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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역사의 한국 프로야구에서 9번의 우승을 차지한 타이거즈는 신화다. 하지만 신화는 1997년을 마지막으로 전설이 됐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올해, KIA는 전설의 봉인을 풀려하고 있다. 타이거즈의 우승 시즌들을 돌아본다.
※공격력이 110이면 득점이 그 해 리그 평균보다 10% 많았다는 의미. 방어력이 110이면 실점이 그 해 리그 평균보다 10% 적었다는 의미. 괄호 안의 숫자는 타이거즈가 우승을 차지한 9시즌 중에서 차지하는 순위. 라인업은 가장 많이 가동된 라인업을 기초로 베스트 라인업 가미.
[V1] 1983년 승률 .556(8) 공격력 105(7) 방어력 103(9) *KS 4승1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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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 프로야구 원년, 전후기 모두 4위에 그쳤던 해태는 전기 우승을 차지, 후기 우승자인 MBC와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다. 그 해 MBC는 평균자책점 6위 내에 4명(하기룡 유종겸 이길환 이광권)을 포진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마운드를 자랑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더 뛰어난 활약을 한 것은 해태 마운드였다. 해태는 1차전에 이상윤, 2차전에 김용남, 3차전에 주동식을 내세워 3연승을 달렸다. 4차전에서는 9회말에 동점을 허용하고 15회 끝에 비겼지만, 5차전을 8-1 대승으로 마무리했다. 19타수8안타 8타점을 기록한 김봉연이 MVP.*9번의 우승 시즌 중에서 해태의 공력력이 투수력보다 더 좋았던 시즌은 첫 우승인 1983년과 마지막 우승인 1997년이었다. 김일권은 도루왕과 함께 뛰어난 중견수 수비를 선보였으며, 김봉연은 교통사고로 얼굴에 박힌 유리조각을 빼는 데 5시간이 걸린 수술을 받고서도 돌아와 결국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그 해 마운드의 지배자는 30승을 거두며 '너구리 열풍'을 일으킨 장명부였지만, 장명부의 그림자에 가려진 다승 2위는 20승의 이상윤이었다.
![]() 4연패의 시작. 1986년 우승 [연합뉴스] |
[V2] 1986년
승률 .644(3) 공격력 119(1) 방어력 107(8) *KS 4승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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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 해태는 전후기 모두 2위에 오르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상대는 전기 우승 팀 삼성. 삼성은 플레이오프에서 후기 우승 팀 OB를 꺾었지만, 최종 5차전까지 치르면서 전력을 크게 소모했다. 1차전에서 해태는 선동열을 선발로 내고도 7회까지 0-2로 뒤졌다. 하지만 8회 삼성에서 김시진이 올라오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8회말 1점을 따라붙은 해태는 9회초 선동열이 1점을 더 내줬지만 9회말 다시 2점을 얻어 3-3 동점을 만들었고, 11회말 김성한이 김시진을 상대로 끝내기안타를 터뜨렸다. 2차전에서 해태는 플레이오프 18이닝 무자책점의 김일융에게 1실점 완투승을 헌납했지만 타격전 끝에 3차전을 잡아냈고, 4차전 연장 11회 승부도 이겼다. 5차전은 김정수와 선동열의 계투로 마무리. 김정수는 3승을 따내고 MVP에 오르면서 '가을 까치'의 전설을 열었다.
[V3] 1987년 승률 .532(9) 공격력 91(9) 방어력 108(7) *KS 4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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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 해태는 전기리그에서 3위에 그쳤지만 후기리그에서는 2위를 차지하고 전기리그 2위 팀인 OB와 플레이오프를 가졌다. 1승2패로 탈락 위기에 몰린 4차전, 그러나 연장 10회말 최일언의 폭투가 해태를 구했다. 결국 해태는 5차전을 승리하고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냈다. 상대는 팀 타율 3할의 막강 공격력으로 전후기 우승을 휩쓴 삼성. 하지만 해태에게는 정규시즌에서 삼성과 9승9패 호각세를 이루게 해준 평균자책점 1위 마운드가 있었다. 최고의 창과 최고의 방패가 격돌한 한국시리즈는 예상과 달리 4차전 만에 끝났다. 해태 마운드는 삼성 타선을 .213로 완벽히 봉쇄했고 최초의 4연승 우승 팀이 됐다. 정규시즌에서 경기당 5점 이상을 냈던 삼성은 4경기에서 8득점에 그쳤다. [MVP 김준환]*한국시리즈를 쉽게 끝내긴 했지만, 우승 시즌 중 가장 낮은 승률을 기록했을 만큼 그 과정은 가장 어려웠던 시즌이다. 선동열은 허리 부상, 김정수는 왼손 혈행장애에 시달렸고, 김성한은 최동원이 던진 공에 왼쪽 손목에 금이 가 6주를 결장했다. 여름만 되면 체력이 급전직하했던 김종모는 급작스런 장티푸스 증세로 또다시 타격왕 도전의 기회가 날아갔다. 하지만 해태의 1987년은 새 얼굴들이 대거 나타낸 해였다. 방위 복무를 끝낸 문희수와 고졸 신동수가 마운드의 새로운 핵이 됐으며, 타선에도 백인호 박철우 조재환이 가세했다. 존 슈어홀츠의 비유대로라면 시속 160km로 달리면서 타이어를 갈아 낀 시즌이었다.
