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근데요?"
'"이곳 최 목사님이 저의 외삼촌 이셔요....."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네, 사실은 학생들의 학업을 활성화 할 목적으로 저보고 야간학교에 나가 학생들과 어울려 힘을 보태라 하셨거든요. 그래서는 아니지만 학생들이 요즘에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른다고 생각이 드네요. 이젠 제가 없어도 되겠다싶었는데 이제는 야간학교가 좋아 졌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하면서 그녀는 내게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아마도 남자가 여자를 좋아해서 주는 선물 같은 거였는데....!'
"이거 받아도 되는 건가요?"
그녀의 끝말에 붙은 미증이 내 속을 긁어댔다.
주는 이의 속 뜻을 모르니 거부할 수도 없고 또 선물이 무엇인지 모르니 선뜻 받기도 그렇고.... 그 뜻을 알아 보려면 그냥 모른 척 속을 열어 볼 수 밖에....!
그러려면 선물을 받아야만 했다. 만약에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느낌으로서 주는 것이거나 거부할 수 없는 선물이라면 거부하였을 때 무안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건 야간학교에 큰 흠집이라도 날 것만 같아 두려웠다.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여러 생각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그런 와중에 가장 큰 느낌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가 이런 나를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그런 상상이었다. 닫혀 있는 뚜껑이 나를 올려다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비웃기도 하였다. 오락가락 하는 환상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 잠시....
아직 뚜겅은 열리지는 않았다. 그 뚜껑을 여는 일이 두려웠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셔요? 샘!"
그녀는 생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재촉하였다.
나는 그녀가 건네준 작은 상자의 포장지를 뜯었다.
거기에는 시계가 하나 들어 있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사각 은색 시계였다. 그 옆에는 목사님이 쓴 글이 고이 접혀 있었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난 일 년간 자리를 잘 지켜줘서 고맙다는 글이었다. 그리고 글 끝에는 조카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당신이 아끼는 질녀이며 S대를 차석으로 졸업한 엘리트 조카라며 그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 포함 되어 있었다.
나는 가슴이 식으며 내려앉았다. 금속으로 만든 심장이었다면 아마 심벌즈에 내리친 둥근 채에 얻어맞아 소리가 울렸을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뜨끔!' 했던 것을 대신 표현하면 '바보!' 라는 소리가 울렸을 것이다.
"양미씨!"
나는 존칭을 붙여가며 그녀를 불렀다. 아마 나이로 보나 이것 저것 따져 보아도 학생이라는 말은 안 어울릴 것 같았다.
"당신 삼촌과 떠져야 겠어요!"
"네에? 왜요?"
그녀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는 다시 물었다.
"제 삼촌이 샘한테 잘못했나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크게 잘 못 되어가고 있어요?"
"무슨요?"
"양미 씨가 S대 수석 졸업자라시면서요?"
"외삼촌이 그런 말을 했어요?
"
"그래요. 그런 훌륭한 조카님이 있는데 야간학교에 지도자가 없으시다며 저를 추천하지를 않으시나 거기다가 저를 감시하듯 양미 씨를 학교에 보내시고 저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신 분을 제가 가르치다니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호호, 그런 일 때문에 화나셨나요? 실은 제가 야간 학교에 나가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기에 바쁜 일정을 쪼개어 나온 거예요. 글구 다른 뜻도 있고요! 물론 저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은 잘 못해요."
"다른 뜻이라하면요?"
"그만 하세요! 별일 아니에요. 나중에 말씀드리죠! 그 시계 마음에 드세요?"
"아... 예, 아주 좋아요. 제가 이런 시계를 갖고 싶었어요.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지만 서두!"
"아마 시간 개념이 충실하신 분들이라 서로의 생각이 같았던 것일 거예요. 그리고 오늘은 늦었어요. 편히 돌아가시고 담주 화요일에 뵈요!"
그녀는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S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일류 기업에서 디자인을 하고 있는 그녀가 굳이 야간학교에 나와 분위기를 살리려고 애쓸 일이 있을까?'
다들 돌아가고 나자 한잔 술을 받아들인 몸은 취기가 돌았다.
