그녀를 朝鮮(조선)의 “歌謠女王(가요여왕)”으로 登極(등극)시키고 木浦(목포)라는
閑寂(한적)하기만 했던 고장을 一躍(일약) 全國的-전국적-으로 追憶(추억)과 浪漫(낭만)의 都市(도시)로 浮刻(부각)시킵니다
이노래는 當時(당시) 空前(공전) 의힛트를 紀錄(기록)했을뿐만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있는 노래입니다
이곡은 全體的(전체적)으로 한여인이 임을 긔리워하고 임에대한 節介(절개)를 盟誓(맹세)하는 內容(내용)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1절에서는 임을잃고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는 女人(여인)의 貌襲(모습)을 그리고있습니다
임과 離別(이별)한 女人(여인)이 埠頭(부두)에 홀로남아서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머리에 떠올려 볼수있습니다
2절에서는 임은 떠났으나 露積峯(노적봉)밑에는 여전히 임의자취가 宛然(완연)하여 그에따라 더해만가는 여인의 애달픈 情操(정조)를 읊고있습니다
그런데 1절에서 分離(분리)되어있던 實際化者(실제화자)와 詩的化者-시적화자-는 3절에서 同一人物(동일인물)로 겹쳐집니다
마지막 3절은 1절과달리 시적화자가 자신의 心情(심정)을 吐露(토로)하는 것으로내용이 展開(전개)되고 있습니다시적화자는 임에게 자신의마음을 보내지못한 것을 後悔(후회)하면서 임에대한
節介(절개)를 盟誓(맹세)하는것으로 끝맺고있습니다
이노래는 그表現技法(표현기법)면에서 매우 뛰어나다고 할수있습니다
예를들면 音節(음절)을 일부러 늘려서 “색씨”를 “새악씨”로 한것이나 옷자락이 눈물에젖는 것을 아롱진 옷자락 이라고 表現(표현)한것에서 그러한 事實(사실)을 確認(확인)할수 있습니다
또한 “儒達山(유달산)바람도 榮山江(영산강)을 안으니”와 같은 表現亦是(표현역시) 文學的 修辭(문학적수사)가 뛰어난부분 이라할수 있습니다
“목포의눈물”은 “애달프다” “설움” “눈물”과 같은 感傷的(감상적)인 侍御(시어)를 사용해서 全體的(전체적)으로 슬픈情操(정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但只(단지) 슬퍼하는것에서 그치지는 않습니다
이는 3절에서 시적화자가 아무리 슬프고 가슴 아파도 임에대한 사랑만은 변치않겠다며 節介(절개)와 사랑을 盟誓(맹세)한것만 보더라도 알수있습니다
우리기 아곡에서 注目(주목)해야할 理由(이유)는 작품에 등장하는 “임”을 다르게 解釋(해석)할 餘地(여지)가 充分(충분)이 있기때문입니다
事實上(사실상) 임이 반드시 사랑하는사람만을 意味(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용운이 군말이라는 詩(시)에서 말했듯이”임만이 임이아니라 그리운 것은 다 임인것이다”
“목포의눈물”에서의 임도 但只(단지) 한여자가 한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만을 指稱(지칭)하는것일 必要(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가요에서의 임은 時代(시대)가 時代(시대)인만큼 “祖國(조국)”으로 읽힐 可能性(가능성)이 크다할수 있습니다
2절 歌詞(가사)에서 그러한 事實(사실)을 確認(확인)할수 있는데”삼백연 원안풍은 노적봉밑에”는 三百(삼백)年(년) 怨恨(원한)품은 노적봉밑에”라고 읽는 것이 文脈上(문맥상)
훨씬 自然(자연)스러은 것입니다
:”삼백연”을 연못이름으로 본다하더라도 “원안풍:”이무엇을 의미하는지 把握(파악)하기 힘들뿐아니라 삼백연과 원안풍이 文脈(문맥)상 自然(자연)스럽게 연결되지도 않기때문입니다
손목인이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삼백년 원안풍”은 但只(단지) 審議通過(심의통과)를위해 한문까지 倂記(병기)해서 表記(표기)한것에 불과합니다
當時(당시) 이난영이 錄音(녹음)한 音盤(음반)을 들어보아도 “三百年怨恨(3백년 원한)품은”으로 들립니다
결국 이곡은 祖國(조국)을 强奪(강탈)한 일본에대한 怨恨(원한)을 드러낸노래라 할수있습니다
특이 이노래는 1592년에 있었던 壬辰倭亂(임진왜란)과도 連結(연결)이 됩니다
목포는 그地域(지역)의 特殊性(특수성)으로 인해서 멀리바다에서 쳐들어오는 外敵(외적)을 境界(경계)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儒達山(유달산)에 露積峯(노적봉)이있는데 壬辰倭亂(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이 軍糧米(군량미)를 쌓아둔것처럼 假裝(가장)한 僞裝戰術(위장전술)로 왜적과 싸우지도않고 이겼다는
傳說(전설)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三百(삼백)年(년) 怨恨(원한)을 품었다는 것은 日本(일본)에 國權(국권)을빼앗긴 喪失感(상실감)과 日本(일본)에대한 怨恨(원한)을말하며 露積峯(노적봉)밑에는 여전히
李舜臣將軍(이순신장군)의 精氣(정기)내지는 더나아가 祖國(조국)의 精氣(정기)가 서려있다는 것을 意味(의미)합니다
마지막 3절에서 시적화자가 자신의마음을 임에게 보내지못한 것을 恨歎(한탄)하면서 임에대한 사랑과 節介(절개)를 約束(약속)하고 있습니다
具體的(구체적)으로 “港口(항구)의 맺은절개 목포의사랑”은 祖國(조국)에대한 시적화자의 사랑과 절개를 약속하는것으로 解釋(해석)할수 있습니다
<목포의눈물>은 高度(고도)의 象徵(상징)을 使用(사용) 祖國愛(조국애)를 노래한 作品(작품)이라 할수있습니다
1084—木浦(목포)의눈물-c
이歌搖(가요)는 4분의2박자 라단조 약간빠르기의 自由(자유)로운 型式(형식)의 노래로 演歌風연가풍-엔카풍-으로 作曲(작곡)된노래입니다
이런 理由(이유)로 哀傷的(애상적)인 이곡은 日本人(일본인)들에게도 적지않은 사랑을받았습니다
당시 朝鮮人(조선인)들에게있어 港口(항구)란 일제에의하여 생활의 양식을빼앗기고 또 土地(토지)를 빼앗긴 肉親(육친)이 他鄕(타향)으로 流浪(유랑)의길을떠난 民族的(민족적) 悲哀(비애)가
담긴 離別(이별)의 舞臺(무대)로 象徵(상징)되고 있었기에 이노래는 日帝(일제)에대한 恨(한) 이 集約(집약)된 抵抗(저항)의 노래로 看做(간주)됩니다
특히”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밑에”라는 노랫말은 풍신수길의 朝鮮侵掠(조선침략)으로 깊은 傷處(상처)를 입은 民衆(민중)들의 抵抗精神(저항정신)이 뚜렷이 나타나고있다
처음 곡이 발매되었을 때 일본총독부는 그저 “한여자의 임애대한 사랑타령”이라 無視(무시)했으나 이곡이 점차 爆發的(폭발적)인 人氣歌謠(인기가요)가되자
”이거 무언가있어 저렇게 朝鮮人(조선인)들이 “木浦(목포)의눈물”을 부르는데는 다 理由(이유)가 있는거야”입니다
鍾路警察署(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의 눈초리가 번뜩이기 시작합니다 모두핏발이 서있었습니다 直感的(직감적)으로 例事(예사)로운일이 아니였기에---그리고는 “미심쩎은 부분이있다”
이철사장을 警察署(경찰서)로 呼出(호출)했웁니다
일본경찰이 시비를 건부분은 2절가사중”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밑에”부분에서 <怨恨(원한)품은>이었습니다 日本(일본)警察(일본경찰)은 이가사가 自身(자신)들에대한 “怨恨(원한)이 아니냐?”
따져 물었읍니다
이에 山戰水戰(산전수전) 다겪은 이철사장은 “怨恨(원한)”은 歌詞紙(가사지) 印刷過程(인쇄과정)에서 錯誤(착오)가 일어나 “鴛鴦(원앙)”을 잘못表記(표기)한것이다 라고 둘러대었습니다
헌데 또다른 紀錄(기록)에는 呼出(호출)된 曲(곡)을 作詞(작사)한 문일석이_”그건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이고장의 傳說(전설)을 말하는것이다
三百年(300년)된 鴛鴦(원앙)새가 怨恨(원한)을품고 눈을감지못해 여못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傳說(전설)을 핑게삼아 둘러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곡을 創作(창작)한 손목인씨의 回告(회고)는 그때그때 조금씩 差異(차이)가 나고있습니다
“이철사장만 호출한것이아니라 노래관계자 전부였고 사장이하 관련자들은 “원한품은” 은 원한을 품은 것이 아니라 원안풍이라고 극구해명해서 간신히 무마되었다”고
하는 다른 回告(회고)도 보입니다
“荒城(황성)의 跡(적)” “他鄕(타향)”을 거친후 1935년 trot-트로트- 의 文化(문화)가 바로 밑바닥 階層(계층)의 精神(정신)을담은 것임을 보여주는 歌手(가수)가 등장합니다
木浦出身(목포출신)의 열여덟살 少女(소녀) 李蘭影(이난영)이 主人公(주인공)입니다
그녀는 暴力的(폭력적)이고 술주정뱅이였던 아버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열두살에 故鄕(고향)을떠나 濟州島(제주도)까지가서 食母(식모)살이를 했던 그야말로 밑바닥人生(인생)이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歌手(가수)로 拔擢(발탁)한 사람은 okeh-record 를 創設(창설)하고 吹入歌手(취입가수) 찾기에 東奔西走(동분서주)하던 이철이었습니다
이난영은 1934년 Columbia-record 서 콩클대회서 入選(입선)했으나 찬밥 身世(신세)를 면치못하던 고복수에게 Columbia-record 사에게 보란듯이 “他鄕(타향)”을 취입시켜 큰힛트를
紀錄(기록)한 作曲家(작곡가) 손목인의 “他鄕(타향)”에 이은 新曲(신곡)을 불러 吹入(취입)한 音盤(음반)에서 大成功(대성공)을거둡니다
손목인도 “他鄕(타향)”에 이은 또한곡의 big-hit 곡을 發表(발표)한셈 이되는데 그곡이 바로 <木浦(목포)의눈물>입니다
李蘭影(이난영)의 登場(등장)은 韓國大衆歌謠史(한국 대중가요사)에 本格的(본격적)인 trot 時代(트로트시대)에 막을올린 流行歌(유행가)의 새로운 時代(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가장
偉大(위대)한 Turning point-터닝포인트-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木浦(목포)의눈물” 로부터 비로소 우리에게 大衆音樂(대중음악)이라고 하는 流行歌(유행가)는 밑바닥 階層(계층)의 情緖(정서)를 代辯(대변)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英國(영국) 로열아카데마 出身(출신)의가수가 dress-드레스-를 갖춰입고 이노래를 부른다고 生角(생각)해보자 뭔가좀 負擔(부담)스럽지 않겠는가?
