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호국경 (문광 스님) - 10월 교육법회 봉행
삼보에 귀의 하옵고 _()_
■.법회주제 : 인왕호국경
일 시 : 불기 2566년 10 월 14일 (금) 저녁7시~9시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법 문 : 문광 스님
사 회 : 교육부장 대철 이학구
참석자 : 총동문회 제9대 회장 혜월 권순석 외 130 명 참석
집 전 : 신행부장 일심행 전지유
반 주 : 정진경 삼조
■. 법회식순 : 노래로 떠나는 구법여행(님을 따라 날고 싶어라)- 오카리나 연주 (삼조 정진경. 명심등 주숙자 : 10월의 어느 멋
진 날에)-개회사 – 삼귀의 – 우리말반야심경-인사말(회장님) -청법가 – 입정 – 법문 ( 문광 스님)-발원문 – 공지사항 – 사홍서원
–산회가 –폐회사 – 기념사진 촬영
■. 10월 교육법회 이모저모
가을에만 볼 수 있는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나 자연이 선물하는 풍경을 느끼는 계절입니다. 저희 총동문회는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교수와 조계종 교육아사리를 맡고 계시고, 한국학 대학원에서 탄허 스님 사상을 연구해 국내 제 1호 박사이신 문광스님을
모시고 10월 교육법회 특강에서 인왕호국경을 청해 들었습니다.
문광스님께서는 이 자리에서 “ 인왕호국경은 반야부 경전으로서 이호와 내호 외호를 해야 한다 하시며 호국 반야바라밀을 근
본으로 독송하고 수행하라.” 하시며 감로법문을 주셨습니다.
법석에는 성해 장경태(교육본부 부회장)상임고문, 호연 김경숙(신도회 부회장)장학회이사장, 대덕심 김영숙 자문위원장, 삼조
정진경, 자문위원(영윤 김용규, 경담 이원굉, 수연심 남미화, 정진행 양순덕, 현진화 김정미, 도안심 이순화, 환희지 권종순, 평전
하용수, 월광지 임연선, 법연 이동엽) 외 총동문회 운영위원 및 불자 130여명이 함께했습니다.
■, 인사말
안녕하세요?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회장 혜월 권 순석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 제3회 문화대축전 행사가 동문님들의 열정적인 성원속에 원만하게 회향 하였습니다. 행
사를 통하여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회는 명실 공히 불교의 인재양성을 위한 최고의 신행단체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5월 1차 법석부터 5차법석인 문화대축전까지 6개월간 수고해주신 임원님 및 동문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바쁘신 일정에도 법회를 위하여 걸음을 주신 이시대의 선지식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교수로 계시는 문광스님의 “인왕호
국경”의 법문을 가슴속 깊이 새겨 수지독송 함으로써, 먼저 반야지혜를 체득하고 나아가 가정과 이웃 그리고 사회에 널리, 불법
을 홍포하여 불국토를 구현하는데, 여기계시는 동문님 및 불자님들께서 선도적으로 역할을 다해 주실 것을 발원드리며 이만 인
사에 대할까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기 2566(2022)년 10월 14일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회장 혜월 권 순석 합장
■.법 문 - (문광스님 : 인왕호국경 )
네 반갑습니다.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조계사 불교 대학 총동문회 회원이 4천명이 된 답니다.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대학 아니겠습니까. 만나서 반갑고요. 이렇게 그래도 코로나 이후에 이렇게 그래도 다 같이
법회를 하실 수 있게 되셔서 반갑고 좋습니다.
그렇죠. 아무리 유튜브로 많은 강의를 들으시고 하더라도 항상 조계사에 오셔가지고 함께 호흡을 같이 하고 현장에서 이렇게
법문 듣고 하시는 게 진짜 좋은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하셔야 실제로 우리가 이제 온라인으로 하는 거 방편이죠.
이렇게 다 모여 주고 여기 오시는 거 그다음에 가시는 거 이런 거 이제 다 그 시간이다.
공덕을 짓는 시간이 되고 앞에 이렇게 다 여법하게 의식을 하고 하는 것이 마음을 가다듬어서 마음을 보고 좋은 모습 보니까.
