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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터미널 경부선 공주행 (pm 1:35 출발~ 3:05 도착). 공주터미널 pm 3:14 출발~ 마곡사 3:40 도착(26분 걸림). 원래 40분.
공주버스터미널 정문 나와 길 건너면, 7번, 770번 사곡면 마곡사가 종점인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아래에 버스 시간표 올렸고요.
마곡사주차장 이용료는 무료이고 주말에는 마곡사엔 차량이 통제되고 있으나, 탐방객 적은 겨울철에는 마곡사 안까지 차가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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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공주시 버스 시간표를 클릭하시면, 1,304 X 905 픽셀로 2012. 6. 17 이후 개편된 버스시간표를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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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사곡면 지도입니다. 위쪽 □은 사곡면 마곡사(麻谷寺), 아랫쪽 □은 제가 태어난 공주군 우성면 상서리 철목.
500년전 지어진 정감록 십승지지의 고을이 우리나라에 열 곳 정도 됩니다. 충청북도 영춘면 의풍리, 경상북도 남대리 그리고 산꾼들의 전공인 3둔5갈...
10승지 마을의 역사가 대충 오백년 정도 되었으니, 힘없는 무리랭이 백성들이 환,란을 피해 들어왔지만,
힘 있는 권세가나 자산가, 무장한 군인들이 들어오는 장소는 아닌 셈이죠. 이런 사람들은 '십이지지'를 찾을 이유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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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공원을 먼저 둘러본 후에 마곡사를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늦으면 광량때문에 사진이 안 나올 거 같아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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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주변에 많던 가게들을 모두 매표소 밖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도봉산, 북한산 국립공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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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m 3:40 늦게 마곡사 주차장 도착이라 마곡모텔에서 자려고 했지만, 빨래가 밀려 있어서 관람후 귀가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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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만원대면 39,000원이란 소린가요? 마곡모텔에서는 한겨울, 1F 한켠에 삼겹살을 숯불에 구울 수 있게 취사장이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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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천 건너 마곡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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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화산은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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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는 갑사와 동학사를 말사로 거느린 조계종 제6교구 본사찰이라 문화재관람료로 2,000원을 받습니다.
설악산 신흥사처럼 절 구경도 하지 않고 돈을 갈취하는 것과는 다르겠죠. 오직 마곡사만 보러 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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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는 마곡사가 좋고 가을에서 갑사가 좋다는 말이 예전부터 있어 왔죠.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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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매표소에서 매표(승용차도 마찬가지)하고 마곡천을 빙글 돌아가야 '해탈문' 마곡사 입구가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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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주차장에서 식당골목을 지나 매표소도 지나 10분 정도 걸으면, 마곡천 건너 마곡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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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麻谷寺)는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사찰이 둘로 나눠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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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꽃이 떨어지는 춘흥(春興) 봄철에 마곡천에 벗꽃이 흘러가며 마곡사는 하얀 벗꽃에 의해 둘로 갈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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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09시까지 공주터미널에 오면 마곡사 전용 대형 버스를 탈 수 있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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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주차장에 차량 파킹, 걷게 되지만 사람이 없는 겨울은 사찰 안까지 차가 들어가도 되죠.
마곡사 워낙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말사인 갑사와 동학사의 사람 붐빔과는 달리 고즈녁합니다.
피난처로 알려진 정감록 십승지지의 땅, 공주 사곡면은 한국 전쟁때도 병화를 입지 않았던 마을입니다. 제 어머니가 피난간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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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해탈문(麻谷寺 解脫門), 해탈문은 불이문(不二門, 두이문)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불이문의 '不二'는 나와 상대하고 있는 모든 삼라만상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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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건물은 조선시대 후기에 세워진 사천왕문으로 사찰의 입구에서 해탈문(解脫門)을 거쳐 두 번째로 지나는 대문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은 대개 일주문 다음 금강문이지만, 금강문이 없는 사찰들도 많습니다.
