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탑(無影塔)과 그림자
천지인과 음양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보완되는 우주자연의 이치
경주 불국사에는 석공 예술의 백미로 널리 알려진 두 개의 아름다운 탑이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그것입니다. 이중 석가탑의 다른 이름이 무영탑(無影塔)입니다.
무영탑(無影塔)은 그림자가 없는 탑이란 의미입니다.
그림자 없는 탑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 말은 ‘그림자 없는 물체가 있을 수 있는가?’라는 말과도 같은데 그것은 사실 어떤 상황이 전제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말입니다.
하지(夏至) 정오가 되면 해는 석가탑의 정상에서 남중합니다. 석가탑의 정상에서 곧바로 내려 비치기 때문에 연중 하지 정오에 한차례 석가탑은 그림자가 없는 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림자는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그러나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그림자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석가탑의 경우에서처럼 특별한 상황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그림자는 빛이 있고 빛을 가리는 사물이 있다면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상입니다.
김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물이 있다면 김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하나의 현상이 됩니다.
어떤 사물에 불이 접촉하면 수분이 증발되며 김이 납니다.
솥에 물을 담고 불을 때면 김이 솟아오릅니다.
하지만 그림자나 김은 자기 스스로 독자적으로는 존재할 수는 없는 특별한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문자로 나타낸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그림자와 김을 나타내는 ‘影’과 ‘金’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影(그림자 영)
그림자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상황이 있습니다.
먼저 빛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또 빛을 가리는 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과 빛을 가리는 물체만 있다면 그림자는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이 셋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첫 번째 제1원인 빛(해) →日
② 두 번째 제2원인 사물 →京
③ 제1, 2원인이 갖춰지면 저절로 나타나는 세 번째 그림자 →彡
金(성 김, 쇠 금)
김이 솟는 데에도 갖춰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열을 가하는 에너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에너지가 작용해야할 물 또는 물건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김은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이 셋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제1원인 에너지→불
② 제2원인 물 →습기
③ 제1, 2원인이 갖춰지면 저절로 나타나는 세 번째 →김
‘그림자’나 ‘김’은 앞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반드시 생기는 세 번째 현상입니다.
세 번째가 생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첫째와 둘째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그림자’나 ‘김’처럼 앞서 두 가지가 전제되면 비로소 존재하는 세 번째 존재가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에 가득한 천지만물이 모두 그러합니다. 하늘과 땅이 있으므로 비로소 존재하는 세 번째가 천지간이 가득한 자연만물입니다.
그리고 ‘셋’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가 곧 ‘천지인(天地人)’입니다.
‘천지인’은 곧 ‘셋’이고 ‘셋’의 원 개념은 ‘천지인’입니다.
一二三, 丶冫氵, ○□△, ○□□△△△, 원방각(圓方角) 등은 모두 ‘천지인’을 상징하는 기호, 도형, 문자입니다.
때문에 이들의 속성은 반드시 하늘과 땅 그리고 만물의 관계를 고려하여 풀이하여야 합니다.
‘천지인’ 셋의 관계로 이루어진 용어와 이들을 나타내는 한자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
하늘 ⇢天 ○ 一 丶 ○ 불 해 활 心 性 마음 마음 마음 마음 하늘 왕
땅 ⇢地 □ 二 冫 □□ 물 햇살 화살 身 精 몸 몸 몸 몸 머리 제후
만물 ⇢人 △ 三 氵 △△△ 김 기운 촉 氣 命 기 털 옷 깃 손 병사
이 중에서도 특히 ‘천지인’의 세 번째인 ‘만물(人)’의 속성을 나타낸 한자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
‘세 번째’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세 획’을 위주로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彡(털 삼), 三(석 삼), 氵(물 수), 水(물 수), 巛(개미허리변 천), 氣(기운 기), 衣(옷 의),
卒(병사 졸), 羽(깃 우), 手(손 수), 毛(털 모), 小(작을 소), 丰(예쁠 봉), 金(성 김, 쇠 금), 孫(손자 손)….
동양에는 세상을 설명하는 논리적 틀로써 대체로 ‘천지인(天地人)’과 ‘음양(陰陽)’이라는 두 가지 관점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천지인(天地人)’은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하늘과 땅과 만물’의 세 가지 핵심이 되는 요소를 비롯해서 ‘셋’의 관계에 있는 것들의 논리체계를 일컫는 말이며 ‘음양(陰陽)’은 ‘하늘과 땅’처럼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서로 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들의 논리체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삼 세 번’, ‘회삼귀일(會三歸一)’, ‘집일함삼(執一含三)’, ‘삼태극(三太極)’ 등의 쓰임은 ‘천지인(天地人)’의 논리체계를 반영한 표현이며, ‘전후(前後)’, ‘좌우(左右)’, ‘상하(上下)’, ‘안팎(內外)’ 등은 ‘음양(陰陽)’의 논리체계를 반영한 표현입니다.
한국인은 주로 ‘셋’의 관계에 익숙해 있고 지나인은 주로 ‘둘’의 관계에 익숙해 있습니다. 동양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주역(周易)은 음양의 상대적 논리체계를 이용하여 사람의 운명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는 신념을 담은 기록입니다.
그러나 ‘천지인’과 ‘음양’은 서로 분리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해있는 우주 자연의 현상을 설명하는 논리적 틀의 하나일 따름입니다.
우주 자연에는 둘의 관계로 된 것도 있으며 셋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현상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지인과 음양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보완되어야할 것이며 공교롭게도 우리 한겨레는 천지인의 논리에 익숙하고, 지나인은 음양의 논리에 익숙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조옥구 한자연구소장]
첫댓글 글자 하나 빠트리지않고 단숨에 내리읽고 또 읽어보았 습니다
이렇게 귀중한 원고를 올려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큰 일 하셨으니 오늘 밥 마이 잡수이 ㅡ소
이집 저집 마실나 갔다가 보물 무영탑이 있어서 우리카페 구경 시켜준다고 구슬려서 모셔왔습니다.
@慮 算 아주 귀한 나들이십니다 ㅎ
하지정오에 그림자가 없어진다는 걸로 무영탑이라 이름지었군요
저는 상징적인 의미로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했었네요
첨성대와 더불어 신라시대에 이미 천문과 기상학이 대단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에밀레종을 매달아 둘 고리를 현대의 과학으로 해법찾기가 어려우듯이 말이지요
무영탑을 백제의 장인이 와서 지었다는 설도 있지요.
무영탑뿐 아니라 황룡사 9층탑 등 많은 불사에 백제장인들이 참석하였다는 기록이 있지요.
무영탑의 슬픈 전설이 생각납니다.
하지정오에 그림자가 없어진다. 진실로 과학적입니다.
아하~
하지 정오에 갈 기회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한자 뜻풀이도 재미있고,
특히 천지인, 음양의 이야기에 더욱 솔깃해집니다.
중복인데 맛있는 음식 많이 드셔요~^^*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