'슬을 먹고 떠들 때는 몰랐는데....!
감기 기운에 먹은 약이 혹 탈이나 나지 않을까? 나는 택시에 얹히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소파에 몸을 던졌다. 희미하게 다가오는 졸음을 밀쳐내기가 어려웠다.
그녀가 저쪽 방에서 잠에 들었는지 조용하였다. 어지러운 환상이 머리를 흔들어댔다. 비몽사몽이라는 말이 맞을 런지....
다음 날 아침, 밥이라는 기대치를 안고 늦게까지 잠을 잤다. 비록 완벽한 아침 식사는 아니더라도 그녀는 나를 위해 늘 밥 짓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니 나는 때 이른 행복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런데 늦게 까지 잠을 자거나 하지 않던 그녀가 어젯밤부터 기척이 없는 것을 알았다.
미래에서 그것도 아주 먼 미래에서 왔으니 나와 오늘 날의 이 현실과 생활 방식이 전혀 다르겠지! 하는 생각에 그녀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나 과거에서 온 것도 아니고 미래에서 왔으니 과거 어느 싯점의 생활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우리 보다 문명이 발달하였는데 과거를 되돌아 보는 첨단기기쯤이야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그녀가 아침 늦도록 기척이 없다는 것은 집 안에 있지 않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혹시.... 처음 왔던 것처럼 그 미래에서 누군가 그녀를 잡아 끌고 간 것은 아닐까?'
섬짓한 느낌이 허전함을 몰고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두려웠다.
그녀가 있을 방문을 열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한 것에 대해 후회도 하였다. 그녀가 기척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녀가 잠들어 있을지 모르는 방문을 열어 보지도 않고 그녀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하여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녀는 나를 사랑 한다하였고 나 또한 그녀를 좋아 한다는 표현까지 했는데....!
'방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아주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노크'라도 해보면 될 것을 가지고 문을 열까 말까 한 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고 '내꺼' 라는 단순한 이유가 묻어 있었다.
문을 두드려 보았다.
아무런 기척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아니면 마술을 부려 나를 놀래켜 주려고 어떤 무시무시한 괴물이거나 아주 어여쁜 다른 모습으로 내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와 주기를 고대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겹쳐가는 생각들을 손 끝에 묻혀가며 문을 열었다. 혹시 몰라 아주 조심 스럽게 살그머니....
문이 열렸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벽에 걸어 두었던 휘장 같은 옷도 없었다.
"아~!"
내가 그녀를 그토록 마음에 두고 있었는가? 그냥 그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허탈했다. 아무 흔적도 없었다. 주방을 살펴 보았다. 그냥 예전에 홀로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 였다.
'어제 늦도록 학생들과 있으면서 연락이 없어서 그녀가 마음이 변했을까?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미래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깃털인가?'
나는 그녀가 누웠던 내 침대에 누워 보았다.
그동안 임대아닌 임대를 주고서 소파에서 자고 났던 것을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그냥 누워 있으니 고향에 온 것 같아 평온하였다. 그렇지만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그냥 허전하였다.
눈을 감았다.
그동안 밀렸던 잠이 스르르 다가 오더니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흔들어 깨우는 조밀감!
누군가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누굴까? 아니 무엇일까?'
그런데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낯익은... 음성...
"서방님 일어나셔서 식사 해야죠?"
'서방님? 아니 서방님이라니?'
"뉘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내가 언제 결혼이라도 했단 말인가?
"저예요. 서방님! 지난 밤에 술을 얼마나 드셨으면 온 사방을 헤매시며 잠을 자요?"
"서방님이라니?"
"어제 그러셨잖아요! 이왕 한집에 살고 나중에 경혼할 것이면 그냥 '서방님' 이라고 부르라고요.... 그래놓고 아니라고 하시면 난 어떻해요? 글구 얼마나 술을 드셨으면 제가 자는 방으로 오셔서 그냥 나가 떨어지듯 잠을 자시구선!"
그러고 보니 소파가 아닌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잠을 자고 일어나 이쪽으로 다시 들어와 다시 잠든 것 같았는데.... 글구 자기는 어디에도 없던데!"
