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서북능선의 가을 (한계령~남교리)
솔길 남현태
* 위 치 : 강원도 양양군, 인제군
* 일 자 : 2022.10.02 (일)
* 날 씨 : 흐림, 비
* 동행자 : 러셀산악회 정기산행 동참(45명)
* 산행코스 : 한계령- 귀때기청봉(1578m)- 1408봉 - 대승령(1210m)- 십이선녀탕계곡- 남교리
* 산행거리 : 약 19.0 Km
* 산행시간 : 8시간 25분 소요 (06:37:20~15:02:22)
백두대간 종주에 이어 내친걸음에 9 정맥을 완주하면서, 활활 타오르던 산행 열정에 찬물을 끼얹듯 중국산 역병 우한 폐렴(코로나19)의 창궐로 2~3년간 산행길이 멈추었다가 이제 서서히 감염자가 줄어들고 방역체계가 완화되어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니, 다시 조심스럽게 산악회마다 단체 산행길이 열리게 된다.
과거에 따라다니던 산악회들의 산행 공지를 탐색하다가 포항의 명문인 러셀산악회에서 정기산행으로 설악산 서북능선을 간다고 올라와 있고, 함께 다니던 산님들이 여러 명 신청자 명단에 들어있다. 만만치 않아 보이는 설악산 산행코스에 너무 오랜 기간 산행을 하지 않아 떨어진 체력을 걱정하면서 산행 신청을 하고, 마음이 흔들릴까 바로 산행 비 송금한다.
오랜만에 배낭을 꾸리려니, 나이가 들어서인지 자꾸만 귀찮게 느껴져 차일피일 미루다가 토요일은 출근을 하여야 하기에 금요일 저녁에 이것저것 망설여 가면서 환절기 산행 채비를 꾸려본다. 2018년에 구입하여 그 해 12월에 대청호 둘레 길 한번 다녀오고 4년 동안 신발장 속에 가두어 두었던 등산화를 살펴보니, 겉모습은 새것인데 너무 오래 방치하여 행여 산행길에서 문제가 생길까 염려가 된다.
집 근처 포항 온천 앞에서 새벽 1시 30분에 탑승하기로 한 시간에 맞추어 일찌감치 약속 장소로 나가니, 이른 시간에 몇 분이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남구 포항 운동장에서 출발하여 포항 시내를 경유하면서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난 버스가 도착하여, 회원님들이 모두 탑승하고 가는 도중에 흥해에서 마지막 회원님들을 태우고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설악산을 향하여 밤길을 달린다.
잠결에 휴게소에 두 번 들러가며, 새벽녘에 오색 공원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산악회에서 준비해온 국밥으로 아침을 먹는데, 오랜만에 버스를 타서 그런지 차멀미에 울렁거리는 뱃속으로 그래도 산행을 위해 억지로 국밥을 밀어 넣는다. 갑자기 컨디션이 난조에 빠지니 은근히 산행이 걱정되어 A, B, C조 중에 그래도 조금 수훨한 C 조를 따라갈까 하는 나약한 생각이 든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고, 모두 모여서 단체 사진을 찍은 후 한계령 꼬부랑길을 따라 버스가 올라가는 동안 잠잠하던 속이 다시 울렁거리며 전신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6시 37분경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한계령에 도착하니, 새벽 3시부터 개방되어 산님들이 모두 올라간 듯 단풍산행 치고는 예상외로 한산한 분위기다. A코스 종주를 신청한 19명을 내려주고 버스는 장수대로 향한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우리 일행들만 온 것 같은 한산한 한계령 휴게소에 내려서 백두대간 오색령을 알리는 우람한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어보고 잠시 행장을 가다듬은 후 한계령을 출발하는 산행은 시작된다. 한계령길을 개척하다가 희생당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비 옆을 스치듯 지나고 오색 단풍이 무르익은 등산로에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시원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걸으니 가슴이 확 트인다.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오색 단풍 너머로 올망졸망 대간길 산봉우리들이 휴일 아침잠에서 깨어난 듯 옅은 안갯속에서 꿈틀거린다. 우측 대청봉과 좌측 귀때기청봉으로 갈라지는 한계령 삼거리에 올라 배낭을 풀고 가쁜 숨 가다듬으며, 물 한 모금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귀때기 청봉으로 향한다..
귀때기청봉 오르는 길에 돌아보니, 멀어져 가는 대청봉은 아마도 지금쯤은 찾아드는 산님들로 몸살을 앓을 듯하고, 곱게 물든 귀때기청봉 오르는 한산한 너덜겅 길은 발걸음 옮기기가 두렵다. 우측으로 용아장성 능과 그 너머 공룡능선 모습 바라보면서, 귀때기청봉 정상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거친 너덜겅 길을 오른다.
