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 격동기
전반기 (2부)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후 꿈의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형들이 군대 입대로 비워둔 농촌집을 지키며 부모님의 농사일을 2년간 도우며 살았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5년 만에 6.25 전쟁이 발생하여 이 전쟁으로 희생된 자, 건물이 잿더미로, 산천이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지고 캄캄하고 슬픈 죽은 소식, 부상하고 아픈 이야기, 행불 소식 등 암울한 이야기만 들려오는 때에, 열여섯 어린 소년은 결심한다.
1957년 봄, 6.25 전쟁 종전 후 북한군의 잔병을 소탕하기 위하여 지리산에 파병되어 공비들을 소탕 후 군산경찰서에 발령받아 근무하는 셋째 형님에게로 개나리봇짐 지고 새벽하늘을 가르며 시골 울진에서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다섯 시간 달려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경부선 상행 열차에 바꿔타고 두 시간을 달려 대전역에 도착, 이곳에서 또 호남선 열차에 바꿔 오른다. 약 두 시간 달려 익산역에 도착하면 거기서 또 군산행 열차에 바꿔 오른다. 저녁 8시쯤 군산에 도착, 아침 5시 버스에 올라탄 소년, 저녁 8시에 군산에 도착, 그나마도 부모님이 아닌 형님 형수가 살고 계시는 전세방에 발을 들여놓고 봇짐을 내려놓는다.
구 군산역 앞 장재동 만월 고무공장 골목에 방 두 칸짜리 전셋집, 형님 내외와 돌이 갓 지난 조카가 살고 있었다. 고향 산천이 그립고 부모 형제 친구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형님의 경찰관 봉급으로는 네 식구의 먹고사는 일에 여념할 뿐 나의 꿈인 고교 진학이 이뤄질 수 없음을 직감한다.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고 캄캄하고 어둡지만 빈손으로 시골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죽을 각오로 무엇이든 해 보려고 결심하며 군산 시립 도서관을 찾아 이런저런 책을 읽고 익혀 가며 감히 보통고시를 목표로 한 2년 도전해 봤으나 내 재주와 형편으로는 도저히 고비를 넘기 어려웠다.
1959년 봄에 나는 결단하였다. 고달프고 장래가 보이지 않는 생활 보다는 차라리 나라가 부르고 스스로가 개척할 수 있는 새로운 길, 군대에 가기로 결심하고 육군에 자진 입대 논산훈련소에 들어간다. 남들은 힘들다며 불평하고 헐떡거리는 훈병 생활, 가난으로 다져진 나는 훈련소 훈련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반기 4주 훈련 마치고 후반기 포병 특수 훈련을 2주 더 받아, 6주 간의 사병 훈련을 마치고 운 좋게도 카투사에 발령이 떨어진다. 경기도 동두천 미 육군 제7보병사단 항공대에서 군대 생활에 안착한다.
미군에서 지급되는 모든 보급품이 아주 고급스럽고 침대도 환경도 모두 모두 시골 우리 집 보다 더욱더 좋았다. 단 하나, 식사는 마음에 안 들고 먹기 힘들며 냄새도 맡기가 싫어 식당 근처에도 가기가 싫었다. 촌놈이 국제화되어가는 첫 번째 과정이리라. 그대로 죽을 수는 없어 달래며 견디며 한 달이 지나니 맨 빵, 주스, 계란 같은 간편한 음식이 눈에 띄어 먹기 시작하여 조금씩 익혀 나갔다.
주말이면 동료들 모두 외박을 허락받아 나간다. 고향이 멀고 시골인 나는 갈 곳이 없어 매일 매시간 미군들과만 친구 하며 놀고 일하고 잠자고를 해 왔다. 태어나 처음 H-19 헬리콥터를 타고 파주, 임진강, 일동 등지의 전선을 돌아보기도 했다. 이런 재미있는 생활 여섯 달 만에 대대 본부서 불러 서무계 조수로 앉힌다. 타자도 배우고 영문을 한글로 한글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서류를 만드는 일 열심히 하면서 일반 하사로까지 진급하게 된다.
1961년 3월 카투사 임기를 마치고 한국 육군에 발령받은 곳이 부산 적기에 자리한 군수기지 사령부 작전계에서 또 다른 군 임무를 시작한다. 두 달 만에 일이 막 익숙해질 무렵 5월 16일 5.16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다. 군수기지 사령관 김용순 준장은 혁명의 주 인물로 부대가 즉시 국가비상사태에 들어간다. 작전업무 담당자는 모든 업무를 국가 비상 체제로 전환한다. 서투르고 잘 모르는 일을 처리하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만 했다. 부산 시내 비상사태의 통행금지 처리 업무는 대단히 크고 광대하여 힘들고 어려웠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만기 제대 날 짜 5월이 훌쩍 지나갔다. 자의 반 타의 반, 제대를 5개월 연장하여 혁명 업무가 대체로 안정된 11월 말에 군대를 만기 제대하고 사회에 첫발을 들어놓았다. (제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