금강문이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지만 이곳 마곡사(麻谷寺)는 해탈문(불이문)이 금강문을 대신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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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보면 해탈문(解脫門)은 마곡사 정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꼬마들과 아가씨들은 이곳 지나면 좀 무서워하죠?
근거 없는 두려움은 생김이 무서운 금강역사 때문인데, 나이들어 애 낳으면 아줌마가 되어 덤덤하게 지나게 되는 세월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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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이 '보현', 오른쪽 '금강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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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보살은 지혜를, 위 그림의 해탈문 보현보살은 행함을 대표합니다. 말만 가득한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행(行)함이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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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천왕문(麻谷寺 天王門), 문화재 자료 제 62호,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조선시대 후기에 세워진 사천왕문으로 해탈문(解脫門)에 이어 두 번째로 지나는 대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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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상계에서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할하는 신적 존재인 사천왕(四天王).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의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인간들이 불법에 따라 사는지 살피어 그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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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문(解脫門)에 이어 두 번째로 지나는 대문이 천왕문(天王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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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왕(四天王)의 천왕문(天王門)을 나오면 마곡천(태화천)에 놓아진 극락교 뒤로 마곡사의 건물들이 들어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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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極樂)은 기독교의 'heaven'과 같은 뜻. 제가 해석하기를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자아, 자의식이 없는 세상입니다.
옥황상제를 받드는 시녀들은 계급을 나타내는 것 아니냐고? 어느 분이 의견을 말하던데, TV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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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곡천(태화천) 저 다리를 건너면 'the Land of Happiness, 극락 정토(極樂 淨土)가 있다는 것이죠.
태화천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너야 극락으로 간다는 발상이 뻘할 뻔 유아틱하면서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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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의 특징은 마곡천을 사이에 둔 가람(사찰 건물) 배치에 있습니다.
사찰을 가로지르는 하천 변의 벚꽃나무 행렬이 왜 춘마곡(春麻谷)인지 말해 줍니다. 사찰을 반으로 나눠 흐르는 마곡천(태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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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해(雲海)처럼, 태극 모양으로 마곡사를 반으로 나눠 흐르는 마곡천(태화천)에 하얀 벗꽃이 떠내려가는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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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교(極樂橋)를 건너면 범종루의 범종(梵鐘:지방유형문화재 62),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가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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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801호 대웅보전 (大雄寶殿)과 보물 제802호 대광보전 (大光寶殿)이 함께 있는 마곡사(麻谷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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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건물은 대광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입니다. 임란때 소실, 지금 건물은 1651년(순조2)에 각순대사와 공주목사 이주연이 다시 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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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광보전 (大光寶殿) 역시 임란(1592년) 때 소실됐죠. 대웅보전 보다 좀 늦은 1813년(순조13)에 다시 지었습니다.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전통 목조 건물이다고, 건물 안 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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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에만 가면 신기한 현상이 있죠. 스님들은 어디로 꽁꽁 숨었나? 大光寶殿 낙관을 물어볼 사람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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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한자 심검당(尋劍堂)이네요. 반야의 검을 찾아 방황하다, 대오(大悟)를 이룬 선(禪)의 검객.
중국 위앙종의 대선사 영운지근(靈雲志勤)의 원력(願力)이 오늘날까지 '심검당(尋劍堂)'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찰 곳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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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검당(尋劍堂)은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 심검(尋劍)이란 '무명(無明)을 단 칼에 베어낼 지혜의 검'입니다.
불교에서는 번뇌를 무명초(無名草, 無明草)라고 하여 풀에다가 비유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반야의 검'으로 무명을 단칼에 벤다는 뜻이 있는 집이 심검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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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사를 말사로 하여 동학사를 부속사찰로 삼고 있는 공주의 대사찰 마곡사는 사찰다운 대위엄을 지녀, 그만큼 사람들을 경건하게 만들죠.
