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流客(풍류객)이라는 말이 있다.
風流(풍류)란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는 멋스럽고 風致(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이라는 뜻이다.
둘째는 大風流(대풍류)로 줄 풍류 따위의 管樂 合奏(관악 합주)와
小編成(소편성)의 管絃樂(관현악)을 日常的(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風流客(풍류객)이라는 말은 풍류를 즐기는 사람
또는 세상의 俗(속)된 일을 떠나 雲致(운치)있고
멋있는 삶을 즐기기 위해 풍류방에 모여 즐기던 音樂(음악)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는 俗世(속세)의 辭典的(사전적)인 의미이다.
旣實(기실)은 道通(도통)한 大人君子(대인군자)가 俗世(속세)를 떠나
天下物情(천하물정)을 살피며 새로운 세상을 指向(지향)하기 위한
天下流歷(천하유력)을 풍류객이라 한다.
乾達(건달)의 大覺(대각)한 道人(도인)의 길이다.
그 大人(대인)이 걸어온 삶의 過程(과정)을 直接(직접) 겪어 보는 길이 순례이다.
그 순례의
첫째는 修行 苦行法(수행 고행법)으로 하는 聖地巡禮(성지순례)가 있다.
둘째는 믿음의 精誠(정성)을
몸으로 直接(직접) 나타내기 爲(위)한 方便(방편)의 성지순례가 있다.
셋째는 修行(수행)의 길에서 靈的(영적)인 깨달음을 위한
육체적인 鍛鍊(단련)의 五體投地法 巡禮(오체투지 순례) 등이다.
넷째는 나의 人生(인생)을 깊이 省察(성찰)해 보면서
未來(미래)의 인생길을 窮究(궁구)하기 위한 순례가 있다.
순례란 말 뜻의
첫째는 宗敎(종교)의 發生地(발생지), 本産地(본산지)의 所在地(소재지),
聖人(성인)의 무덤이나 居住地(거주지)와 같이
宗敎的(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며
訪問(방문)하거나 參拜(참배)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는 大人(대인)의 聖人君子(성인군자)를 思慕(사모)하며
敬拜(경배)하기 爲(위)한 聖地巡禮(성지순례)길이 많이 있다.
佛敎(불교)에서는
티베트 佛敎徒(불교도)들이 오체투지로
靈魂(영혼)의 都市(도시)라 믿는 라싸에 가는 순례가 있고
神(신)의 山(산)이요, 聖山(성산)이라 여기는 須彌山(수미산)에 가는 순례가 있다.
그 외 여러 성지를 순례한다.
五體投地(오체투지)란 몸의 다섯부분이 땅에 닿도록 절 한다는 뜻이다.
일명 五輪歸命(오륜귀명), 五輪撲地(오륜박지),
五輪作禮(오륜작례), 五輪 著地(오륜착지)라 한다.
즉 두 팔꿈치와 두 무릎과
그리고 머리의 이마를 땅바닥에 닿게 절하는 禮法(예법)이다.
또 三步一拜(삼보일배)를 한다.
三步(삼보)를 걸어 한 번 절하는 순례 예법이다.
동양사상의 五行 精神(오행 정신)이다.
그리고 삼보 일배는 三神思想(삼신사상)의 하나가 셋이고, 셋이 곧 하나라는 뜻이다.
또한 佛敎(불교)의 세가지 보배를 三寶(삼보)라 稱(칭)한다.
神(신)들의 땅 티벳 순례길도 크게 셋이다.
가장 기본적인 순례는 '낭꼬'라 한다.
짧은 순례의 길로 한 손에 마니차를 들고 돌리면서
時計(시계)바늘 方向(방향)으로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寺刹內(사찰내)를 구경한다.
좀더 크게 도는 순례는 '파꼬'라 한다.
그리고 티벳 땅 곳곳에서 信子(신자)들이 聖地(성지)를 향해
半年 以上(반년 이상)을 성지순례 하는
그 苦行(고행)을 一平生(일평생)의 所願(소원)으로 삼는다.
특히 히말라야 카일라산으로 가는 영혼의 순례길은 熾熱(치열)하다.
힌두교의 성지요 티벳 불교의 성지이며 자이나교의 聖山巡禮(성산순례)길이다.
카일라산은 높이 6,714m의 눈 덮인 圓形(원형)꼴의 산이다.
원형의 꼴 산세는 風水地理(풍수지리)에서 日月山(일월산)으로 본다.
높으면 태양을 상징한다. 즉 太陽神(태양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카일라산을 '눈의 보석' 이라 칭한다.
또한 世界(세계)의 기둥이라 여긴다.
이 성지의 산을 한번 순례하면 業報(업보)가 지워진다고 믿었다.
12번을 순례하면 한 시대의 업보를 赦(사) 받고
108번을 순례한다면 涅槃(열반)으로 引導(인도)된다고 믿는다.