우리 지금 동문회장님께서 이번에는 인왕호국경으로 한번 강의를 한번 해달라고 그러셔서 하게 됐는데 지금 오늘 책 받으셨지
요. 인왕호국경이라고 이렇게 돼 있는데요. 여러분들이 책을 이렇게 펼치시면 . 인왕제색도 인왕호국경입니다. 이 자리에 무학
대사가 세워졌던 인왕사 라는 절이 있었어요. 그래서 산 이름이 인왕산이 된 거예요. 오늘은 인왕산에 대해서 그다음에 무학대
사의 이야기 그다음에 황용사에서 부터 시작해서 고려시대 조선 초기까지 있었던 인왕경을 독송하고 그다음 백고좌를 활발발
하게 했던 그런 인연법들 분들 다 한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처음에는 이렇게 인왕경을 이렇게 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좀 더 잘 보이게 색깔을 바꿨어요. 이 세가 나왔어요.
한 달 만에 이 천 부가 다 나가고 2세가 나왔어요.
동국역경원에서 몇 개월 만에 나갔는데 이게 나왔는데 이렇게 불교경전이 빠른 시간에 많이 책이 나가서 완판이 돼가지고 한
달 만에 이렇게 다시 이 세를 출간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럽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인왕경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오늘은 이제 인왕경에 대해서 말씀을 준비를 했었는데 원래는 이 인왕경을 제가 하고 이런
걸 좋은 말씀을 가지고 특히 이제 서울에 이제 동국대 이런 데 저는 화계사 불교대학 강의하고 저희 강남의 금강선원 그 다음
에 길상사에서도 하고 그다음에 동국대에서도 하고 여러 군데에서 이렇게 처음에 사찰에서 불교대학 강의를 많이 하고 해서
서울 인근에 있는 산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여러분 전 세계를 많이 다녀보셔서 아시겠지만 수도에 이렇게 강력한 산들이 있
는 경우는 좀 드뭅니다. 이렇게 바위산이 힘 있는 바위 사이로 이렇게 수도 와서 이렇게 한국의 우리 수도는 한강같이 넓은 물
을 가지고 북한산에서부터 시작해서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 그다음에 건너편에 관악산까지 이렇게 크게 산이 이렇게 돼 있
는 곳이 잘 없죠. 근데 제가 등산을 다니다가 궁금해졌어요. 왜 서쪽에 인왕산이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 동대
문을 흥인지문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인의예지신 오행 오상에 맞춰서 조선왕조 때 세팅을 했는데 여러분 동서남북이 인의예지에 이제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냐면 동쪽이 인이고요 서쪽이 의입니다.
그다음에 남쪽이 예가 되고요. 북쪽이 지혜 지 자가 되고 한 가운데가 신자가 돼요.
그래서 여러분 보신각이 종각에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동쪽에서 동대문이 흥인지문이고 서쪽이 원래 돈의문이 있었습니다.
서대문이 아니라 돈의문이 있었고요 지금 남대문은 여전히 숭례문이 있죠.
북쪽에도 이제 홍지문이 있었습니다. 인의예지가 그렇게 돼 있는 게 맞는데 우리가 지금 여기 서울에서 봤을 때 남쪽에 있어서
남산이라고 한 거예요. 보통 이제 남쪽으로 많이 보고 집을 남향을 많이 지으니까 남산이라는 뜻은 다른 말로 그냥 앞산이라는
뜻이 됩니다.
북산을 이제 뒷산이 되겠고요 그래서 북악산 남산만 해도 이게 이미 경복궁 짓고 이렇게 할 때 그렇게 처음에 이렇게 이름이
영향을 미쳤구나 그러면은 서쪽에 있는 인왕산은 서울이 한양이 조선이 되기 전에 있었나 싶어서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그
렇지 않아요.
인왕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거는 조선 이후에 생긴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태조 이성계가 뭐냐 하면 서산에 서봉에 거둥했
다. 우리가 거동했다라고 하지 않고요 왕은 거둥했다고 나옵니다. 태조 이성계가 서산에 거둥했다. 이런 표현이 나와요 그러니
까 원래 서쪽 서 자를 써서 서봉은 서산이었어요. 인왕산이 그랬는데 갑자기 어느 날부터 인왕산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
을 합니다. 제가 이제 궁금했죠. 찾아보니까 저쪽에 선바위 있는데 그쪽에 인왕사라는 절이 있어요. 거기 역사를 봤더니 1900년
대에 생긴 절들이에요.
그러니까 예전에 있었던 인왕사가 아니라 역사를 보니까 이렇게 앞에 보면 이쪽에 원래는 청운동 그다음에 신교동이 아니라
원래는 조선시대 때는 인왕동이었대요 인왕동 인왕동이 있었고 여기에 이제 인왕사가 있었는데 무학대사가 창건한 거 같아요.
