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역 새정연 시·도당 위원장 협의회원들은 지난 8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위한 선거법 개정을 촉구했다. |
내년 총선이 8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천과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완전국민경선제), 야당은 권역별(圈域別)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김무성(金武星) 새누리당 대표는 “정치개혁을 하려면 공천개혁을 해야 하고 정당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라며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정당이 공직선거 후보를 공천할 때 당원 투표나 후보 추천위원회 등을 거치는 것과 달리 국민이 직접 정당 후보를 뽑도록 하는 제도다. 국민들은 정당 소속 여부에 상관없이 경선(競選) 당일 누구나 자신이 속한 선거구에 출마할 후보를 선출하는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문재인(文在寅)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당리당략(黨利黨略)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며,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이 제안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독일식(연동형)이다. 이 제도는 전국을 인구비례에 따라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눈 뒤 권역별로 의석수(지역+비례)를 배정한 다음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지역구와 비례구를 분리해서 의석을 배분하는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일본식)와는 차이가 있다.
문 대표는 최근 빅딜을 통해 오픈 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일괄타결하자고 제안했고, 김 대표는 “국민공천제(오픈 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선거제도는 정치게임의 주요 기본규칙으로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代議)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 준다. 따라서 선거제도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에 따라 대의민주정치가 활성화할 수 있고 반대로 퇴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야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검토와 함께 건설적인 대안(代案)을 모색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따지고 있다. 특히, 새로운 제도의 부작용이나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면서 장점만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는 초과 의석 발생
현재 야당이 주장하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몇 가지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첫째, 의석배분 과정에서 초과 의석(external overhang seats)이 발생해 의원 정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제도에서는 정당이 권역에 배당된 의석수보다 지역구에서 의석을 더 많이 얻으면 그 의석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19대 총선을 기준으로 총 300석(지역구 246명, 비례구 54명)을 이 제도에 적용해 시뮬레이션해 보면 〈표 1〉에서 보듯이 총 24석의 초과 의석이 발생한다.
지난 2월 중앙선관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면서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었다. 19대 총선 당시 총 인구수 5086만8642를 총 의석수 300으로 나눈 값(169,562)을 각 권역의 인구수로 나눠 권역별로 의석을 할당하면 서울 61석(20.2%), 인천·경기·강원 96석(32.1%), 충청 31석(10.2%), 호남·제주 34석(11.5%), 대구·경북 31석(10.2%), 부산·울산·경남 47석(15.7%)으로 배분된다. 그 다음에 무소속 당선인 수와 의석할당 정당 외의 정당 소속 지역구 당선인 수를 뺀 의석을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나누어 의석(지역구+비례대표)을 배분하게 된다.
이 제도 아래서는 개별 권역에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 의석을 결정하고 배분 의석보다 지역구 의석이 많으면 그 초과 의석을 인정한다. 가령, 민주통합당은 서울에서 41.0%의 정당 득표율로 27석을 할당 받았지만 지역구에서 30석을 획득해서 5석의 초과 의석을 얻게 된다.
김무성(金武星) 새누리당 대표는 “정치개혁을 하려면 공천개혁을 해야 하고 정당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라며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정당이 공직선거 후보를 공천할 때 당원 투표나 후보 추천위원회 등을 거치는 것과 달리 국민이 직접 정당 후보를 뽑도록 하는 제도다. 국민들은 정당 소속 여부에 상관없이 경선(競選) 당일 누구나 자신이 속한 선거구에 출마할 후보를 선출하는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문재인(文在寅)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당리당략(黨利黨略)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며,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이 제안하고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독일식(연동형)이다. 이 제도는 전국을 인구비례에 따라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눈 뒤 권역별로 의석수(지역+비례)를 배정한 다음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지역구와 비례구를 분리해서 의석을 배분하는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일본식)와는 차이가 있다.
