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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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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일반 이야기 게시판 요동[遼東]의 천리[千里] 변[邊]을 지나 열하[熱河]를 굽어보며 제[第] 1[一]
환국고려 추천 3 조회 1,112 17.02.25 19:06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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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2.25 23:58

    첫댓글 안녕하세요.
    장문의 글임에도 전혀 느끼질 못하는, 가슴을 울리는 내용이었습니다. 그토록 찾고 찾던 마지막 퍼즐이 말입니다.
    발해(渤海)!
    연경(燕京)!
    열하(熱河)!
    이러한 몇 가지중요한 것들의 지리적 위치가 풀리고 나면 자연스럽게 모든 의문들이 풀리게 됩니다. 지금도 토착민들은 옛 조선왕조의 이야기들을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니 그 분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매국노들을 청산하지 못한 결과로 인해 지금도 신음중입니다. 글 감명깊게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곳까지 스스로 답사하시고, 이런 글을 우리 카페에 게재해 주시는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17.02.26 00:02

    고황제가 설치한 삼위(三衛)의 지리적 위치가 위에서 이야기한 곳이라면, 복여는 옛 부여 땅이라고 하였으니, 참고가 됩니다. 원전에서 말하는 곳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경강역고에서 말하는 요수의 상류인 요해!
    이게 참 애물단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제서야 그 비밀을 풀수 있게 되었나 봅니다.
    몇 가지 난제가 풀렸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7.02.26 10:20

    문무 선생님 안녕 하십니까 ?
    지금 한국에서 역사의 기록에서 말하고 있는 고조선과 고구려, 부여의 고토를 찾아, 그 지역이 이곳이다. 라고 고증하고 증명한다 해도 이를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
    식민사학의 거짓 역사에 함몰되어 허와 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니, 역사의 왜곡이 큰 성과을 거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 지식층에 있는 고명한 학자라는 자들이, 거짓의 역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으니,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는 부끄러운 일들은, 어찌보면 심은대로 거두는 하나의 일면 일것입니다.

  • 작성자 17.02.26 11:10

    한국의 국민들이, 우리 역사의 본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식민사학이 먼저 각성하고 정리 되어야 하며 , 그동안 거짓과 왜곡으로 얼룩진 치욕의 잔재를 과감히 척결 해야 할것입니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오늘날 신강성의 서북 지역, 지금 천산의 북쪽 지역에는, 옛 성곽들이 즐비 했습니다. 당시의 사진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성곽들이 씻은듯이 사라지고, 극히 일부만이 남아 있습니다.
    왜 그들은 그러한 웅장한 성곽들을 모두 없애 버려야 했을까 ? 그에 대한 해답은 한마디로 명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 17.02.26 10:45

    력작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17.02.26 11:07

    최남석님 안녕 하십니까 ?
    감사 합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평안 하신지요.
    두루 평안 하시며, 늘 강건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작성자 17.02.26 10:47

    한국 사람들은 특히 고구려의 역사에 대하여,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누구나 다 자랑 스럽게 열변을 토합니다. 그러나 고구려가 어느 지역에 있던 어떠한 나라였는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지금의 동북삼성과 반도의 북쪽에 고구려가 있었다. 라는 것은, 왜놈들이 조선사를 짓밟기 위해서 만든 역사의 허위 날조라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고구려의 역사를 당당하게 말하고는 있으나, 고구려의 본 모습은 그 일면도 보지 못하는 어이 없는 일이 일어나는 괴이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 작성자 17.02.26 11:01

    조선의 변경에 있는 한 족속에 지나지 않았던 청이 일어나 , 천하를 석권 하였으니, 역사는 천도를 따라 순환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청이 일어난 지역은,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내지였으니, 역사는 이렇게 돌며 순환 하는 것이 아니 겠습니까 ?
    옛 연행사신들이 연경과 열하를 오고 갔던 길을 따라가 보면, 연행록의 기록들은 금과 옥조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연행록의 내용 중에 중요한 부분들이, 지금의 북경과 산해관에 맞추어 왜곡되고 변조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게 들어 나는데, 조선사 역사의 참화를 피해간 사서들은, 아마 극히 드물 것 입니다.

