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천도문제로 일어난 묘청의 난 묘청은 서경천도가 김부식의 개경파들에 의해 무산되니까 국호를 대위국이라 선포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그러나 김부식의 토벌군과 대치하는 와중에 부장 조광에 의해 살해되면서 묘청의 난은 주동자인 묘청의 죽음으로 수포로 돌아간 것이나 다를바 없지요
묘청을 살해한 조광은 부하 윤첨을 보내어 투항 의사를 밝혔지만 그러나 인종과 문공인이 윤첨을 투옥시키면서 조광은 투항을 철회하여 다시 반란하여 저항하다 결국 서경 함락으로 스스로 목숨 끊었던 것이지요
그럼으로 묘청의 난이라고 하는 이 사건의 기존 명칭도 주동자인 묘청에서 조광으로 바뀐 사건의 전체적인 전개 팩트와 맞지 않은 면모들이 많아서 묘청의 난보다는 묘청.조광의 난 즉 함축하여 묘.조의 난이라는 명칭을 삼을게 어떨까요
묘청의 난이라고 표현해서는 난 마지막까지 주동자였던 조광의 주도 사실과 어긋난 감이 있기에 묘.조의 난이라고 부르는게 낫지 않을까요
첫댓글 묘청은 고려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인물이지만, 조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광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항한 것이라서, 난을 일으키려는 의지도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도 없었습니다. 조광은 묘청이 죽고 난 후에 잠시 저항했다고, 묘청과 동일선상에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동조하여 묘청의 거병에 같이 한 것도 조광 아닌가요 묘청과 같이 봉기했지만 묘청을 배신하고 살해하여 개경 정부에 투항하려고 하다가 조광이 보낸 사자 윤첨이 투옥되는 사건으로 인해 조광이 그로 인해 다시 반란 일으킨 것이지요 조광이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가 없든 간에 당시 서경 반란의 막바지 주체로 활동한건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기에 조광을 호의적으로 평가하자는게 아니라 조광이 반란 수괴로 활동한 객관적인 팩트하에서 그렇게 사건의 제목을 정하자는 것이지요 조광은 자신을 회유하러온 황문상 등 인종의 칙사들을 죽이고 심지어 자신을 설득하려온 심복 윤첨까지도 살해할 정도로 반란 의지가 확고했던 인물로 서경성이 함락당할때까지 끝까지 저항한 인물이지요
조광의 반란을 진압한 김부식은 조광 난을 초래한 윤첨 투옥을 주도했던 문공인과 한유충을 그 이유로 제거했지만 문공인과 한유충은 묘청의 서경천도를 같이 추진했던 인물이라 김부식에게 같은 묘청 일파로 여겨질수밖에 없었지요
@공실불 당나라 안록산-사사명의 난의 경우가 이런 경우에 좋은 해답이 될 것 같습니다. 안록산의 난에 못지 않게 사사명의 난이 몇년간 지속되고 당나라에 미친 파장이 컸기 때문에, 안록산의 난, 사사명의 난, 또는 안사의 난이 함께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광의 경우는 묘청이 죽은 후 1년 2개월간 맞서 싸우기는 했지만, 사사명처럼 당나라에 영향을 끼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묘청-조광의 난, 묘조의 난 이렇게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