문 대표는 최근 빅딜을 통해 오픈 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일괄타결하자고 제안했고, 김 대표는 “국민공천제(오픈 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선거제도는 정치게임의 주요 기본규칙으로 민주정치의 핵심인 대의(代議) 과정의 본질을 규정해 준다. 따라서 선거제도가 어떻게 짜여 있느냐에 따라 대의민주정치가 활성화할 수 있고 반대로 퇴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야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검토와 함께 건설적인 대안(代案)을 모색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만을 따지고 있다. 특히, 새로운 제도의 부작용이나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함구하면서 장점만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는 초과 의석 발생
현재 야당이 주장하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몇 가지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첫째, 의석배분 과정에서 초과 의석(external overhang seats)이 발생해 의원 정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제도에서는 정당이 권역에 배당된 의석수보다 지역구에서 의석을 더 많이 얻으면 그 의석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19대 총선을 기준으로 총 300석(지역구 246명, 비례구 54명)을 이 제도에 적용해 시뮬레이션해 보면 〈표 1〉에서 보듯이 총 24석의 초과 의석이 발생한다.
지난 2월 중앙선관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면서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었다. 19대 총선 당시 총 인구수 5086만8642를 총 의석수 300으로 나눈 값(169,562)을 각 권역의 인구수로 나눠 권역별로 의석을 할당하면 서울 61석(20.2%), 인천·경기·강원 96석(32.1%), 충청 31석(10.2%), 호남·제주 34석(11.5%), 대구·경북 31석(10.2%), 부산·울산·경남 47석(15.7%)으로 배분된다. 그 다음에 무소속 당선인 수와 의석할당 정당 외의 정당 소속 지역구 당선인 수를 뺀 의석을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나누어 의석(지역구+비례대표)을 배분하게 된다.
이 제도 아래서는 개별 권역에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 의석을 결정하고 배분 의석보다 지역구 의석이 많으면 그 초과 의석을 인정한다. 가령, 민주통합당은 서울에서 41.0%의 정당 득표율로 27석을 할당 받았지만 지역구에서 30석을 획득해서 5석의 초과 의석을 얻게 된다.
호남·제주에서는 70.8%의 득표로 23석을 배당 받았지만 지역구에서 이미 28명이 당선되어 5석의 초과 의석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10석의 초과 의석을 얻게 된다. 한편, 새누리당은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권역에서 각각 74.5%와 56.3%의 정당 득표율로 23석과 26석을 할당 받았지만 지역구에서 27명과 36명이 당선되어 총 14석의 초과 의석을 얻게 된다.
독일에서도 선거 때마다 초과 의석 생겨
요약하면,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총 의석수는 324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4월 정치개혁특위에 보고한 지역구 200명, 비례구 100명을 기준으로 19대 총선에 적용한 시뮬레이션 결과에서도 4석의 초과 의석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의원 정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은 일단 맞는 것이다.
실제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원조(元祖)인 독일에서도 지난 1980년부터 2013년까지 10번의 총선에서 모두 초과 의석이 발생했다. 특히, 1994년과 2005년 총선에서는 각각 16석, 2009년 총선에서 24석의 초과 의석이 발생했다.
지역구(299명) 대 비례구(299명) 간의 비율이 1 대 1인 독일에서조차 이렇게 초과 의석이 발생하는데 한국처럼 비례구 의석이 적고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싹쓸이하는 지역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경우에는 큰 규모의 초과 의석이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일부 권역의 경우, 특정 정당은 지역구 의원만 있지 비례대표 의원은 단 한 명도 채우지 못하게 된다. 앞의 시뮬레이션에 의할 경우, 민주당은 초과 의석이 발생한 서울과 호남에서, 새누리당은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하지 못한다. 권역을 대표하는 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채택된 제도에서 권역별 비례대표 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양당 독과점 체제 타파
셋째,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일상화하여 입법 교착 상태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가령 19대 총선 시뮬레이션 결과, 초과 의석을 포함한 총 324석 중 새누리당은 152석(46.6%)을 얻어 과반에 미달한 반면, 야권(민주당, 통진당, 자유선진당)은 169석(52.2%)을 획득해 과반을 차지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정당 간에 대화와 타협이 일상화해 합의정치가 도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19대 총선을 적용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내년 총선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리라는 법은 없다. 분명,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표의 비례성을 높이고, 망국적(亡國的) 지역구도를 깰 수 있으며, 양당(兩黨) 독과점(獨寡占)체제를 무너뜨려 다당제(多黨制) 출현을 용이하게 하는 큰 장점이 있다. 실제로 시뮬레이션 결과,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5석, 민주당은 영남에서 19석을 차지하고, 통합진보당은 기존의 13석보다 30석을 더 얻게 된다.