까불거나, 뛰어 다니거나, 가벼운 사바의 몸가짐이 마곡사에 가면 조신하게 변하게 되는 것은 마곡사 전각이 풍기는 위엄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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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층 석탑 위가 항아리로 되어 있죠.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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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사찰처럼 으리으리한 건물도 없지만, 다른 사찰들에 비해 사찰의 전각들이 거의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 되어 있어서 좋죠.
화려(華麗)와 자연스러움의 일체(一體). 초창기 채색은 화려했을 터, 지금 무채색의 시든 느낌마저 드는 마곡사의 꾸미지 않은 순수한 흡입력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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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광보전 (大光寶殿) 안(內), 비로자나불 뒤, 서편으로 돌아가 '관음보살' 탱화 하나 찍었습니다. CC-TV 의식하니 조금 움추러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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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에서 공주가는 버스는 대략 1시간에 1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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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있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으며, 부처님이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불단을 서쪽에 설치하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상 일(一)구를 동쪽을 향해 앉힌 배치방법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사한 점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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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麻谷寺) 김시습(金時習) ■
2012. 12. 22 (土)
당대의 고승 만공(滿空) 화상이 주지를 역임한 마곡사(麻谷寺)에 가자니 명동님이 의아해 합니다.
제 고향 충남 공주군 우성면 상서리 옆 사곡면에 있는 걸 모르나 봅니다.
조선조 최고의 금서(禁書) 정감록(鄭鑑錄)은 민중들과 함께 전국으로 퍼져
절망하던 민중들이 살기 좋은 땅, 십승지지(十勝之地)를 예언의 땅으로 만들었죠.
오백년전 부터 성행하던 정감록에는 나라에 환.난이 일어날 때마다
몸을 피할수 있는 십승지 열(10) 곳을 일렀는데, 그 중 마곡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3둔 5갈만 십승지지(十勝之地)가 아닙니다. ^_^
여기 찾아오려면 금강(錦江) 변에서 깊은 산골짝을 수십번 굽이굽이 돌아 돌아서 들어와야 되죠.
지금이야 시내버스가 한 시간에 한대 다닌다고 하지만,
6.25 당시 어머니와 상서리 철목 오촌 아주머니와 6촌형이 사곡면 마상골로 피난을 갈 정도입니다.
마곡사는 마상골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되니, 깊고 깊은 자리 임에 분명하죠.
'훈민정음' 만든 세종의 첫째 아들이 문종. 둘째 아들이 수양대군입니다.
세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병약한 문종이 즉위 2년만에 병사하고 어린 조카(12歲) 단종이 즉위하자
한명회, 권람등 측근 참모들과 계유정란이라는 난을 일으켜 단종을 영월 청령포로 유배 보내고
왕권을 강탈한 세조가, 조선의 7대 임금 세조(1417~1468)가 마곡사에 찾아옵니다.
'김시습(金時習)'을 보기 위해서죠.
모짤트가 3세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조치훈이 주먹만한 바둑돌을 3살 때 만졌다는 신동인데,
김시습(金時習, 세종 17년 1435~1493)은 태어난 지 여덟 달에 스스로 능히 글을 아는 지라,
최치운(崔致雲)이 보고 기특히 여겨 "배운대로 익힌다"는 뜻의 시습(時習)이라 이름했죠.
입으로 글을 읽지 못하였으나 그 뜻은 다 알았고,
3세에 능히 시(詩)를 짓고 5세에 중용(中庸), 대학(大學)을 통달했으니,
사람들이 신동(神童) 났다고 부르니, 명재상 허조(許稠) 등이 자주 방문.
특히 그의 나이 3살에 유모(乳母)가 맷돌을 가는 것을 보고 한시(漢詩)를 지어
동네뿐만 아니라 궁궐에까지 김시습이 신동이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다섯 살 때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을 배우고 시(詩)와 산문을 지었던 신동!
다섯 살 되던 해에 소문을 들은 세종(世宗)의 부름을 받고 궁궐에 들어갑니다.
