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9일 화요일 오후 2:20:18
편협한 시각으로 갈라진 한중 관계 오마이뉴스
재중 한국교민과 조선족 동포는 물론이고 한국에 관한 의견이 있는 중국인까지 참여해 오랫동안 신문고 역할을 해오던 '주중 한국대사관'의 자유게시판인 '열린마당'이 지난 7일 잠정적으로 폐쇄됐다.
대사관측이 밝힌 폐쇄 이유는 "건전한 비판과 건설적 의견 제시 및 수렴을 통하여 대사관 업무의 개선을 도모하고, 나아가서는 한중관계발전 및 한중 양국민, 동포들간의 화합에 기여하는 데 그 개설의 목적"을 가진 이 공간이 "상호 비방을 위한 비방 및 욕설이 난무"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사관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번 게시판 폐쇄의 가장 큰 이유는 월드컵 경기에 대한 중국의 냉소적인 반응과 이에 따른 한국 네티즌들의 격렬한 반응이 주 원인이다. 부수적인 원인이 있다면 오랫동안 이 공간의 주 메뉴가 되어온 우리나라 사람과 조선족 동포와의 감정싸움과 각종 고발성 민원 등도 한 역할을 했다.
<딴지일보>나 신문에 중국의 한국 월드컵팀에 대한 반응이 쏟아지면서 대사관 사이트는 하루 백여건이 넘는 관련 비판물로 도배됐고, 이 글들은 각종 게시판을 오가면서 반중 감정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특히 한국 축구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CCTV 5 스포츠 채널의 내용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면서 감정은 치솟았고, 베이징 제2외국어대학에 재학중인 한 학생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반중 감정은 극에 달했다.
문제는 중국 현지에서 느끼는 것에 비해 내용이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반중감정은 물론이고 현지 교민이나 여행자들의 안전까지 염려하는 상황에 치달았다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은 베이징, 톈진, 상하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월드컵 심판 문제로 인해 현지에서 곤란을 겪었다기보다는 한국인들간의 우의를 다지고, 주변 중국인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심는 응원전을 펼치는 계기가 되었다.
베이징의 한국인 집중 거주 지역인 왕징이나 톈진의 한국인 집중지역인 홍칸공위 앞에서는 한국 경기가 승리할 때마다 수 백명이 모이는 대규모 응원전이 펼쳐지고, 주변을 지나는 중국인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현지에 사는 한국인들은 더러 심판 판정에 관한 중국인들의 부정적인 입장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한국 축구의 향상된 실력을 인정하고, 한국 축구팬의 응원에도 찬사를 보내는 입장이었다. 분명한 것은 주재원이나 유학생, 여행자의 안전을 걱정하는 식의 반응은 억지스러운 곡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중국 언론의 반응을 제대로 인식했는가 하는 것이다. 분명 우리는 CCTV 5의 반응을 중심으로 중국 전체가 한국을 매도한 것처럼 인식했다. 하지만 중국언론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현지 언론의 반응도 월드컵 이후 심판 판정의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한국 축구를 배우자는 쪽이다. 월드컵 이후 해설기사를 살펴보면 7월 8일 베이징르바오(北京日報)는 영화와 축구에서 한국에 뒤지는 중국의 모습을 지적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기사를 실었다.
7월 5일 중궈칭니엔바오(中國靑年報) 해설기사도 한국이 포루투갈, 이탈리아, 스페인과 대결할 때, 돌파나 패스 등은 물론이고 팀웍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며 중국이 배울 것을 종용하고 있다.
7월 2일 지누완바오(齊魯晩報)의 결산기사에서 기자는 한국과 터어키의 3, 4위전을 20년 동안에 이렇게 치열한 경기를 본 적이 있는가 하고 극찬했다. 물론 7월 2일 한국전의 심판 판정을 '도살칼'(屠刀)로 비유하며 월드컵이 아주 비정상적이었다는 기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월드컵 논평 기사는 '한국이 월드컵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한국 응원단의 모습에 세계가 찬사를 보낸다'고 논평했다. 또 귀국한 중국 대표팀의 수비수 리웨이펑(李瑋峰)은 6월 25일 칭니엔티위(靑年體育)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4강에 들어간 것은 실력에 따른 당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신화사는 6월 30일 논평에서 한국이 진정한 영예를 얻었다며, 한국팀은 물론 응원단의 모습을 극찬했다. 특히 한국, 터어키전 이후 대부분의 중국 언론은 한국 축구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문제의 발단을 제공한 CCTV 5는 칭찬과 더불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한국 현지에서 경기를 중계했던 CCTV 5 진행자 황젠상(黃建翔)은 6월 23일 신랑왕 전문 게시판에 '한국은 승리하고 있는데, 중국은 쓸데없는 논쟁'이나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그도 한국에서 돌아온 후 있은 좌담회에서 약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경기를 본 진행자들은 대부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더욱이 세계의 반응이 전해지면서 데스크안 앵무새였던 류젠홍(劉建宏)과 션빙(沈冰)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거기에 이들의 보도는 자국이 한국 영사관에서 행한 범죄를 만회하기 위한 우회적인 무마방식도 작용했고, 중국에 비해 투자가 형편없는 한국팀의 선전에 대한 질투심도 작용했다.
문제는 우리가 이번 일을 계기로 강자답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한국 영토에 속하는 영사관에 중국 공안이 들어와 탈북자를 끌어갈 때는 조용하던 공간이 부분적인 평만을 가지고 분노한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활짝 열려 있어야할 우리 대사관의 문이 닫혔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사관이 앓는 이 뺀다는 식으로 그 공간을 없애서는 안된다. 갈등을 빚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계기로 재중 한국인이나 동포들간의 신문고가 찢기는 일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조창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