문제는 의원 정수가 크게 늘어나고 특정 권역에 비례대표가 선출되지 않으며 여소야대가 일상화하여 정국 운영이 쉽게 교착되는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큰 숙제로 남는다.
야당에서는 그 대안으로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리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자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
한눈 파는 비례대표 의원들
전문성과 소수자 배려를 명분으로 내건 비례대표 의원은 사실상 ‘지역구 의원이 되기 위한 징검다리’로 변질한 지 오래다. 직능(職能)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처음 채택된 비례대표제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권력자와 당 지도부의 전리품(戰利品) 챙기기로 전락했다. 심지어 과거에는 돈을 주고 비례대표직을 산다고 해서 전국구(錢國區)라는 말까지 나왔다.
최근에는 비례대표제가 계파정치의 온상이 되고 있다. 비례대표 선정부터 순번 배정까지 당 지도부와 권력자가 자신의 계파(系派) 인사들을 임명하는 폐단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계파 보스의 눈치만 보고,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로 나오기 위해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 등 본연의 역할을 팽개친 채 지역 챙기기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 한 언론사가 지난 8월 2일 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52명의 20대 총선 출마 의사를 파악한 결과 39명(75.0%)이 지역구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출마에 무게를 두고 검토하고 있는 의원 6명까지 포함하면 86.6%나 되었다.
지역구를 선택해 출사표(出師表)를 낸 비례대표 의원들은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지역구에서 산다고 한다. 문제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 활동에 매몰되면 의정활동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에 따르면, 문재인 대표에게 지역구(부산 사상)를 물려받은 배재정 의원은 지난 3년간 본회의 평균 출석률이 94.9%로 상당히 높았지만 최근에는 지역구 활동에 치중하다 보니 본회의 출석률이 70.0%로 뚝 떨어졌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정치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제 자체가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 더 나아가 아예 이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이념에 부합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치명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표가 권역별 비례대표를 주장하는 속셈은 따로 있다. ‘여당=영남, 야당=호남’이란 지역구도를 깰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치권에선 “고향이 부산인 문 대표가 영남에 몰려 있는 친노(親盧) 세력을 키우고, 대권(大權)으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계산을 하는 것 아니겠냐”는 해석이 많다.
한편, 새누리당이 의원 정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반대한다는 것은 표면적 이유일 뿐이다. 새누리당이 여기에 반대하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여소야대가 일상화하고 다당제가 출연해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야권에 뺏길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새정연이 영남에서 얻은 의석수(19석)가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얻은 의석수(5석)보다 4배 정도 더 많은 것이 이 제도를 받아들이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김무성, “공천제도는 만악(萬惡)의 근원”
둘째, 일부 권역의 경우, 특정 정당은 지역구 의원만 있지 비례대표 의원은 단 한 명도 채우지 못하게 된다. 앞의 시뮬레이션에 의할 경우, 민주당은 초과 의석이 발생한 서울과 호남에서, 새누리당은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하지 못한다. 권역을 대표하는 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채택된 제도에서 권역별 비례대표 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양당 독과점 체제 타파
셋째,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일상화하여 입법 교착 상태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가령 19대 총선 시뮬레이션 결과, 초과 의석을 포함한 총 324석 중 새누리당은 152석(46.6%)을 얻어 과반에 미달한 반면, 야권(민주당, 통진당, 자유선진당)은 169석(52.2%)을 획득해 과반을 차지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정당 간에 대화와 타협이 일상화해 합의정치가 도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19대 총선을 적용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내년 총선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리라는 법은 없다. 분명,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표의 비례성을 높이고, 망국적(亡國的) 지역구도를 깰 수 있으며, 양당(兩黨) 독과점(獨寡占)체제를 무너뜨려 다당제(多黨制) 출현을 용이하게 하는 큰 장점이 있다. 실제로 시뮬레이션 결과,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5석, 민주당은 영남에서 19석을 차지하고, 통합진보당은 기존의 13석보다 30석을 더 얻게 된다.