왜 그러냐 하면 여기에 주지 스님으로 있었던 분이 할아버지 조 자에 날 생 조생이라고 하는 스님이 인왕사에서 주지를 맡으시
면서 태조 이성계가 거둥해서 인왕사에 왔을 때 주지 조생 스님이 맞이했다. 고 나오고 인왕사에 내원당이 있었다. 왕실의 복을
비는 내원당이 있었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이 조생 스님은 정릉에 보면 여러분 흥천사가 있지요. 태조 이성계의 부인인
왕비의 릉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게 원래 정릉인 거죠. 그 왕릉의 부인의 왕비의 능을 지키는 원찰이 돼서 흥천사였거든요. 이 무학대사의 제자 이신
조생 스님은 경복궁에서 옆에 있는 인왕사와 함께 흥천사 주지도 하셨던거 같애요. 그래서 그런 기록이 나와 있어요. 근데 그
인왕사가 쭉 있다가 연산군 1503년에 폐사를 했답니다. 경복궁을 내려다본다. 기분 나쁘다 절을 없애나 이래가지고 한 대여섯
개의 사찰이 지금 여러분 지금 인왕사라고 있는 것은 조계종단은 아닌 것 같아요. 여러 법당들이 있는 걸 합해서 인왕사라고
하고 있는데 옛날에 인왕사가 있었으니까 그랬던 것 같고요 그런데 그 사찰 말고 정말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인왕사가 있었
습니다. 지금 위치가 어디인가 제가 인왕경 독송을 많이 하자고 하니까 많은 분들이 이제 인왕산을 막 올라가시면서 인왕사가
어디 있는가. 지금 이제 막 찾으로 다니시는 분들이 답사하시는 분이 많이 생겼을 거예요.
근데 인왕산 정상 중에 복세암이라고 하는 암자가 있어요.
복복 자의 세상 세 자 온 세상에 복을 내리게 해라 이런 뜻으로 복세암이라고 하는 암자가 인왕산 제일 꼭대기 쪽에 있었던 것
같고요 그 밑에 이제 인왕사가 있었데요. 그리고 이 인왕사에서 좀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쭉 가다 보면 금강굴이라고 하는 게
있었다. 그 금강물이 지금 있는 석굴암하고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석굴암이라고 있죠. 그쪽도 그리고 그 인근에 비구니 스님 승방도 있었고요
그러면은 이 인왕사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 인왕산이 됐다.
그래요 그게 지명이 여러분 절이 있어서 지명이 되는 데가 많습니다.
여러분 안양 있죠. 경기도 안양 안양이 뭡니까 안양이 극락이라는 뜻이잖아요.
우리 천수경의 원아 결정 생안양 원컨데 결정코 안양에 태어나기를 원하옵니다.
안양은 극락이잖아요. 안양이라는 곳에 안양사가 있었어요. 안양사가 있어서 그러니까 이제 안양이 어요. 여러분 불광동에도
불광사가 있었고요 보문동에도 보문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 동네 이름이 다 그렇게 되고 지명도 그렇게 됐습니다.
불광동에 아무리 교회가 많아 봤자 그 교회는 부처님 광명이 내게 있는 교회였습니다.
보문동에 아무리 뭐 보문동에 아무리 교회가 많아 봐야 관세음보살님의 영향권 안에 있는
이렇게 우리가 곳곳에 우리 명칭이 다 불교 용어인데요.
그래서 제가 이제 인왕사가 있어서 여기가 인왕산이 됐구나 하는 걸 알고 그다음에 구글 세계 지도를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런
데 전 세계에 인왕산은 한국밖에 없어요.
그래서 모든 논문을 다 찾아봤는데 왜 여기에 인왕사라고 하는 이름은 왜 생겼는지 라고 하는 거에 대해서 정확하게 나온 곳이
별로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왕조실록에도 인왕이라는 뜻이 유가 선비들이 잘 몰랐던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나 온 석가모니부처님을 상징하는 거다. 이렇게 설명을 잘 못 해놨어요. 그래서 그런 기록이 있다. 보니까 학자
다른 학자 교수님들이 그게 아니고 그것도 이제 유가 선비들이 잘못 안 거고 그 인왕이라고 하는 거는 여러분 석굴암에 가시면
금강역사라고 양옆에 이렇게 지키고 있는 두 금강역사가 있잖아요.