"제가 보고 있어도 없는 것처럼 막 그래놓고 선요!"
"아, 그랬어? 미안해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술을 안 먹었다가 어제 조금 먹은 것 같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당신을 ... 근데 머리가 아프네! 뭐 좋은 방법 없을까?"
"그럴 줄 알고 해장국 끓여 놨죠. 어서 나와 드시와요!"
"이제 이곳 사람 다 되었네요! 해장국도 알고...."
아침을 거나하게 들었다. 모처럼 술도 그러하거니와 어릴 때 우시장에 아버지를 따라가서 먹어 보았던 그 맛이 우러나왔다.
"제법 할 줄 아네!"
"이곳 음식 잘 만들면 합격인가요?"
"합격? 무슨....?"
"이젠 저를 아내로 삼으실 거냐고요?"
"이제는 '아내'라는 단어까지 사용할 줄 아는 것을 보니 여기 사람 같네요."
"달리 더 필요한 것이 있나요? 여퍈네니 남정네니 하는 말까지 사용하면 그 땐 할망구 되는 거 아닌가요?"
더는 할 말을 잊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내가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에 우선 감사해야 한다. 이토록 다른 사람은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장벽을 넘어서 갖는 사랑!
그 사랑은 아주 진기하고 보배로운 것일 것이다. 나는 그녀를 내 아내로 정하였다. 이미 정해 놓고선 다시금 확인한 것이다.
자야! 사랑한다!"
그녀는 눈시울을 적시며 내 품으로 들어왔다.
고향 나들이
오늘은 휴일!
기분 좋은 만큼 날씨가 아주 화창하였다.
'내장산에는 단풍이 얼마나 달려 있을까? 아직 고울까?'
늦은 아침을 먹고 나자 빛나는 날씨가 집 안에서 자꾸 끄집어내려는 것이었다.
"어디 나들이 좀 해 볼까?"
"차가 많이 다니지 않을까요?"
"글쎄! 그냥 나가보지 뭐!"
그러면서 마음은 어디로 갈지 결정하였다.
지난번 추석 때는 고향에 다녀오는 대신 회사에서 급하게 벌여놓은 일로 연일 근무한 덕에 연휴도 부모님도 잊고 있었다. 늘 혼자 있었고 답답하리만큼 나를 닫고 살았던 까닭에 이번에도 그렇게 보냈고 그녀에게 아무 말도 못 하였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는 말에 방 안으로 들어가 보따리를 하나 꺼내왔다. 지난 번 시장에 갔을 때 나 몰래 준비해 두었다고 했다.
'할 줄 아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차들이 질주하는 사이로 아침 햇살이 그녀의 손등에 내려 앉았다.
그녀의 손이 따스했다.
'''''머지않아 곧 겨울이 오겠지!
찬 바람이 불면 여러기지로 번거로웠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이들이 대체로 겨울보다는 여름을 좋아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겨울이 다가오면 날씨가 추워지는데도 집 짓는 일을 하지 않는다. 늘 기거한던 곳에서 조금 추위 가리개를 하고 그냥 사는 것이 추위와 싸워가며 집을 짓고자 노력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이 깊어가면 추위를 막는 일을 해야 한다.
여유가 있다면야 여름 동네에 별장 하나 지어 놓고 세월 잡는 일이나 즐기고 있으면 되겠지만 박봉의 월급장이는 추워도 일을 해야 했다.
"이맘 때 쯤이면 가을 걷이는 거의 끝났겠지!"
"가을 거지요?"
"응, 겨우살이를 위한 농사일 말이야!"
"부모님이 농사일을 하셔요? 연세가 얼마이신데요?
"아직 정정하셔! 더군다나 요즘은 농기계가 있어서 노인들도 일하기가 수월하고 또 젊은 이들이 귀한 탓에 손수 농사일을 하셔!"
"그럼 낭군님 집에는 바빠서 못 오신 거예요? 농사일 하시느라고요?"
"그럴 수도 있지만 원래 나들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특히 도회지는 번거롭고 집 찾기 어렵다고 나들이를 잘 안하셔! 더군다나 잘 있겠거니하고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며 걱정도 안하고 계신 것 같아!"