문제는 의원 정수가 크게 늘어나고 특정 권역에 비례대표가 선출되지 않으며 여소야대가 일상화하여 정국 운영이 쉽게 교착되는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큰 숙제로 남는다.
야당에서는 그 대안으로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리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자는 것은 순서가 잘못됐다.
한눈 파는 비례대표 의원들
전문성과 소수자 배려를 명분으로 내건 비례대표 의원은 사실상 ‘지역구 의원이 되기 위한 징검다리’로 변질한 지 오래다. 직능(職能)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처음 채택된 비례대표제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권력자와 당 지도부의 전리품(戰利品) 챙기기로 전락했다. 심지어 과거에는 돈을 주고 비례대표직을 산다고 해서 전국구(錢國區)라는 말까지 나왔다.
최근에는 비례대표제가 계파정치의 온상이 되고 있다. 비례대표 선정부터 순번 배정까지 당 지도부와 권력자가 자신의 계파(系派) 인사들을 임명하는 폐단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계파 보스의 눈치만 보고,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로 나오기 위해 국회 상임위원회 활동 등 본연의 역할을 팽개친 채 지역 챙기기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 한 언론사가 지난 8월 2일 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52명의 20대 총선 출마 의사를 파악한 결과 39명(75.0%)이 지역구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출마에 무게를 두고 검토하고 있는 의원 6명까지 포함하면 86.6%나 되었다.
지역구를 선택해 출사표(出師表)를 낸 비례대표 의원들은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지역구에서 산다고 한다. 문제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 활동에 매몰되면 의정활동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에 따르면, 문재인 대표에게 지역구(부산 사상)를 물려받은 배재정 의원은 지난 3년간 본회의 평균 출석률이 94.9%로 상당히 높았지만 최근에는 지역구 활동에 치중하다 보니 본회의 출석률이 70.0%로 뚝 떨어졌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정치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제 자체가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 더 나아가 아예 이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이념에 부합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치명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표가 권역별 비례대표를 주장하는 속셈은 따로 있다. ‘여당=영남, 야당=호남’이란 지역구도를 깰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치권에선 “고향이 부산인 문 대표가 영남에 몰려 있는 친노(親盧) 세력을 키우고, 대권(大權)으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계산을 하는 것 아니겠냐”는 해석이 많다.
한편, 새누리당이 의원 정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반대한다는 것은 표면적 이유일 뿐이다. 새누리당이 여기에 반대하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여소야대가 일상화하고 다당제가 출연해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야권에 뺏길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새정연이 영남에서 얻은 의석수(19석)가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얻은 의석수(5석)보다 4배 정도 더 많은 것이 이 제도를 받아들이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김무성, “공천제도는 만악(萬惡)의 근원”
지난 7월 13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의지를 다시 한번 피력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7월 13일 취임 1주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제가 정치인생에서 꼭 하나 남기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당원과 국민이 실질적 주인이 되는 정당민주주의의 확립”이라면서 “만악(萬惡)의 근원인 공천(公薦)제도를 혁신해 민주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정치 실력자들의 사천(私薦)을 없애는 새로운 공천 방식으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제시했다.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는 미국에서 발생했다.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州·state)가 관장하는 예비선거(primary)를 통해 정당의 공직후보를 선출한다. 정당 지도자들의 당에 대한 영향력을 감소하고 평당원과 일반 시민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이 제도는 20세기 초 참여의 확대라는 진보주의 개혁운동(Progressive Reform Movement)의 소산이었다. 18세기 후반, 미국에서 정치적 파벌로서의 의회 내 정당이 출현했을 때 공직선거 후보자는 당내에서 코커스(caucus)나 당 대회(convention)를 통하여 선정되었다. 이 과정을 주법(州法)으로 규율하는 주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은 당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들은 잘 조직되고 강력한 이익집단과 결합되어 있는 당 내부의 소수(少數) 지도자들에 의하여 통제되었다.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
