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하고도 7일, 시낭송 세미나가 열리는 동부두 중국피난선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선생님, 지금 거의 도착했는데 숙소 앞으로 나오시겠어요?"
막 호텔 앞에 도착하는 때에 맞춰 호텔 계단을 내려오시는 여왕벌 선생님.
서로 대면한 적은 없어도 첫 눈에 알아봤습니다.
나는 차 안에서, 여왕벌 선생님은 계단을 내려오시면서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손을 흔들었지요.
모처럼의 만남을 표현할 겨를도 없이 피난선 속으로 우리는 빨려들어갔습니다.
신제균 시낭송가의 강의를 들으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나의 동료는 킥킥 웃습니다.
먼 곳에서 오신 소중한 분과의 오붓한 대화를 나누지는 못할망정 세미나 현장으로 끌고와서 갑갑하게 한다는 것이었지요.
관광지에서 시낭송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는 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라고 변명으로 무마했지요.
근데요, 우리 여왕벌 선생님 차암 웃겨요.
일행들이 백록담으로 향하는 동안 당신은 그 중턱에서 궤도를 이탈한 이방인이 되어 한라의 야생식물들과 실컷 즐기다가 택시를 타고 내려올까 했다나요?
차암 나원, 요즘 택시는 날개라도 달려서 폈다 접었다 하면서 한라산 중턱에도 마구 드나드는가 보죠?
내가 놀렸더니 콜택시 부르면 된다나요?
시낭송 세미나를 마치고 낭송회가 열리는 동안 우린 배 안의 문을 열고 갑판으로 나갔습니다.
시원한 바람으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빗겨 올리며 눈앞에 잔잔히 흐르는 산지천을 바라보며, 모처럼 거기 놀러 와 내려앉은 갈매기를 바라보며 그제서야 콩당콩당 이야기주머니를 톡톡 쳤지요.
뭍에서 손님이 오면 난 꼭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시키거나 아니면 용두암 구름다리 건너기를 빼트리지 않는데 여왕벌 선생님 역시 예외일 수는 없겠지요?
때맞춰 와주신 소암님의 안내에 따라 용두암으로 내려갔습니다.
여태껏 용두암의 밤 정경은 감상할 기회가 없는 저였습니다.
관광객을 위하여 은은한 조명이 향으로 깔린 용두암 바닷내음을 맡으며 산책하고 용연의 구름다리도 건넜습니다.
헤어지면서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안동 특산물 '마 분말'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며칠을 그냥 뒀다가 어제아침엔 드디어 개봉을 했드랬지요.
여기서 여지없이 전 무식한 여자임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남편더러 잡수시라고 해야지 했다간 뜯어내면서 어떻게 먹나를 살펴보고 안채에 어머니를 갖다드려야지 했지요.
서너 숟갈에 뜨거운 물 아니면 우유에 타서?
'그럼 차가운 물에 타도 되겠지 뭐.'
'웩!'
비린내...
안 되겠다 싶어선 작은 냄비에 풀어놓고 렌즈불을 켰습니다.
부글부글 끓었지요.
껏지요.
ㅋㅋㅋ
수제비가 되었지 뭡니까.
이렇게 여왕벌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을 저는 수제비로 만들어 꾸역꾸역 삼키며 여왕벌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진짜 무식한 여자 맞지요?
가시는 날 공항에서 주신 전화에 통화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일일호프가 한창 바쁜 때인지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늘 건강하시고 다시 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만나서 행복했노라는 말 이제사 전합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첫댓글중국피난선이라 했기에 중국에 가신줄.../저도, 산지천 골물을 따라 내려와서..오후시간을 밤까지 즐긴적이 있읍니다.산책로 옆의 '산지천 비둘기 여인숙''산수모텔'...편리한 숙소는 아니어도..골물이 흐르고,사람이 흐르는 곁에서..하루나 이틀 쯤은 불편도 맛이 있었어요..씀바귀처럼...^^ /(다녀온 지 많은 시간이 지났는 데,이 글을 읽으며..전화기의 버튼을 눌러보니,아직 입력된 그대로 있네요.^^)
첫댓글 중국피난선이라 했기에 중국에 가신줄.../저도, 산지천 골물을 따라 내려와서..오후시간을 밤까지 즐긴적이 있읍니다.산책로 옆의 '산지천 비둘기 여인숙''산수모텔'...편리한 숙소는 아니어도..골물이 흐르고,사람이 흐르는 곁에서..하루나 이틀 쯤은 불편도 맛이 있었어요..씀바귀처럼...^^ /(다녀온 지 많은 시간이 지났는 데,이 글을 읽으며..전화기의 버튼을 눌러보니,아직 입력된 그대로 있네요.^^)
두분께서 분명거우셨음이 전해 집니다... ^^
정겨운 모습이 아른아른 보이는 듯 합니다 글도 재미 있게 잘 주셨네요. ㅎㅎ^^
일일호프집 준비로 바쁠텐데...속아수다....
무식해서 사랑스러운 맘껏달리자님. 무식을 몰라 본 진짜 무식한, 그래서 정겨운 여왕벌님. 아름답습니다! 읽으면서 행복해지네요.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