"부모님께서 참 편리한 사고를 하고 계시네요! 제가 살던 곳 사람들이 거의 그래요. '무사 태평주의'지요!"
"그곳에는 그래도 삶의 평준화가 되어 있어서 범죄라든가 그런 것은 없겠지?"
"그렇긴 하죠! 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는 거잖아요? 스스로가 늘 주의하며 살아야죠!"
이야기 하는 동안 고향집에 거의 당도하였다. 앙상한 대추나무에 철지난 대추가 아직 매달려 마른 젖을 빨고 있었다. 감 나무에는 눈알이 빨갛도록 첫눈을 기다리는 감들이 빼곡히 매달려 있는 모습들이 정겹게 보였다.
울긋불긋한 낙엽들은 반쯤 땅바닥에 눕거나 기어다니고 있고 반은 아직도 나무에 매달려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땅이 보이니 참 좋으네요! 나무들도 우람하고요!"
그녀가 좋아하는 표정을 보니 잘 데리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이라는것은 이래서 좋은가 보다. 내 마음도 푸근해져 오고 있었다.
편안한 이불을 덮고 달콤한 잠에 들어 기쁜 꿈을 꾸는 느낌!..... 아련한 그리움이 그녀의 얼굴에도 묻어 있는 이 평온감! 고향에 나를 기대고 있는 아늑함....!
"도심과는 다르게 이곳은 온실 농장처럼 보이기도 해요. 아주 커다란 농장요!"
"미래에서는 그렇게 흙을 밟는 일이 드문가 보네!"
"그렇죠 모든 것이 도시화 되고 도시국가를 향성하고 있어서 흙은 구경하기가 어렵답니다."
"저쪽 모퉁이를 돌아가면 우리 부모님이 사시는 집이 있어! 커다란 감나무가 있고 돼지도 한 마리, 소도 두 마리 글구 잘 짖어대는 멍멍이도 한 마리 있어요."
모퉁이를 돌아가자 우리를 보고 짖어대는 녀석이 보였다. 꼬리를 흔들지 않고 짖는 것을 보니 낯설은 모양었다.
"여기 개는 주인을 보고도 짖나요?"
"아닐 거야! 차를 처음 본 촌개라서 그럴 거야!"
내가 내려서 다가도 짖어댔다.
"이눔이 진짜 날 모르는가 보네!"
"얼마나 짐에 안 다녀 가셨음 개가 쥔보구 짖어요?
그녀의 핀잔이 날아왔다."
그 핀잔은 다시 개에게로 날아갔다.
"이리와봐, 너! 대가리 만져줄께!"
욕을 할 수도 없고....
나는 다가가서 손으로 개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제야 밥 주는 주인과 냄새가 같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꼬리를슬슬 흔들며 몸을 뒤로 뺐다.
"이렇게 개가 짖으면 나와 보실 것이지 꼼짝도 안 하시네그려!"
"부모님이 연로하시니 그렇겠죠, 우리가 얼른 들어가 보기로 해요. 어서요!"
그녀는 트렁크에서 선물을 한아름 안고는 나를 앞장세워 집안으로 들어섰다.
"개가 짖었는디 누가 온겨 아녀?"
하다가 나를 보시더니
"이게 누구여? 막내 너 연산이 아녀?"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며 연락을 안 드리고 들이 닥친 우릴 보고 어머님이 버선발로 내려 오셨다.
"글구 이렇게 예쁜 색시는 누구여? 지난 번 추석때도 아무 냄새도 안 피우던 니가 갑자기 색시하고 웬일이여?"
"그냥 와 봤어요."
"어머남 안녕하셔요? 아버님두요?"
그녀는 살갑게 다가가서 두 노인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지극정성을 다하는 효부마냥 어머니와 깊은 포옹까지 하였다.
'좀 할줄 아네!'
나는 그녀의 행동을 보고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인간성을 상실한 동네에서 왔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나와 마주치자 눈빛을 보내왔다.
'이곳에서는 정답고 살가운 것이 가장 좋은 표현이라고 배웠어요!'
'어쨌든 부모님이 저렇게 좋아하시니...!'