도승지를 시켜 5세(五歲) 김시습에게 몇 시(詩)를 지어보게 하였는데,
세종의 요구에 맞춰 시(詩)를 척척 지어내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죠.
세종(世宗)은 "내가 친히 보고 싶으나 세상에서 듣기에 놀라울 게 염려되니
너는 집에서 재주를 감추고 교양하여 그 학문이 성취하기를 기다리면 내가 장차 크게 쓸 것이다"
약속하고 비단 50필을 하사하였죠.
이처럼 어려서부터 천재로 명성을 날리던 김시습이었지만,
사춘기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가정적인 시련이 시작됩니다.
어머니의 산소에서 3년 동안 시묘(侍墓)살이를 한 김시습은 아버지의 재혼(再婚)으로 외가(外家)에 맡겨졌으나
곧이어 돌봐주던 외숙모마저 죽고, 아버지마저 중병(重病)에 걸리는 등 고난이 계속되었죠.
그 와중에 김시습은 훈련원 도정 남효례(남효례)의 딸을 아내로 맞아 혼인했으나 그 또한 순탄치 못했습니다.
김시습의 불행은 계속 이어져, 훗날 그를 나라의 큰 인재로 쓰겠다고 약속한 세종(世宗)이 사망한 후
병약한 문종이 죽은 후 수양대군(首陽大君, 훗날 세조)이 단종(端宗)을 내쫒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나폴레옹을 흠모한 베에토벤이 황제가 된 소식을 듣고 악보 헌정을 취소하면서 "어느 영웅을 생각하며"로 바꾼 것처럼
김시습은 대성통곡하고, 책을 불사르고 광기(狂氣)를 일으켜 뒷간에 빠지기까지 합니다.
장차 관료로 나아가 나랏일로 백성에게 봉사 할뜻을 잃어버리게 된 거죠.
김시습은 강원도와 평안도를 떠돌아 다니다 경기도를 거처 이곳 충청도 깊숙한 산골마을 공주 마곡사로 들어왔는데,
어찌 알았는지, 세조가 마곡사에 김시습이 은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가마(輦)타고 행차를 했던 것이죠.
평생 어디에도 얽매이기 싫어했던 김시습.
그는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삶의 여정을 걸으며, 거짓 미쳐서 세상을 피하였으니
재주가 그릇 밖에 넘쳐도 능히 스스로 잡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을 보러 온다는 세조의 방문이 달가울 리 없없던 그가 미리 마곡사를 떠나니
며칠 후, 세조가 공주 마곡사에 당도 했지만 이미 김시습은 마곡사를 떠나버린 후(後)죠.
이때 세조는 지금 해체 후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간 마곡사의 영산전(靈山殿)이라는 현판을 직접 쓰고,
"김시습이 나를 버리고 떠났으니 연(輦, 가마)을 타고 갈 수는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소를 타고 돌아 갔다는 거죠.
여기서 연(輦)은 왕이 타는 가마로 네(4) 사람이 들고 이동을 하는 교통수단을 말합니다.
어찌보면 무척 실망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가마에 꼬박 틀어앉아 장시간 이동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니,
소를 타고 갔다는 건, 연(輦) 대신 소달구지나 우.마차같은 크고 편리한 수단으로 대체한 거 같습니다.
당시 세조가 마곡사에 버리고 간 가마(輦)가 마곡사 대광보전(大光寶殿) 안에 보관되어 내려오고 있는 겁니다.
국보도 보물도 아니지만, 범종(梵鐘:지방유형문화재 62),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와 함께
마곡사 사보(寺寶)인지라, 제가 명동님에게 '세조의 연(輦)'을 보여주려고 마곡사를 찾자고 한 것이죠.
마곡사 주차장~ 마곡사입구 좌측능선~ 활인봉~ 내발봉~ 성보박물관- 마곡사 구경,
마곡사 주위 3~4시간 걷는 산행 코스는 보나마나 싫어할 테니, 처음부터 마곡사만 보자고 했습니다.
