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분노나 혐오감을 자극할 수도 있을 테고, 불쾌감을 불러일으켜 비난을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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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침관을 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내 울었다. 계속 아팠고, 배 속에 묵직한 느낌만이 있었다.
여자가 끝났다고, 이제 아무것도 건들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양수가 터질 경우를 대비해서 커다란 천 기저귀를 가져다 댔다.
나는 천천히 화장실로 갈 수 있었다.
걸을 수 있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야 그게 빠져나간다고,
그러지 않으면 여자에게 전화를 해야만 했다. 우리는 주방에서 같이 커피를 마셨다.
그녀에게도 대단한 일이 끝난 셈이었다. 어느 순간에 그녀에게 돈을 주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는 내가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 스러워했다.
여자는 생라자르 역까지 갈아 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퐁카르디네 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혼자 가고 싶었고 여자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배려를 거절하면서까지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그녀는 내가 나가자마자 기절해서 누군가가 나를 다시 여기로 데려올까 봐 두렵다고 언급했다.
여자는 외투를 걸치고 실내화는 그대로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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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던 시기에, 코소보 난민들이 칼레를 거쳐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밀항업자들은 엄청난 돈을 요구하고, 때로는 밀항 전에 잠적해 버린다.
그럼에도 코소보 난민을 비롯하여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은 밀항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구원받을 다른 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밀항업자들을 쫓는다, 삼십 년 전에 임신 중절 시술가에게 그랬듯이 밀항업자들의 존재를 몹시 못마땅해한다.
누구도 그 존재를 부추기는 법률이나 국제 사회의 명령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그리고 마치 오래전 임신 중절 시술을 해 주었던 이들처럼, 이민자들의 밀항을 돕는 이들 중에 다른 사람보다 더 올바른 이들도 분명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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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전 있어요? 처방전이 있어야만 해요!
나는 이런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처방전이 없다는 말을 듣자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표정을 숨겨 버리는 얼굴 또한 결코 본 적이 없었다.
이 글을 쓰며 가끔씩 터져 나오는 분노나 고통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내 삶에서 그 순간 하지 않았던 일을 이 텍스트에 쓰고 싶지는 않다.
혹은 아주 조금이라도 소리를 지르거나 울고 싶지 않다.
약사의 질문을 들으며, 탐침관이 잠겨 있던 대야 옆에 놓인 빗을 보며, 내게 전해진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변화 없이 흘러가는 불행의 감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이 이미지 들을 생각하면서, 그 당시 내가 느꼈던 바와 전혀 상관없는 말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느끼는 충격은 그저 글쓰기를 하며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충격은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며, 글쓰기라는 진실의 기호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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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이 엄청나게 마려웠다.
복도 반대편에 있는 화장실로 달려갔고, 문 앞에 있는 변기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허벅지 사이로 타일이 보였다. 온 힘을 다 주었다.
수류탄이 터질 때처럼 문까지 물이 튀었다.
작은 아기 인형 같은 형체가 불그스름한 줄 끝에 매달려 성기에서 대롱대롱했다.
이것이 내 안에 자리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걸 가지고 내 방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손으로 쥐었다. - 낯선 무게감이었다. - 그리고 내 허벅지 사이에 그것을 꼭 끼고 복도로 걸어 나갔다.
나는 짐승이었다.
0.의 방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빛이 새어 나왔다. 그녀를 부른 후 조용히 말했다. "나왔어."
우리는 둘 다 내 방에 있다. 다리 사이에 태아를 놓고 침대 위에 앉아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0.에게 탯줄을 끊 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가 가위를 집어 든다.
어느 부분을 잘라야 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것을 자른다.
우리는 커다란 머리에 투명한 눈썹 아래로 두 개의 푸른 점 같은 눈이 있는 작은 몸을 바라본다. 인디언 인형 같다. 성기를 바라본다. 작은 남자 성기 같다.