"언제 이렇게 참한 색실 구한겨, 워디서?"
노친네는 살가운 충청도 사투리를 쓰며 좋아하셨다.
"엄마, 제가 좀 하잖아요! 그러니 복이 제발로 굴러온 거에요. 그렇게 아세요!"
"여하간 만나자마자 이런 이야기 해서는 안 될른지 모르지만 더 두고 볼거 없다. 색시 맘 변하기 전에 어서 결혼 부터 시켜야 겠구나!"
"어머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우리 서로 좋아하는 맘 있을 때 더 사랑해야 겠죠? 그럴려면 우리 결혼 허락해 주세요. 어머니?"
그녀가 바라던 결혼 승낙이 오히려 어머니의 입에서 먼저 나오자 그녀는 신이 났는지 애교를 부렸다.
"우선 어머니 저희 절 부터 받으세요!"
며느리 될 색시가 시원스럽고 또 사랑스럽게 보였는지 어머니도 덩달아 신이 났다.
"저 녀석 언제 장가보내나 했더니 제 색시 지가 데리고 왔구먼!"
"어머님 아버님, 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엄마는 그녀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 오셨다.
"색시 고향은 어디여? 부모님은 두 분 다 계시고? 형제들은 몇인겨? 저렇게 이쁜 색시를 어떨게 만났어? 지금 혹시 한 집에 사는 것은 아녀? 가정교육은 잘 받았는것 같구먼! 절에는 나간 대?"
"엄마 가서 주방에 뭐 부족한 거 없나 살펴줘 봐요. 그리고 앞으로 맘 편한 며느리 만들려면 직접 물어 보시면서 잘 다독여 봐요. 그래야 정이 들죠!"
"그럴까! 그렇게 물어봐도 괜찮컸니?"
내심 걱정도 되었다. 혹시 엄마가 놀라 기절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걱정도 되었으나 그동안 대화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걱정을 안 해도 되려니 싶었다.
설령 사실대로 미래에서 왔고 초능력자 못지않은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믿기나 하실까만 아무래도 별일 없었으면....
어머니가 주방으로 나가시고 얼마 후 무슨 이야기가 둘 사이에 오고 갔는지 모르지만 연신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둘다 즐거운 것으로 봐서는 아마 내 흉을 보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고부간에 웃음이 흘러나오니 내 흉을 보더라도 그녀가 잘 답변하고 있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고 갈껴?"
"네, 어머니! 제가 좋아하는 사람 고향에 왔으니 어머님하고 함께 하룻밤은 지내야죠!"
"기특하구나! 내 아들은 추석 때고 명절 때고 와도 친구들 만난다고 집에서 밥도 안먹고 돌아치더니 아가야 네 덕에 내 아들 이제 철이 들었음 좋겠구나!"
"아니예요 어머니! 그이는 밖에서 아주 모법생이예요! 안 그러면 제가 결혼하자고 졸라서 여기까지 왔겠어요?"
"그래? 그렇다면 좋지만서두!"
"어머니,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자식이 부모님 맘에 쏙 들기가 쉽지 않은가봐요! 저렇게 모범생도 집에 오면 다 불효자 같다니까요. 어머니!"
"그렇다면 이중 인격자 아녀? 쟈가?....!"
"에이 엄마두 참! 칭찬할 땐 그냥 모르는 척 고개나 끄떡끄떡 하시고 잠자코 계셔두 돼요."
"아가야 방에 불 올려 놨으니 깊은 밤 편안하게 쉬고 가려부나. 얘야!"
"엄마 나 내일 회사에 일찍 나가야 되는 데요?"
"내일은 그냥 좀 늦게 가거라. 네 색시도 왔는데 그리고 그깟 회사야 결근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녀? 암말 말고 늦잠자도 되야! 농사짓는 일도 아닌걸 가지구!"
어머니의 말씀에 그녀는 흐믓한지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보내왔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뭐~얼! 얼른 건너가서 편히 셔야!"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떴다.
창호지 너머로 찬란하게 비추는 밤하늘 별들.....
"저 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그곳에서도 별이 많이 보이나?"