![]() 1988년 우승 후 헹가레를 받는 김응룡 감독 [연합뉴스] |
[V4] 1988년 승률 .639(4) 공격력 110(4) 방어력 126(2) *KS 4승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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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 1987년 연봉 협상이 가장 늦었던 해태는 연봉 협상을 가장 빨리 끝냈다.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빙그레와 삼성을 꺾고 전후기 우승을 모두 차지한 것. 한국시리즈 상대는 삼성을 3연승으로 꺾고 올라온 빙그레였다. 1차전에서 선동열은 이동석과의 맞대결을 승리하고 정규시즌에서 당했던 노히트노런을 설욕했다. 해태는 2차전 역전승에 이어 3차전 문희수의 완봉승으로 3연승을 질주했다. 하지만 빙그레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빙그레는 4차전에서 타선이 폭발하며 14-3의 대승을 거뒀고, 5차전도 원투펀치 이상군과 한희민을 모두 동원해 승리했다. 3연승 후 2연패의 위기. 하지만 스타 탄생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문희수였다. 문희수는 예상을 깨고 선동열 대신 6차전 선발로 나서 1실점 완투승을 따냈고 역대 최연소 시리즈 MVP가 됐다(2승1세이브 0.46).*1987년에 비해 가장 좋아진 부분은 타선이었다. 새로운 안방마님 장채근은 홈런 2위에 오르면서 공포의 8번타자로 활약했으며, 김성한은 프로야구 최초의 30홈런과 함께 1985년에 이어 2번째 MVP에 올랐다. 또한 김일권이 태평양으로 트레이드되면서 풀타임 중견수가 된 이순철은 도루-득점-출루에서 프로야구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며 1번타자로 맹활약했다. 마운드에서는 선동열과 차동철이 여전히 주축을 이룬 가운데, 이상윤이 1983년 20승 이후 최다인 16승을 올리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도 있었는데, 시즌 도중 주축 투수 김대현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것이었다. 하지만 옆 자리에 앉았던 이순철은 무사했고 결국 해태는 김대현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바쳤다.
[V5] 1989년 승률 .558(7) 공격력 99(8) 방어력 114(4) *KS 4승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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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 해태는 부상 선수가 속출하면서 정규시즌에서 빙그레에 5경기반이 뒤진 2위에 그쳤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태평양에게 3연승을 거두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를 만났다(PO 최대 고비는 김정수와 조계현이 이어던져 1-0으로 승리한 2차전이었다). 1988년 해태는 빙그레와 타선은 대등하고 마운드는 앞섰다. 하지만 1989년은 마운드는 대등했고 타선은 크게 뒤졌다. 이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빙그레의 우세를 점쳤다. 1차전에서 선동열을 내세우고도 이상군-송진우-한희민이 이어던진 빙그레에 패하자 예상은 적중하는 듯했다. 하지만 해태는 빙그레의 수비 불안을 틈타 2차전을 승리했고, 3차전에서는 문희수가 한희민과의 투수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타선 폭발로 4차전을 승리한 해태는 결국 5차전까지 잡아내고 1패 후 4연승으로 4연패라는 대업을 이뤘다. [MVP 박철우]*언제나 해태의 최대 약점은 투텁지 못한 선수층이었다. 창단 후 최악의 부상이 몰아친 그 해, 구세주는 선동열이었다. 선동열은 선발과 불펜을 종횡무진 누비며 1986년에 이은 2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다. 여기에 이강철-조계현-이광우 신인 트리오가 등장하면서 해태는 특유의 지키는 야구를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강철은 선동열이 유승안에게 생애 첫 만루홈런을 맞는 등 잠깐씩 흔들릴 때마다 마운드의 버팀목이 됐다. 65승 중 28승이 역전승, 22승이 1점 차 승리였던 것은 마운드가 강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V6] 1991년 승률 .647(2) 공격력 111(2) 방어력 136(1) *KS 4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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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 79승의 역대 최다승을 거두고 느긋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해태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삼성을 꺾고 올라온 빙그레. 1988-1989년에 이어 3연속 격돌이었다. 1차전에서 빙그레 김영덕 감독은 선동열을 피하가기 위해 에이스 한용덕 대신 한희민을 내세웠다. 결과는 패배. 2차전 한용덕을 내세운 빙그레는 김정수를 2회 강판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강철이 7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텼고 대신 한용덕이 무너졌다. 3차전 해태는 송진우에게 8회 2사까지 퍼펙트로 당하면서 0-1로 뒤졌던 경기를 뒤집었다. 