이에 반대하는 개혁론자들은 예비선거제가 모든 당원들에게 주법 아래에서 투표권과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결정에 도움을 줄 평등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선거정치에 대한 당내 소수자와 강력한 이익집단들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는 미국에서 발생했다.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州·state)가 관장하는 예비선거(primary)를 통해 정당의 공직후보를 선출한다. 정당 지도자들의 당에 대한 영향력을 감소하고 평당원과 일반 시민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이 제도는 20세기 초 참여의 확대라는 진보주의 개혁운동(Progressive Reform Movement)의 소산이었다. 18세기 후반, 미국에서 정치적 파벌로서의 의회 내 정당이 출현했을 때 공직선거 후보자는 당내에서 코커스(caucus)나 당 대회(convention)를 통하여 선정되었다. 이 과정을 주법(州法)으로 규율하는 주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은 당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들은 잘 조직되고 강력한 이익집단과 결합되어 있는 당 내부의 소수(少數) 지도자들에 의하여 통제되었다.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
이에 반대하는 개혁론자들은 예비선거제가 모든 당원들에게 주법 아래에서 투표권과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결정에 도움을 줄 평등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선거정치에 대한 당내 소수자와 강력한 이익집단들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결과로 도입한 것이 예비선거제도였다. 위스콘신 주의회는 1903년 의무적 예비선거법을 주민투표에 회부하기로 제안하였고, 이듬해 1904년 주민투표을 채택함으로써 미국 최초로 개방형을 표방하는 예비선거법을 제정했다.
미국의 예비선거 방식은 유권자 자격요건(voter eligibility)에 따라 크게 코커스(caucus)와 프라이머리(primary)로 구분된다. 코커스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당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인 반면, 프라이머리는 당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자격을 갖추면 참여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오픈 프라이머리를 채택하기 이전에는 당의 보스들이 공천을 포함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그런데 새로운 예비선거 방식이 채택되면서 정당정치가 정상화되고 의원들이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고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실시 주장이 힘을 받는 것도 뿌리 깊은 보스·계파정치의 폐해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는 “우리 정치에서는 그동안 잘못된 공천 때문에 계파 갈등이 증폭되었고, 당이 분열되는 악순환을 겪었다.
미국의 예비선거 방식은 유권자 자격요건(voter eligibility)에 따라 크게 코커스(caucus)와 프라이머리(primary)로 구분된다. 코커스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당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인 반면, 프라이머리는 당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자격을 갖추면 참여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오픈 프라이머리를 채택하기 이전에는 당의 보스들이 공천을 포함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그런데 새로운 예비선거 방식이 채택되면서 정당정치가 정상화되고 의원들이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고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실시 주장이 힘을 받는 것도 뿌리 깊은 보스·계파정치의 폐해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는 “우리 정치에서는 그동안 잘못된 공천 때문에 계파 갈등이 증폭되었고, 당이 분열되는 악순환을 겪었다.
당내 권력자가 ‘공천’을 무기로 줄 세우기를 하면서 당내 파벌이 만들어졌고, 상명하복(上命下服) 형태의 비민주적인 당론(黨論) 결정은 당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다.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지만, 공천의 계절이 오면 줄을 서고 아부하기에 바빴다”고 자아비판한 바 있다.
야당이 반대하고 총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오픈 프라이머리는 물 건너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일반 국민과 새누리당 당협(黨協)위원장들 사이에서는 찬성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이 69.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이 반대하고 총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오픈 프라이머리는 물 건너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일반 국민과 새누리당 당협(黨協)위원장들 사이에서는 찬성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이 69.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공천개혁위원회가 당협위원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70.5%가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가 공천개혁의 중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했고, 압도적 다수(80.6%)가 이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찬성 이유로는 ‘밀실공천/나눠먹기 공천 저지’(53.8%), ‘당심(黨心)보다 민심 잘 반영’(23.1%), ‘국민참여 제고’(15.4%) 등을 꼽았다.
