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산행은 군위에 위치한 아미산으로 간다.
그리 높지도 않고 대구 근교에 있어 잘 찾지도 않지만 그래도 여러 번 다녀온 적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멋진 산세와 기암들이 가벼운 산행을 원하는 산꾼들의 발길을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차장 건너편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송곳바위이다.
좌측 끝부분에 위치한 목교를 건너면 곧 바로 가파른 오르막이 송곳바위까지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면서 본 좌측의 자그마한 석굴.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간다.
송곳바위.
진행할 2봉.
2봉으로 진행하면서 뒤돌아 본 송곳바위.
주차장이 내려다 보인다.
앵기랑바위가 보이고...
앵기라바위 밑에서 중간 부분까지 올라갔더니 꼭대기로 오르기가 조금 애매하다.
겨울이라 바위가 미끄럽고 해서 그냥 포기하고 내려온다.
옆으로 돌아서 나무계단을 제법 올라가면,
앵기랑바위 반대편으로 올라서는데 여기서도 꼭대기로 오르는 길을 찾아 금줄을 넘어가니,
역시나 바위길이 애매하다.
굳이 무리하면 못 오를 곳도 아니지만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아쉽지만 그냥 포기.
앵기랑바위.
해발 365m로 마을에서는 이 암봉과 아미산폭포, 마당바위, 송곳바위를 통틀어 아미산이라 부르고 있다. 그 유래로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일연국사의 시에서도 나타났듯이 높은 산 위에 또 높은산이 있다는 의미에서 아미로 불리우게 되었다. 양지리마을에서 보면 애기 동자승의 모습을 띄어 앵기랑바위(석산리:코끼리바위, 학암리:왕암바위)로 불려지는 바위는 양지리를 내려다 보는 방향으로 마을에서는 6.25동란, 월남전 참전용사의 인명피해 및 마을의 흉사가 없도록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4봉, 돌탑봉, 무시봉.
사실 봉우리 이름은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정식 명칭은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도 무시봉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돌아 본 앵기랑바위.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은 지가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곳곳에 계단이 새로 설치되어 있네.
두개의 암봉이 하나로 겹쳐져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4봉인데 이곳을 아미산으로 표기한 문헌도 있다고 하네.
아미산(402.4m).
하지만 산꾼들에게는 남쪽의 방가산과 무시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737m)가 아미산으로 알려져 있다.
암봉들을 지나고 나니 이제부터는 걷기 좋은 편안한 육산이다.
여기저기 내려 쌓인 눈이 보이고...
돌을 쌓아 놓았다 해서 돌탑봉이라나...
무시봉(667.4m)에 도착.
조금씩 쌓인 눈과 푹신한 낙옆길을 번갈아 진행하면,
제법 긴 눈길 오름이 나타나고,
올라서면 아미산이다.
아미산(737.3m).
군위군 고로면 석산리에 있는 산이다(고도 : 402m). 지명은 [1872년지방지도](군위)에 '아미산(蛾眉山)'으로 처음 등장한다. [조선지지자료](의흥)의 소야면에는 아미산이 답평동에 있다고 기록되고 있어 일부 표기자가 '미(眉)'에서 '미(嵋)'로 음차 표기되었음과 산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한편[한국지명총람]의 '아미산(峨嵋山, 아밀암바우) : 온 산이 바위로 되었음' 이라는 기록을 통해 이칭인 '아밀암바우'와 산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산악인들에게는 남쪽의 방가산과 북쪽의 무시봉 사이에 있는 봉우리(737m)가 아미산으로 알려져 있다. 해발 737m의 아미산은 팔공산의 산세가 끊어질 듯 이어져 맺은 아름다운 산세와 정상부에 우뚝 솟은 5개의 기암들이 아름다움을 더하는 산으로 특히 단풍으로 물들은 가을의 아미산 모습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산에 있는 큰 바위들이 군사의 형상을 닮아서 예부터 아미산 자락의 마을들은 전화(戰火)로부터 안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미산 정상 따뜻한 양지에서 식사를 하고 하산하면서 본 보현산(중앙)과 면봉산(중앙 좌측).
살짝 당겨보니 보현산 천문대도 보인다.
좌측 나무가지 뒤로는 면봉산도...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 올라올 때와 반대편 능선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큰작삭골갈림에서 대곡지 방향으로 내려간다.