  • 작성자 17.02.26 11:11

    문무 선생님의 노고에, 항상 깊은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댁내에, 두루 평안 하시며, 늘 강건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17.02.26 14:18

    통군정의 정자를보니 정말 이곳이 의주라니 그저 놀라울따름입니다. 사서에서 말한것을 실제 사진으로 확인하니 뭔가 큰 실마리가 풀리는듯합니다. 그 옛날 고려에서도 요동성은 변방을 담당하는 중요한지역인데 성곽의 흔적은 없고 사진만 남아있다니 예전에 요동성의 사진자료를 본적이 있는데 이곳에 대입해보면 맞는것같아보입니다. 역사의 기록에서는 연경에서 큰지진으로 장춘원, 기춘원 그리고 황성이 무너졌다는 실록의 기록이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혹시 그런 기록들의 흔적이 실제로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세월이 지나 찾기어렵겠지만 이것만찾으면 연경이 확실합니다. 다음편이 무척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7.02.27 08:07

    대부여님 안녕 하십니까 ?
    말씀 하시는 지진에 대한 흔적은, 남아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진이 있었다는 것은 구전으로 전해지고, 지금도 회자 되고 있슴니다.
    그보다 더 확실하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당시 연경의 도성에 관한 것입니다. 다음편에서 소개할 예정 입니다.
    견고하고 웅장한 성곽들이 즐비했던 이 지역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그 성터의 유지와 극히 일부의 성곽만이 남아 있으니, 분명하게 들어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 이면에는 역사의 왜곡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여님의 댁내에, 두루 평안 하시고 건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17.02.27 12:12

    선생님 모순되는점이 하나있는데, 연행록에는 압록강을 넘으면 요동이며 곧 대막지대가 펼쳐진다고 나옵니다. 즉 한양에서 의주까지는 사막지대가 없는것처럼 묘사되있는데 의주의 별칭인 "부얼진현" 을 찾아보니 신강성 알타이산 근처로 나오는데 만약 이곳이 정말 의주였다면 도착하기전에도 수많은 사막지대를통과해야되는걸로 대륙지형지세를 보면 나옵니다. 그런데 왜 연행사신들의 기록에는 한결같이 압록강을 건너야만 사막지대가 있는것처럼 되있는걸까요? 또 어떤기록에서는 조선의도읍지에서 연경까지 거리가 사천몆백리로 나오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대로라면 시공간적으로 너무나 먼데 이부분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요?

  • 작성자 17.02.27 20:47

    조선사의 사막에 관한 역사의 기록들은, 많은 내용들을 조선사를 말살 하려는 자들이 삭제 하거나 왜곡하여 변조하고 그것이 마치 당시의 원전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습니다.
    연행록만 보더라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기록들은 당시의 원본이 아닙니다. 그것은 연행록 자체가 그것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양에서 열하까지는, 오천리가 넘는다는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의 기록이 당시의 원전 기록 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사서들은, 특히 연행록에서는, 한양에서 의주까지 1070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17.02.27 21:01

    이것은 반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전체 연행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요한 내용들을 지금의 북경에 맞추어 변조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사를 왜곡하고 조작한 자들은, 그들의 한계를 들어내고 있습니다. 반만년의 방대한 역사의 기록들을 모두 왜곡하고 조작 할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역사의 기록들을 읽어 내리다 보면, 앞뒤가 많지 않는 내용들을 수 없이 보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이 바로 역사서를 왜곡하고 변조해 놓은 것들 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왕조실록으로 부터, 선조들의 개인 문집에 이르까지, 역사 기록의 왜곡과 조작, 변조는 그 끝이 없습니다.