심지어 새정연 내부에서도 당 혁신위가 이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지만 찬성하는 의원도 있다. 안철수(安哲秀) 새정연 전 공동대표의 측근인 송호창 의원은 “오픈 프라이머리는 1987년 직선제 개헌과 2004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이어 한국 정치에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며 “1987년 헌법이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라는 강력한 시대적 요구를 담아 냈다면 2016년 오픈 프라이머리는 ‘정당을 국민 곁으로’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치명적 약점
심지어 새정연 내부에서도 당 혁신위가 이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지만 찬성하는 의원도 있다. 안철수(安哲秀) 새정연 전 공동대표의 측근인 송호창 의원은 “오픈 프라이머리는 1987년 직선제 개헌과 2004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이어 한국 정치에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며 “1987년 헌법이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라는 강력한 시대적 요구를 담아 냈다면 2016년 오픈 프라이머리는 ‘정당을 국민 곁으로’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치명적 약점
새정연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2006년 10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의결했다. |
분명 오픈 프라이머리는 낙하산 전략공천, 사천, 공천헌금, 지분다툼 등의 구악을 깰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더구나 김무성 대표의 말처럼 “(오픈 프라이머리) 공천혁명은 정치개혁의 결정판이므로 다른 제도와 맞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한 우려와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우려는 국민참여를 확대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정당정치를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본선거도 아닌 예비선거에 대해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어 실제로는 동원선거가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 선거처럼 동사무소마다 투표함을 설치하고 투표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시행하는 데는 약 350억원 정도가 든다는 견해도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가장 큰 약점은 현역 의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다. 특히 경선에 누구나 참여해 후보자가 많으면 표가 분산되어 일정 조직을 갖고 있는 현역 의원이 적은 지지로도 당선될 수 있는 프리미엄을 누리게 된다. 상대 정당 지지자들이 다른 정당의 경선에 참여해 본선(本選) 경쟁력이 약한 후보를 지지하는 역(逆)선택의 위험성도 있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는 “미국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의 강성(强性) 이념론자들이 예비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정치적 양극화(兩極化)가 심화하고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는 오픈 프라이머리 시행 시 현직에게 유리하다는 지적에 대해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게 왜 그렇게 현역에게 유리하다고만 부정적으로 얘기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이 제도 도입에 드라이브를 거는 실제 이유가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김무성 대표가 내년 총선 이후 당을 완전히 ‘김무성당’으로 만들기 위해 공천과정에서 청와대 개입을 막으려는 속내도 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를 배제함으로써 자신이 대표로서 구축한 현 기반을 더 유지·확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한 우려와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우려는 국민참여를 확대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정당정치를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본선거도 아닌 예비선거에 대해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어 실제로는 동원선거가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 선거처럼 동사무소마다 투표함을 설치하고 투표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시행하는 데는 약 350억원 정도가 든다는 견해도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가장 큰 약점은 현역 의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다. 특히 경선에 누구나 참여해 후보자가 많으면 표가 분산되어 일정 조직을 갖고 있는 현역 의원이 적은 지지로도 당선될 수 있는 프리미엄을 누리게 된다. 상대 정당 지지자들이 다른 정당의 경선에 참여해 본선(本選) 경쟁력이 약한 후보를 지지하는 역(逆)선택의 위험성도 있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는 “미국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의 강성(强性) 이념론자들이 예비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정치적 양극화(兩極化)가 심화하고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는 오픈 프라이머리 시행 시 현직에게 유리하다는 지적에 대해 “공천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게 왜 그렇게 현역에게 유리하다고만 부정적으로 얘기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이 제도 도입에 드라이브를 거는 실제 이유가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김무성 대표가 내년 총선 이후 당을 완전히 ‘김무성당’으로 만들기 위해 공천과정에서 청와대 개입을 막으려는 속내도 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를 배제함으로써 자신이 대표로서 구축한 현 기반을 더 유지·확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새정연 허영일 부대변이 김 대표의 오픈 프라이머리 주장에 대해 “20대 총선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과 ‘친박(親朴)’ 세력의 공천개입을 막고, 자신의 친정(親政)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시 말해 김 대표가 오픈 프라이머리를 대권 행보의 디딤돌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한 친박 핵심 인사는 “여론조사를 더 가미하는 등 현 공천제도의 틀 안에서 상향식(上向式)을 확대하는 정도가 현실적”이라고 했다. 