가파르게 내려가다가 다시 완만해지고...
중앙 좌측 멀리 팔공지맥 상의 화산.
살짝 당겨보고...
지나온 아미산도 돌아본다.
전망대 도착.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가 아주 좋다.
오전에 올라왔던 아미산의 암릉 들.
암릉에 설치된 구불구불한 계단들이 마치 뱀처럼 보인다.
선암산과 뱀산도 나란히...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내려서는데 나무계단이 S자를 반복하며 길게 이어지고...
대곡지를 지나 아침에 건넜던 다리를 건너,
주차장으로 돌아오면서 산행을 끝낸다.
도상거리 8Km, 슬금슬금 놀며 걷다보니 3시간 40분 걸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위치하지만 이번에 군위가 대구시로 편입되어 대구광역시 군위군이 되었다.
대구 시내에서 거리도 그리 멀지 않고 멋진 암봉들이 산세를 이어가니 가볍게 산행을 즐기는 산객들에게는 좋은 탐방처가 될 듯(주차장은 무료) 하다.
돌아가는 길에 제2석굴암에 들러보았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국보 제109호).
석굴 사원은 자연동굴이나 암벽에 굴을 파서 그 안에 불상을 안치하거나 벽면에 불상을 새겨서 만든 절이다. 인도에서 시작하여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하여졌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은 거대한 천연절벽 자연동굴 안에 삼존불을 모셨는데 석굴 입구는 둥근 모양이고, 내부 바닥은 네모지게 반듯한 모양으로 평평하다. 천장은 활등이나 반달처럼 굽은 모양이다. 석굴 안에는 중앙에 아미타불, 왼쪽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을 벽면에 붙여서 모셔 놓았다. 아미타불은 사각형으로 만든 받침대 위에 두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하게 앉은 모습이다. 양쪽 귀는 길고, 목은 짧고 곧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 대신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아미타불의 뒤쪽 바위 면에는 부처의 정수리와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화한 광배가 장식 무늬 없이 새겨져있다. 관세음보살의 머리 위에 있는 광배에는 넝쿨무늬와 불꽃무늬가 있어 새로 수용된 당나라의 형식이 보인다.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은 삼국 시대 조각이 통일 신라 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그리고 자연동굴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 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때 경주 석굴암에 이은 두 번째 석굴암이라는 의미로 제2석굴암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문화재 명칭에 따라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로 불린다.
대세지보살 :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보살. 그 형상은 정수리에 보병(寶甁)을 이고 천관(天冠)을 썼으며, 왼손에 연꽃을 들고 있다.
항마촉지인 : 부처가 악마를 항복시킨다는 상징적인 의미의 손 모양. 왼손은 펴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무릎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의 하나.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의 뒤로부터 내비치는 빛.
예전에는 석굴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계단 밑에서 막아 놓아 올라갈 수가 없다.
군위 삼존석불 모전석탑(軍威 三尊石窟 模塼石塔 :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이 모전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탑신부를 조성한 특이한 형태로서 각자와 유래는 알 수 없다. 본래 3층이었으나, 탑신부에 자생한 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지면서 탑도 같이 무너졌다고 한다. 1949년에 당시 창건주(홍태기)가 주선하여 군위군 우보면 신도들의 힘을 모아 현재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탑의 전체 높이는 400cm, 기단의 높이는 45cm, 기단의 한 변은 390cm이며, 우주와 탱주는 약 16cm, 옥개석에서 정상부까지는 약 165cm이다. 모서리 기둥과 각 면 3개의 안 기둥 및 기단 덮개들이 있으며, 1층 탑신부에는약 20여 단의 일정하지 않은 직사각형 판석을 쌓았다. 1층 지붕돌의 층급은 3단이며 지붕돌 상면에도 다시 여러 단의 층급을 놓아 점차 체감되게 하였고 다시 그 상부 중앙에 노반 및 보주를 배치하였다.
우주(隅柱) : 기단석 면석 모서리에 있는 기둥 모양의 양각.
탱주(撑柱) : 기단석의 명석 중심부에 양각한 기둥 모양.
옥개석(屋蓋石) : 지붕돌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상륜부를 받치는 부재.
보주(寶珠) : 탑의 상륜뷰에 구슬 형태의 부재.
양산서원(陽山書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