그 금강역사를 인왕 역사라고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 인왕 역사를 상징하고 뭔가 한양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서 얘기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추정하는 것까지는 논문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때는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인왕경 때문인 것 같아요. 인왕경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왕경을 인왕사
를 무학대사가 창건을 해서 제자인 조생 스님에게 주지를 맡기면서 태조 이성계의 왕실의 원찰로 내원당도 세우고 거기에서
인왕경을 독송하지 않았겠느냐 그래서 인왕경에 대해서 쭉 보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냐면 진흥왕 때 이미 황룡사에서 이날 백
고좌를 한 내용이 역사에 등장합니다..
그때는 우리는 원광법사 세속오계로 많이 알고 있는 원광법사가 데 인왕회 라고 그래요
인왕경을 독송하는 그 법회를 인왕회라고 하는데 그걸 주관을 하셨다. 라고 하는 내용이 등장하고 있고 선덕 여왕이 좀 아프셨
던가 선덕 여왕이 아프셨을 때 또 인왕백고좌 했다.
이런 기록들이 다 나오고 있고요 고려시대 때로 넘어가면 도선국사의 후원을 이루어서 태조 왕건이 훈요10조 이라는 걸 남겼
잖아요.
도선국사가 정해 준 지역 말고는 절을 짓지 말아라 우리 몸에 중요한 혈자리에 침을 넣듯이 도선국사가 절을 다 이렇게 지워서
풍수지리 입각해서 좋은 자리를 다 만들어 놨으니까 아무 데나 막 절을 짓지 마라 그러면 땅에 기가 쇄한다 그래서 태조 왕건
이 후대의 자손들 왕들에게 이렇게 전부 다 알려줬잖아요.
이렇게 지켜야 할 거 거기에 훈요10조에 또 등장하는 게 연등회 팔관회를 꼭 해라 이런 말이 나옵니다. 연등회라고 하는 것이
그때부터 있어가지고 우리가 얼마 전부터 연등회를 열심히 해서 너무나 멋있는 연등회를 옛날부터 했던 걸 복원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잖아요. 맞죠. 이게 그 연등회가 고려시대의 가장 큰 국가 행사고 말하자면 연휴이었어요.
공무원을 한 3일 쉬었어요. 한 연등회를 해서 한 일주일 정도 그 축제를 하고 이렇게 했던 것 같아 연둥회를 제일 많이 했습니
다. 고려 시대 때 전체 연등이 한 160개 정도 되었때요.
그러면 여러분 고려 왕조에 한 2~3년에 한 번은 반드시 연등회를 무조건 했던 거고 매년 했다고 보아집니다. 그리고 팔관회라
고 하는 건 팔관 재계를 하잖아요.
팔관 재계를 할 때는 이제 우리가 이제 계율을 지키고 이렇게 할 때 보통 수륙재라든지 이제 재를 같이 하고 전쟁에 나가서 돌
아가신 선국선열이나 이런 제사를 지내고 그런 걸 하니까 재개하는 거니까 팔간 재계도 많이 했단 말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인왕회를 팔관회보다 더 많이 했어요.
한 120배 정도 걸리지 했습니다. 원나라가 침입을 해서 몽골 침입때 충 자 돌림 왕이 한 6명인가 있었죠. 그때에는 이 인왕회를
백고사를 잘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호국품이 있거든요. 국가를 수호하는 말하자면 자주 독립하겠다는 의지가 생겨날 수 있으니까 원나라의 눈치
를 보느라 인왕경을 독송을 하고 우리가 자력을 힘을 길러서 원나라의 어떤 지배 간섭으로 벗어나자 이런 걸 못했던 것 같아
요. 그런데 그 이후에 굉장히 또 열심히 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면 무학대사의 스승이 나옹스님이잖아요,. 고려 말 삼화상 나옹.지공.무학 그리고 백운 경한 백운 스님은 직지심경으로 태
고 보우국사는 우리나라의 국사로 유명해 그렇게 이 세 분의 제자 나옹스님의 제자니까 무학대사 같은 경우는 고려에 이 불교
의 전통을 잘 알고 계셨겠죠. 원래 그 무학대사는 이 서울에 터를 잡을 때 인왕산을 뒷산으로 삼아야 되는 인왕산을 뒷산으로
주산을 잡아가지고 지금 청와대 뒷산인 북악을 좌청용 왼쪽 산으로 하고 오른쪽 우백호을 남산으로 해서 저 앞에 보이는 안산
이게 앞에 쭉 보이는 게 안산이거든요.
