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820EE194A743CF199)
[다시 찾은 제주올레 11] 2009년 5월 14일
걷기도 자꾸 하면 는다. 이번에 제주올레를 걸으면서 실감했다. 지난 겨울 제주올레를 걸을 때는 온종일 걷고 나면 다리가 묵지근해 저녁이면 꼼짝하기 싫었다. 숙소를 정해놓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갈 때면 다리를 질질 끌고 걷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물론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도 아팠지만 지난 겨울처럼 심하지 않았다. 발에 물집이 잡히지도 않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걷기에 익숙해졌다, 는 생각이 든다.
우도, 하면 가장 먼저 무덤 위에 잔뜩 피어났던 노란 민들레가 떠오른다. 그게 가장 인상 깊었기 때문인가 보다. 우도에 다시 간다면 가장 먼저 죽은 자들의 마을에 피어났던 민들레를 보러 가고 싶을 것 같다.
4시에 우도를 떠난 배는 이십 분쯤 지나 성산포항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다시 걸어야겠지. 성산포항에서 제주올레 코스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여기, 제주올레 1코스다. 제주올레 1코스는 시흥리부터 시작해서 광치기 해안에서 끝난다. 지난 겨울에 걸었던 길이지만 다시 걷는 느낌 아주 좋다. 낯익은 익숙한 길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성산오일시장 앞을 지난다. 장날이 아니라 시장은 텅 비어 있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 와서 오일장을 만난 적이 없다. 장날 장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한데, 좀 아쉽다. 제주의 장은 다른 지역의 장과 어떻게 다른 지 비교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듯 한데 말이다.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오겠지.
성산일출봉이 앞을 지난다. 결혼 15주년 때였다. 당시 중학생이던 아이까지 데리고 세 식구가 3박4일 일정으로 제주여행을 왔다가 성산일출봉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부터 일어나 설쳤다. 일출봉까지 헉헉거리면서 올라갔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흐릿한 하늘 덕분에 해가 언제 떴는지 알 수 없었고,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던지 바람만 잔뜩 맞고 왔다. 성산일출봉을 보면 늘 그 생각이 난다.
동암사를 지나 수마포 해변으로 간다. 가는 길에 누런 개 한 마리를 만났다. 이 노마, 사람이 지나가도 짖지 않고 관심조차 없다. 걷다보면 가끔은 사람들보다 개를 더 많이 만날 때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개. 누렁이, 흰둥이, 검둥이, 얼룩이... 털 색깔이나 모양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녀석들의 행태도 가지각색이다. 목청껏 짖어대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몇 번 컹컹거리다가 마는 녀석도 있고, 눈만 멀뚱히 뜨고 쳐다보는 녀석도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1E53194A743D0462)
어떤 녀석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고, 어떤 녀석은 땅바닥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기도 했다. 어떤 녀석은 반갑다고 혀를 날름거리면서 달려들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오래 따라오기도 했다.
처음에 걸을 때는 개가 무서웠다. 컹컹 짖는 소리도 반갑지 않았고. 하지만 걷다보니 그것도 익숙해지는가 보다. 반갑다고 꼬리를 치고 달려드는 녀석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컹컹 목청껏 짖는 녀석에게는 손을 흔들어주게도 되었다.
수마포 해변의 모래밭을 걷는다. 파도가 해변에 몰려왔다가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검은 빛이 감도는 모래밭에 발자국이 남는다. 하지만 파도가 한 번 몰려와 모래밭을 휩쓸면 내가 걸었던 흔적은 깨끗이 사라진다. 지나간 흔적이 남지 않기에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딜 가든 흔적을 남긴다면 쉽게 길을 떠나지 못했으리라.
삶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굳이 흔적을 남기고, 큰 족적을 남기려 노력하면서 산들 무엇이 달라질까, 싶다.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가면 그게 가장 좋은 것이 아닐지.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싶다. 모래밭을 걷다가 가끔 뒤를 돌아본다. 나를 따라오는 발자국들. 내일이면 저 발자국은 지워지고, 다른 사람들이 제 무게만큼 발자국을 남기겠지. 그리고 그것 또한 지워질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이 저 길을 걷겠지.
태양의 기세가 한풀 꺾이니 하늘이 점점 어두워진다. 바다 위에 조금씩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다. 해변 옆의 풀밭에서 망아지 한 마리를 보았다. 어린 말은 자유로워 보인다. 풀을 뜯는 모습에서 어린 티가 뚝뚝 배어난다. 귀엽다.
광치기 해안에서 말 두 마리를 보았다. 이곳에서는 말타기 체험을 할 수 있지만, 말을 타러 온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말은 등에 안장대신 담요 접은 것을 얹었다. 말들은 사람을 태우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한없이 순해 보이는 말 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말은 유난히 영리한 동물이라던데...
광치기 해안을 지나 길 위로 나오니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밭을 만난다. 하늘 위에 붉은 기운이 띠처럼 번져 있는 것이 보인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가 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3B0F194A743D168F)
저수지 길을 따라 걷는다. 물은 푸른 이끼 같은 것으로 덮여 있다. 목선이 여러 척 떠 있고. 말 한 마리가 묶인 채 풀을 뜯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방조제를 지나 길은 이어진다. 식산봉 가는 길에 또 말을 만났다. 짙은 밤색인데 어깨와 엉덩이 부분은 검은 색에 가깝다. 사람이 지나가도 쳐다보지도 않고 풀을 뜯는다.
식산봉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 계단이다. 거친 숨을 내쉬고 땀을 흘리면서 올라가니 나무로 만든 길이다. 나무의자가 있는 쉼터에 도착에 숨을 고른다. 여섯 시 반. 하늘은 석양빛으로 물들었다. 식산봉에서 내려가면 오조리 마을길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기로 한다.
황금빛 금계국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길을 지나 오조리의 선레이크 빌 펜션 앞에 다다랐다. 지난 겨울, 이 집에 하룻밤을 잤다. 이 집, 시설 깔끔하고 좋은 편이다. 숙박비가 게스트하우스나 모텔에 비해 많이 비싸다는 흠이 있지만.
오늘은 이 집에 잘 생각이 없다. 표선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표선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은 남원까지 걸을 생각이다. 버스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 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31AE194A743D3651)
![](https://t1.daumcdn.net/cfile/cafe/173542174A743D47BF)
![](https://t1.daumcdn.net/cfile/cafe/163169174A743D55A8)
![](https://t1.daumcdn.net/cfile/cafe/125EE8164A743D65E4)
![](https://t1.daumcdn.net/cfile/cafe/174E6F174A743D7672)
![](https://t1.daumcdn.net/cfile/cafe/152AEF174A74401E8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