그러니까 내가 아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0.는 스툴에 앉아서 울고 있다. 우리는 조용히 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말로 표현 못 할 장면이다. 희생의 장면.
우리는 태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0.가 방에 가서 빈 비스킷 봉지를 찾아온다. 그리고 내가 그 안에 그것을 넣는다.
나는 봉지를 들고 화장실로 간다. 안에 돌멩이가 있는 것 같다.
변기 위에서 봉지를 뒤집는다. 변기 물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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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에서, 나는 엄청 밝은 불빛 아래서 알몸이었다.
발받침에 두 다리를 묶어서 추어올렸다.
왜 수술이 필요한지 알 수 없었고, 내 배 속에서 꺼낼 건 하나도 없는데 나는 젊은 외과 의사에게 뭘 하려는지 알려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벌려진 내 두 다리 앞에 서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빌어먹을배관공이 아니야!"
마취에 취해 어둠 속에 잠기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었다.
("나는 빌어먹을 배관공이 아니야!" 이 문장, 이 사건을 따라 늘어 서 있는 다른 문장들처럼 지극히 평범할 뿐 아니라, 다들 생각 없이 큰 소리로 내뱉었다.
이 문장은 내 안에서 매번 폭발해서 터져 버린다.
아무리 반복해 봐도, 사회 정치학적 분석도 그 폭력성을 완화할 수 없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빌어먹을 배관공이 아니야!"라고 고함을 퍼붓는 고무장갑을 끼고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를 순간적으로 본 듯싶다.
그리고 아마도 당시 프랑스 전체를 웃게 했던 페르낭 레이노의 촌극에서 따왔을 이 문장은 계속해서 세계와 나의 계급을 나누고, 마치 몽둥이라도 사용한 듯 의사들을 노동자들과 중절한 여자들에게서 분리시키고, 지배자들과 지배받는 이들을 분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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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들은 끊임없이 울어 댔다. 내 병실에는 요람이 없었다.
그런데 나도 똑같이 새끼를 낳았다. 옆방에 있는 여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요람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들보다 그런 사실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기숙사 화장실에서 나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잉태했다.
나는 태어나처음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여성들이 거쳐 간 사슬에 엮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겨울의 잿빛 하늘이 보였다.
나는 세상 한가운데서 불빛 속을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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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오후, 마른 대로 근처에 위치한 생파트리스 성당에 들어가서 신부에게 임신 중절을 했다고 고해했다.
이내 내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광명을 찾았다고 느꼈는데, 그에게 나는 범죄자일 뿐이었다.
성당을 나오며 나는 종교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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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시간, 도덕과 금기, 법을 포함하는 인간의 모든 경험, 육체를 통해 극과 극을 오간 경험으로 여겼던 사건을 단어들로 표현하는 일을 끝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이 사건에 대해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유일한 죄책감을 지웠다.
재능을 받았지만 낭비해 버린 듯.
경험한 사건에서 찾을 수 있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모든 이유를 넘어서서 무엇보다 가장 확실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하나 있다.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말하자면 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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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자 카페에 들어갔다.
핫초콜릿을 주문하고 교정할 과제물을 꺼냈지만 한 줄도 읽을 수 없었다.
화장실을 보러 가야만 한다고 속으로 계속 말했다.
젊은 커플이 테이블 위로 몸을 죽이며 입을 맞췄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종업원에게 화장실을 물었다. 카페 안쪽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그 문은 세면대 위에 거울이 있는 작은 공간으로 연결되었고, 오른쪽에는 화장실 문이 있었다.
좌변기가 없는 화장실이었다.
삼십 년 전 카페의 화장실도 이랬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 당시라면 내가 놀랐을 법한 사항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공공장소의 화장실은 이렇게 생겼었으니까.
시멘트 바닥에 구멍이 있고, 발을 놓고 쪼그릴 수 있게끔 두 발의 위치가 새겨져 있었다.
말제르브 역 플랫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하며 파사주 카르디네에 다시 와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9년 2월에서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