  • 작성자 17.02.27 21:15

    그러나 이러한 자들의 조선사에 대한 참화 속에서도, 살아 남은 기록들이 다수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는 사적지대 입니다. 정사에도 이러한 기록들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당시에, 현지에서 나라의 명으로 지방을 다스린 대신들의 개인 문집 속에는, 그 지방의 모든 것에 대한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함경도만 하더라도, 적사 지대가 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사지대는 사막과 모래더미, 그리고 늪지대가 어우러져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인데, 함경도는 이러한 땅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하나 둘이 아니고 수 없이 많습니다.

  • 작성자 17.02.27 21:28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양에서 압록강의 의주까지 1070리, 또는 1090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들은, 왜곡과 조작의 기록이라는 것을 스스로 들어 내고 있는 것 입니다.
    조선의 정조대왕이 이르기를, 기내 천리에 사는 백성들이여,... 이렇게 몸소 말하고 있는데, 반도에서 어떻게 기내 천리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조선의 기전만도 천리가 넘는데, 한양에서 의주까지가 천리라니, 지나가는 우공도 이말을 듣는다면, 배꼽을 잡고 웃을 일입니다.
    지금의 신강성으로 가는 사막지대에는, 고성들이 즐비 합니다. 당시에도 지금 같은 사막지대 였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그러한 곳에 그 수많은 성곽들을 축조 하겠습니까 ?

  • 작성자 17.02.27 21:44

    우리의 역사 기록들이 위대한 것은, 그 지역의 고목과 돌 하나까지도,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을 따라서, 그 지역의 현지를 가보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수 백년전에 우리의 선조들이 그러한 곳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그렇게 자세한 기록들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
    연행록에서 한양에서 의주까지 가는 길에 사막의 기록이 없는 것은, 모두 삭제되었기 때문 입니다. 조선의 경도에서 의주까지는 사천리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기록 입니다.
    함경도의 북관이라든가 연경이 만리 길 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한 말이 아니라 역사 , 사실의 기록 입니다.

  • 작성자 17.02.27 21:49

    고려시대에, 중국의 사신이 고려의 송악에 오면서 말하기를, 동으로 오천리를 왔는데도, 갈길이 아득하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이사신은, 연나라 지역에서 출발 했습니다.
    댓글이 길어졌습니다. 차차 앞으로 모든 것이 밝혀 지리라 사료 됩니다.

  • 17.03.01 20:10

    한 번 더 읽었습니다.
    벨루하산에 대한 위키백과나 백과사전등의 인터넷 사전류에서는 "봉우리가 2 개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金山(금산)에 대한 일통지에서는 원래의 금산과 30리 밖에 동금산, 또 20리 밖에 서금산 이렇게 3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곳에 청하(淸河)가 흘러 요해로 들어간다고 했는데, 이것은 성경강역고의 말입니다. '금산과 요해와 삼위'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생각이 나서 댓글을 올립니다. 님께서 벨루하산은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셨거든요. 이것은 일통지와 같은 내용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17.03.04 13:47

    너무나 잘보았습니다. 저는 내심 발해가 발하슈호 아니면 바이칼호 일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좋은글감사드리며 2편도 기대가됩니다.

  • 작성자 17.03.04 19:48

    운명보다 운명같은님 안녕 하십니까 ?
    감사 합니다.
    발해에 대하여, 중국의 사서들을 살펴보면, 여러 지역을 발해라고 말하는 기록들이 있으며, 우리의 역사인 조선사에서도 발해는 한곳이 아니라, 다른 지역을 발해라고 부르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행록과 고구려를 이어 일어난 대조영의 발해는, 이 지역이 맞는 것으로 사료 됩니다. 우리의 역사를 찾아가며 현지인들의 역사에 대한 구전과 기록, 그리고 오늘날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의 설명들은, 우리 역사의 본 모습을 보는데 있어서 우리의 역사를 고증하고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와, 우리의 역사인 조선사의 본 모습은, 큰 틀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 작성자 17.03.04 19:50

    운명보다 운명같은님의 댁내에, 늘 평안과 건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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