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괴산
방송일시 : 2015년 9월 21일(월) ~ 2015년 9월 25일(금)
기획 : 김민
촬영 : 최경선
구성 : 김근영
연출 : 김종관
(주)프로덕션 미디어 길
길어진 그림자, 높아진 하늘, 서늘한 아침 기온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섰다.
명산이라 이름 붙은 산만 35개,
첩첩한 산들로 둘러싸인 충북 괴산(槐山)에도
산 넘고 물 건너 가을이 들었다.
어느새 서늘해진 저녁, 한국기행과 함께
남한의 정중앙 괴산으로 떠나자.
1부. 숲이 들려주기를 - 9월 21일(월) 오후 9시 30분
조선 시대 선비들은 계곡들 가운데 아홉 경치를 뽑아 이름을 붙이고
그곳에서 풍류를 읊었다.
화양구곡, 선유구곡, 갈은구곡 등이 그러하다.
이름이 붙어 조금 더 특별해진 그곳에 사람들은 모여든다.
그 중 퇴계 이황이 아홉 경치를 꼽아 만든 ‘선유(仙遊)’구곡.
신선들이 노닐다 간다는 뜻을 가졌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곳을 여우숲 학교장 김용규 씨가 찾았다.
숲이 학교이자 스승이라 말하는 그에게
오늘 온전히 자연을 느끼며 노는 방법을 전해 듣는다.
괴산 칠성면엔 오후 단꿈에 나올 것만 같은 곳이 존재한다.
백창화, 이병록 씨의 집이자 괴산에 단 두 곳에만 있는 책방 중에 하나다.
부부가 사는 집이자, 곧 서점인 그곳엔
바닥에서 2층 높이의 천장까지 가득 들어찬 책과 밥 해먹는 부엌이 함께한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정원과 해먹이 걸린 오두막 책방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다.
오늘도 놀러 온 동네 아이 샤론과 시온이.
책방에서의 시간은 오후 내 단잠처럼 짧기만 하다.
갈은구곡에 신선이 떴다!
풍류 좀 안다는 정순오씨와 그 친구 서동석, 이진우 씨가 갈은구곡 나들이를 떠났다.
볕 좋은 너른 바위 위, 조선의 선비들이 새긴 바둑판에서 세 친구의 바둑 한 판!
신선인들 부러우랴!
2부. 귀촌일기 - 9월 22일(화) 오후 9시 30분
괴산에 귀촌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오랫동안 꿈꾸던 귀촌이라도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위해 우왕좌왕 실수도 잦고두근두근 설렘과 기대도 많다.
오늘의 한국기행은 귀촌인의 일기다.
아는 것보다 알아갈 것이 더 많은 초보 농부 임태희씨와
주말이면 서울에서 괴산으로 달려오는 그의 아내.
모르면 용감하다 했던가, 사람들이 잘 짓지 않는 우리 밀을 농사짓고,
뚝딱뚝딱 손으로 화덕을 만든다.
오늘은 임태희 씨가 만든 화덕에 직접 농사지은 밀로 아내가 피자를 굽는다.
화덕의 첫 데뷔는 무사히 치러질까?
4년 전 괴산으로 내려온 또 다른 귀촌인 김영란 씨.
일주일 만에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든 무공해 식탁을 마련한다.
둘이 먹기엔 거나한 한 상을 차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남편을 기다린다.
5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이은지 씨는 아침마다 고소한 두부 냄새에 잠이 깬다.
엄마 아빠가 새벽부터 직접 가꾼 콩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손두부.
은지 씨의 임무는 손두부를 포장해 기다리는 손님들께 잘 전달하는 것!
오늘도 은지 씨는 이 두부를 통해 누군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움큼 웃음을 머금고 두부를 배달한다.
3부. 오늘도 맑음 - 9월 23일(수) 오후 9시 30분
여름내 말로는 담지 못할 수고로 길러낸 결실을 수확하는
풍요의 계절, 가을이다.
20년 전 괴산호 건너에 위치한 오지에 한 가족이 이사왔다. 심혁중 씨 가족이다.
배를 타고서야 나올 수 있고, 물도, 전기도 없던 곳.
이제는 아름다운 괴산호를 찾는 관광객을 위한 대운 1, 2호 유람선을 운영하는 가족.
그들의 아침은 호수 건너 집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러 대운2호를 타러 나가면서 시작된다.
출근길. 엄마는 찾아오는 꼬마 손님에게 주려고 만든 색색의 바람개비를 챙겨 들었다.