새정연 혁신위는 “새누리당이 제안한 오픈 프라이머리는 기존 기득권(旣得權) 질서를 고착화하기 위한 경쟁을 가장한 독과점 체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새정연 혁신위는 이 제도를 너무 정략적인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새정연의 전신(前身)이라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은 2006년 10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2007년 대선에 나설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방식으로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의결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이 제도를 도입하면 참여민주주의가 확대되고 국민에게 공천권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식 비례대표제가 대안(代案) 될 수도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당에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오픈 프라이머리의 일괄타결을 제안했지만 순수하지 못하다. 당 혁신위는 오프 프라이머리와는 정반대되는 안(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위가 전략공천을 채택하고 공직후보 평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은 결국 국민이 아니라 당 지도부가 공천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 대표가 혁신위와 입장을 조율하지 않은 채 빅딜을 제안한 것은 지극히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 오로지 보다 완벽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길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선거제도라는 것은 나라마다 고유한 역사와 전통, 문화 등의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은 제도인가를 결정짓는 데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선거제도의 현실적 개혁 방안의 모색은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정치적 편의주의에 따라 개혁을 논의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기대효과뿐만 아니라 국민 다수의 지지 및 정치권의 수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현실 정당과 정치인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기 때문에 선거제도의 개혁은 정당들의 타협과 협상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가령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불리한 이 제도를 채택할 것 같지 않다.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명분이 아무리 의미가 있더라도 초과 의석이 발생해 의원 정수가 늘어나는 것은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만은 여야 합의로 이뤄졌다.
따라서 정치권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한다면 연동형(독일식)보다는 병립형(일본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병립형과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눈다는 점에서 연동형과 동일하지만, 의석을 배분할 때 지역구와 비례구를 분리한다. 정당 득표율은 비례구 의석을 배분하는 데만 적용된다. 19대 총선을 기준으로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54명의 비례대표를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눠 갖게 된다.
〈표 2〉에서 보듯이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초과 의석이 생기지 않아 의원 정수는 늘어나지 않고, 거대 정당은 모든 권역에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비록 지역주의 완화 효과는 미미하지만 새누리당은 호남·제주에서 1석, 민주당은 영남에서 3석, 통진당은 호남과 영남에서 각각 1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갖게 된다. 전체 54석의 비례대표 의석 중 6석(11.1%)이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한 친박 핵심 인사는 “여론조사를 더 가미하는 등 현 공천제도의 틀 안에서 상향식(上向式)을 확대하는 정도가 현실적”이라고 했다. 새정연 혁신위는 “새누리당이 제안한 오픈 프라이머리는 기존 기득권(旣得權) 질서를 고착화하기 위한 경쟁을 가장한 독과점 체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새정연 혁신위는 이 제도를 너무 정략적인 시각에서만 보지 말고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새정연의 전신(前身)이라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은 2006년 10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2007년 대선에 나설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방식으로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의결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이 제도를 도입하면 참여민주주의가 확대되고 국민에게 공천권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식 비례대표제가 대안(代案) 될 수도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당에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오픈 프라이머리의 일괄타결을 제안했지만 순수하지 못하다. 당 혁신위는 오프 프라이머리와는 정반대되는 안(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위가 전략공천을 채택하고 공직후보 평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은 결국 국민이 아니라 당 지도부가 공천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 대표가 혁신위와 입장을 조율하지 않은 채 빅딜을 제안한 것은 지극히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 오로지 보다 완벽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길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선거제도라는 것은 나라마다 고유한 역사와 전통, 문화 등의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은 제도인가를 결정짓는 데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선거제도의 현실적 개혁 방안의 모색은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정치적 편의주의에 따라 개혁을 논의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기대효과뿐만 아니라 국민 다수의 지지 및 정치권의 수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현실 정당과 정치인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기 때문에 선거제도의 개혁은 정당들의 타협과 협상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가령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불리한 이 제도를 채택할 것 같지 않다.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명분이 아무리 의미가 있더라도 초과 의석이 발생해 의원 정수가 늘어나는 것은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만은 여야 합의로 이뤄졌다.
