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동 24시
그동안 코로나 여파로 썰렁했던 부산 원도심 거리가 오랜만에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활기를 띠었다. 지난해 12월 24일 남포동 옆 광복로 시티스폿 일대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겨울 빛 트리축제’를 찾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이들은 남포동 골목으로 흘러들었다. 코로나 이전까지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부산성탄트리축제'로 지구촌 관광객을 불러들이면서 흥행을 이어가던 곳이 바로 옛 미화당백화점 앞 이곳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으론 일본과 대만에서 찾아온 이들이 많았고 상인들은 코로나 이전 매출의 80~90%가 회복됐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꽉 막혔던 하늘길이 뚫리면서 부산을 찾는 관광객이 그만큼 늘어난 결과였다. 남포동 방문객 증가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지하철 남포역 하루 평균 승차인원으로 비교하니 유입인구가 빠른 회복세를 보인다고 했다. 한숨짓던 상인들에게 경기가 살아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남포역 7번 출구부터 설치된 빛 시설물에 연인과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 찍기에 매달리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지켜보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남포동 끝자락에 위치한 직장 건물 덕분에 난 젊은 날부터 남포동 거리를 자주 오갈 수 있었다. 남포동 음식점 중엔 6.25가 끝나면서 문을 열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도 몇 군데나 있다. 이런 업소는 출입구에다 60~70년 전통 안내판을 붙여 놓았다.
상술일 수도 있지만 난 이런 음식점에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미각을 잃어 옛 맛을 찾을 순 없지만 함께 드나들었던 이들을 떠올릴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60~70년대에 술집과 카바레까지 성행했던 남포동 골목은 코로나 이전에도 상권이 이미 쇠락해 빈 점포들이 많았다. 70년대부터 부산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서면에 이어 그 뒤 해운대 광안리 등지로 상권이 옮겨갔던 것이다. 그러나 남포동 골목은 옛 모습 그대로다.
남포동 골목에 들어서면 추억여행을 온 기분이 든다. 60년대의 이곳 ‘그늘다방’은 그 위치 때문인지 꽤나 유명했었다. '64도쿄올림픽' 중계를 보고 싶어 다방을 찾으면 한 잔에 150원이나 받는 비싼 커피를 마셔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복싱경기나 마라톤이 열리는 날엔 단골손님 중에서도 자리가 없어 입장을 못해 난리였다. 지금 다방 건물은 3층부터 반쯤 헐리다 만 채로 황성옛터처럼 변해 쓸쓸함을 안겨주고 있다.
"둘이서 걸어가는 남포동의 밤거리…" 사춘기 때 고향에서 들었던 유행가 <항구의 사랑> 도입부다. 동란이 멎었지만 1000일 동안 임시수도로 있었던 부산의 정을 못 잊어 사람들은 노래를 만들고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80년대 들어 일본에서 들어온 가라오케 문화가 가장 먼저 크게 히트한 도시도 부산이었고 그 중심에 남포동이 있었다. 하지만 기초단체에서 애써 펼치는 경기부양책에도 남포동의 옛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