좌측으로 돌아보면 멀리 대간길에 걷던 부드러운 점봉산 모습이 날개를 펼치고, 너덜겅 사이로 익어가는 설악의 가을이 한가롭게만 느껴진다. 우측으로 살아 천년을 용아장성의 위용을 바라보던 주목은 죽어서도 오매불망 천년을 기약하고, 돌아보니 대청봉에서부터 달려오는 서북능선이 가을빛으로 곱게도 물들었다.
수렴동 계곡과 용아장성능에도 설악의 가을이 스며들어 아우러져간다. 지나온 한계령 건너 그리운 추억 점봉산의 아리한 풍경, 사방을 둘러보며 오르는 너덜겅 길이 점점 상그럽게 느껴진다. 좌측 자양천 골짜기 건너 가리봉과 주걱봉 모습 올망졸망 산줄기들 옅은 아침 안갯속을 유영한다.
무르익어가는 가을 풍경을 바라보면서 미련이 남는 곳마다 셔터를 눌러가며, 슬금슬금 오르는 걸음은 오늘의 최고봉인 귀때기청봉(1,578m)에 도착하여, 괭이갈매기님 덕분에 뜸달님과 함께 추억 사진 한 장 남겨본다. 귀때기청봉은 설악산의 봉우리 중에 내가 가장 높다고 으스대다가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 삼 형제에게 귀사대기를 맞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바람이 매섭게 분다고 하는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귀때기청봉에서 바라본 대승령 쪽으로 가야 할 능선길, 우측으로 수렴동 계곡 건너 아찔한 용아장성능 그 너머 설악의 비경이 펼쳐지는 공룡능선 바라보면서, 거친 너덜겅 길 따라 조심조심 귀때기 청봉을 내려선다. 오색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아름다운 서북능선을 바라보면서, 귀때기청봉을 내려선 낮은 목쟁이 쉼터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잠시 쉬어간다. 지나와서 돌아본 귀때기청봉도 온 산이 너덜겅이고 너덜겅 사이에 단풍이 들어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암봉과 단풍이 아름다운 귀때기청봉 자락 너머 다소곳한 점봉산 풍경을 바라보는데, 떨어지는 빗방울이 카메라 렌즈를 때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풍광 좋은 봉우리(1456봉)에 홀로섯는 이정표, 계곡 건너 가리봉과 주걱봉, 발아래 아름다운 암봉과 무르익은 단풍이 연출하는 설악의 진풍경에 때로는 감탄사를 흘리며 서북능선 암릉길을 오르내린다. 단풍이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산자락을 바라보면서 걷는 걸음은 돌아보면 귀때기청봉은 점점 멀어져 가고, 골짜기 건너 가리봉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다.
사방을 둘러보며 풍경사진을 찍은 후 앞서가는 일행을 따라가려고 잠시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허벅지 근육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한동안 안 하던 짓거리를 또 한다고 촛불을 들고 난리를 치니, 잠시 속도를 늦추고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 아스피린으로 달래 놓고 꿈틀거리는 허벅지 근육이 풀리기를 기다리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바위 봉우리 계단길 천천히 따라간다.
1408봉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겨본다. 4년 전에 새로 구입하여 딱 한번 신어보고 코로나 때문에 신장안에 모셔두었다가 오늘 처음 외출한 늙은 등산화가 걸어오는 동안 부걱부걱 개구리 우는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걸을 때 구겨지는 부분에 가죽과 고무의 접합부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 하루라도 잘 견디려나 싶다.
귀때기청봉과 걸어온 서북능선의 가을 풍경, 조곤거리며 따라오는 산님들의 탄성 소리 들린다. 바람 시원한 후미진 곳에서 다섯 명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부서질 듯 낡고 가파른 계간 길 게걸음으로 살금살금 내려와서 돌아보고 잠시 오르내리던 걸음은 대승령에 이어진다.
장수대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하는 대승령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혀보고, 잠시 내려갔다가 조금 지루하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출입금지 안내판이 걸려있는 안산 갈림길을 만나고, 앞쪽에 있는 안산(1436m)은 출입금지 구역이라 오늘 산행에서 제외되었다고 하여, 여기서 우측 남교리 쪽으로 향한다
안산 갈림길의 이정표 이제부터는 골짜기를 따라 룰루랄라 내리막 길이 이어지려나 보다. 앙상한 겨울이 시작되는 능선을 떠나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에 화사하게 물들어가는 단풍 터널 속으로 들어선다. 걸음을 멈추어가며 무르익은 설악 단풍에 셔터를 누르는데, 오늘 가지 못하여 더욱 신비롭게만 보이는 안산 모습이 단풍 사이로 쳐다보인다.