따라서 정치권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한다면 연동형(독일식)보다는 병립형(일본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병립형과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눈다는 점에서 연동형과 동일하지만, 의석을 배분할 때 지역구와 비례구를 분리한다. 정당 득표율은 비례구 의석을 배분하는 데만 적용된다. 19대 총선을 기준으로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 54명의 비례대표를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눠 갖게 된다.
〈표 2〉에서 보듯이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초과 의석이 생기지 않아 의원 정수는 늘어나지 않고, 거대 정당은 모든 권역에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비록 지역주의 완화 효과는 미미하지만 새누리당은 호남·제주에서 1석, 민주당은 영남에서 3석, 통진당은 호남과 영남에서 각각 1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갖게 된다. 전체 54석의 비례대표 의석 중 6석(11.1%)이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역 프리미엄부터 제거해야
둘째, 새로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 가령, 오픈 프라이머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가지 조건들이 필요하다.
우선, 현역 의원과 원외(院外) 및 정치 신인(新人)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역 의원이 경선 6개월 전에 당협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 과도한 현역 프리미엄을 제거하기 위해 선거운동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최소한 경선 6개월 전부터 정치 신인들이 예비후보로 등록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놓고 문재인 대표에게 토론을 제안한 박영선 의원의 조유진 보좌관은 “(문 대표가) 그렇게 신인이 걱정된다면 오픈 프라이머리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선거법 개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보좌관이 선거법 개정과 관련 “예비후보 등록기간을 대폭 늘리고, 사전(事前) 선거운동 제한을 완화하고, 호별(戶別) 방문도 일정한 룰 아래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누리당의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현직 당협위원장이 독점하고 있는 당원명부를 오픈 프라이머리에 도전하려는 후보자들에게 공개해, 후보자가 당원들에게 이메일, 서신, 전화 등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가 동시에 참여하는 것은 오픈 프라이머리가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역선택을 맞기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를 도입하면 부작용이 더 많을 것이다. 여하튼 국민들의 정치참여 확대를 통해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한다는 원칙에 동의한다면 한국형 오픈 프라이머리의 도입과 정착을 위한 생산적이고 예측 가능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치자금 조달과 집행의 투명화와 합리화, 지역주의의 청산, 정치지도자와 국민의 정치적 성숙, 편협하고 과도한 이념성의 극복,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 정착 등도 필요하다.
오픈 프라이머리가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당헌(黨憲)·당규(黨規)의 차원을 넘어 선거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 헌법에서 규정된 민주적인 정당 운영의 원칙에도 부합된다.
정치개혁특위(特委), 국회 밖에 두어야
2012년 2월 14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민주당 19대 총선 후보자 선출을 위한 모바일 경선(국민경선) 설명회에 참석한 예비후보들과 선거 관계자들이 한명숙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국회의 생산성을 제고(提高)하고 정당정치를 정상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대결과 교착의 정치를 청산하고 생산적 의회정치를 복원시키고, 국회의 전문성을 확대하고 정당의 정책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더불어 국민과 유리되어 있는 정당구조를 개선하고 정당의 반응성(responsiveness)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넷째, 정치개혁특위는 선거제도 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동안 선거제도 개혁은 시간을 질질 끌다가 선거에 임박해 졸속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정치인에게 선거제도 개혁을 맡겼기 때문이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최근 정치권은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국회가 아닌 중앙선관위에 독립적인 기구로 분리시켰다. 정치개혁특위도 마찬가지로 국회가 아니라 외부의 중립적인 기구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민만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생산적 미래 정치를 위한 제도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