순례길 곳곳에는 阿彌陀佛 經典(아미타불 경전)이 새겨진 마니석이 쌓여 있다.
성산의 모습은 마치 天國(천국)으로 오르는 階段貌樣(계단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西敎(서교)에서는
이스라엘의 요르살렘, 로마 교황청이 代表的(대표적)인 巡禮處(순례처)이다.
이슬람교에서는 메카가 순례의 中心處(중심처)가 된다.
중동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홍해 앞바다 近郊(근교)에 位置(위치)하고 있는 성지이다.
메카는 뒤늦게 나온 종교의 發上地(발상지)인
代身(대신) 가장 많은 순례자가 모이는 땅이다.
行事時(행사시)에 250만명이 한꺼번에 몰려
壓死事故(압사사고)를 일으키기도 할 정도이다.
근래 들어서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것이 流行(유행)이다.
조개껍데기 그림과 같이 여러 곳에서 한곳 땅끝 마을이라는
大西洋(대서양)을 마주하는 피스테라 까지 가는 길이다.
닷새간의 100km 短距離(단거리) 코스에서부터
800km 長距離(장거리)의 코스로 30일 내지 40일을 걷는 순례길이 있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를 보면
예수의 12사도중 한 명인 야보고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부터이다.
서기 9세기경에 콤포스텔라에서 발견되었다.
센디아고라는 지명이 생긴 배경이다.
산디아고는 야보고의 스페인식 발음이다.
야보고는 紀元前(기원전) 1세기때 가나안을 지배했던
헤롯 왕의 칼에 목이 잘려 죽임을 당한 聖子(성자)이다.
순례의 길 도중에 그 야보고의 집이 있다 하여 有名(유명)한 길이 되다.
연간 20여만명이 이 먼 길을 걷고 걷는다는 것이다.
800km이면 남한에서는 끝에서 끝까지 가도 훨씬 남는 먼 거리이다.
스페인은 이 야보고 神(신)을
나라의 保護神(보호신)으로 崇拜(숭배)하고 있게 된 이유다.
야보고의 말씀 중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이라는 명언이 있다.
새겨야 할 聖言(성언)이다
스페인이 한 동안
세계의 곳곳을 지배한 국가이기에 국제적인 순례길이 되었을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순례의 길을 간다 고 한다.
하여 순례길 중에 한국산 신라면을 接(접)할 수 있어 감개무량함을 느끼게 되고
또한 한글 표석도 있단다. 많은 한국인들이 순례한다는 증거이다.
야보고의 무덤이 있는 이 길은
펠레네 산 길을 넘기도 해서 쉽지만은 않은 길이라 한다.
그 만큼 信仰心(신앙심)이 깊다는 뜻이고
풍류를 즐길 겸 또는 인생의 고뇌를 느끼면서
참다운 이후의 삶을 考察(고찰)해 보는 時間(시간)을 가지리라.
삶이 豊饒(풍요)로워져 마음의 餘裕(여유)도 그만큼 생긴 이유이다.
동양의 오체투지 고행길 순례와는 반대의 모습이다.
스페인 땅끝 대서양의 바다가 目的地(목적지)인 것과
지구의 지붕이라는 티벳 나사
또는 카일라스 성산으로 가는 순례길 모습도 반대이다.
東,西 陰陽(동,서 음양)의 反對性向(반대성향)임을 알 수 있다.
흔히 우리 인생은 안개와 같다고 비유한다.
구름 같고 바람 같다. 더 심하게 말하면 아침 이슬 같다고 한다.
이러한 선천의 인생 삶이 이슬로 사라지지 않고
如天地同行(여천지동행)의 神仙(신선)이 되어지는 순례길이 있다.
수원나그네의 길이다. 東夷族(동이족)의 風流客(풍류객)의 길이다.
乾達(건달)한 眞人(진인)의 道路(도로)이다.
末代(말대)에 聖職子(성직자)의 길이 汚染(오염)되고 추락하여
乾達(건달)이나 風流客(풍류객)으로 좋지 않은 말이 되었으나
風流(풍류)라는 말도 해원을 하게 된다.
장차에는 水雲大神師(수운대신사)의 성지, 甑山上帝(증상상제)의 성지,
迎新堂主 天地父母(영신당주 천지부모)의 聖地(성지)가
천하의 大聖地(대성지)가 되어
天下萬民(천하만민)이 쉬임없이 오가는 순례길이 된다.
물론 天下事(천하사)에 일심 노력하여
구제중생을 이루어 낸 聖職子(성직자) 또한 그 공이 지대하므로
그 人事(인사)의 行跡地(행적지) 역시 순례길이 될 것이다.
[출처] #2576 나는 누구인가? - 巡禮(순례) 길|작성자 금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