그사람의 노래는 그사람의 노래일뿐뿐 大衆(대중)이 感情移入(감정이입)을 해서 듣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떤가수가 나와서 슬픈노래를 부르는데 알고보니 밑바닥 階層(계층)에서 온갖苦生(고생)을 다하다가 어쩌다 가수가되어 노래를 부르고있다고 생각을하면 感情移入(감정이입)
을 하기가 쉬울수밖에 없습니다
노래를 부른사람에개 同僚意識(동료의식)을 느낄것이고 해서 親近感(친근감) 느끼고 無條件(무조건) 應援(응원)해주고싶은 마음이드는건 人之常情(인지상정) 일것입니다
1085—木浦(목포)의눈물-d
그以前(이전)까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大衆(대중)과는 전혀다른 이들이었는데 열여덟살먹은 이少女(소녀)는 自身(자신)들과 전혀다를바없는, 아니 普通(보통)사람들 보다 훨씬 더 지지리 苦生(고생)
하며 살아온 밑바닥 階層出身(계층출신)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音樂史(음악사)는 이렇듯 普通以下(보통이하) 밑바닥 階層出身(계층출신)의 한 少女(소녀)에 의하여 새로운 장으로 넘어갑니다
李蘭影(이난영)이 부른”木浦(목포)의 눈물”은 여러모로 정말 重要(중요)한 노래입니다
노래를 많이 들어보셨겠지요??
前奏部分(전주부분)이 어떠합니까?? 일본엔카 飜案曲(번안곡) “술은눈물일까 한숨일까” 와 “타향”과 比較(비교)해들어볼 必要(필요)가 있습니다
들어보셨음 알겠지만 이노래는 ‘술은눈물일까 한숨일까”와 같은는 2拍子(박자)로 回歸(회귀)했습니다
이점이 意味(의미)하는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935년에 나온 “木浦(목포)의눈물”은 우리나라 사람이 正統(정통)엔카의 方法(방법)으로 作曲(작곡)하여 成功(성공)한 最初(최초)의 노래인셈입니다
1932년에 2拍子(박자)의”술은 눈물이까 한숨일까”라는 日本最高(일본최고)의 힛트곡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大衆(대중)들이 3년만인 1935년에 이르러서는 우리손으로 創作(창작)한 같은
2박자의”木浦(목포)눈물”을 받아들이게 된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다시말해 이곡은 以前(이전)에 우리가 즐겨부르던 대개 3拍子(박자) 노래였습니다
3박자가 노래들을 支配(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拍子(박자)에도 變化(변화)가 始作(시작)된것입니다
3박자중심의 노래들이 完璧(완벽)하게 體制(체제)를 갖춘 trot-트로트- 엔카 2박자 체제에 勸力(권력)을 넘겨주게 된것입니다
그始作(시작)이 ‘木浦(목포)의눈물” 입니다
그以前(이전)까지 植民地朝鮮(식민지조선)에서는 함부로 名銜(명함)을 내밀지못했던 日本風(일본풍) 2박자노래가 乙巳勒約(을사늑약) 30주년이되는 1935년에 이르러 主導權(주도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것도 나라잃은 슬픔을 담은 그노래로 인해서 말입니다
허나 이는 音樂理論的(음악이론적)이야기고 一般(일반)民草(일반민초)들은 이노래가 心情的(심정적)으로 그시기 處(처)한 狀況(상황)에 맞아떨어져 愛唱(애창)한것이지 “술은눈물일까 한숨일까”의
2박자와 같은 노래인지 따져가면 좋아할 形便(형편)도 水準(수준)도 아니였습니다
3년만에 무슨일이 벌어진걸가? 이것은 音樂的(음악적)美學的(미학적) 受容(수용)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日本治下(일본치하) 朝鮮(조선)의 大衆(대중)들이 이노래를 받아들인건은 音樂的(음악적)인 理由(이유)가 아니라 政治的(정치적)인 理由(이유)였습니다
이노래의 歌詞(가사)는 1절과2절이 完全(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에서
1절은 埠頭(부두)가에 서있는 어느아낙의 이야기 입니다
話者(화자)는 男便(남편)이 바다에나가서 안돌아왔는지 아니면 男便(남편)이 怨望(원망)스러워 바다에뛰어들려고 하는지 알수없는 색시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1절에서는 分明(분명)히 색시한명 밖에없는데 2절은 갑자기 “三百年怨恨 (삼백년원한)”으로 시작합니다
30년이면 몰라도 300년은 한인간의 個人的(개인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즉 여기서부터는 個人(개인)의 空間(공간)이 歷史(역사)의 空間(공간)으로 바뀝니다
이렇게 꺼꾸로 300년을 거슬려 올라가면 무슨일이 나오는가 바로 1592년 壬辰倭亂(임진왜란)입니다
露積峯(노적봉)은 李舜臣(이순신)將軍(장군)이 쓴 戰術的(전술적) 가짜 지형물을 말합니다
따라서”삼백년 원한품은 노적봉밑에”라고 하는순간 이노래는 한 개인의 이별의 아픔이아닌 日本帝國主義(일본제국주의)에대한 抵抗歌(저항가)의 性格(성격)을 드러냅니다
그렇게보면 “님자취 宛然(완연)하다 애달픈 情操(정조)”에서 “님”은 당연히 돌아오지 않는 男便(남편)이아니라 亡國(망국), 잃어버린 祖國(조국)이 됩니다
個人(개인)의 哀調(애조)딘 離別歌(이별가)에서 갑자기 民族抵抗歌(민족저항가)로 突變(돌변)한것입니다
1086—木浦(목포)의눈물-f
“木浦(목포)의눈물”은 노래의틀은 日本(일본)의 엔카에서 가져왔는데 그런歌詞(가사)때문에 이音盤(음반)을 購買(구매)하고 즐겨듣는 大衆(대중)에게는 가슴을 끓게하는 民族抵抗歌(민족저항가)
가 되었습니다
이노래는 檢閱(검열)에걸려 發賣(발매)되지 못할뻔했으나 produce-프로듀스- 이철의 才致(재치)로 간신히 檢閱(검열)을 通過(통과)합니다
歌詞(가사)를보면 누가봐도 잃어버린 祖國(조국)을 다시 되찾고자하는 노래입니다’
朝鮮(조선)總督府(총독부) 立場(입장)에서는 절대로 檢閱(검열)을 通過(통과)시켜줄수없는 一種(일종)의 抵抗歌(저항가)였습니다
이노래가 發表(발표)되기 前(전) 總督府(총독부)는 “公演(공연)과 興行(흥행)에관한 取締令(취체령)”를 宣布(선포)했습니다
“取締令(취체령)”이란 只今式(지금식)으로 說明(설명)하면 檢閱令(검열령) 團束令(단속령) 입니다
즉 모든 公演(공연) 노래 映畵(영화)는 發表(발표)하기전에 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의 檢閱(검열)을 받아야했습니다
以後(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실시되었던 사전심의제는 朝鮮(조선)總督府(총독부)의 이 取締令(령취체)을 그대로 베껴서만든 法案(법안)입니다
“皇室(황실)의 安寧(안녕)과 秩序(질서)를 저해하는-----“에서 皇室(황실)이 國家(국가)로 바뀐것말고는 토씨까지 거의 비슷합니다
공연과 흥행에관한 취체령이 發效(발효)된지 2년뒤였기 때문에 이노래는 檢閱(검열)을 通過(통과)하는게 不可能(불가능)한 歌詞(가사)였습니다
앞서 말한 이철의 lobby-로비-또는 機智(기지)라고 할만한 活躍狀 (활약상)이 바로 이至點-지점-에서 눈부시게 펼쳐집니다
우선 가사중에서 딱봐도 문제가될 가능성이 큰 ”三百年(삼백년) 怨恨(원한)품은” 을 三栢淵(삼백연) 원앙풍은”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덕분에 300년이 품은 무시무시한 怨恨(원한)이 사이좋은 鴛鴦(원앙)과 같은 산들바람”이라는 달콤한 분위로 싹달라졌습니다
이철은 여기서 멈추지않았습니다
그렇게 檢閱(검열)을 통과한후 노래가 가진 民族抵抗 歌(민족저항가) 로서의 性格(성격)에 焦點(초점)을두고 大大的-대대적-인 marketing-마케팅-을 펼쳤습니다
한마디로 危機(위기)를 期會(기회)로 逆轉(역전)시키는 機智(기지)를 發揮(발휘)한것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noise marketing-노이즈마케팅-을 펼친 것입니다
좀더 率直(솔직)히 말하면 헛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木浦(목포)의눈물> 이라는 노래가가 나왔는데 總督府(총독부)의 檢閱(검열)에 걸려 發賣(발매)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런 所聞(소문)이 長安(장안)에 쫙 깔렸습니다
이소문은 瞬息間(순식간)에 擴散(확산)되었고 소문이 어느정도 무르익은 時点(시점)에 음반이 나왔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금 못사면 영영 못살수도 있다”는 危機感(위기감)은 절로 지갑을 열게하는 强力(강력)한 힘입니다
結論(결론)은 보나마나 입니다 이노래는 傳說(전설)이 됩니다
그시기로는 天文學的(천문학적) 數字(수자)인 五萬枚(5만매)를 突破(돌파)함으로써 最初(최초)의 big-hit-빅힛트-곡이 되었다는 글이보입니다
해서 植民地朝鮮(식민지 조선)의 全域(전역)이 이노래로 뒤덮혔다는 다소 誇張(과장)된 表現(표현)도 보입니다
헌데 “死(사)의 讚美(찬미)”가 最初(최초) 빅힛트곡 이라는 主張(주장)은 어디가고 이노래를 最初(최초)云云(운운) 하는걸까요??
우리는 이지점에서 목포의눈물에 에담긴 複雜(복잡)한 意味(의미)를 살펴보아야 이노래를 깊이 알수있습니다
이노래의 音樂的構造(음악적 구조)ms 일본 엔카에서 가져온것으로 식민조선 음악은<목포의눈물>로인해 宗主國(종주국) 일본의 音樂文法(음악문법)인 엔카로 移行(이행)되었읍니다
그런 일본의 음악문법인 엔카로 식민조선의 음악의 문법을 이행시킨 바로 그노래가 일본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고있는 셈이된것입니다
해서 이노래안에 매우 逆說的(역설적)인 irony-이이러니-가 同居(동거)하는 그런순간이 되었습니다
헌데 이러한 irony-아이러니- 同居(동거)는 <木浦(목포)의눈물>以前(이전) 우리 獨立軍(독립군)들의 노래에서 歌詞(가사)는 獨立歌(독립가)이나 melody-멜로디는 日本曲調(일본곡조)인 경우가
종종 發見(발견)되고있습니다-
1087—希望(희망)의 종이운다-채규엽
푸른물결 바다넘어 붉은햇발 솟는다 자던문을 열치고 나오라 이 江山(강산)의
아침을 맞자 아침을 자~ 일어나자 光明(광명)을 맞으려 光明(광명)을 맞으려
希望(희망)의 종이운다 希望(희망)의 종이운다 三千里(삼천리)동무 일어를 나자
山(산)과들에 춤과 노래 기쁨차서 넘친다 두팔걷고 힘있게 나오라 이 江山(강산)
즐거움 찾자 즐거움 자~나아가자 를 일터를 향하여 일터를 향하여 希望(희망)
의 종이운다 希望(희망)의 종이운다 三千里(삼천리)동무 나아를 가자
붉은놀에 草木禽獸(초목금수) 黃昏(황혼)속에 잠든다 걷어들고 집으로 가거라
이 江山(강산)의 搖籃(요람)을 찾아 搖籃(요람)을 자~돌아가자 우리집 찾아서 우리집
찾아서 希望(희망)의 종이운다 希望(희망)의 종이운다 三千里(삼천리)동무 平和(평화)
이 쉬자
1936년, 1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유도순사 전기현곡 채규엽 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이하윤작사 원야0이 작곡 채규엽노래<故鄕(고향)에 님을두고>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이무렵 Columbia-record 發行(콜롬비아 레코드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654-a 流行歌(유행가) 希望(희망)의 종이운다 劉道順 作詩(유도순 작시) 全基玹 作曲(전기현 작곡) 蔡奎燁(채규엽) 伴奏(반주) 日本(일본) 콜롬비아 管絃樂團(관현악단)
C40654-b 流行歌(유행가) 故鄕(고향)에 님을두고 李河潤 作詞(이하윤 작사) 原野(원야) 0二(이) 作曲(작곡) 蔡奎燁(채규엽)----------------------------------------------
라고 表記(표기)되 있습니다
이歌謠(가요)는 豫想外(예상외)로 多樣(다양)한 宣傳文久(선전문구)로 廣告(광고)를 하고있어서 興味(흥미)롭습니다
1935년, 12월18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콜롬비아 레코드 광고)-----------------------------------------------에는
新春(신춘)의 豪華陣(호화진)
希望(희망)의 종이운다 蔡奎燁(채규엽) 40654-------------------------------------라고 선전 하고 있습니다
1935년, 12월29일 1936년 1월17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콜롬빙 레코드광고)----------------------------------------에는
傑作盤(걸작반) 0出(출) !!
