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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토론방 묘청의 난을 묘.조의 난 묘청. 조광의 난이라고 불러야 정확하지 않을까요
공실불 추천 0 조회 139 22.09.22 15:30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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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09.22 22:27

    첫댓글 묘청은 고려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인물이지만, 조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광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항한 것이라서, 난을 일으키려는 의지도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도 없었습니다. 조광은 묘청이 죽고 난 후에 잠시 저항했다고, 묘청과 동일선상에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 작성자 22.09.22 21:50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에 동조하여 묘청의 거병에 같이 한 것도 조광 아닌가요 묘청과 같이 봉기했지만 묘청을 배신하고 살해하여 개경 정부에 투항하려고 하다가 조광이 보낸 사자 윤첨이 투옥되는 사건으로 인해 조광이 그로 인해 다시 반란 일으킨 것이지요 조광이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가 없든 간에 당시 서경 반란의 막바지 주체로 활동한건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기에 조광을 호의적으로 평가하자는게 아니라 조광이 반란 수괴로 활동한 객관적인 팩트하에서 그렇게 사건의 제목을 정하자는 것이지요 조광은 자신을 회유하러온 황문상 등 인종의 칙사들을 죽이고 심지어 자신을 설득하려온 심복 윤첨까지도 살해할 정도로 반란 의지가 확고했던 인물로 서경성이 함락당할때까지 끝까지 저항한 인물이지요

    조광의 반란을 진압한 김부식은 조광 난을 초래한 윤첨 투옥을 주도했던 문공인과 한유충을 그 이유로 제거했지만 문공인과 한유충은 묘청의 서경천도를 같이 추진했던 인물이라 김부식에게 같은 묘청 일파로 여겨질수밖에 없었지요

  • 22.09.22 22:38

    @공실불 당나라 안록산-사사명의 난의 경우가 이런 경우에 좋은 해답이 될 것 같습니다. 안록산의 난에 못지 않게 사사명의 난이 몇년간 지속되고 당나라에 미친 파장이 컸기 때문에, 안록산의 난, 사사명의 난, 또는 안사의 난이 함께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광의 경우는 묘청이 죽은 후 1년 2개월간 맞서 싸우기는 했지만, 사사명처럼 당나라에 영향을 끼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묘청-조광의 난, 묘조의 난 이렇게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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