책상 반 자 써서 안산이어요. 그 안산을 종로 여러분 율곡로에 지금 터널로 만들었잖아요.
그게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 맥을 끊는다고 종묘로 내려가는 종로 3가로 내려가는 길게 된 그 길에 맥을 끊는다고 잘
라버렸잖아요. 그런데 그걸 다시 위로 이었죠. 위에 지금 이어가지고 종묘까지 내려가죠.
그게 율곡 로죠. 그쪽이가 산이 인왕산에서 보면 일자로 펼쳐저있죠.
그 뒤에 그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 뒤에 낙산이 또 그리고 저 뒤에 아주 그냥 산들이 워커힐 쪽 보이는 아차산 용마산 그쪽에 가
지고 그냥 산들이 쫙 펼쳐져 있어서 겹겹이 아주 멋있는 안산이 돼 있죠 객산도 있고 그렇게 무학대사는 절을 왕궁을 그렇게
지어야 된다. 그랬었습니다. 근데 정도전이 그죠 삼봉 정도전이 왕은 무조건 남향을 해야 된다 그래가지고 북악산을 등지고 인
왕산을 우백호로 삼고 좌 청용은 저기 낙산을 잡아가지고 앞을 보게 했는데 그렇게 하니까 이제 남산이 남산이 이제 안산이 앞
에 보여야 되는데 여러분 나중에 이제 경복궁 가거나 이제 청와대가 개방됐으니 한번 가보십시오
경복궁 쪽에 이렇게 보면 정면에 남산이 있지 않아요. 약간 이쪽에 좀 이쪽 옆에 남산이 있어요. 그래서 그래도 앞에 안산이 하
나 있어야지 그렇게 텅 비어 놓으면 안 된다 바로 그 관악산이 보이니까 여기에서 서울에서 보는 관악산은 마치 불이 활활 타
는 것 같아요. 그건 불기운이 와서 좋지 않다고 했는데 여러분 관악산 등산해 보셨어요.
관악산 제일 빨리 올라가는 게 과천에서 올라가는 거 얘기죠 과천에서 올라가서 관악산 정상에 이제 연주암 거쳐서 연주대에
올라가서 이렇게 보시면 관악산이 서울 쪽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안양과 과천 쪽을 보고 있어요. 그래서 안양과 과천에서 보면
이렇게 관악산이 이제 장군이 이렇게 보고 있고 장군 대자형이라고 그래가지고 모든 신하들이 이제 왕에게 이렇게 보고 있는
장군에게 군대가 나열해 있는 것처럼 그래서 관악산은 서울을 등지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과천에 정부청사 쪽에 가서
보이는 그 관악산 모습이 제일 멋있습니다. 이쪽에서 보면 서울에서 보면 등쪽이 인데 막 이렇게 불이 이렇게 피어오르듯이 이
렇게 돼 있고 또 서울에서 보면 저기 관악산 한쪽에 보면 이제 호압사 라고 있어요.
호압사 호랑이 호 자 이게 호랑이같이 이쪽을 경복궁을 보고 있다고 그래가지고 그 기운을 호랑이를 바위를 없앨 수는 없고 그
래서 호랑이 꼬리를 꽉 밟아놔라 그래서 눈으로 압 자를 써서 호압사를 절을 지었어요.
무학대사의 비보 사설입니다. 그래서 그런 기운이 경복궁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때 그렇게 비보로서 절을 세워서 한 거죠.
숭례문도 새로 보내서 불기운이 일어나듯이 맞불을 놓듯이 했다든지 해태 불을 잡아먹는 해태를 경복궁에 했다든지 경회루 안
에 물을 잔뜩 호수 하듯이 했다. 이렇게 했어요. 근데 경복궁을 지을 때 이미 태조 이성계가 지을 때 무학대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불기운이 바로 온다. 안 된다 그렇게 했는데 이미 불이 경복궁 지을 때 세 번 불이 났어요. 그러면 안 지었어야 되는데 거
기에 이제 경복궁을 짓고 그렇게 하면서 인왕산을 주산으로 생각하면 여러분 나중에 인왕산에 이제 등산 가실 때 이렇게 올라
가서 보시면 광화문에서 보는 경복궁 뒤의 북악산하고요 인왕산에서 보는 북악산하고 산이 완전 다릅니다. 앞쪽에서 보면 툭
튀어나와가지고 동쪽으로 달려나가고 있는 것이 이렇게 균형이 잘 안 맞아요. 그런데 인왕산에 올라가서 보면 이 인왕산의 고
개가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그러니까 이런 걸 이제 천작이라 그래요 하늘이 지어놓은 거다
그런데 그런 형태를 무학대사는 정확히 보신 것 같은데 무조건 남향에 해야 된다 왜냐하면 이치적으로 하늘의 천태의 운에 그
는 북극성이 항상 그 자리에 있잖아요.
