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역사(Ⅰ-4) : 16세기의 물가 혁명,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세계 역사를 바꾼 50대 사건의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의 폭을 넓혀볼 수 있다. 역사의 중심엔 항상 ‘돈’이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그 이면에 있는 ‘돈‘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
스페인 사람들이 금을 찾아 신대륙으로 달려가고, 그들이 획득한 보물 덕분에 나라가 망가진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의문을 품은 독자들이 꽤 있을 것이다. 왜 그들은 목숨을 잃는 위험을 무릅쓰고 ‘금’을 비롯한 귀금속에 탐닉했을까?
물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역설했듯,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을 깨치게 되면서부터 조개껍질이나 커다란 돌을 화폐로 간주한 것이 시작점일 것이다. 일단 화폐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는 순간,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은 가장 유력한 화폐 후보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귀금속이 우선적인 화폐 후보가 된 건 다음 세 가지 우월한 특성 때문이다.
먼저 금은 매우 잘 늘어나는 물질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은 두드려서 1/272,000인치의 얇기로 만들 수 있고, 잡아 늘려서 가는 실처럼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작게 조각내어 거래하기도 편했고, 다양한 장신구를 만드는 데도 사용되었다. 반면 카우리 조개 같은 다른 ‘화폐 후보’들은 잘게 조각내기 어려웠다.
금이 화폐의 유력 후보로 부상한 두 번째 이유는 보존성이다. 화폐로 사용되던 조개의 경우, 한번 부서지면 화폐로 기능하기 어려웠으나 금은 오랜 기간 보존하더라도 녹이 슬지 않는 데다, 꽤 무른 편이기는 하지만 주석이나 구리 같은 다양한 금속과 합금하면 꽤 단단해져서 주화(鑄貨)로 제조하기 쉬웠다.
마지막 조건은 ‘사용 가치’이다. 일본에서는 쌀이, 조선에서는 면포(무명)가 일종의 화폐 역할을 했는데, 이는 쌀이나 면포가 의식주의 하나로 매우 큰 사용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금 역시 이런 면에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수많은 금장식 제품에서 보듯, 높은 계급일수록 금의 사용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했다. 이런 영향으로 소량만 보유하더라도 충분히 제 값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쌀이나 면포 등에 비해 운송비용이 절감되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만족한다고 해서 금이 자동적으로 화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순도와 정확한 무게를 측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은 매우 힘들고, 긴 시간이 걸린다. 괜히 그리스의 철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왕의 보관(寶冠)에 포함된 ‘금의 함량’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겠는가? 1529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가 두 아들의 몸값으로 스페인의 카를 5세에게 120만 에스쿠도(Escudo, 포르투갈의 화폐 단위)를 지불했을 때, 돈을 검사하고 헤아리는 데만 4개월이 걸렸는데, 이 과정에서 스페인 사람들은 4만 개의 주화를 기준 이하라는 이유로 수령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국가 권력이 보증하는 ‘증서’ 즉, 지폐를 발행해서 정부가 운영하는 은행에서 금으로 언제든 교환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표준 무게와 모양을 가진 합금(=주화)을 ‘화폐’로 선언하고 이의 가치를 보증하는 것이다. 기원전 600년,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Kroisos)는 최초로 주화를 만들어 역사를 새로 쓰는 위업을 달성했다. 뚱뚱한 8자 모양에 사자 이미지가 박힌 표준화된 동전을 만들어 “이러한 크기, 형태, 표시를 가진 금속은 어떤 특정한 양의 가치를 지닌다.” 라고 공표한 것이다.
반면 지폐의 발행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주화는 용광로에 녹여 금이나 은, 주석 같은 사용 가치를 지닌 금속으로 변환이 가능한 반면, 지폐는 정부가 권위를 잃거나 지나치게 많은 지폐를 발행할 경우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위험이 있다. 따라서 중국 원나라처럼 정부 권력이 대단히 강하거나 이탈리아 은행들처럼 발달된 상업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 한, 지폐(혹은 은행권)는 일반화되기 쉽지 않았다.
