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마량리 주꾸미와 동백꽃
겨우내 바위 틈에 숨어 있던 주꾸미가 속살 찌우는 계절이 왔다. ‘가을 낙지, 봄 주꾸미’라는 말처럼
우리 몸에 이로운 영양분을 잔뜩 머금은 주꾸미는 알을 낳기 직전인 지금이 가장 맛있는 시기다.
자연은 절묘하게도 때를 맞추어 서천군 마량리의 동백꽃을 활짝 피운다. 주꾸미 맛보러 떠나는 식도락 여행에 꽃이 더해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애 달픈 연모의 마음처럼 붉은 동백이 꽃 망울을 활짝 피우는 4월이 되면 충남 서천군 마량리에서 흥겨운 잔치 한마 당이 벌어진다.
가을 전어와 함께 서천을 대표하는 먹거리인 주꾸미가 새빨간 동백꽃을 만나는 ‘동백꽃 주꾸미축제’가 열리는것.
올해 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었던 탓에 동백정 주변에 자생하는 8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한껏 영근 꽃을 피우려면 아직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주꾸미의 속살은 이미 여물대로 여물고, 동그란 머릿속에는 흰 쌀알 같은 알이 꽉 차 한입 베어 문 입에서 절로 웃음꽃이 핀다.
이 세상 어느 명약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제철 음식으로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돋우고, 서천의 여러 명소들을 휘휘 둘러본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식도락 여행이 또 어디 있을까.
자연에서 나는 피로회복제 주꾸미 ‘가을 낙지, 봄 주꾸미’란 말이 있듯이 주꾸미는 봄의 대명사 같은 먹을 거리다.
낙지와 함께 대표적인 문어과 연체동물인 주꾸미는 타우린이 풍부해 천연의 피로 회복제라 불리기도 한다.
남도에서 꽃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3월에서 5월까지 두어 달 동안이 바로 주꾸미가 가장 맛있는 시기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주꾸미는 5~6월 산란기를 앞두면 몸에 잔뜩 살을 찌우고 머리는 알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5월이 지나면 주꾸미의 살이 질겨져 맛이 좀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니 바로지금이 주꾸미를 즐겨야 할 제철인 것이다.
서천 주꾸미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주꾸미는 보통 연안의 바위 틈에 숨어 지내는데 서천에서는 이런 습성을 이용해 ‘소라방방식’으로 주꾸미를 잡는다.
소라 껍데기를 줄줄이 밧줄에 달아 주꾸미가 살 만한 곳에 던져 놓으면 주꾸미는 소라껍데기 안을 은신처로 생각하고 들어가는데 그때 소라방을 그대로 건져 올려 잡는 것이다.
다른 지역 주꾸미에 비해 더욱 싱싱한 또 하나의 이유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겨울이 길고 추웠기 때문에 수온이 낮아 주꾸미를 본격적으로 잡아 올리는 어획 시기가 일주일 정도 늦어졌다고 한다.
주로 도심의 식당에서 주꾸미를 먹는 사람들은 주꾸미가 꼴뚜기보다 작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주꾸미는 제법 큰 팔완목 문어과에 속하는 연체동물로 크기도 작은 편이 아니다.
주꾸미를 낙지와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매우 쉽다.
다리 길이가 60~70cm에 달하는 낙지와 달리 주꾸미는 아무리 길어야 20cm 이하의 ‘ 숏다리’라는 사실만 명심해 두면 된다.
봄바다 주꾸미와 미나리의 앙상블 굽이굽이 시골길을 따라 저수지를 지나 서천 마량리 항구로 들어서면 화력발전소와 동백정으로 가는 길목에 주꾸미 전문 식당들이 모여 촌을 이루고 있다. 그중 한 집의 문을 열고 들어셨다.
벽에 적힌 메뉴는 주꾸미 샤브샤브와 철판볶음 두 가지. 샤브샤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조리 방법이 동일하다.
주꾸미를 끓는 물에 넣어 살짝 데쳐 여러 종류의 야채와 곁들여 먹는다. 그러나 샤브샤브보다 더 많이 팔리는 것은 철판볶음이다.