있으면서 중성이 공지다 뭇별이 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잖아요. 그래서 항상 천자 임금은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면서
움직여야 하는 자리에 딱 있어야 된다.이래가지고 이제 무조건 남향을 해야 된다 이렇게 관념적으로 했는데 그것이 땅은 이게
이제 동향으로 세팅이 이미 되어 있는 게 어거지로 남향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현상이 이제 저기 태화동 있는 그쪽의 낙산은 나지막 하잖아요.
그죠 왼쪽에 있는 좌청용 마지막 산은 이제 맏아들을 뜻하고요 우백호 오른쪽에 있는 사람 이제 차자 둘째 셋째 아들 그다음에
딸들 며느리들 이렇게 돼 있어요. 여러분 경복궁에 가서 딱 보시면 인왕산이 뭐가 세 보입니까.
그래서 마지막에 조선조의 마지막 300년은 세도 정치 신하들이 자신의 딸을 세자 책봉한 세자빈으로 넣었다가 왕비를 만들어
서 모든 왕을 자신의 사위로 만들어서 자기 마음대로 정치를 하는 그러한 방식의 어떤 세팅이 정도전이 하지 않았겠느냐 왜 그
러냐면 조선은 왕의 나라가 아니라 사대부의 나라입니다. 왕 마음대로 못하고 신하의 뜻을 따라야 됩니다. 라고 하는 것이 세팅
이 되어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해놨어요.
그렇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냐 하면 맏아들이 좀 힘이 없어요.
낙산이 나지막하잖아요. 맏아들은 힘이 없고 그다음에 우백호에 있는 둘째 셋째 넷째 아들이 좋은 아들들이 막 기운 차게 나오
고 딸들 며느리들이 이제 기운찬 여러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래서 실질적으로 조선조의 맏아들이 왕이 된 분이 몇 분 없어요.
여섯 분인가 바뀌죠. 문종 문종이 세종대왕의 맏아들인데 병약해서 일찍 세상을 떠났고, 경복궁 안에서 태어난 처음으로 태어
난 왕이 단종입니다. 단종이 일찍 그렇게 됐고 세종대왕도 셋째 아들이고 수양대군도 머리가 얼마나 비상했습니까. 세조가 수
양대군도 아들이 이제 제 맏아들이 아닌 아들에서 인물이 나오니 이게 왕실이 편안하지 못할 거 아닙니까. 그러면 이제 신하들
이 대군 대군이 제일 훌륭한데 대군이 왕위를 그냥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면 계속해서 이제 쿠데타 형태가 일어나는 거죠.
이게 지금 그렇게 되는 걸 무학대사는 내다 봤다 이겁니다.
그래서 너무나 걱정이 돼서 이 인왕산을 세워서 나라를 어떻게 보호를 할 거냐 그래서 인왕경을 독송하는 인왕사를 세운 것이
아니냐 인왕사를 그렇게 세운 것이 아니냐 그렇게 추정이 돼요. 이 얘기들이 왕조실록에 나오지 않아요.
몇 개가 왜냐하면 불교에 대한 얘기들을 거의 다 잘 실어놓지 않습니다.
무학대사의 이야기를 왜 실어줬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이런 부분으로 봤을 때 적어도 인왕산은 인왕 역사가 아니라 인왕경이
다. 여러분 이제 여기 독송하시는 분들 많이 계시잖아요.