돌아보면 딸의 어린 시절엔 바람개비 하나 만들어 줄 여유가 없었다.
오늘은 딸에게 바람개비를 건넨다.
다 큰 딸과 해보는 바람개비 놀이.
솜씨가 어색하지만, 모녀의 입가엔 미소가 뜬다.
사과에도 빨갛게 가을이 들었다.
농부는 ‘생명을 키우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농사짓는 손홍철, 박종임 부부
햇수로 19년, 전혀 사과나무를 모르고 시작한 과수농사.
시행착오 끝에 보기만 해도 이 나무가 목이 마른 지, 기분이 좋은지
알만큼 나무 박사가 되는 사이, 아들 백경과 재경은 성큼 자랐다.
신경 써주지 못한 사이, 멍이 들지는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도 잠시
큰아들 백경은 도시에서 배워온 요리 솜씨를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가 여름내 길러낸 사과로 만든 요리를,
방학 중에 농장 일을 거들러 온 작은아들은
가족을 위한 노래를 선물한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자주 돌아보지 못했던 곳, 가족.
부족한 곳은 서로 채우며, 그곳에도 가을이 들었다.
4부. 느티나무처럼 - 9월 24일(목) 오후 9시 30분
괴산은 느티나무 괴(槐)자를 쓴다.
그만큼 괴산엔 오래되고 너른 품을 가진 느티나무가 많다.
등산객이 찍은 아름드리 느티나무 사진 한 장 들고 찾아간 곳엔
농바우 마을과 사진 속 느티나무를 닮은 마을 사람들이 있다.
농바우 마을의 또 다른 느티나무 김근식 이장!
토박이 마을 사람뿐 아니라 귀농한 사람들에게도 든든한 안식처다.
그런 이장님과 함께 마을 투어에 나섰다.
처음 들린 곳은 귀농 6년 차 김용례 부녀회장의 집.
마을 일에 성실한 부부를 향한 이장의 칭찬은 끝이 없다.
밀짚모자를 쓰고 농사짓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반짝인다.
두 번째 소개해준 곳은 마을의 젊은 부부 홍승호 씨네다.
마음이 앞서 급하게 내려온 귀농에 힘든 고비가 많았지만
그곳마다 마을 사람들과 이장님의 무뚝뚝한 친절이 부부를 버티게 했다.
이제 젊은 부부의 고추 키우는 솜씨가 제법이다.
시헌이와 아란이가 학교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다시 찾은 홍승호 씨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삼대가 산책을 떠났다.
그곳엔 벌써 잠자리가 한창이다.
5부. 행복한가요? - 9월 25일(금) 오후 9시 30분
차가 없는 흙길을 씽씽 신난 자전거부대가 지나간다.
괴산 청천면에 있는 어린이집 오후 나들이 시간이다.
아이들은 내내 물에서 놀고 맘껏 흙을 만지고 열매를 따 먹는다.
어느새 아이들의 얼굴은 새까맣지만, 아이들의 웃음은 환하다.
괴산에 사는 박미향, 엄팔수 부부는 오늘도 꽃차를 만들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오늘의 꽃차는 천일홍!
다른 꽃보다 오래, 천 일 동안 꽃핀다는 천일홍의 꽃말은 불멸의 사랑이다.
부부의 집에 오늘도 사랑이 꽃핀다.
그곳에 들어서면 입이 쩍 벌어진다.
돌로 만든 한국전도, 돌로 만든 사람과, 돌로 만든 테이블, 온통 돌로 만들어진 정원.
이재욱 씨의 집에 가본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머리에 있는 상상의 정원을 구현하고자
40년 전부터 돌을 모으고, 26년 전부터 돌을 쌓아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쌓여 지금의 모습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돌이 할아버지를 거쳐 갔을까.
괴산에 사는 김희홍 씨는 하나의 기타를 온전히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내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장인이다.
기타를 만지는 세심한 손길과 진지한 마음이 그가 만드는 기타에 고스란히 담겨 연주된다.
오늘 그의 집에 특별한 손님이 왔다.
파브리치오 마토스(Fabricio Mattos) 브라질 출신의 젊은 기타리스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회를 하는 유명 기타리스트다.
김희홍 씨와 기타리스트 파브리치오가 한국기행에게 들려주는 연주가
초가을 밤을 촉촉하게 적신다.
괴산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을의 문턱, 괴산이 당신에게 묻는다.
오늘 당신 행복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