故鄕(고향)에 님을두고 蔡奎燁(채규엽)
正月新譜(정월신보)는 全部傑作(전부걸작) 꼭한번 들어보시오------------------------------라 광고하고 있습니다
1936년, 1월19일 東亞日報(동아일보) 廣告(광고)---------------------------------------------------------------------------------------------에는
columbia portable-콜롬비아 포터블- 本器(본기)를 試聽(시청)하실時(시)난 最近四大(최근4대) 힛트盤(반)
“希望(희망)의 종이운다”를 들어 주십시오--------------------------------------------------------라고 勸誘(권유)하고 있습니다
1936년, Columbia-record 發行(콜롬비아 레코드발행) 每月新譜(매월신보)----------------------------------------------------------------에는
六月新譜(6월신보) 0發賣(발매)
全屬作曲家(전속 작곡가)의 0發賣 傑作盤(0발매 걸작반)!
全基玹氏 傑作 record-전기현씨 걸작레코드- 40654 希望(희망)의 종이운다 蔡奎燁(채규엽)------------------------------------------라고 전기현, 채규엽씨를 呼出(호출)하고 있습니다
1088-希望(희망)의 종이운다-b
아침부터 黃昏(황혼)이 질무렵까지의 時間(시간)의흐름에 따라 內容(내용)이 展開(전개)되고있는 裏作品(작품)은 始終一貫(시종일관) 밝고 希望的(희망적)인 내용으로 一貫(일관)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詩的話者(시적화자)는 푸른물결 바다넘어 붉은햇발이 솟으니 자던문을 열고나와서 光明(광명)을 받으라고 합니다
또한 시적화자는 三千里(삼천리) 동무들에게 希望(희망)의 종이우니 일어나라 말합니다
2절에서도 山(산)과들에 춤과노래와 기쁨이 차서 넘친다고 하고있습니다
3절에서도 시적화자는 이江山(강산)의 搖籃(요람)을 찾아가자고 말합니다
이어서 三千里江山(삼천리강산) 동무에게 우리집을 찾아가서 平和(평화)롭게 쉬자고 말합니다
全體的(전체적)으로 “希望(희망)의 종이운다”에는 밝고 希望的(희망적)인 詩語(시어)들이 登場(등장)하고 있습니다
붉은해발, 아침, 光明(광명, 希望(희망)의종, 기쁨, 즐거움, 搖籃(요람), 우리집, 平和(평화) 등이 그러한 例(예)에 該當(해당)합니다
日帝(일제)의 植民地(식민지)라는 時代的背景(시대적 배경)을 勘案(감안)할 때 이와 같은 希望的(희망적)인 內容(내용)의노래는 親日的(친일적)인 노래로 認識(인식)될 素地(소지)도 있으나
親日(친일)노래로 一蹴(일축)하기에는 未審(미심)쩍은 部分(부분)이 많습니다
特(특)히 마지막 3절에서 그러한 疑心(의심)이 增幅(증폭)됩니다
3절의 셋째줄에서”이 江山(강산) 搖籃(요람)을찾아 搖籃(요람)”을 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搖籃(요람)”은 어린時節(시절) 내지는 故鄕(고향), 또는 始作(시작)을 意味(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江山搖籃(강산요람)”이란 國權(국권)을 喪失(상실)하기 以前(이전)의 時節(시절)을 意味(의미)한다고 볼수있습니다
이는 3절의 넷째줄과 다섯째줄에도 마찬가지로 適用(적용)됩니다
화자는 “우리집을 찾아서 돌아가자” 고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집은 바로 祖國(조국)의 다른이름 이라고 할수있습니다
그런데 시적화자는 우리집을 혼자가지않고 請誘形(청유형)을 사용하여 三千里(삼천리)동무에게 함께 가자고 勸誘(권유)합니다
三千里(삼천리)동무는 우리民族(민족)을 意味(의미)하며 결국 이노래는 우리민족에게 희망을 안고서 함께 우리집-祖國(조국)에가서 平和(평화)롭게 쉬자고 勸誘(권유)하는 作品(작품)으로
읽을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가요가 重要(중요)한 것은 當代(당대) trot-트로트-가 눈물과 歎息(탄식)에만 咸沒(함몰)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노래처럼 希望的(희망적)인 내용을 담고있는 trot-트로트-는어려운 逆境(역경)에서도 희망을 잃지않았던 當時(당시)大衆(대중)의 忍苦(인고)와 智慧(지혜)를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意義(의의)
를 찾을수 있을것입니다
希望(희망)이 必要(필요)할때는 바로 삶의 狀況(상황)이 가장나쁠때입니다
確率(확률)이 有利(유리)할때만 希望(희망)을갖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어떤狀況(상황)이 樂觀的(낙관적)일 때는 希望(희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볼 때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는 그어느때보다도 希望(희망)이 必要(필요)하였던 時期(시기)였음을 알수있습니다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의 희망은 모든 現實的(현실적) 確率(확률)과 과 배치되는 희망이라는 점에서 實現可能性(실현가능성)이 稀薄(희박)한 희망내지는 거잣希望(희망)이라고도 할수있습니다
이처럼 希望(희망)은 그것이 아직 이루어지지않은 時點(시점)에서는 모두 거짓희망입니다
그런데 實現可能性(실현가능성)이 稀薄(희박)한데도 희망을 갖는 것은 希望(희망)이 狀況(상황)에대한 우리의 積極的(적극적)인 能力(능력)을 支撑(지탱)시켜주고 삶에대한 肯定的(긍정적)인
觀点(관점)을 維持(유지)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膽智(담지)하고 있는 일련의 trot-트로트-들은 “希望(희망)으로 삶을 버텨내기”라는 次元(차원)에서 얼마든지 肯定的(긍정적)인 의미를 가질수있읍니다
1089—두목숨의 저승길-a 채규엽
살면서도 살수없는 두사람의 목숨이니 어디가서 사오리까 괴로워서 못사오리
가오리다 두목숨은 저승길을 가오리다
두사람의 마음 約束(약속) 영영 아니 변하오리 살길잃고 갈데없는 두목숨의 運命(운명)
이니 저승길 아니가고 어디찾아 가오리까
죽어가서 잘살을지 누가안다 하오리만사는 것이 값없으니 죽어 없어지오리다 두목숨
저승길을 아니가고 뮛하리오
1936년, 4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유도순작사 김준영작곡 채규엽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이하윤작사 카튼작곡 김안라노래<동무의 追憶(추억)> 이 함께 실려있습니다
이무렵 Columbia-record 發行(콜롬비아 레코드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666-a 두목숨 저승길 劉道順作詩(유도순작시) 金駿泳作曲(김준영작곡) 蔡奎燁(채규엽) 伴奏(반주)콜롬비아 管絃樂團(관현악단)
C40666-b 동무의 追憶(추억). 女學生(여학생)들의 노래 李河潤作詩(이하윤작시) 카튼作曲(작곡) 金安羅(김안라) 合唱(합창)-------
--------------------------------------------------------------------라고 表記(표기)하고 있습니다
1936년, 4월22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콜롬비아 레코드광고)-----------------------------------------------------------에는
0發賣傑作 流行歌(0발매 걸작유행가)
40666 두목숨 저승길------------------------------------------------------------------------------------------------라고 宣傳(선전)하고 있습니다
1936년 Columbia-record 每月新譜(콜롬비아 레코드신보)---------------------------------------------------------------------------------------에는
六月新譜(6월신보)
專屬作曲家(전속 작곡가)의 0發賣傑作盤(0발매 걸작반) !