벌써 이미 인왕경을 매일 독송하는 분이 지금 수백 명이 지금 독송을 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900년을 인왕경을 독송하고 인왕경에 나온 내용 중에 호국품에 보면은 나라에 내유외환 그죠 나라의 근심거리가 생기
거나 바깥으로 전쟁이 나거나 질병이나 가뭄 홍수 태풍 지진 이런 것이 일어날 때 왕들은 늘 이 경전을 독송해라라고 하는 게
부처님 말씀이에요. 그래서 여기 있는 인왕경이 인왕 호국경 혹은 인왕 호국 반야바라밀경인데 경을 읽으시다 보면 중간에 나
오죠 이 경 이름은 인왕궁 반야바라밀경으로 해라 이렇게 나오죠 어진 임금이 반야바라밀에 대해서 질문한 경이다.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 파사니 왕을 비롯한 16국의 국왕을 이게 불러서 부처님께서 설법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그 왕들을 인왕이라고 불러준 거예요. 말하자면 파사니 왕이 그다지 성군이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리더 국가를 운영하는 그런 왕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아니하면 나라가 잘못되고 백성들이 국민들이 혼란에 빠진다.
그러니 그대들이 잘해야 된다. 그러면 어떻게 잘해야 되느냐 일단은 국가를 운영하는 리더들은 나라를 호국을 해야된다. 나라
를 수호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그 수호하다가 그 수호를 어떻게 해야 되냐 법을 해야 된다 이 불법을 수호를 해야 된다 불
법이라고 하는 게 딴 게 아니잖아요. 진리의 말씀이잖아 어떡하든 올바르게 해야 된다는 게 이 팔정도라는 바를 정자를 쓰는
거지 정법에 의지해서 나라를 운영해라 그래야 나라가 뭐가 된다.
근데 국민들에게 늘 나라를 위해서 국가를 지키고 수호하는 것만 주장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되면 호가 집을 지켜줘야 된다. 각자 각자의 가정들이 화목할 수 있고 그다음에 본인의 모든 재산을 비롯한 모
든 걸 지킬 수 있어야 되지 않느냐 그리고 호가 호신 백성들의 몸을 지켜줘야 되고 호신 백성들의 마음을 지켜줘야 된다 그래
서 내호와 외호 내 사람 백성들의 가정부터 시작해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걸 내호고 바깥으로 호법과 호국을 하는 건 외호다
그래서 2호 두 가지의 수호를 말씀하신 게 이 인화경이에요.
그러면서 이 인왕에게 인왕들에게 구구절절하게 설파를 하신 거죠.
국왕이시어 이러면서 근데 이제 부처님도 이 왕들이 별로 미답지 못하고 끝까지 훌륭하지 못해도 인왕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거예요. 인왕문 반야바라밀이라고 그래요 근데 그리고 호심 마음은 어떻게 수호하느냐 반야바라밀로 수호해라 이렇게 된 거 아
니에요.
읽어보시니까 그렇게 돼 있죠. 그래서 여러분 이제 이번에 보시면 앞에 인왕경에 보시면 목차가 있잖아요. 목차 한번 보세요.
목차에 보시면 독송분에 보시면 서품이 나오고 두 번째 이제 관공품 나오고 보살 교화품 이 제품 여기까지가 내호입니다.
내 마음을 어떻게 보호할 거냐 그러니까 마음을 어떻게 보호해야 되느냐 반야바라밀로 수호해야 된다. 나를 뭘로 지킬 거냐 마
음을 뭘로 지킬 거냐 반야바라밀의 지혜로 지켜야 된다 그래서 관공품의 공이 등장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것은 반야부 경전
입니다.
인왕경이 정치적인 경전이 아닙니다. 우리가 반야심경이나 금강경하고 똑같이 반야부 경전이에요. 그래서 중심적인 거는 뭐냐
하면 원래는 항상 우리가 수지 독송을 할 때 뭐냐 하면 나를 지키고 그다음에 우리 가족을 지키고 내 몸과 마음을 지켜서 가족
을 지키고 지역사회를 지키고 불법을 지키고 국가를 지키고 여기에다가 이제 저는 한 마디 더 못했습니다.
호세 지금 전 세계 전체를 지키려면 각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를 지키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내 마음이 공으로 가야
됩니다. 내 마음이 흔들리면 아무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어요. 조금 전에 반야부 경전의 600구 반야를 하나로 압축해놓은 게 반
야심경인데 그게 무유 공포 원리 전도 몽상하잖아요. 그죠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해야 공포가 없어지고 전도 몽상에서 멀리 떠나
게 된다.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내가 마음을 다 비워놓고 보면 공포가 사라지는 거예요.