또 4차전에서는 0-2로 뒤지던 경기를 8회에 뒤집고, 다시 뒤집힌 경기를 9회에 한 번 더 뒤집었다. 1988년 4승2패, 1989년 4승1패에 이어 이번에는 4연승 우승이었다. [MVP 장채근]*1991년 해태는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마운드의 팀이었다. 그 해 해태의 평균자책점은 2.89, 나머지 팀들은 4.12였다. 주역은 역시 3년 연속이자 통산 4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한 선동열이었지만, 이강철-신동수-조계현 트리오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원조 마당쇠' 송유석까지 가세해 힘을 보탰다. 해태의 타율은 8팀 중 4위(.259)에 불과했지만, 대신 빙그레 '다이너마이트 타선'보다도 더 많은 144개의 홈런을 날렸다. 특히 상위타선은 그야말로 지뢰밭이었다. 1990년에 해태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3연패를 당했었다. 8번째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처음 패배를 당한 해태는 그 날 밤 대구에서 복수를 다짐했다. 그리고 1991년 삼성을 상대로 14승4패를 기록했다.
[V7] 1993년 승률 .655(1) 공격력 110(4) 방어력 111(5) *KS 4승1무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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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태는 4월23일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는 독주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3번째로 만났다. 해태가 조계현과 선동열의 계투로 1차전을 승리할 때까지만 해도 해태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리즈가 될 줄은 몰랐다. 해태는 2차전에서 김태한에게 완봉패를 당했고 3차전에서는 15회 무승부가 되는 동안 박충식으로부터 2점밖에 뽑지 못했다(문희수 2⅔이닝, 선동열 7⅓이닝, 송유석 5이닝). 그리고 4차전에서는 다시 김상엽을 공략하지 못하며 한국시리즈에서 처음으로 1승1무2패로 몰리게 됐다. 하지만 해태는 조계현이 2실점 완투승을 거둔 5차전에서 다시 일어섰고, 6차전은 문희수의 1회 강판을 김정수와 선동열이 막아냈다. 탈락 위기에 몰린 삼성은 7차전에서 박충식을 선발로 냈다. 하지만 3차전에서 181구를 던진 박충식의 컨디션이 정상적일 리 없었다. [MVP 이종범]*1993년은 전년도 부상으로 32⅔이닝밖에 던지지 못한 선동열이 마무리투수로 화려하게 부활한 해였다. 선동열은 프로야구 최초의 30세이브와 함께 평균자책점과 세이브포인트(41)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선동열의 철벽 마무리 속에 해태는 다승왕 조계현을 비롯한 5명이 10승을 넘겼다. 선동열까지 포함하면 10승 투수만 6명이었다. 마운드의 기둥이 선동열이었다면, 3할 타자가 1명도 없었던 타선에서는 신인 이종범의 원맨쇼가 이뤄졌다. 9번에서 시즌을 시작한 이종범은 이순철을 제치고 1번을 맡았고 공격 전 부분에서 팀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종범-홍현우-이호성이 전면에 나서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 1996년 우승 후 기뻐하는 선수들 [연합뉴스] |
[V8] 1996년 승률 .587(6) 공격력 107(6) 방어력 118(3) *KS 4승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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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 해태는 1994년 한화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하고, 1995년에는 4위를 차지했지만 준플레이오프 성사 요건을 갖추지 못해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선동열이 떠났다. 하지만 최악의 시즌이 되리라던 그 해, 해태는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대파란을 일으켰다. 한국시리즈 상대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상대로 2연승, 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을 상대로 리버스 스윕을 만들어내고 올라온 현대. 이대진을 내세워 1차전을 승리한 해태는 2차전에서 정민태에게 패했다. 해태는 이강철이 3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뒀지만 4차전에서 정명원에게 충격적인 노히트노런을 당했다. 하지만 7경기를 더 치른 현대의 투수들은 지쳐있었다. 해태는 5차전에서 정민태, 6차전에서 정명원을 무너뜨렸다.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이 10승1패인 정민태는 이때 유일한 패배를 당했다. [MVP 이강철]*1996년 해태의 예상밖 선전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선동열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었다. 20살 임창용과 34살 김정수가 뭉쳐 1996년 양키스의 리베라-웨틀랜드처럼 활약했던 것. 여기에 조계현은 5월16일부터 8월11일까지 14경기에서 12연승을 질주, 팀이 6위에서 4위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상승세를 유지한 해태는 7월31일 마침내 1위에 올랐다. 1993년 9월27일 이후 1046일 만의 일이었다. 9월초 해태는 다시 위기를 맞이했지만 방위 복무로 시즌 초반 나서지 못했던 이종범과 이대진이 이를 막아섰다.