金駿泳氏(김준영씨) 傑作 record-걸작레코드-
두목숨의 저승길 蔡奎燁(채규엽)------------------------------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목숨 저승길”은 “哀愁(애수)의 小夜曲(소야곡)”과 달리 우리의 普遍的(보편적)이거나 傳統的(전통적)인 情緖(정서)가 아니라 當代(당대)의 特殊(특수)한 情緖(정서)를 反映(반영)하고있는
노래입니다
具體的(구체적)인 狀況(상황)은 아수없으나 이가요에서는 사랑을위해 죽음마저 불사르는 詩的話者(시적화자)의 決然(결연)한 意志(의지)가 表現(표현)되어 있습니다
歌詞(가사)를 통해서 알수있듯이 詩的話者(시적화자)의 사랑은 이루어질수없는 사랑입니다
그 때문에 사랑에 빠진 두사람은 살수없는 목숨이므로 저승길에 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절에 言及(언급)된 것처럼 두사람의 사랑은 영영 변하지않을 사랑이며 사랑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確信(확신)은 두사람이 現實(현실)을 살아갈수 없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시적화자는 차라리 저승길을 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을위하여 목숨을 바치는식의 愛情樣式(애정정양식)은 基本的(기본적)으로 西歐(서구)의 愛情悲劇(애정비극)에서 출연하였다고 합니다
西歐 愛情悲劇(서구 애정비극)의 代表的(대표적)인 作品(작품)該當(해당)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처럼 죽음으로 사랑을 지키는 것은 우리나라 愛情觀(애정관)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大體的(대체적)으로 사랑과 禮儀(예의)가 對峙狀態(대치상태)에 놓이면 禮儀(예의)가 사랑을 이기는 境遇(경우)가 많습니다
예를들어 社會的(사회적)으로 認定(인정)되지않는 사랑이라든가 아니면 父母(부모)님이 反對(반대)하는 사랑인 境遇(경우)에는 사랑보다 禮儀(예의)가 于先(우선)인 것 입니다
물론 이러한 意識(의식)은 바로 前時代(전시대) 朝鮮時代(조선시대)와 比較(비교)를 통해서 내린 結論(결론)입니다
1090—두목숨의 저승길-b
오히려 時期(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樂浪公主(낙랑공주)와 好童王子(호동왕자)”에서처럼 사랑을위해 孝(효)를 저버리는 예도 종종찾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儒敎的(유교적) 文化圈(문화권)에 編入(편입)한 以後(이후)에는 孝(효)나 禮儀(예의) 가 사랑보다 于先(우선)하는 境遇(경우)가훨씬 많았습니다
이는 같은 東洋(동양)권 문화에속하는 중국의 경우를보면 더욱 確實(확실)하게 드러나는 事實(사실)입니다
中國(중국)의 文學作品(문학작품)에도 사랑이 효와 衝突(충돌)할 때 사랑을 버리고 孝(효)를 推究(추구)하는 경우를 많이 볼수있습니다
강명화가 장병천과의 사랑을 이루지못해 1923년에 自殺(자살)합니다
중국에서는 個人(개인)이 社會的(사회적)으로 認定(인정)되지않는 사랑을할 境遇(경우) 大槪自身(대개자신)을 克復(극복)하여 禮(예)를 守護(수호)하고 예를통해 감정을 節制(절제) 한다고 합니다
이로써 사랑을버린 個人(개인)은 極甚(극심)한 苦痛(고통)과 슬픔을 經驗(경험)하지만 결국 이럴한 슬픈을 견딤으로써 內面的禮(내면적예)를 成娶(성취)하고 나아가 사회에서 神聖性(신성성)
이 維持(유지) 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목숨 의 저승길”에서는 사랑을 지키기위해 죽음을 택하는 人物型(인물형) 이 登場(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1930년대에 漫然(만연)하였던 “사랑至上主義(지상주의)” 風操(풍조)의 반영으로 볼수있습니다
사랑을 지키기위해 목숨마저 버리는식의 이른바 사랑 至上主義(지상주의) 妓生(기생) 강명화가 장병천과의 사랑을 이루지못해 自殺(자살)했던 사건에서 이미 그 端初(단초) 가 마련되었으며
尹心悳(윤심덕)의 死(사)의讚美(찬미)에서도 그일단을 찾을수 있습니다
강명화 自殺事件(자살사건)은 곡 音盤 界(음반계) 의 注目(주목)을 받아서 노래로 劇盤(극반)으로 발매됩니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玄海灘(현해탄) 同伴自殺(동반살)보다 康名花事件(강명화 사건)이 먼저 發生(발생)했는데 노래로 發表(발표)된건 더후에 일입니다
1937년, 11월6일, 朝鮮日報(조선일보) 1927년, 11월17일 每日申報(매일신보) 日東蓄音器 株式會社 廣告(일동축음기 주식회사 광고)--------------------에는
第八回(제8회) 發賣新譜(발매신보)
B-四十八 康明化歌(강명화가)
思鄕(사향)의꿈 禹榮植(우영식)-----------------------------------라 실려있으나 音源(음원) 未公開(미공개)로 情報未備狀態(정보미비상태)입니다
上記音盤(상기음반)을 發賣(발매)한 日東蓄音器株式會社(일동 축음기주식회사)는 一名(일명) ”제비 標(표) 朝鮮(조선)레코드”로 1925년부터 韓國(한국)에 進出(진출)한NITTO RECORD의
韓國音樂(한국음악)商標(상표)입니다
한마디로 그有名(유명)한 <死(사)의 讚美(찬미)>를 발매한 레코드사입니다
“日東(일동)”은 日蓄(일축)보다 늦게 韓國市場(한국시장)에 뛰어들었지만 李基世(이기세)라는 韓國人(한국인) 企劃者(기획자)를 中心(중심)으로 活潑(활발)히 錄音(녹음)하여
1928년까지 많은 名盤(명반)을 발매했습니다
일동은 電氣錄音(전기녹음)이 始作(시작)되는 1928년이후 韓國音盤發賣(한국음반발매)를 中斷(중단)합니다
약 3년간정도로 發賣期間(발매기간) 이 짧은데다 재질이 堅固(견고)하지못해 지금까지 전하는 음반이 매우 稀貴(희귀)합니다
傳統名盤(전통명반)이 많고 日蓄(일축)에서 錄音(녹음)하지않은 名人(명인)들의 녹음은 매우 貴重(귀중)한 資料(자료)입니다
모두 나팔통식 錄音(녹음)이며 200매가 發見(발견)되었습니다
1936년, 4월10일 朝鮮日報(조선일보) NEW KOREA-RECORD 廣告(뉴코리아 레코드 광고)--------------------------------------에는
悲劇(비극) 妓生(기생) 康名花(강명화) 上(상) 崔仙(최선) 朴孤松(박고송)
悲劇(비극)-------------------------------下(하)-----------------------------
躍進(약진) 發賣盤(발매반)----NEW KOREA 임5------------------------------------------------------------라고 宣傳(선전) 하고있습니다
NEW KOREA-RECORD 에서는 이화자 김정구씨가 歌手(가수)데뷔를 했습니다
특히 윤심덕과 김우진의 同伴自殺-동반자살-은 傳統(전통)과 社會的常識(사회적상식)에 커다란 衝擊(충격)을 가하였으며 그衝擊(충격)은 戀人(연인)을 죽은으로 내몬 傳統(전통)과 社會的(사회적)
常識(상식)을 돌아 보게하였읍니다
當時(당시)에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事件(사건)이 종종 新聞(신문)에 記事化(기사화)되곤 했읍니다
그중에서 代表的事件(대표적사건)은 아마도 김봉자와 노병운의 연이은 自殺(자살)일것입니다
1091—峯子(봉자)의노래-채규엽
사랑의 애달픔을 죽음에 두리 모든 것 잊고 잊고 내홀로 가리
살아서 당신아내 못될것이면 죽어서 당신아내 되어 지리다
당신의 그이름을 목메어 찾고 또한번 당신이름 부르고 가네
당신의 굳은마음 내 알지마는 괴로운 사랑속에 어이 살리요
내사랑 漢江(한강)물에 두고 가오니 千萬年(천만년) 漢江(한강)
물에 흘러 살리다
1934년, 1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유도순사 이면상곡 채규엽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김동진사 고하정남곡 채규엽의<떠도는 身世(신세)>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그무렵 COLUMBIA-RECORD 發行(콜롬비아 레코드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OLUMBIA-A 流行歌(유행가) 떠도는 身世(신세)<서커스의 노래> 金東進 作詩(김동진 작시) 古賀政男 作曲 (고하정남 작곡) 蔡奎燁(채규엽) 伴奏(반주) 일본 管絃樂團(관현악단)
COLUMBIA-B流行歌(유행가) 峯子(봉자)의노래 劉道順 作詩(작시) (유도순 작시) 李冕相 作曲(이면상 작곡) 蔡奎燁(채규엽)-----------------------------------------------------------
----------------------------------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1933년, 12월30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광고)----------------------------------------------------------에는
特別新譜(특별신보)
一月五日 發賣(1월5일 발매) 演奏者指名(연주자지명) 大懸賞(대현상)
레코드番號(번호)四0四八八-40488- 流行歌(유행가) 떠도는 身世(신세) 金東進(김동진) 作詩(작시) 古賀政南(고하정남) 作曲(작곡) 一枚(1매)
峯子(봉자)의 노래 劉道順(유도순) 作詩(작시) 李冕相(이면상) 作曲(작곡)
全鮮(전선)流行歌界(유행가계) 寵兒(총아)!!
大衆待望(대중대망)의 傑作盤(걸작반)!! 果然(과연) 演奏者(연주자)는 누구인가?? 切期日(절기일) 昭和(소화) 九年一月四日(9년1월4일)
答案(답안) 演奏者氏名(연주자 씨명)
正答(정답)者(자) 先着順(선착순) 二十名(20명)----------
答案放送(답안방송) 京城府(경성부) 長谷川町(장곡천정) 콜롬비아 蓄音器會社(축음기회사) 文藝部(문예부)-----------------------------라고 길게 廣告(광고) 曲弘報(곡홍보)를 위해 演奏者(연주자)
맞추기 行事(행사)를 한다고 廣告(광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34년 1월13일 東亞日報(동아일보) 京城(경성)放送局(방송국) 廣告(광고)----------------------------------------------에는
今夜(금야) JODK 콜롬비아 專屬藝術家(전속 예술가) 金仙草孃(김선초 양) 大放送(대방송)
新年劈頭(신년벽두)에 金孃(김양)이 一般 FAN-일반팬-들에게 드리는 饍物(선물)로
今夜(금야) 下午八時(하오8시)에 七大名曲(7대명곡)을 演奏(연주)
레코드番號(번호) 四0四八八(40488) 女給(여급)
峯子(봉자)의노래--------------------------------라고 宣傳(선전)하고 있는바 蔡奎燁(채규엽) 이 처음發表(발표)한곡을 왜 그가 부르지 않고 김선초씨가
부르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1092--峯子(봉자)의 노래-B
1933년, 9월29일자 每日申報(매일신보) 에는<戀人(연인) 峯子(봉자)의 뛰를따라 盧炳雲(노병운)도 漢江作魂(한강작혼)-天國(천국)에서 사랑을 맺으렴인가> 라는 記事(기사)가 크게실렸는데
이 事件(사건)의 要旨(요지) 아래와 같습니다
angel cafe-엔젤카페-의 女給(여급)으로 근무하던 金峯子(김봉자)와 醫學士(의학사) 이면서 有婦男(유부남)인 노병운이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들 두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수 없었고 이에 김봉자는 괴로워하다가 漢江(한강)에 몸을던져 自殺(자살)해버립니다
그러자 良心(양심)의 呵責(가책)을 느낀 노병운 또한 遺書(유서)를남기고 그를 따라서 漢江(한강)에서 같은길을 떠나버립니다
當時(당시) 신문에는 事件(사건)의 자세한 槪要(개요)는 물론이고 노병운의 本妻(본처)와 子息(자식)의 寫眞(사진)및 그들과의 interview-인터뷰- 內容(내용)까지 실려있습니다
이러한 言論(언론)의 태도 마치 이일은 남의일이고 當事者(당사자)들의 家族(가족)과 周圍(주위)사람들의 슬픔따위에는 關心(관심)없고 술마시는데 按酒(안주)삼듯한 態度(태도)요 이 期會(기회)에
新聞販賣部數(신문판매부수)나 올려보자는 態度(태도)로까지 보여서 뒷맛이 씁쓰레 함을 감출수없습니다