다시 이야기의 주제로 돌아가자면, 크로이소스나 로마의 황제 같은 절대 권력자들이 이 번거롭고 귀찮은 주화 주조를 한 건 편리함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열 개의 서로 다른 상품만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어떤 사회를 가정해 보자. (표준화 된) 주화가 없다면 거래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로 값어치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두 상품을 물물 교환해야 한다. 소 한 마리와 면사 여섯 포, 마차 한 대분의 땔감과 곡물 두 가마처럼 말이다. 열 개의 상이한 상품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물물교환 경우의 수는 45가지나 되지만, 문제는 물물교환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면사를 구하려는 사람이 정작 면사를 가진 사람이 원하는 물건을 갖고 있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반면, 주화는 교환 과정을 단순화한다. 주화로 문건을 사고팔 수 있다면 물건에 각각 값을 매기기만 하면 된다. 물건을 거래하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를 다른 이의 욕망과 일치시키기 위해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금속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경제에 상거래가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금속화폐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공급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금이나 은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경제 전반이 침체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5세기였다. 15세기에 유럽에서 산출된 금은 당시 수요에 비해 매우 부족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1400년에 유럽 내부의 금 산출량은 4톤을 넘지 않았다. 게다가 동방 무역으로 지속적으로 금이 유출되고 있었기에, 이 정도 생산량으로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웠다. 돈의 공급량이 부족하면 사람들은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쓰는 돈을 절약하려 노력하고, 그 결과 물가가 내려간다. 콜럼버스와 마스코 다 가마 등 수많은 모험가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향하고, 인도를 찾아 대서양을 횡단했던 데에는 금을 비롯한 귀금속의 가격 상승이 그 배경으로 작용했던 셈이다.
1492년 콜럼버스의 역사적 항해 이후, 정반대 상황이 나타났다. 150년대에는 유럽 물가가 매우 급격히 올랐는데, 경제학자들은 이 시기를 가리켜 ‘16세기의 물가 혁명’ 이라 부른다. 물론 유럽 물가가 1492년을 기점으로 바로 상승하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물가가 상승한 것은 16세기 중반의 일이었는데, 당시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이 커지면서 동방으로 가는 무역로가 막힌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나아가 14~15세기 유럽의 인구 감소를 유발했던 흑사병이 진정되면서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도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대륙으로부터 유입된 어마어마한 양의 귀금속이 물가 혁명을 일으키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경제 호황과 인구 증가가 동반된다. 물론 이 호황은 준비된 사람들에게는 축복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볼 때, 16세기 후반에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유럽 경제 발전의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통화가 충분히 공급되면서 ‘물물교환’ 경제로의 회귀 가능성이 가라졌을 뿐만 아니라, ‘화폐환상(money illusion)’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화폐환상이란, 임금이나 소득의 실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았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자신의 임금이나 소득이 늘어났다고 받아들이는 현상을 말한다.
15세기 내내 물가가 안정되었고, 일부에서는 상당한 디플레이션 상황이었기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경제 전반에 강한 수요 증가를 유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전이라, 늘어난 수요에 부응해 공급을 늘리기는 힘들었다. 따라서 16세기 귀금속의 공급 확대, 특히 스페인 ‘페소’로 대표되는 글로벌 기축통화(基軸通貨, Key Currency)의 공급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 기축통화(基軸通貨) : 국제간의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로, 1960년대 미국의 트리핀 교수가 처음 명명한 용어다. 기축통화로서 기능을 수행하려면 전쟁 등으로 발행국의 존립이 문제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발행국은 다양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통화 가치가 안정적이며, 발달한 외환시장과 금융․자본시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유럽인들이 원하는 동방의 물품, 예를 들어 후추와 비단, 도자기를 구입할 수 있는 ‘교역재(tradable goods)’가 생긴 것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유럽인들은 동방의 상품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아시아 사람들은 시계를 제외하고는 유럽에서 생산된 제품을 선호하지 않아 교역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16세기에는 이런 점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다. 멕시코에서 출항한 배가 중국에 도착해 도자기(혹은 비단)를 ‘은’과 교환했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글로벌 교역망의 출현이 어떤 금융 혁신을 불러일으켰는지 살펴보자.
홍춘욱.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The History of Money). 로크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