공에 들어가서 색 수상행식 그죠 고집멸도도 없고 색 수상행식도 없고 그죠 무지 역무득게 깨달을 바도 없고 이렇게 모든 걸
공으로 보게 되면 이 몸땡이 죽는 거 겁낼 거도 없고 그렇죠 그다음에 이 세상이 멸망을 합니까 지구가 종말이 옵니까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그거 한 망상이다. 이거죠. 지구가 망하긴 뭘 망해 결론이 그 이후의 수명은 아직 반도 안 됐다 언제 왔어 반도 안 됐다 그게 이
제 결론입니다. 종말이 아니라 성숙이고 심판이 아니라 결실을 맺는 때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거든요.
이게 모든 종말론은 잘못하면 사비 종교로 가는 그게 뭘 지금 우리나라에 제일 잘 되는 게 사이비 종교 같아요. 사이비 종교가
가장 신심이 좋고 그게 무엇이 바탕 됩니까 공포심을 갖다가 거지 맞죠. 무유 공포 내가 지금 두렵고 겁나고 이러니까 막 뛰어
드는 거죠. 네 우리가 불자 여러분들 보면 이렇게 바깥에 나가서 시끄럽게 막 떠들지는 안하셔도 보시면 별로 없어요. 든든하게
이렇게 소설 보듯이 이렇게 보고 그렇죠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어디 나오냐 반야에서 온 거예요.
여러분들이 늘 이렇게 반야바라밀 그다음에 무심 그다음에 이 마음을 비우고 부동심 이렇게 평상심 이런 것들을 강조하는 걸
쭉 보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요동쳐가지고 그런 생각에 빨리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견에 넘어가지 않죠. 그런 거를 기본으로 한
다음에 각자 각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난 다음에 가정을 보호가 된 대요
마음이 불편하면 몸도 불편해잖아 요즘 여러분 병원에 가면 점점 많아지는 게 뭡니까 시민성입니다. 그죠 예전에는 위장병 오
르면 막 이렇게 헬리코박터 막 이런 것들 요즘은 신경성 위장병이 그죠 다 마음의 문제라는 게 요즘 나오는 의학이 전체 대부
분 그렇게 갑니다.
뇌 과학도 그러하고요. 그다음에 정신질환도 그렇다고요. 전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로 다 몸이 문제가 왔다고 보는 거
잖아요. 전부 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이게 근본입니다.
나를 지키려면 공을 마음을 공안 쪽으로 가서 마음을 하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을 그것을 삼지 않고 내가 늘 하고 있는 수
행들 여러분 연구를 하시든 바라밀을 하든 독경을 하든 참선을 하든 위빠사나를 하시든 화두를 들든 절을 하시든 사경을 하든
뭘 해도 좋죠. 모든 것이 선으로 들어갑니다. 무심 삼매 일념이 지속돼서 한 생각 일어나지 않는 집중에 사마따 그 마음을 다 간
직하고 있어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딱 알아차리는 거죠.
그거 말하는 마인드 플리스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런 형태로 되는 부분이 이제 수행이죠.
이렇게 되어야 이게 기본이 한 분 한 분이 마음이 편하고 그런 분들이 모여 있을 때 이제 지역사회가 조용해지고 지켜지고 또
이게 잘 된다는 그거에 나서야 되는 거를 누가 해야 되느냐 국왕들이 나서서 반야바라밀을 근본으로 해서 이호와 내호 외호를
해야된다. 라고 하는 점이 이경의 근본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번 독송을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관공품 보살교화품 이제
품 이제라는 것은 진제와 속제예요.
공의세계와 세계 세계다 이 말이죠. 여러분이게 쉽지 않아요. 맞죠 독송해 보기 쉽지 않아요. 금강경보다 어렵고요. 반야심경보
다 한참 어렵습니다.
이경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 어요 근데 고려시대 때 경을 가지고요.
다 함께 호국품 제 5를 함께 읽겠습니다.
귀한 법문을 주신 문광스님께 삼배예를 올립니다._()_
신통이나 좋은 경계로 일어나는 것은 천마이고
마음이 가라앉는 나쁜 경계로 일어나는 것은 음마이며
좋은 경계와 나쁜 경계로 번갈아 일어나는 것은 번뇌마이다.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
첫댓글 인왕호국경을 첨으로 법문을 들어봤는데요.~ 추후 자주 독송하고
널리 전하도록 힘쓰겠습니다.
귀한 법문 감사드립니다._()_
법연자문위원님
법회의 이모저모 내용을 잘 정리해주셨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_()_
혜월 회장님의 공덕입니다._()_
수고많으셨습니다._()_
성해 상임고문님 항상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