이 事件(사건)은 當時(당시)에 많은 反響(반향)을 불러일으켜서 “봉자의노래”와 “병운의노래”가 만들어진데다 “情死哀話(정사애화)”라는 갈래명을 달고<저승에 맺은사랑>이란 題目(제목)의
序詞樣式(서사양식)으로 再(재)誕生(탄생) 하기도했습니다
1934년, 2월8일 東亞日報(동아일보) Columbia-record 廣告(콜롬비아 레코드 광고)---------------------------------------------에는
三月新譜(3월신보)
四0四九八 情死哀話(정사애화) 저승에서 맺는사랑 上(상) 石金星(석금성) 一枚(1매)
下(하) 金聖雲(김성운) ----------------------------------------------라 廣告(광고) 하고있습니다
여기서 “峯子(봉자)의노래”이어서 발표된 <병운의노래>를 소개드립니다
永劫(영겁)에 흐르는 漢江(한강)의 푸른물 峯子(봉자)야 네뒤따라 내 여기왔노라
오! 임이여 그대여 나의 天使(천사)여 나홀로 남겨두고 어데로 갔나
水面(수면)에 날아드는 물새도 雙雙(쌍쌍) 아름다운 漢陽(한양)의 가을을 읊건만
哀(애)끓는 하소연 어디다 사뢰리 나의 天使(천사) 峯子(봉자) 야 어데로 갔노
그대를 위하여서 피까지 주었거던 피보다 더붉은 임뛰를 따르니 千萬年(천만년)
永遠(영원)히 그품에 안어주
1934년, 2월 Columbia-record 서 김동진사 고가마사오 작곡으로 蔡奎燁(채규엽) 이 불렀습니다
“봉자의노래”는 봉자의 말로 이루어져 있고”병운의노래”는 병운의 목소리로 내용이 展開(전개)됩니다
事件(사건)이 일어난건 1933년 9월인데 이 事件(사건)이 豫想外(예상외)로 世上(세상)에 反響(반향)을 불러일으키자 기회만 엿보고있던 音盤界(음반계)에서 발빠르게 움직입니다
1934년 1월”봉자의노래”가 發表(발표)되고 한달뒤 2월경”병운의 노래”또한 나왔으니 이들의 自殺事件(자살사건)이 꽤나 사람들입에 오르내렸음을 알수있습니다
그歌詞(가사)를보면 사랑을 이룰수없다면 죽을 수밖에 없음을 매우劇的(극적) 表現(표현)하고 있읍니다
특히 “병운의노래”에서 봉자와 병운의 사랑을 “피보다 더붉은 사랑”이라고 하여 죽음마저 불사른 사랑과 죽음을 통해 사랑의 成娶(성취)를 이루어낸 그들의 哀切(애절)한 사랑을
劇的(극적)으로 描寫(묘사)했읍니다
이처럼 이루어질수없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이 可能(가능)하였던 것은 그당시에 우리나라에 紹介(소개)된 自由戀愛(자유연애)와 사랑至上主義(지상주의) 때문이었습니다
1920년 대부터 우리나라에 紹介(소개)된 엘렌케이 의 著述(저술)은 우리나라의 自由戀愛(자유연애) 및 自由離婚(자유이혼)에의 風潮(풍조)에 큰影響(영향)을 끼쳤는데 이와 같은 풍조는 급기야
傳統的(전통적)인 愛情觀(관애정)에도 많은 變化(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192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戀愛風潮(연애풍조)는 1930년대들어서면 近代(근대)의 여러 徵候(징후)들과 만나서 더욱 漫然(만연)했습니다
이와 같은 背景(배경)에서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것이 解決(해결)될수 있다는 식의사랑 至上主義(지상주의)도 出現(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 至上主義(지상주의)가 실제로 社會的(사회적)으로 通用(통용)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때문에 사랑 至上主義(지상주의)가 傳統的(전통적)인 價値(가치)와 만나서 衝突(충돌)할 때 當事者(당사자)는 사랑을 버리든지 사랑을 지키기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兩者擇一(양자택일)
만을 할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背景(배경)에서”두목숨의 저승길” “봉자의노래” “병운의노래” 등도 登場(등장)할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trot-트로트-에 나타난 임에대한 喪失感(상실감)은 基本的(기본적)으로 “임의 不在(부재)”에서 생기는 情緖(정서) “라는 傳統的(전통적)인 情緖(정서)를 繼承(계승)있으나 한편으로는
당시에 새롭게 擡頭(대두)된 “사랑至上主義(지상주의)”의 影響(영향)으로 사랑을위해 목숨을 버리는식의 특수한정서를 반영한 노래도 共存(공존)했습니다
헌데 重要(중요)한 점은 보통적인 정서를 반영한<哀愁(애수)의 小夜曲(소야곡)>과 같은 노래는 오늘날 에도 여전히 불리는 반면에 당시의 특수한 정서를 표출한<두목숨의 저승기>과 같은
노래는 오늘날 사람들의 記憶(기억)속에서 잊혀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普遍的(보편적)인 情緖(정서)를지닌 노래의 生命力(생명력)이 特殊(특수)한 情緖(정서)를 반영한 노래의 生命力(생명력)보다 길다는 結論(결론)을 내릴수 있습니다
1093—他鄕(타향)-b 고복수
이곡의 “說明(설명) a” 는<종횡무진가요사 897>에 실려있습니다 해서 歌詞(가사)는 생략합니다
Trot-트로트-에 反映(반영)된 喪失意識(상실의식)은 크게 “임의 喪失(상실)” 과 “故鄕(고향)의 喪失(상실)”로 나누어집니다
上記歌謠(상기가요) <他鄕(타향)> 도 故鄕喪失(고향상실)의 代表的(대표적)인 歌謠(가요)입니다
이곡은 잘알다시피 오늘날에는”타향살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알려져 있을뿐만 아니라 當時(당시)에도 “타향살이”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他鄕(타향)”의 人氣(인기)가 높아지고 사람들이 “他鄕(타향)”보다 “他鄕(타향)살이” 라고 하는경우가 많아지자 okeh-record 서는 아예 題目(제목)을 “他鄕(타향)살이” 로 바꾸고 b면에
있던곡을 a면으로 옮겨서 다시 音盤(음반)을 찍었는데 그뒤로 他鄕(타향)이 더욱 잘팔렸다는 後日談(후일담)이 있습니다
이곡에서는 全體的(전체적)으로 故鄕(고향)의 喪失(상실)에서 비롯한 悲哀感(비애감)이 나타나는데 이는 當時(당시)의 時代相(시대상)을 反映(반영)한것이라 할수있습니다
일본은 1910년에서 1918년까지 韓國(한국)의 植民地的(식민지적) 土地所有(토지소유) 關係(관계)를 確立(확립)하기위해 大規模(대규모) 國土調査事業(국토조사사업)에 해당하는
土地調査事業(토지조사사업)을 施行(시행)했습니다
土地調査事業(토지조사사업)으로 우리나라 農民(농민)들은 急激(급격)히 沒落(몰락)했습니다
남의땅을 耕作(경작)하는 小作農(소작농)이 늘어갔고 그조차 어려워서 山(산)속으로 들어가 火田(화전)을 일구거나 남의집 머슴살이으로 들어갔으며 아예 都市(도시)로 나가 날품팔이로
延命(연명)하는 경우도 增加(증가)하였습니다
東洋拓殖株式會社(동양척식주식회사)의 移民事業(이민사업)도 結果的(결과적)으로 零細(영세) 小作農(소작농)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農地(농지)를잃고 農村(농촌)에서 遊離(유리) 당하거나
南,北滿洲(남,북만주)나 沿海州方面(연해주 방면)으로 移住(이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는 많은 사람들이 祖國(조국)을 喪失(상실)하고 억지로 故鄕(고향)을 떠나야했던 時期(시기)입니다
한곳에 定着(정착)해 農事(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던 우리民族(민족)에게 國土(국토)의 强奪(강탈)은 큰 衝擊(충격)이 아닐수없었고 그 때문에 他意(타의)에 의하여 流浪生活(유랑생활)을 해야했던
當代人(당대인)의 悲哀(비애)는 悽慘(처참)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時代的背景(시대적배경)속에서 고향을떠나 떠돌이 生活(생활)을 하였던 當代(당대)인의 슬픔은 “他鄕(타향)”에도 그대로 묻어납니다
<他鄕(타향>)의 作詞者(작사자) 김능인은 “他鄕(타향)”이 他鄕(타향)살이를 하고있는 자신의 心情(심정)을 그대로 옮겨놓은것이라고 述懷(술회)한바 있습니다
三千里(삼천리) 1935년, 11월호<거리의 꾀꼬리인 십대가수를 내보낸 작곡,작사 苦心記(고심기)>에 실린 그의 述懷(술회)----에는
포연히 나의 故鄕(고향) 黃海道(황해도) 김천을 떠나온지 이제벌써 11년!1
타향을걷던 작년가을이 꼭 漂泊生活(표박생활)을 11년째되는 가을이었습니다
푸른하늘 흐르는 구름에 애틋한 鄕愁(향수)를 띄우고 旅窓(여창) 기대어 있노라니 때마침 黃昏(황혼)인데 거리에는 조차 외로운듯 街路樹(가로수)에 落葉(낙엽)은 왜그리 凄凉(처량)한지
까닭없이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더이다
이렇게되어 타향살이 시는 純全(순전)히 나의 率直(솔직)한 告白(고백)이었습니다
이졔까지 백여편의 流行歌詞(유행가사)를 지어 왔읍니다만 대개 責任上(책임상) 짓노라고 한 것이 太半(태반)이어서 그야말로 文字遊戱(문자유희)라고 보는 것이 옳은중에 이 타향살이만은
詩的價値(시적가치)는 어떨지 몰라도 美文妙句(미문묘구)를 넣지않고 나의 良心(양심)대로 썼던것입니다------------------중략------------------
마침 이타향살이가 많이 팔린것만은 나와 같은 漂泊生活(표박생활)을 하는 젊은사람들이 의외도 많은 것을 생각할 때 그리좋은 鑑賞(감상)을 가질수없습니다
引用文(인용문)을 통해서 알수있듯이 “他鄕(타향)”은작사자 김능인이 自身(자신)의 率直(솔직)한 心情(심정)을 告白(고백)한 作品(작품)입니다
김능인 자신이 밝힌것처럼 이노래에는 美辭麗句(미사여구)등의 活用(활용)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代身(대신)에 故鄕(고향)을 떠나온 自身(자신)의 心思(심사)를 淡淡(담담)하게 表現(표현)하고 있을뿐입니다
“他鄕(타향)”의 詩的話者(시적화자)는고향을 떠나온지 10 餘年(여년) 에 늙고 浮萍草(부평초)같이 되어버린 자신의 身世(신세)가 기막히다면서 幼年時節(유년시절)을 回想(회상)하고 있습니다
故鄕(고향)에서 호드기를 꺾어불던 平和(평화)로운 幼年時節(유년시절)을 回告(회고)하는 詩的話者(시적화자)에게 있어서 幼年(유년)의 空間(공간)은 根本的(근본적)으로
和解(화해)의 空間(공간)으로 認識(인식)됩니다
和解(화해)의 世界(세계)는 인간이 外界(외계)와의 關係(관계)에있어서 어떤 矛盾(모순)이나 乖離(괴리) 또는 疑問(의문)을 느끼지않고 自我(자아)와 環境(환경)이 調和(조화)로운 安定(안정)을
維持(유지)하는 세계인데 幼年時節(유년시절)은 바로 그와 같은 和解(화해)의 世界(세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1094-他鄕(타향)c
事實上(사실상) 現實(현실)速(속)에서 어른이 어린이의마음,곧 童心(동심)의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心理的(심리적)으로 退行(퇴행)이지만 個人的(개인적) 삶에있어서는 自我(자아)를 支撑(지탱)
하는 하나의 훌륭한 方式(방식)이 될수있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現實的(현실적) 苦痛(고통)이나 없는 平和(평화)로운 樂園(낙원)에서 自由(자유)를 누리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려는 本能的欲望(본능적욕망)이라 할수있습니다
그 때문에 시적화자도 버들가지를 꺾어서 호드기를 불던 追憶(추억)을 回想(회상)합니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平和(평화)로운 幼年時節(유년시절)을”그때는 옛날” 이라고 規定(규정)함으로 써 幼年時節(유년시절)의 回想(회상)을 통해 世界(세계)와의 和解(화해)를 試圖(시도)하던
努力(노력)을 水泡(수포)로 돌려놓습니다
결국 시적화자는 “가도그만 와도그만 언제나 他鄕(타향)” 이라면서 諦念的(체념적)인 情緖(정서)를 드러내고 맙니다
이노래가 그토록 當代(당대)에 人氣(인기)를 얻을수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사람들의 共感(공감)을사서 여전히 불릴수있는 것은 그것이 故鄕(고향)을떠나 他鄕生活(타향생활)을 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디 단지 故鄕(고향)을 剝奪(박탈)당한 채 滿洲(만주)나 沿海州(연해주)로 떠나야했던 農民(농민)들 뿐이겠습니까??
