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 일요일인 6월 22일, 나는 작년처럼 루앙의 기독교 학교 청년 축제에 참가했다.
우리는 늦은 밤 버스에서 내렸고, 마드무아젤 L이 내가 사는 동네까지 학생을 데려다 주는 일을 맡았다.
새벽 1시경이었다. 나는 식품점 문을 두드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가게에 불이 켜지더니 구겨지고 얼룩덜룩한(오줌을 누고 옷으로 그냥 닦았기 때문에) 속옷 바람으로, 잠이 덜 깨 입을 굳게 다물고 머리를 산발한 어머니가 현관 불빛 아래에 나타났다.
마드무아젤 L과 몇몇 학생들이 하던 이야기를 뚝 멈췄다.
어머니가 어물어물 인사말을 건넸지만 아무도 답례하지 않았다.
나는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하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사립학교 세계의 시선으로 보았던 것이다.
나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했던 장면과 아무 상관없는 이 장면이 그것의 연장으로 생각된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진 이상한 셔츠 사이로 내비친 어머니의 알몸뚱이를 통해 우리의 진면목,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발각된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셔츠에 가운을 걸치고 있었고, 그래서 친구들과 선생님이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면 그 날 밤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허둥지둥 옷을 입고 일터로 나가야 하는 우리 부류의 여자들에게 잠옷이나 가운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상한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잠옷이 존재하지 않는 나의 사고 체계 속에 살면서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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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나는 내가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됐다'라든지 '나는 ~를 깨달았다'라고 쓰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런 단어는 체험한 상황에 대한 명징한 의식이 있음을 상정한다.
거기에는 이 단어들을 모든 의미 외적인 것에 고정시키는 부끄러움의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무거움, 그 무화 작용을 내가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최후의 진실이다.
그것이 글을 쓰고 있는 여인과 1952년의 어린 여자아이를 연결하는 끈이다.
보르도, 투르, 리모주를 제외하곤 여행 중에 방문했던 장소를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투르의 레스토랑에 대한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
아버지의 삶과 문화에 관한 책을 쓸 때면, 마치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밑바닥 세계에 속한다는 증거인 양 그 기억이 끊임없이 되살아났다.
6월 일요일의 사건과 여행 간에는 시간적 관계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건 후에 일어난 사건은 앞선 사건의 그늘 아래서 체험되는 것이다.
사건의 연속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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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나는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열두 살에 느꼈던 부끄러움의 발치에라도 따라가 려면 어떤 책을 써야 할까?
1996년의 여름이 끝났다.
이 책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무렵 사라예보의 시장 바닥에 박격포탄이 떨어져 수십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몇몇 작가들이 “부끄러움에 목이 멘다"라고 신문에 썼다.
그들에게 부끄러움이란 하루아침에 생겼다가 그다음 날이면 떨쳐버릴 수 있고 어떤 상황에는(보 스니아 내전) 적용되지만 다른 상황에는(르완다 내전)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개념이었다.
사라예보 시장의 피바다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책을 쓰고 있었던 지난 몇 달 동안 어떤 영화가 개봉했든 어떤 책이 발간됐든, 혹은 어떤 예술가가 죽었든 그것이 1952년에 일어난 사건이면 대뜸 신경이 곤두섰다.
그런 일들이 까마득히 먼 그해의 현실, 어린아이였던 내 존재의 실체를 증명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1952년 일본에서 출간된 오오카 쇼헤이의 《불》이란 책에서 나는 이런 글귀를 읽었다.
"이 모든 게 어쩌면 환상에 불과 할 수도 있지만,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 만은 의심할 수 없다. 회상도 하나의 체험이다."
비아리츠의 사진들을 본다.
아버지는 이십 구 년 전에 돌아가셨다.
사진 속 여자아이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공통점 도 없다.
내게 이 책을 쓰게 만든 6월 일요일의 그 장면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 장면은 결코 내 마음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이 작은 여자아이와 나를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그 사건뿐이다.
나의 정체성과 내 존재의 항구성을 가장 강렬하게 느낀 오르가슴을 나는 그로부터 이 년 뒤에나 느꼈기 때문이다.
1996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