철판볶음을 주문하자 살아 꿈틀거리는 주꾸미를 빨갛게 양념해 내온다. 싱싱한 주꾸미가 고소한 참기름, 그리고 빨간 양념과 어우러져 익는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아침을 거른 터라 마음이 급하다. 채 익지도 않은 주꾸미 다리 한 점을 얼른 입안에 털어 넣자 쫀득한 살이 씹힌다. 고소하면서도 적당히 매콤해 속 쓰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게다가 파릇한 미나리도 듬뿍 얹었으니 봄바다와 들녘을 눈앞에 가져다 놓은 듯 신선하고 상큼하다. 이번에는 머리를 한입 베어 물자 흰쌀밥 같은 알들이 입 속에서 톡톡 터진다.
주꾸미 철판볶음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역시 볶음밥이다. 이미 충분히 배가 부른데도 주꾸미를 다 건져 먹고 남은 양념장에 볶아먹는 특제 볶음밥의 맛 때문에 자꾸 손이 간다.
서해의 고운 낙조처럼 붉은 꽃 동백 맛있는 주꾸미로 입을 만족시켰다면 이번엔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할 차례다.
식당가를 벗어나 자동차로 5분 정도만 이동하면 서천을 대표하는 명소 중의 하나인 동백정에 닿을 수 있다. 이 계절에 동백꽃 구경을 빼놓는다면 서천에 다녀가는 의미가 없다. 동백정은 예로부터 이름 난 일몰 명소이기도 하지만 누각 주변에 조성된 동백나무 군락지가 아름다워 꽃이 지는 5월까지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봄꽃 나들이 터다.
많은 사람들이 서천 동백정을 찾는 이유는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동백 군락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동백나무는 따뜻한 남도의 바닷가 지방에서 자생한다. 여수 오동도, 강진 백련사, 해남 대흥사, 거제 지심도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백 명소들도 대부분 남해안에 분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서천군은 훨씬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서천은 우리나라 동백의 북방 한계선이기도 하다.
화력발전소 앞에 솟아오른 바닷가 언덕을 오르면 동백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아직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가지마다 붉은 꽃을 탐스럽게 피운 동백나무들은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올해는 4월 16일경 동 백꽃이 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해 보수를 끝마쳐 말끔해진 동백정에 오르면 작은 섬 하나가 눈에들어온다.
‘오력도’라는 이름의 이 작은 섬은 얼핏 중절모 같기도 하고,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코끼리 삼킨 보아뱀을 닮기도 했다.
오력도 앞으로 작은 고깃배가 지나가고, 이따금 갈매기가 짝을 찾는 노래를 부르며 지나간다. 해질 무렵이라면 오력도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낙조는 마치 동백꽃처럼 붉게 하늘을 물들이며 하루를 잠재운다.
▲ 동백나무 바다 안에 섬처럼 우뚝 선 동백정. <Travel Information>
그밖에 가볼 만한 여행지 | 금강변으로 가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지로 잘 알려진 신성리 갈대밭과 금강하구둑이 있다. 다만 마량포구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이미 끝났으며, 신성리 갈대밭의 경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시즌이 지났기 때문에 일부를 제외하면 갈대를 모두 잘라버려 다소 아쉽다.
동백정을 오가는 길목에 잠시 춘장대해수욕장에도 들러보자.
서천군 한산면에 위치한 한산모시관(041-951-4100)에 찾아가면 백제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 전통 옷감 ‘한산모시’를 직접 짜는 광경을 볼수 있다.
백제시대의 궁중술인 ‘한산소곡주’도 이곳에서 판매한다. 펜션에 머무르며 쪽 염색과 황토 염색을 배울 수 있어 가족 여행으로 그만이다.
별미 음식 | 마량리 일대에 주꾸미를 잘하는 집들이 몰려 있는데 그중 ‘서산회관(041-951-7677)’이 가장 유명하다. 메뉴는 샤브샤브와 철판볶음 2가지 이며 양은 대ㆍ중ㆍ소 3가지. 2~3인이 먹기에 적당한 小자의 경우 3만원선이다. 이곳 금강하구둑관광지 옆을 지나가는 21번 국도변 ‘하구둑해물칼국수(041-956-3366)’에서 파는 바지락을 듬뿍 넣은 해물칼국수도 별미다. 해물칼국수 6000원, 왕만두 5000원
마량리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춘장대IC를 빠져나와 21번 국도와 607번 지방도를 차례로 갈아타고 마량포구로 향한다. |
첫댓글 서천의 주꾸미 먹고 싶군요 잘 보고 군침 삼키며 갑니다 장문의 주꾸미 찬양 감사합니다.
쭈구미 맛보러 서천으로 가 보고 싶어집니다.
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