자연석을 깔아놓은 이어지는 돌계단길에서 고운 단풍에 취했는지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멍 때리고 있는 산님도 있다. 만추의 향기에 듬뿍 취하며 서두르는 발걸음은 십이선녀탕 계곡의 맑은 물줄기가 흐르는 곳으로 내려서고, 물가를 따라 고무 계단길이 이어진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 높이는 폭우시 계곡물의 수량을 실감케 하고, 자연 그대로 어우러진 골짜기 폭신한 고무가 깔린 나무다리를 건너는 곳 단풍은 역시 깨끗한 계곡 단풍이 밝고 아름답다.
해맑은 옥수가 가파를 청석 위를 구르는 곳 단풍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물굽이 치는 곳마다 아름다운 용탕을 만들어 시원한 눈길을 모은다. 아름다운 계곡 풍경에 매료되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냥 셔터를 누르면 내려서는 골짜기 이곳이 십이선녀탕인가 싶다.
물굽이마다 만들어진 신비한 용탕들 목욕하는 선녀들이 부끄러울까 잎새들이 가려준다. 개울을 따라 암벽 아래로 이어지는 길 높은 암벽에 붙어 어렵게 자라는 초목들이 마지막 안간힘으로 물들인 오색 단풍이 아름답다. 한 번씩 치고 나가며 바위에 구멍을 파는 물줄기들 십이선녀탕의 하이라이트라는 일곱 번째인 복숭아탕, 복숭아탕이 탕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고 한다. 폭포수가 암벽에 후벼 파 놓은 복숭아 모양이 참으로 신비롭기만 하다. 저기서 알탕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신비로운 복숭아탕의 여운을 뒤로하고, 자연 그대로 물들고 너풀거리는 단풍에 취하며, 개울 가를 따라 이어지는 나무데크 길에 서두르는 발걸음은 남교리로 향한다. 응봉 아래 위치한 '응봉폭포'를 지나 골짜기 어귀 남교리 까지는 아직 가을이 이른 지 단풍이 들지 않고 힘을 잃어가는 녹음 위에 빗방울이 후득후득 떨어진다.
아침 6시 37분에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설악산 서북능선에 익어가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만끽하면서 오랜만에 걸어본 약 19Km 거리에 8시간 25분 정도 소요된 깔끔한 산행을 마치고, 오후 3시 2분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남교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어야 할 버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한계령을 함께 출발하여 대승령에서 장수대로 탈출한 일부 A조 대원들이 아직 하산을 하지 않아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갈아입을 옷이 모두 버스에 있으니 낭패다. 다시 배낭을 메고 근처 개울가로 내려가 비를 맞으며 대충 씻은 후 상의는 배낭에 있는 예비 옷으로 갈아입고, 하의는 그대로 주차장에 돌아왔으나 아직 버스가 도착하지 않아 꿉꿉하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남, 여 교대로 버스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진부령 황태'식당에서 황태 정식으로 저녁을 먹은 후 먼저 버스에 돌아와서 하산주 막걸리 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시간에 남교리를 출발하여, 도중에 휴게소에 두 번 들러가면서, 조금 늦은 시간인 저녁 10시 32분경에 아침에 탑승한 포항 온천 앞에 내려서 집으로 걸어오는 중에 마눌에게서 전화가 온다.
나도 원래는 밤늦게 잠자리에 드는 야행성이었는데, 요즘은 저녁 10시만 되면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은 후 6시에 집을 나서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일요일 원거리 산행길은 귀가 시간이 너무 늦은 관계로 월요일 새벽 출근에 부담이 되지만, 다행히 이번 주와 다음 주는 월요일이 휴일이라 부담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잃어버린 3년이라 던가, 하도 오랜만에 가는 산행길이라 기대보다 떨어진 체력 걱정이 되어, 무리하게 A코스를 선택했다가 행여나 다른 산님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폭탄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무난하게 여유 있는 시간에 산행을 마치게 되어, 코로나19 위험 속에 어려운 산행길을 알차게 준비하고 이끌어주신 러셀산악회 산행대장님과 임원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설악산 절경 속의 가을을 만끽하고 돌아온 알찬 산행길 하나 갈무리해본다.
(2022.10.02 호젓한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