故鄕(고향)을 떠나 他鄕(타향)에서 시집살이를 하는 女性(여성)이나 理由(이유)와 相關(상관)없이 고향을떠나 客地(객지)에서 생활하였던 모든이들에게 他鄕(타향)은 自身(자신)의노래로
들렸으며 그들의 他鄕(타향)살이를 慰勞(위로)해준 役割(역할)을 한것입니다
事實上(사실상) 國權(국권)을 빼앗긴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는 他鄕(타향)의 時代(시대)였다고 해도 過言(과언)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他鄕(타향)”은 當代(당대)에 많은 인기를 얻었고 以後(이후)에도 客地生活(객지생활)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慰勞(위로)해주면서 오랫동안 수많은사람들에게 愛唱(애창)
될수있었던 것입니다
1926년 10월 일동레코드서 윤심덕의<死(사) 의 讚美(찬미)>가 發賣(발매)되어 韓國(한국)最初(한국최초) 히트곡이되고
1932년 4월 <荒城(황성)의 跡(적)>이 이애리수 목소리로 victor-record 發表(발표) “朝鮮(조선)의 selenade-세레나데-“로 人氣(인기)를 크게얻은후 1934년 6월 okeh-record 서 고복수가
上記歌謠(상기가요)<他鄕(타향)>을 발표 朝鮮(조선)의 歌謠(가요) 黃金期(황금기)를 얼었습니다
이곡을 發表後(발표후) 滿洲一 帶 (만주일대)를 巡廻公演(순회공연)하고 있던 고복수일행이 하얼빈공연을 했을 때 였습니다
고복수가 舞臺(무대)에서 “他鄕(타향)살이”를 노래하자 聽衆(청중)도같이 흥얼거렸고 노래가 끝나자 앙코르로 다시 불렀고 이윽고 大合唱(대합창)이 되어버렸습니다
同胞(동포)가 가장많이 흘러들어와 살며 密集(밀집)해있던 龍井公演(용정공연)에서는 타향살이 노래에 聽衆(청중)이 흐느껴 울었고 마음씨착한 고복수도 흐느껴 劇場(극장)이 瞬息間(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고말았습니다
龍井公演(용정공연)에서는 또 30대夫人(부인)이 무대뒤로 찾아온일도 있었다합니다
고향 부산을 떠난지 10년이 된부인은 남편과 사별후 가난한 생활에지쳐 高福壽(고복수)에게 住所(주소)를 넘겨주고는 消息(소식)을 전해달고 한후 望鄕(망향)의恨(한) 을 가슴에 한을
간직한채 自殺(자살)하고 말았다 합니다
1934년, 5월25일 東亞日報(동아일보) okeh-record 廣告(오케이레코드 광고)--------------------------------------------에는
六月新譜(6월신보)
五月二十五日 發賣(5월25일 발매)
高福壽 君(고복수 군) 入社(입사) 第一回作品(제1회 작품)
流行歌(유행가) 梨園哀曲(이원애곡) 高福壽(고복수) 伴奏(반주) ok管絃樂團(오케이 관현악단)
他鄕(타향)--------------------------------------------------------------------------------이라고 고복수씨의 okeh-record 入社(입사)를 알리고 있습니다
1095—沙漠(사막)의 恨(한)-b 高福壽(고복수)
1935년, 3월 okeh-record 발매 sp음반-김능인사 손목인곡 고복수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금릉인 작사 손목인작곡 고복수의<幻影(환영)>이 함께 실려있습니다
앞서 <사막의한a> 에 가사는 소개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1934년, 6월 <他鄕(타향)>을 콤비로 創作(창작)한 김능인, 손목인, 고복수씨가 이곡의 big-hit 에 힘입어 또뭉쳤습니다
1935년, 3월23일 東亞日報(동아일보) okeh-record 廣告(오케이레코드 광고)---------------------------------------------에는
三月二十五 日(일) 發賣(3월 25일 발매)
1762 流行歌(유행가) 沙漠(사막)의 恨(한) 高福壽(고복수)
幻影(환영)---------------------------------------------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월 1일 東亞日報(동아일보) 廣告(광고)-------------------------------------------------------에는
流行歌(유행가) 沙漠(사막) 의 恨(한) 獨唱(독창) 高福壽(고복수)-----------------------------라고 표기하고 있어서 우리歌謠史(가요사) 草創期(초창기) 聲樂家(성악가), 大衆(대중)歌手(대중가수)
뚜렷한 區分(구분)이 存在(존재)않았음을 알수있게합니다
故鄕(고향)을 喪失(상실)한 當代人(당대인)은 基本的(기본적)으로 放浪意識(방랑의식)을 지닐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들은 종종 現實(현실)을 沙漠(사막)으로 認識(인식)하곤 하였습니다
“沙漠(사막)의 恨(한)” 은 이러한 認識(인식)의 結果(결과)로 나온 代表的(대표적)인 노래입니다
이歌謠(가요)에서 詩的話者(시적화자)가 발딛고있는곳은 沙漠(사막)입니다
여기서 “沙漠(사막)”이란 詩語(시어) 는 當代(당대)의 現實(현실)을 集約的(집약적)으로 表現(표현)한것이라 할수있습니다
사막은 灼熱(작열)하는 太陽(태양)이 하루종일 내리쬐고있는 끝없는 모래밭만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사막은 아득히 크고넓은 不毛(불모)의 모래펄판이며 어디가 어디인지 分揀(분간)할수 없으며 모래바람 아라도 불면은 地形(지형)이 바뀌어서 끝없이 헤매야하는 場所(장소)입니다
그만큼 沙漠(사막)은 荒唐(황당)하고 외로운 곳입니다
詩的話者(시적화자)에게 있어서 現實(현실)은 이러한 沙漠(사막)과 같으며 그는 沙漠(사막)의 길을가는 나그네인 것입니다
“沙漠(사막)義(의)恨(한)”은 1절의 黃昏(황혼)에서 3절 새벽에 이르기까지 時間(시간)의 흐름에 따라 끝없이 헤매이는 나그네의 貌襲(모습)을 쓸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어디에도 定着(정착)하지 못한채 方向(방향)을잃고 끝없이 헤매이는 나그네로서의 情緖(정서)는 2절과 3절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詩的話者(시적화자)가 이러한 沙漠(사막)에서 벗어날 길은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노래는 나라잃은 설움에 希望(희망)마저 放棄(방기)한 大衆(대중)의 모습을 “沙漠(사막)을걷는 나그네” 로 表現(표현)한것이라 할수있습니다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大衆歌謠(대중가요)中(중)에서 그題目(제목)에 ‘沙漠(사막)”이 들어가는 노래로는 豫想外(예상외)로 많습니다
이들중에 이복본이 부른<沙漠(사막)의 밤>만 jazz song-재즈송-으로 曲種 (곡종)이 表記(표기)되어있을뿐 나머지곡종 表記(표기)가 大部分(대부분) 流行歌(유행가)로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軍國歌謠(군국가요)로 보이는<사막의 환호><사막의 영웅>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제목에 사막이 들어가는 trot 는 상당히 높은비중을 차지한다고 할수있습니다
斷定(단정)할 수는 없으나 新民謠(신민요) 라는 曲種(곡종)을 달고있는 노래중에서 沙漠(사막)이란 詩語(시어)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볼 때 사막이라는 시어는 唯獨(유독) trot-트로트-에서만
活用(활용)되었던 素材(소재) 라고 할수있습니다 이처럼 트로트에 사막이란 시어가 자주등장 하였던 것은 한곡이 流行(유행)하면 그와 類似(유사)한 형태의 노래가 大擧登場(대거등장)
하는 大衆歌謠(대중가요)의 俗姓(속성)때문이기도 하지만 當代(당대)를 沙漠(사막)과 같은 不毛地(불모지)로 認識(인식) 하였던 時代認識(시대인식)의 反映(반영)으로 볼 餘地 (여지)도 충분합니다
事實上(사실상) 우리나라에는 沙漠(사막)이 없으므로 當時(당시)에 사막을 直接(직접)본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었을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히 들어서 알고있던 沙漠(사막)의 不毛性(불모성)과 荒凉(황량)함은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라는 時代的(시대적) 背景(배경)과 類似(유사)하게 느껴지는
側面(측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題目(제목)에 “沙漠(사막)”이라는 語彙(어휘)가가 包含(포함)된 노래가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末期(말기)까지 持續的(지속적)으로 登場(등장)한것으로 보여집니다
1096—地上(지상)의어머니-박향림
나는야 깊은반을 흘러가는 조각달 아하~엄마품이 그립습니다
하늘을 뚜껑삼고 흐른다만은 꿈에나 生時(생시)에나 그리워 그리워
어머니 품이
흐르는 他鄕(타향)하늘 등불조차 슬프다 아하~엄마품이 그립습니다
여호도 들고나는 굴이 있나니 밤이나 낮이나 그리워 그리워
어머니 품이
山(산)넘어 노을속에 반딧불이 부른다 아하~ 엄마품이 그립습니다
구름에 마음맡겨 오늘도 다시 낯설은 고개에서 그리워 그리워
어머니 품이
1938년, 6월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처녀림사 이용준곡 박향림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박영호사 김송규곡 유종섭노래<不死(불사)義(의) 薔薇(장미)>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그무렵 Columbia-record 發行(콜롬비아 레코드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815-a 不死(불사) 의 薔薇(장미) 朴英鎬作詩(박영호작시) 金松奎作曲(김송규작곡) 劉鐘燮(유종섭) 伴奏(반주) Columbia 管絃樂團(콜롬비아 관현악단)
C40815-b地上(지상)의 어머니 處女林作詩(처녀림작시) 李龍俊作曲(이용준작곡) 朴響林(박향림)-------------------------------------------
------------------------------------------------------------------------------------------------------------------라고 紹介(소개)하고 있습니다
故鄕(고향)의 喪失(상실)을 드러내고 있는 노래에서 喪失感(상실감)의 超克意志(초극의지)는 代替(대체)로 두가지 樣相(양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過去(과거)의 좋은時節(시절)을 追憶(추억)하거나 憧憬(동경)하는 것이고 다른하나는 未來(미래)에 어딘가에 있을 理想世界(이상세계)를 志向(지향) 하는 것입니다
過去(과거)의 좋은時節(시절)을 追憶(추억)하거나 그리워하는 것은 다시 3가지정도로 나눌수있는데 “幼年(유년)의 回告(회고)” “故鄕(고향)의 憧憬(동경)”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이 그것입니다
그런가하면 過去(과거) 의 좋은時節(시절)이 아닌 未來(미래)에 어딘가에 있을 理想世界(이상세계) 를 憧憬(동경)하는 作品(작품)도있는데 未來(미래)의 理想世界(이상세계)는 “江南(강남)”
내지는 “아름다운 나라” 또는 “꿈의나라” 로 象徵(상징)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중에서 上記歌謠(상기가요)는 어머니에대한 그리움으로 故鄕(고향)喪失感(상실감)을 克復(극복)하고있는 노래입니다
어머니가 “마음의 故鄕(고향)”이라는걸 生角(생각)하면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지닌意味(의미)를 쉽게 理解(이해)할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일이 있어도 現實(현실)의 苦痛(고통)을 참아낼수있는 것은 어머니가 있기때문입니다
現實(현실)이 刻薄(각박)하고 疲弊(피폐)할 때 찾아가서 慰勞(위로)와 慰安(위안)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이世上(세상)에 오직 어머니뿐인 것입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에대한 그리움을 통해 現實(현실)의 不調和(부조화)를 超克(초극)하려는 意志(의지)를 보여주는 일이 可能(가능)합니다
상기가요에서도 어머니에대한 詩的話者(시적화자)의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통해서 理想世界(이상세계)를 동경하고 現實(현실)의 不調和(부조화)를 超越(초월)하려는 것입니다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는 많은사람들이 故鄕(고향)을 剝奪(박탈)당했습니다
그 때문에 민초들은 故鄕喪失感(고향상실감)에 시달려야했고 그와 같은 喪失感(상실감)이 大衆歌謠(대중가요)에도 投影(투영)되었습니다