"네, 아주 많이 요! 여기는 도심에서는 안 보이지만 제가 있었던 곳에서는 도심에서도 별이 아주 많이 보인답니다."
그녀는 별을 헤던 입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더 옹알 거렸다.
"아까 어머님 말씀 들으셨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말을 돌렸다.
"근데 무슨 말을 했길래 엄마가 그렇게 좋아라 하신겨?"
"별거 아녀요. 고향이 어디냐고 말씀 하시기에 조상님 이야기를 좀 해드렸죠."
"조상님....?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할아버지가 일제 시대에 이완용 집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해방 전에 매국노를 해치울 생각으로 주먹을 들이 대셨다고 했다. 총으로 쏴서 잡아야 하는데 총을 살 돈이 없어 주먹으로 때려 잡으려고 했다가 일본 놈 순사한테 잡혀가 고문 끝에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어린 아버지를 데리고 만주로 도주하셨는데 말을 구하지 못해 고생고생 하시다가 이듬해 해방을 맞이하였다고 했다.
해방이 되자 그래도 고국이 좋다며 들어온 곳이 평양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일성 장군이 통치한다기에 좋아했는데 만주 벌판에서 보았던 김일성 장군이 아니고 새파란 놈이 들어와 김일성 장군 입네! 하기에 남쪽으로 내려 오기로 결심하셨대요.
그 길로 '내가 살던 한양이 좋지!' 하며 개성까지 내려오셨는데 길에서 남로당 박헌영이 지프차를 타고 지나가기에 세웠더니 태워주지 않아 철조망 쳐진 휴전선을 넘다가 다쳐 그때 아버지가 할머니를 업고 내려 오시는데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할머님은 다치신 와중에도 괜히 만주까지 도망갔다고 후회하셨다고 했더니 듣고 계시던 어머니가 '슬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쩌냐? 네 말이 재밌으니!' 하시면서 연신 웃으셨다고 했다.
그 후 한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수 년동안 고생고생 하시다가 부잣집 머슴 자리를 얻으셨고 그 곳에 오래 계시다가 운이 좋아 그 집 외동딸을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 다음 해에 저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어머니께 해드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어머님께 거짓말을 해드려 미안하다는 말을 내게 덧붙였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나를 바라보더니 옆으로 바짝 다가와서 내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잘 했죠? 글구 부모님이 어디 계시냐고 말씀하실까봐서 아버지가 머슴 살던 일이 제게 누가 될까봐 어머님 하구 미국으로 이민 가셨다고 둘러댔죠. 뭐!
"참! 그럼, 생각 난 김에 자기 신분증하나 만들자!"
내 말이 끝나자 그녀는
"이런거요?"
하면사 그녀는 자기가 살던 곳에서 사용하는 신분증을 보여 주려고 했는지 내 오른 손으로 자기의 오른 쪽 손목을 쥐어 보라고 하였다.
"암것두 전달이 안 되는데!"
"자기한테는 감응 장치가 없어서 그래요. 다시 한번요."
이번에는 자기 손바닥을 펴서 내 손바닥에 겹쳤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에서 내 손바닥 안으로 무엇인가 들어오는 느낌이 있었다.
"느껴져요?"
"글쎄....!"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해요. 자긴 이 밤이 아깝지 않아요? 어머님이 옆에서 우리의 사랑을 염원하고 계신 이 아름다운 밤을요!"
그녀는 그동안 오늘을 기대하고 또 벼르고 별러서 맞이한 순간처럼 이부자리 안으로 들어왔다. 자기를 안아주기를 고대하고 있던 그녀의 살결이 다리 위로 감아 올라오자 순간 내 심장은 그녀보다 더 뜨거워 졌다.
"서방님, 오늘은 제가 서방님 것이 아니고 서방님이 제꺼에요. 그러니 제가 하는대로 얌전히 계셔야 해요, 아까 어머님 말씀 들으셨죠? 아까 어머님이 저희 결혼 승낙하셨고요. 간접적으로 오늘 저한테 서방님을 인수인계 하신 거라고요. 이제는 이집 아드님이 아니고 진하유림의 서방님인 거예요. 그러니 이렇게 한 방에 같이 넣으셨잖아요. 아시겠어요?"