[V9] 1997년 승률 .599(5) 공격력 111(2) 방어력 109(6) *KS 4승1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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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해태에 선동열이 있었다면, 1997년 해태에는 임창용이 있었다. 풀타임 마무리로 데뷔한 임창용은 1993년 선동열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창용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이대진은 3년 연속 팀내 다승왕에 오르며 선동열과 조계현의 에이스 계보를 이었다. 김창희는 이순철의 10년 아성을 무너뜨렸으며, LG에서 데려온 최훈재의 활약도 짭짤했다. 하지만 시즌 후 해태에게는 피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팀 전력의 절반으로 불렸던 이종범이 일본으로 진출한것. 해태는 선동열의 공백을 메우는 데 성공했지만, 그 해 프로야구 최초로 3할-30홈런-30도루를 달성하고 유격수 역대 2번째 OPS 1.000 시즌을 보낸 이종범의 대안은 찾지 못했다. 그리고 우승 신화는 막을 내렸다.
![]()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노란 물결 [강명호의 줌인스포츠] |
2009 KIA 'V10 성공할까'
올시즌 KIA의 공격력은 102로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는 우승한 9시즌의 평균인 107보다 떨어지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7시즌의 평균인 110과는 더 큰 차이다. 하지만 KIA 타선에 대반전이 일어났음을 감안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후반기만 따지면 KIA의 득점력은 123으로, 그 어떤 우승 시즌보다도 높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의 KIA는 마운드에만 의존하고 있는 팀이 아니다.
올시즌 KIA의 방어력은 118에 달한다. 이는 우승 9시즌 평균인 115와 직행 7시즌 평균인 116보다 높다. 역대 우승 시즌과 비교해도 1991년(136)과 1988년(126) 다음으로 높고 1996년과 같다. 우승 마운드로는 전혀 손색이 없다.
우승 연도 | 공격력 | 방어력 |
1983 | 105 | 103 |
1986 | 119 | 107 |
1987 | 91 | 108 |
1988 | 110 | 126 |
1989 | 99 | 114 |
1991 | 111 | 136 |
1993 | 110 | 111 |
1996 | 107 | 118 |
1997 | 111 | 109 |
2009? | 102 | 118 |
※파란색은 한국시리즈 직행 실패 시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한국시리즈에서 타이거즈의 시리즈 승률이 9전전승인 반면, 플레이오프에서의 시리즈 승률은 2승4패라는 것이다(2연승 후 4연패).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신화는 대부분 한국시리즈에 직행, 상대보다 더 많은 휴식을 취한 투수진이 힘을 발휘한 경우가 많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매직넘버 이야기가 나왔던 KIA는 현재 SK와의 치열한 우승 경쟁을 하고 있다. V10을 향한 첫번째 관문은 정규시즌 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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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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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의 전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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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영웅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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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시퍼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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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뭘 할꼬나잉![~](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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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분들은 잘 사신다고 합니다....밥 잘묵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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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쉬이!!!마이가 귀중한 자료로 옛생각을 더듬게 하는구나..고맙네..
저두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