그시절가요에서 鄕愁(향수) 他鄕(타향) 故鄕(고향)이라는 詩語(시어)가 唯獨(유독)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와 같은 脈絡(맥락)에서 理解(이해)할수 있습니다
現實(현실)의 삶이 刻薄(각박)하고 至難(지난))할수록 樂園(낙원)으로서 고향은 當代人(당대인)에게 情緖的空間(정서적공간)이자 逃避處(도피처)로 作用(작용)할 수밖에없고 그 때문에 노랫말에도
종종 登場(등장)하였던 것입니다
Trot-트로트-에서 喪失感(상실감)의 超克意志(초극의지)로 나타나고 있는 여러양상은 喪失感(상실감)을 어떤방식으로든지 벗어나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意義(의의)를 지녔다 할수있습니다
1097—荒野(황야)의 孤客(고객)-강홍식, 노은홍
까마귀 날아가는 저녁하늘에 저녁놀 붉게흘러 凄凉(처량)도한데 거친들 나그네갈은 멀구나
종소리 隱隱(은은)하게 울려오는데 北斗星(북두성)눈물속에 아득도 하고 깃찾는 새를보니
身世(신세)가 설구나
풀베개 자는잠에 꿈이 외롭고 지나간 그옛날이 되풀이되어 외로운 나그네의 마음은 우네
어제는 저산넘고 來日(내일)은 어디 발길이 가는대로 헤매는구나 끝없는 거친들에 떠도는 길손
풀피리 서른곡에 하소담으니 거치른 들위에는 듣는이 없고 눈감고 나그네길 끝없이 가네
1935년, 11월 Columbia-record 발매 네음반- 유도순사 강구야시작곡 강홍식, 노은홍 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유도순 詞(사) 강구야시 曲(곡) 노은홍노래<情花 (정화)>가 함께 실려있습니다
그 時期(시기) Columbia-record 發行(콜롬바아 레코드 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644—a 荒野(황야)의 孤客(고객) 劉道順 作詩 (유도순 작시) 江口夜詩 作曲 (강구야시 작곡) 姜弘植(강홍식) 盧銀紅(노은홍) 伴奏(반주) Columbia 管絃樂團(콜롬비아 관현악단)
C40644-b 情花(정화) 유도순작시 강구야시 작곡 노은홍-----------------------------------------------------------------------------------------------------------------------------------------
----------------------------------------------------------------------------------------------라고 紹介(소개) 하고있습니다
“故鄕喪失(고향상실)”에서 비롯한 放浪意識(방랑의식)이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大衆歌謠(대중가요)에 이르러서 처음으로 登場(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高麗歌謠(고려가요)에서 放浪意識(방랑의식)의 한모습을 찾을수있는데 代表的(대표적)으로 靑山別曲(청산별곡)을 들수있습니다
“靑山別曲(청산별곡)”에대한 硏究(연구)는 作品(작품)의 語句解釋(어구해석)에서 조차 充分(충분)한 合意(합의)를 이루지못한 狀況(상황)입니다
그러나 이歌謠(가요) 의 詩的話者(시적화자)는 世俗(세속)의 세계에서 계속 삶을 누리고싶어하나 어떤 不可避(불가피)한 , 그러니까 自意(자의)가아닌 他意(타의)에 의해서 現實世界(현실세계)로부터
쫓겨나 靑山(청산)과 바다로 헤매이는 사람 이라는점에서는 대체로 同意(동의)를 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청산별곡” 詩的話者(시적화자)가 他意(타의)에의해 산과바다로 헤매이게된 데에는 몽골의 侵略(침략)과 같은 高麗後期(고려후기)의 混亂(혼란)한 時代相(시대상)이 가장큰 影響(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 一般的(일반적) 입니다
그런데 他意(타의)에 의해서 삶의 터전을 잃고 헤매는 內容(내용)은 上記(상기)曲(곡)<荒野(황야)의 孤客(고객)>에서도 擧擬(거의) 同一(동일)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荒野(황야)의 孤客(고객)>은 고향을 잃고 헤매는 나그네의 心事(심사)를 表現(표현)하고 있는데 <靑山別曲(청산별곡)>과 類似(유사)한 情緖(정서)를 表出(표출)하고있어서 注目(주목)됩니다
上記曲(상기곡) 에 登場(등장)하는 시적화자는 <靑山別曲(청산별곡)>의 話者(화자)와 類似(유사)한 側面(측면)이 있습니다
즉 두 作品(작품)의 시적화자는 모두 定處(정처)없이 떠도는 “放浪者(방랑자): 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靑山(청산)別曲(별곡)>의 시적화자는 어디로 가야할지몰라 彷徨(방황)하고있는데 이는 <荒野(황야)의 孤客(고객)>에서도 登場(등장)하는 詩的(시적)話者(화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황야의고객>에서 시적화자는 갈곳을몰라 헤매다가 어디선가 隱隱(은은)히 들려오는 종소리에 눈물마저 흘리는데 그눈물이 앞을가려서 저멀리 北斗星(북두성)이 아득하게 보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北斗七星(북두칠성)은 큰곰자리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국자모양의 일곱개의 별로 예로부터 時間(시간)의 測定(측정)이나 航海(항해) 의 指針(지침)으로 삼았던 별입니다
그러므로 北斗七星(북두칠성)이 아득하게 보인다는 것은 自身(자신)이 어다로 가야할지 그 方向(방향)을 알수없다는 意味(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두 作品(작품) 모두 諦念情緖(체념정서) 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靑山別曲(청산별곡)>의 경우” 어디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돌코 괴리도 없이 맞아서 우니노라”에서 滯念的(체념적)인 情緖(정서)가 完然(완연)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돌”은 어디선가 날아온 실제 돌잏수도 있으나 苦痛(고통)과 괴로움의 比喩的(비유적)인 表現(표현)으로 볼수있습니다
그런데 시적화자는 고통과 괴로움이 自身(자신)에게 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대한 아무런 抵抗(저항)내지는 抗拒(항거)도 하지않은채 미워할사람도 사랑할사람도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詩的話者(시적화자)의 滯念的 情緖(체념적정서)를 指摘(지적)할수 있습니다
만약에 청산별곡의 시적화자가 돌을맞고 울기만 하였다면 체념적정서라로 보기어려울것입니다
그러나 “미워할사람도 사랑할 사람도 없다”는 표현에서 愛憎的(애증적) 感情(감정)을 넘어선 諦念的(체념적)인 情緖(정서)를 알아챌수 있는것입니다
이와 같은 滯念的 情緖(체념적 정서)는 上記歌謠(상기가요) <荒野(황야)의 孤客(고객)>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납니다
이곡의 마지막절에서 詩的話者(시적화자)는 定處(정처)없이 헤매이다가 서러운 하소연을 풀피리에 담아서 붑니다그러나 거친들에는 듣는이가 없기에 시적화자는 그저 눈을감은채
끝없이 抵抗(저항)없는 길을 갈 뿐입니다
여기서 現實(현실)을 “거친들”로 認識(인식)하고 있으며 그 거친들위를 “눈을감고간다”고 함으로써 現實(현실)을 돌아보고싶지않은 自身(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적화자가 現實(현실)의 苦痛(고통)과 正面(정면)으로 對決(대결)하지않고 눈을감고 外面(외면)한채 그저 끝없이 나그네의 길을가는데에서 이른바 諦念的(체념적)인
情緖(정서)를 읽어 낼수있습니다
1098--銃後(총후) 의 祈願(기원)-박세환 정찬주
이기고 돌아오라 나라를위해 손잡고 돋아주는 男兒(남아)의 意氣(의기)
來日(내일)은 東洋平和(동양평화) 짐을졌으니 우렁찬 나팔소리 걸음을 맞춰
나가라 나아가라 사적을 물리치러 아~ 하늘높이 正義(정의)에 번득이는
저깃발 치라 나아가라 敵陣(적진)을 向(향)해
천사람 바늘꿰어 비는 精誠(정성)에 彈(탄)알을 헤쳐가며 突進(돌진)하는 양
銃後(총후)엔 男女老少(남녀노소) 擧國一致(거국일치)에 가슴에 젊은피가
끓어오른다 나가라 나아가라 사적을 물리치러 아~하늘높이 正義(정의)에
번득이는 저 깃발 치라 나아가라 敵陣(적진)을 向(향)하여
<合唱(합창)> 달리는 말등에서 長劍(장검) 두르며 저멀리 暴徒(폭도)들을 다시
膺懲(응징)코 날저문 異國(이국)하늘 꿈은 故鄕(고향)에 이기고 돌이오라
나라를 위해
1937년 12월 Columbia-record 발매 sp음반-이하윤사 손목인곡 박세환, 정찬주 노래로 실려있습니다
他面(타면) 김억사 전기현곡 정찬주노래<正義(정의)의 行進(행진)>이 함께 실려있습니다
그무렵 Columbia-record 發行(발행) 歌詞紙(가사지)-----------------------------------------------------에는
C40793-a時局歌(시국가) 銃後(총후)의 祈願(기원) 異河潤(이하윤)作詩(작시) 孫牧人(손목인) 作曲(작곡) 朴世煥(박세환) 鄭讚柱(정찬주) Columbia 合唱團(콜롬비아 합창단) 伴奏(반주) columbia
管絃樂團(콜롬비아 관현악단)
C40793-b時局歌(시국가) 正義(정의)의 行進(행진) 金億(김억) 作詩(작시) 全基玹(전기현) 作曲(작곡) 鄭讚柱(정찬주)------------------------------------------------------------------------------------
-----------------------------------------------------------------------------------------라고--- ‘時局歌(시국가)”라고 紹介(소개)하고있습니다 허나!! 親日歌謠(친일가요)일 뿐입니다
“銃後(총후)의 祈願(기원)”은 상기 歌詞紙(가사지)에서 등에서 보듯이 이하윤이 作詞(작사)를 하고 “他鄕(타향)” “木浦(목포)의눈물”을 創作(창작)한 손목인이 作曲(작곡)했습니다
韓國歌謠史(한국가요사)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손목인의 歌謠人生(가요인생) 최고의 就褥(취욕)이 될 作品(작품)입니다
그리고 “mister Columbia-미스터 콜롬비아-“라는 얼굴없는 歌手(가수)로 歌謠界(가요계)에 처음 登場(등장)했던 朴世煥(박세환)이 불렀습니다
노래 歌詞(가사)를 통해서 알수있듯이 이노래에서는 다른 大衆歌謠(대중가요)에서 전혀 찾아볼수없는 詩語(시어)들이 登場(등장)하고 있습니다
敵陣(적진), 銃後(총후), 暴徒(폭도), 膺懲(응징) 과 같이 餘他(여타) 대중가요에서 擧擬(거의) 使用(사용) 하지않는 語彙(어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노렛말에 主敵槪念(주적개념)이 明確(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1절의 “敵陣(적진)”이나 3절의 “暴徒(폭도)”라는 語彙(어휘)에서 確認(확인) 할수있습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이러한 敵(적)과 맞서 싸우는 自身(자신)들을 東洋平和(동양평화)의 짐을지고 暴徒(폭도)들을 膺懲(응징)하는 存在(존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東洋平和(동양평화)” 라는 表現(표현)은 “동아시아의 國際秩序(국제질서)를 平和(평화)롭게 維持(유지)하기 위해서 일본이 그 求心点(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안되는 日帝(일제)의
侵略正當化(침략정당화) 論理(논리)를 意味(의미)합니다
또한 “천사람 바늘꿰어”라는 句節(구절)은 이른바 “센닌바리-千人針(천인침)” 라는 日本(일본) 傳來風習(전래풍습)을 描寫(묘사)한 것 입니다
즉 천명이 한땀씩 바느질을 해서 만든옷을입고 戰爭(전쟁)터에가면 히 살아돌수있다는 俗說(속설)을 反映(반영)한것입니다
이처럼 일본의 전래풍습까지 云云(운운)하면서 始終一貫(시종일관) 煽動的(선동적)이고도 强(강)한 語調(어조)로 이루어진 親日歌謠(친일가요)는 當然(당연)히 當時(당시) 大衆(대중)에게 그다지
人氣(인기)를 얻지못한것으로 보입니다
비단 이곡뿐만 아니라 다른 軍國歌謠(군국가요) 亦是(역시) 音盤販賣率 (음반 판매율)이 좋을리 萬無(만무)합니다
1939년<朝光(조광)>지 3월호에실려있는 “戰時盤(전시반)의 販賣成績(판매성적)이 어떠한가”라는 잘문에 대해서 各音盤會社(각 음반회사)의 文藝部長-문예부장-이 모인 座談會(좌담회)내용입니다
방회택—戰時盤(전시반) 이라고 있기는 있으나 成績(성적)이 그리 좋지못합니다
왕편—事變(사변)을 前後(전후)하여 폴리돌에서는 朝鮮盤(조선반)으로 愛國歌(애국가)를 냈었는데 販賣成績(판매성적) 볼때 그리 良好(양호)하지 못하였습니다
경국 流行歌(유행가)는 어디까지든가 流行歌(유행가)이니까 거리에서도 부르기 쉬운 그러한 性質(성질)의것이 아니면 안될것이라 生角(생각)합니다
이훈구—銃後美談(총후미담)에서 다소 感傷的(감상적)인것 을 섞어서 내보면 어떻습니까??