한 겨울 추운 날씨이고 사람으로 들끓는 마곡사의 말사인 갑사나 동학사와 달리
마곡사는 정감록(鄭鑑錄) 십승지지(十勝之地) 외진 곳이라 찾는 사람이 적어
이 홈리스가 대광보전(大光寶殿),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 전, 후, 좌. 우로 뒤져도 '세조의 연(輦)'이 없으니,
명동님에게 보여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죠.
"도대체 어디에 숨겼지?" 스님들도 어디에 숨었나? 꽁꽁 숨어서 한 분도 보이지 않고요.
시봉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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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이 조선 시대 세조가 타던 연(輦, 임금이 타던 가마)입니다.
공주시 문화관광과에 있는 사진이죠. 장장 550여년 동안 김시습을 기다리는 가마가 되어 버렸네요.
김시습이 보고 싶어 찾아왔다 바람만 맞고, 썰렁하니 가마를 두고 한양으로 가버린 세조!
김시습 22세 때 단종복위를 논하다 사육신이 처형(處刑)되자
김시습은 성삼문, 유응부 등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에 묻어주고 작은 돌로 묘(墓)의 표(表示)를 하죠.
자진해서 자백하면 죄를 용서해주겠다는 세조에게, 실제로 세조는 용서해 주려고 했는지도 모르지만,
성삼문은 '전하'란 말 대신 '나으리'라 부르는 것으로 대신하니 세조의 화를 돋우죠.
5.18의 광주처럼, 서슬이 퍼런 세조(世祖)가 두려워 아무도 사육신의 시신(屍身)을 수습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는데,
김시습이 마차로 사지를 찢는 거열형(車裂刑)으로 찢어진 시신을 하나하나 바랑에 담아
한강을 건너 노량진에 묻었다는 것이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노량진(鷺梁津)에 매장(埋葬)한 사람으로......
이때 만들어진 묘(墓)에 기초하여 숙종(肅宗) 때 사육신이 다시 복권되면서
사육신의 묘가 크게 조성되었고, 이것이 바로 지금 노량진에 자리하고 있는 '사육신묘 (四六臣墓)' 자리죠..
사육신 이후 24살부터 중이 되어 전국을 떠돌며 방랑을 시작, 관서지방, 관동지방, 호서지방을 두루 유람하고
31살에는 경주(慶州) 남산(南山, 금오산)의 용장사(茸長寺)에 서실(書室)을 짓고 정착합니다.
이렇게 김시습은 세조(世祖)의 왕위 찬탈로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절개를 지킨 여섯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었는데,
이들을 생육신(生六臣)이라고 부르고 있죠.
최초의 한자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현실 세계에서 실현되지 않았던 사랑이나 정의(正義)와 같은 진리들이 언젠가 반드시
인간세상 밖에서라도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불가사의한 희망을 보여줍니다.
현실이 아무리 한줄기 빛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 상황이라도,
인간은 자기의 소신, 신념대로 꿋꿋하게 갈 수 밖에 없다는 거,
함부로 낙관할 수는 없지만 신념을 지키며 고군분투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리(眞理)가 실현되리라는 것,
이것이 김시습이 은둔(隱遁)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진실인 거 같습니다.
불도이자 유학자이자 도교, 유불선을 취하는 구도(求道)의 길이자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절대자유(絶對自由)의 길이 바로 김시습의 택한 길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꿈꾸다 생을 마친 늙은이 (몽사. 夢死)"라고 묘비병에 새겨달라고 했다죠.
베에토벤은 "희극은 끝났다 나에게 박수를 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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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세조의 연(輦)'을 보려던 계획은 허탕쳤으니 어디가서 알아봐야 되는지요?
공주시 문화관광과에 전화 걸면 되겠네요. ^_^
아! 마곡사에서 꼭 해야 될 일이, 대웅보전 (大雄寶殿)에 있는 싸리나무 기둥,
1,000년된 싸리나무 기둥을 꼭 만져야 염라대왕을 찾아도 편합니다.