그녀는 엄포를 놓듯 말하였다.
"어머님은 제 마음을 다 알고 계신 거예요!"
내가 가만히 있자 그녀는 연신 재잘거렸다. 그녀가 어떻게 하든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내가 지꺼라고 꼼짝마라 하니....
불이 꺼졌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 저절로 꺼지진 않았겠지만 불은 꺼져 있었다. 그녀의 벗어 놓은 옷에서 아름다운 교향곡이 흘러나왔다. 오늘 밤 같으면 전원교향곡이라 일컬을 환상의 아리아! 아니면 남자를 사랑해서 얻은 승리의 월계관 같은 교향곡일까?
미래에서 날아온 교향곡은 짜임새가 달랐다. 음악에 맞추어 왈츠를 추는 것이 아니라 춤에 따라 음악이 흘렀다. 그 격렬한 요동은 한동안 계속 되었다.
뽀얗고 하얀 살결!
난생 처음 깊게 안아보는 여인의 허리,
어머니 품처럼 향기로운 살 내음! 아~아! 손끝에서 만나는 형용키 어려운 감촉!
유선을 따라 손이 제멋대로 그녀를 헤집고 다녔다. 감탄사처럼 흘러나오는 멜로디!
둘은 어느새 누가 뭐랄 것 없이 하나가 되었다. 벌써 저 만치 나동그라 있는 속옷들도 그녀의 입김에 편승한지 오래였다.
땀이 가슴에서 골 깊은 그녀의 두 다리사이로 흘러내렸다.
나는 지금 이승이 아닌 천상에 올라가 있었다. 구름을 밟고 무지개를 타고 있는 이 유화감!
신의 경지 일까?
신선들의 유희일까?
'아니면 선남 선녀가 누리는 최고의 선물일까?
심장은 더욱 뜨겁게 요동쳤다. 이왕... 부모님께서 허락하신 밤, 그 윤허를 득한 날에 더 이상 두려울 것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뜨거운 밤을 곁에 두고 싶으셨던 부모님! 그 마음을 울리고자 밤빛마저 뻘갛게 흐르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시간이 요동치고 있었다.
아주 오래 된 시간이 산을 넘고 또 깊은 계곡으로 흘렀다.
그녀보다 나를 도난당한 육신이 그녀를 몇번이나 불러 세웠다.
밤이 붉은 색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이 밤이 다 흘러간 다음 날 새벽에서 였다.
여명이 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머니! 편히 주무셨어요?"
"벌써 일어났니? 더 자지 않구!"
"괜찮아요 어머니 글구 어머니 집에서 잔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인 줄 몰랐어요. 진작에 올 것 그랬어요, 어머니 고마워요!"
그러면서 그녀는 어머니의 허리를 살짝 안고 속삮였다.
"어머니 자주 들를게요."
"참 기특한지고!"
우리가 가고 난 다음 어머니는 아버지 귀에 대고 작게 말씀하셨다.
"며느리가 보통이 아닌가봐요. 어쩜 저렇게 여우짓을 하는지. 지 귀염은 지가 받는 거 아니겠요. 영감!"
"귀염받을 짓 하면 좋지 그게 복 아녀?"
별로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도 미소를 지으셨다.
여하튼 그녀가 잘 해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이젠 그녀가 아니라 내 여인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연신 잠 속으로 빠져드는 그녀.....
내 아내를 깨울 생각은 없었다. 어젯밤엔 나의 날이었던 것처럼 그녀가 나를 사랑해 줬으니까!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며 달리는 차 창에 앉았다가 도로 날아갔다.
그녀가 보았다면 사랑의 감정을 얹어 아마 우리를 축복해 주는 축포라고 표현하였으리라!
.... 그렇게 나도 시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쁨이 가슴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잠들어 있는 아내의 표정을 바라다 보았다.
아! 그 미소!
입은 흐트러지지 않았으나 그렇게 미소 지으며 잠들어 있었다.
아직 어제의 잠 속에 있는 것처럼....!
나를 믿는 그녀.... 행복이 넘치도록 사랑하리라.....!
새로운 변화
오늘은 여기까지.....
-하늘 바보-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