왕평—안됩니다 時局歌(시국가)는 徹頭徹尾(철두철미)하게 時局歌(시국가)래야 하지 거기에 무슨 感傷的(감상적) 氣分(기분)을 섞으면 첫째로 檢閱通過(검열통과)가 안됩니다
1099—아리랑-口傳民謠(구전민요)-a
後斂(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버리고 가시는님은 十里(십리)도 못가서 발病(발병)
난다
靑天(청천)하늘에 별별도나 많고 요내 가슴엔 愁心(수심)
도 많다
豊年(풍년) 왔다네 豊年(풍년)이와요 三千里 江山(삼천리강산)
에 豊年(풍년)이 와요
놀다 가세요 놀다 가세요 이밤 새도록 놀다가요
上記歌謠(상기가요) “아리랑”은 朝鮮民謠(조선민요) 의 代表的(대표적)인 노래로서, 또는 民族(민족)을 代表(대표)하는 노래로서 世界的(세계적)으로 알려진 “아리랑”은 比較的(비교적) 새로운
民謠-민요-이며 近代謠(근대요)이라고도 합니다
地方(지방)에따라 歌詞(가사)나 旋律(선율)에 差異(차이)가있고 각기 音樂的(음악적), 思想的(사상적), 言語的(언어적) 特徵(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리랑 중에서 年代(년대)가 가장오래된 노래를 江原道(강원도) 것이라는 主張(주장)도 存在(존재)합니다
그밖에도 慶尙道(경상도), 全羅道(전라도) 등 全國(전국)에 各種(각종) 아리랑이 있음은 다잘아는 사실입니다
아리랑은”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를 基本(기본)으로 하고있으나 “아리랑고개”는 실제의것 이라기보다는 傳說(전설)속에 存在(존재)하는 것이라 보는설이 有力(유력)합니다
“아리랑” 가운데서 가장 有名(유명)한 것은 앞서 言及(언급) 했듯이 이른바<신아리랑>이지만 慶尙道(경상도)의 密陽(밀양)아리랑 全羅道(전라도)의 珍島(진도)아리랑 江原道(강원도)
旌善(정선)아리랑 과 江原道(강원도) 아리랑 등이 널리 알려져 있읍니다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꽃본듯이 날좀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정든님이 오시는데 人事(인사)도못해 행주치마 입에물고서 입만벙긋
다틀렸네 다틀렸네 다틀렸네 가마타고 시집가기 다틀렸네 <密陽(밀양) 아리랑>
陰曆(음력) 11,12월하면 한겨울이어서 草木(초목)은 모두시들어 꽃이 필리없습니다
그런季節(계절)에 꽃이 활짝핀것처럼 때때로 自己(자기)를 돌아봐달라고 하는”密陽(밀양)아리랑”의 歌詞(가사)는 天眞爛漫(천진난만) 고 할수있을정도로 여유를 느끼게해주며 輕快(경쾌)하고
Rhythmical-리드미칼-한 melody-멜로디-로 널리 愛唱(애창)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密陽(밀양)아리랑은
松林(송림)속에우는 새 凄凉(처량)도하다 아랑의 寃魂(원혼) 네 설워 우느냐
嶺南樓(영남루) 비친달빛 皎皎(교교)한데 南天江(남천강) 말없이 흘러간다
채색으로 단정된 아랑각은 아랑의 유혼이 깃들어있네-------------------------------------라는 또다른 歌詞(가사)로도 불립니다
이歌詞(가사)는 “아랑전설”을 主題(주제)로하여 붙여진 것이며 아랑전설이란 嶺南樓(영남루)를 무대로한 傳說(전설)입니다
옛날 密陽(밀양)고을의 사또 李某(이모)의 딸 아량이 있었고 그당시는 케캐묵은 身分制度(신분제도)가 엄격한 시절 한 通引(통인)이 그만 아량에 반해버렸습니다 여기서 悲劇(비극)은
誕生(탄생)합니다
양반의딸로자란 아랑이 身分差異(신분차이)가 나는 그의사랑을 받아줄리 萬無(만무) 이에 통인은 그녀를 죽이기까지 해버립니다
이를모르는 부친은 사방으로 그녀를 찾았으나 결국실패 다른지방으로 점임되 갑니다
이후 이고을에 부임하는 사또는 부임한날 알수없는 이유로죽어버리고 이에 조정에서 골머리를 앓고있을 때 붓장사를 하고있던 이 上舍(상사)라는 배짱좋은 젊은이가 고을사또를
自願(자원) 해나섰습니다
그리고 이사또는 부임한날 아랑의 넋을만나 事緣(사연)을듣고 犯人(범인)을잡아 犯行一體(범행일체)를 自白(자백)받고 아랑의시체를 찾아서 제대로 장사지내주었습니다
이는 아랑의 情操(정조)만 이야기하지만 “그時期(시기)의 身分制度(신분제도)가 만들어낸 悲劇(비극)” 이라고 말하는이는 드뭅니다
지금의 密陽(밀양)의 女性(여성)들이 이 傳說(전설)을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그시기 密陽(밀양)의 女人(여인)들은 純潔(순결)을 지키려다 죽은 아랑을 稱頌(칭송)하여 아랑각을
세우고 아랑의 이름을따서 “아랑가”라는 노래를 불렀다 합니다
그 “아랑가”가 歲月(세월)이 흐르면서 언제인가부터 “아리랑” 이라고 불리게되었다고 합니다
1100-아리링-b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後斂(후렴)
문경새재는 웬 굽인가 굽이야 굽이야 눈물이 난다
아리랑 고개다 집을짓고 우리님 오기만 기다리네
놀다가세 놀다가세 저달이 지도록 놀다가세 <珍島(진도)아리랑>
아주까리 東伯(동백)아 열지마라 누구를 꾀자고 머리의 기름—後斂(후렴)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얼씨구 놀다가세
열라는콩밭은 왜 아니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감꽃 주우며 헤어진사랑 감이익을 때 오시만 사랑
만나보세 만나보세 만나보세 아주까리 亭子(정자)로 만나보세
아주까리 亭子(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 먼나보세--<江原道(강원도)아리랑>
“아리랑”의 起源(기원) 에는 아리랑 百說(백설)이라고 할만큼 여러 說(설) 이 있으며 앞서 소개한 “아랑애화”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밖에도 멀게는 新羅始祖(신라시조) 박혁거세 왕비 알영과 결부되는 說(설), 景福宮(경복궁) 勞役場(노역장)에서 떠날수없게된 슬픔을 노래했다고 하는 我難離(아난리)說(설) 景福宮(경복궁)
再建(재건)에 動員(동원)된 農民(농민)들이 故鄕(고향)에 남겨둔 아내가 그리워 노래했다는 아리랑설, 西北地方(서북지방)에 있는 자비령고개설 등 여러가지 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거의가 힘든勞役(노역)의 괴로움이나 父母妻子(부모처자)와의 離別(이별)의 슬픔을 과 結付(결부)되있습니다
“아리랑” 가운데 가장 一般的(일반적)으로 普及(보급)되어있는 신아리랑의”나를버리고 가시는님은 十里(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 歌詞(가사)에는 下記(하기)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高宗(고종)義(의)아버지 興宣大院君(흥선대원군)은 어려운 財政狀況(재정상황) 에도 朝廷(조정)의 權威(권위)를 回復(회복)하기위하여 壬辰倭亂(임진왜란)때 불타버린 朝鮮王祖(조선왕조)의 正宮(정궁)
인 景福宮(경복궁)을 再建(재건)하는 工事(공사)를 시작합니다
경복궁는 1865년부터 8년에걸친 大工事(대공사)끝에 1872년 重建(중건)되었습니다
엄청나게 큰공사였던 까닭에 전국에서 木手(목수) 같은 技術者(기술자)뿐만아니라 農民(농민)도 일꾼으로 徵發(징발)되었습니다
이 苦役(고역)에 징발된 남편을 餞送(전송)하는 아내가”나를 버리고 가시는님은 十里(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고 안타까운 心情(심정)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임” 이란 나를버린 無情(무정)한 男子(남자)” 라는 恨(한)을 나타낸 것인데 이는 오히려 封建(봉건) 支配者(지배자)에 의해 徵發(징발)된 남편이나 戀人(연인)을 念慮(염려)했거나
또는 一家(일가)의 기둥을잃고 茫然自失(망연자실)했던 여인의 恨歎(한탄)이라고하는 편이 맞는 말입니다
附逆者(부역자)로서의 苦痛(고통)보다도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별이 더 恨(한)매혔을 것이며 남편을 떠나보내는 아내도 슬픔에잠겨 나랏일위해서 附逆(부역)의길을 가는 것 자체도 不公平(불공평)하고
말도안되는 景福宮重建(경복궁중건)도 대원군의 暴政(폭정)에 불과하고 집안일을 버리고 떠나는 임도 밉고 대원군은 더미웠을 것입니다
경복궁에 얽힌 또하나의 傳說(전설)에의하면 전국에서 징발된 농민들이 서로 노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각기 고향노래를 불렀는데 대원군도 민요를 좋아해 노래히는 것을 장려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병주고 약주고 하는 형태가 가관입니다
이리하여 아리랑은 “양산도” 등많은 민요와함께 전국에서 불리게 되었다 이야기 입니다
景福宮(경복궁)重建(중건) 시에 하나의 노래가 불리게되는데 <景福宮(경복궁)打令(타령)>이 바로 그곡입니다
이곡역시 重建事業(중건사업)에대한 農民(농민)들의 不滿(불만)을 諷刺(풍자)한 민요입니다
민요 아리랑속 “아리랑고개”는 傳說(전설)속에 存在(존재)하는 고개라 말하지만 實際(실제) 로는 몇몇곳이 아리랑고개라 알려져있습니다
다나카 히데미쓰의 小說(소설)<주정뱅이>에는 “아리랑이란 거리의 변두리나 國境(국경)등의 언덕을 말하며 지금도 서울과 용산사이에 아리랑고개 라불리는 조그만 언덕이 하나있으며—
-“라는 部分(부분)이 있습니다
또 서울 中心街(중심가)에서 돈암동 신흥사방면 으로 가다가 정릉으로 향하는 도중에있는 고개도 아리랑고개 라 불리고 있습니다
그곳은 옛날부터 아리랑고개라로 불려왔다고하고 나운규가<아리랑>을 撮影(촬영)한후 아리랑 소재가된 정릉길 을 定說(정설)로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님웨일즈의< the song of ariran>에는 아라랑의 由來(유래)가 다음과같이 적혀있기도 합니다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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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으면 왔다간 흔적남겨주시길
좋은 이야기 잘읽고 갑니다 대단합니다
좀더많은 호응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