● 녹두나물이라 부르지 않고 숙주나물이라 부르는 이유는 신숙주의 변절이 있어섭니다.
콩나물과 달리 잘 쉬는 나물이라, 숙주나물이라 부르게 된데는
같이 학문하던 집현전 학자들인 성산문, 박팽년 등과 사육신 복위에 뜻을 같이 하다,
변절 세조를 따르게 된데 있습니다.
이런 기초적인 얘기는 어느 한쪽의 얘기라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무척 복잡해 지지만, 간단하게 "숙주"란 말이 나타내는 뜻 하나만 보면,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한 전형적인 천재형 인간 임을 알 수가 있는 거죠.
정치인은 아니고 천재형 학자, 관리(?)입니다.
세조의 동생에게 사약을 내린 것도, 청령포 유배 단종을 죽인 것도 신숙주가 밀어붙인 작품이라고 역사는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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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대광보전(大光寶殿) 안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세조가 타던 가마'인 연(輦)을 찾을 수 없더군요.
1,000년 싸리나무 기둥을 만지기 위해 대웅보전 (大雄寶殿)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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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보전 (大雄寶殿) 오르는 계단에서 보면 마곡사 기와지붕의 아름다운 선이 잘 보여지죠. 오른쪽 대광보전(大光寶殿)과 왼쪽 공사중인 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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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801호 대웅보전 (大雄寶殿)의 처마 곡선. 겉보기는 2층 건물 형태인 중층이나 안(內)은 하나의 공간이죠.
워낙 연등을 많이 달아놓아, 실제 대웅보전 (大雄寶殿) 안에 들어가서는 한룸, 한 공간인 것을 헤아릴 겨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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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양식은 조선시대 유행하였던 다포식으로서 외관이 화려하면서도 장중한 감을 줍니다. 팔작지붕으로 된 네 모서리에 처마를 받쳐주기 위한
활주가 세워져 있고요.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축물 가운데 많지 않은 중층건물로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표현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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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바랜 듯한 채색의 화려(華麗)와 중층 목조건물의 자연스러움이 조화를 이뤄, 하나(一體)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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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보전 (大雄寶殿) 돌 탑 위에서 바라본 마곡사 대광보전(大光寶殿)의 순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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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801호. 1651년과 1842년 등 몇 차례의 중수 및 개수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팔작지붕의 중층건물로 아래층은 가운데에 있는 3칸을 일정한 간격으로 구획하여 삼분합(三分閤) 띠살문을 달았고,
양 끝칸에는 쌍여닫이 정자(井字) 살문을 달았고 위층에는 정면에 채광을 위한 빗살창이 있으며 나머지는 판벽(板壁)으로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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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전통 목조 건물이죠.
자연석 기단 위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평면구조를 가진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인 대광보전(大光寶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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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역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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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보전 (大雄寶殿, 보물 제801호) 현판(懸板)에 낙관이 없지만 김생(金生)이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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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흐르는 쌍여닫이 정자(井字) 살문 문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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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쇠 문고리 색이 벗겨지고 반질반질 빛나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 출입이 많지 않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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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심에 석가여래불을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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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석가여래불을 오른쪽에 약사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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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타불과 오른쪽 석가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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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공간인 극락을 상징하는 대웅보전(보물 801호) 안, 스님이 없어서 사진 찍을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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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보전 (大雄寶殿, 보물 제801호) 안의 기둥들은 둘레가 2m가 넘는 싸리나무로 되어 있고 대게 반들반들 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이 다하여 염라대왕 앞으로 가면 "이 기둥을 안아 보았느냐?"고 물어보는데, 없다고 답하면 바로 지옥행이고,
안아본 중생은 극락 세계로 보낸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마곡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은 몇번이고 이 기둥을 안아 봅니다. 삼천갑자 동방삭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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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사를 말사로 하여 동학사를 부속사찰로 삼고 있는 공주의 대사찰 마곡사는 사람이 붐비는 사찰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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