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권혁재
8월답습니다.
더워도 어찌 이리 더울 수 있을까요?
찜통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더위 덕분에 안동 병산서원이 떠올랐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병산서원의 배롱나무가 떠오른 겁니다.
무더워야 비로소 배롱나무꽃이 피니까요.
그리하여 꽃은 여름 내내 피고 지고 또 피길 거듭합니다.
그렇게 100여 일 꽃이 피니 목백일홍으로 불립니다.
병산서원엔 오래된 배롱나무가 여럿 있습니다.
2008년 안동시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380년이라고 했으니 어림잡아 395년은 족히 된 거죠.
이렇듯 395년 병산서원과 숨결을 같이한 배롱나무,
그것의 꽃이 찜통더위에 떠오른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땡볕에 꽃 타령은 과하지 않냐고요?
사실 병산서원은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미술사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이자 한국 건축사의 백미다’고 했습니다.
서원이 주변 낙동강, 병산과 어우러져 조화롭기 그지없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이렇듯 우리 서원의 백미인 병산서원,
서원과 숨결을 함께한 배롱나무의 백미인 꽃을 본다는 건
어쩌면 병산서원의 백미를 보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 제아무리 무더워도 가서 보리라 작정한 겁니다.
낙동강 변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병산서원이 나타납니다.
앞뜰에 그리 오래되지 않은 배롱나무가 꽃을 틔운 채 줄지어 섰습니다.
줄 선 나무 뒤 먼발치,
울긋불긋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보고자 했던 그 나무들입니다.
배롱나무들은 병산서원의 제향 영역에 있습니다.
사당인 존덕사로 들어가는 내삼문을 호위하듯 고고하게 섰습니다.
붉디붉은 채로 말입니다.
향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입구와 담벼락을 한껏 에워싼 배롱나무도 있습니다.
여느 나무보다 더 붉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속이 빈 고목도 꽃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무는 속 빈 채로도 여름내 꽃을 틔울 겁니다.
전사청 출입문 기와엔 진 꽃이 벌써 수북합니다.
진 채 그대로 기와에 다시금 꽃 핀 듯합니다.
강학 공간의 중심인 입교당으로 들었습니다.
입교당 창을 통해 배롱나무들이 보입니다.
약 400여 년간 보였을,
창마다 맺힌 풍경을 넑 놓고 바라봤습니다.
입교당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만대루가 보입니다.
그런데 만대루보다 입교당 바로 앞 물확에 먼저 눈이 갔습니다.
누군가가 꽃을 뿌려 둔 겁니다.
이렇듯 물확에도 꽃이 소담하게 폈습니다.
만대루 앞에 섰습니다.
아쉽게도 오를 수 없었습니다.
만대루 보호를 위해 출입을 막은 터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만대루를 통해 품는 낙동강과 병산의 풍광은 그 무엇보다 수려합니다.
그 수려한 풍광을 보지 못하니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만대루에 못 오르는 대신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서재에 올랐습니다.
휴대폰을 셀카봉에 연결해 손을 위로 한껏 뻗은 채 셔터를 눌렀습니다.
휴대폰 액정에 만대루에서나 봄직한 풍경이 맺혔습니다.
그 안에 한껏 붉은 배롱나무꽃도 맺혔습니다.
이 꽃은 만대루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광영지의 배롱나무꽃입니다.
만대루 밑으로 난 길을 통해 광영지로 갔습니다.
딱 한 그루 배롱나무가 고고하게 섰습니다.
병산서원의 배롱나무는 이렇듯 과하지 않습니다.
있을 곳에만 고고하게 터 잡은 모양새입니다.
이 또한 조화로움이겠죠.
물에 떨어진 꽃에 눈길이 갔습니다.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숙였습니다.
순간 땀방울이 물에 톡 떨어졌습니다.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렇게 꽃과 물이 어우러졌습니다.
이 또한 무더위 덕분입니다.
독자 여러분! 무더위 슬기롭게 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