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발전연구원 녹색생태관광사업단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꽤 긴 시간에 걸쳐 대청호오백리길을 조성하였다. 청정한 자연자원과 ‘녹색성장’의 접목이라는 조금은 아리송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대충청 녹색생태관광사업’을 벌인 것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아름다운 대청호의 자연을 감상하며 즐기고자 대전지역의 산꾼들이 대청호 둘레를 돌며 길을 만들어 나가고는 있었다. 많은 시민이 이 사업에 의견을 보태면서 “사람, 산, 물이 만나는 대한민국 대표 녹색생태관광지 조성”을 한 결과가 오늘의 대청호 오백리길이다. 우리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언젠가 우리 고장의 이 길도 사람과 사람, 부락과 부락, 동리와 동리를 연결하고 소통하며 문화를 창조하는 명품 길이 되리라 기대한다. 전체 21구간 중 1구간부터 5구간까지가 대전 광역시에 속한다.
느리게 걷기를 통해 우리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물의 미세함, 그 아름다움을, 혹은 그 다양성과 변별성을 볼 수 있다. 특히 속도의 와중에 휘말려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산과 물을 같이 하며 느리게 걷고, 웃고, 호흡한다는 것은 삶의 때를 저절로 씻어내는 과정이고, 삶의 통증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청호 오백리길은 사막같은 회색의 도시에서 샘물이 솟아 흐르는 오아시스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백리길을 걷는 사람들은 걸을 뿐만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만나고, 대화하며 소통하고, 정을 나누고, 명상하고, 마음을 비우며 깨달음을 얻는다.
이처럼 길이 갖는 새로운 함의는 지난 세월동안 현대산업문명의 첨단에 오르기 위해 한국사회가 추구하였던 인공적인 급박함에 대한 반작용을 보여준다. 오늘날 최첨단 과학문명 덕분에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전히 속도와 과잉의 시대에 속해 있지만, 이따금씩 결핍과 느림의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실재하는 도시야말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인 것이다. 결핍과 느림을 향유하며 고대그리스의 견유주의 철학자들의 발걸음을 흉내내볼 수 있는 곳이 생태환경의 길이며, 이 길이 곧 대전이란 도시의 미래적 전망을 보여줄 것이다. 즉, 생태환경의 길을 걸으며, 시를 읊고,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복합적인 공간, 도시를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7. 길을 걷는 치유 인문학, 생태 인문학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는 말이 있다. 길을 가는 인간이란 말이다. 우리 인간은 두 발로 걸으면서, 길을 걸으면서 짐승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걷는다는 것은 느린 움직임이다. 느리기 때문에 세상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보게 해준다. 자연의 침묵조차 듣게 하며, 세상에 허덕이던 우리 영혼의 숨을 고르게 한다. 어찌 보면 오직 느림만이 우리를 세상의 매력 속으로, 자연의 재미 속으로, 그 틈새 안으로 이끈다.
둘레길, 오솔길, 에움길에서 우리가 만날 때, 우리는 마침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용도와 소유의 개념으로 세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나 이전에도 있었고 내가 죽은 뒤에도 있을 자연을 만나고 느끼면서 행복한 것이다. 그런 넉넉함 때문에 풍경도 보이고 '나'도 보인다. 고은 시인도, 그래서,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 보았을 것이다. 걷기는 육체와 영혼을 함께 가꾸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것은 존재의 총체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타자로서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자신을 응시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걷기이다. 그래서 산행은 의지와 자유를 가르치는 학교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가 부채질한 속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우리는 자동차의 노예, 집의 노예, 직장의 노예, 관계망의 노예로 전락했다. 돈, 획득, 소유, 독차지 따위의 어휘들만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 채, 많은 이들이 어느 순간 걷는다는 원초적 본능을 망각하고 속도의 질주만을 경배한다. 또 어떤 이들은 점점 사적 공간에 틀어박혀, 때로는 몸을 완전히 망각하고, 컴퓨터, 스마트폰, 온라인 기반의 활동 등에 몰입한다. 여가시간 조차도 그것들의 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많은 이들이 삶의 기쁨, 삶의 역동과 같은 중요한 것들을 잃고, 잊고 살아간다.
흔히 인생을 여행이나 소풍에 비유하는데, 여행이나 소풍 혹은 산책을 떠나는 일은 그 비유를 구체화하는 일이다. 몸과 상상력을 통해 인생을 구현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역시 걷기를 사랑하는 철학자 리베카 솔닛이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라고 한 언술은 그래서 기억될 만 하다.
대자연은, 산이든 숲이든 아니면 바다든, 신비하고 고유한 힘으로 인간을 위로한다. 숲 속에서 나는 새소리와 더불어, 흘러가는 구름과 더불어 안정과 활력을 얻는다.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료받으며 행복을 느꼈던 또 다른 사람, 월든의 저자 소로(Thoreau)는 "숲을 걸었더니 내가 나무보다 커졌다(I took a walk in the woods and came out taller than the trees)"고 했다. 걸을 때에는 세상에 빠지지 않고 생각을 펼칠 수 있다.
걷다 보면 누구나 리듬을 타게 되므로 걷기는 음악이면서 체육이기에 몸과 정신을 함께 고양한다. 아름다움, 침묵, 느림 등은 숨을 고르게 하고 사유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도시의 소음, 더러움, 광란과 같은 온갖 독소들로 인하여 파괴된 조화를 균형 있게 재생시켜 준다. 자연이 뿜어내는 생명력과 햇살이 쏟아내는 원초적 원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이루는 재생과 회복은 더할 데 없는 자연치유이고 치유 인문학의 태반이다. 그래서 장 자크 루소는 “우리의 첫 철학 스승은 우리 발이다”33)라고 했는지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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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루소, 『에밀』, 크리스토프 라무르의 같은책 61쪽 재인용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온세상 어린이가 하하하 웃으면 그소리 울려퍼지네 달나라까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대청호 오백리길에 대한 사연을 덕분에 알게되었습니다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자신을 응시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걷기이다. 그래서 산행은 의지와 자유를 가르치는 학교이다." / 가장 가슴을 파고드는 내용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