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梁埈赫의 아름다운 뒷모습
한국 프로야구는 1981년 12월 11일, 삼성 라이온즈· 롯데자이언츠·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 MBC 청룡(현 LG 트윈스)· 삼미 슈퍼스타즈(전 현대 유니콘스) 등 6개 구단을 회원으로 창립총회를 열어 출범(出帆)하였고, 1982년 3월 27일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서울동대문운동장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의 개막 경기를 시작으로 닻을 올렸다.
이로부터 29년째를 맞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2010년 올해는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프로야구 관중 1억 명을 돌파했고, 446경기 만에 관중 501만 8238명을 기록함으로써 1995년에 세워진 역대 최소 경기 500만 관중 돌파 기록(447경기)을 갈아 치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그보다도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도 3할은 친다'는 대구가 낳은 야구 선수 위풍당당 양준혁(梁埈赫), ‘양신(梁神)’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레전드(legend)가 된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梁埈赫) 선수가 9월 19일 일요일 대구 SK전 출장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 때문에 더욱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이란 생각이다.
지난 9월 4일까지의 통계에 의하면, 양준혁 선수는 프로야구 생활 18년 동안 통산 최다경기출장(2131경기), 최다 타석(8800타석), 최다 타수(7325타수), 최다 안타(2318개), 최다 홈런(351개), 최다 타점(1389개), 최다 루타(3879루타), 최다 2루타(458개), 최다 득점(1299개), 최다 사사구(1380개) 등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전인미답의 기록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1993년부터 2001년까지 9년 동안 연속 타율 3할 대를 유지했고, 열다섯 번의 출장으로 역대 올스타전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웠으며, 골든글러브 8회 수상(1996~1998, 2001, 2003, 2004, 2006, 2007), 사이클링 히트 2회(1996, 2003), 1993년부터 2008년까지 16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 등ㅡ 그가 세운 기록으로 볼 때, 그는 한마디로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레전드(legend)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 양준혁의 야구 인생이 그리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영남대학교를 졸업한 1991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지명을 받자 이를 거부하고 상무야구단에 들어가 군 복무를 마치고 나와서 1993년 그가 목표했던 대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고 비로소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1999년 갑작스레 해태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곧이어 2000년 LG로 이적하고, 선수협 파동 주동자로 낙인찍혀 FA 자격을 얻고도 오갈 데 없다가 2002년 다시 삼성으로 복귀했다.
그때 그가 한, “내게는 푸른 피(삼성 유니폼 색)가 흐른다.”는 그 말은 삼성에 대한 애정과 나아가 고향 대구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만큼 그는 삼성을 사랑했다. 어쩌면 그것은 삼성 라이온즈가 고향인 대구를 연고지로 하는 구단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동아> 9월호 '은퇴 선언 양준혁의 불꽃 야구 인생'에서 기자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양준혁(41)은 달렸다. 6대 6으로 팽팽히 맞선 9회말 1사 1, 2루. 대타로 나선 그는 원 스트라이크 원 볼 뒤 3구를 노려 좌익수 왼쪽으로 빠지는 안타를 쳐낸 참이었다. 용수철처럼 튀어나간 공이 좌측 펜스를 때리자 좌익수는 따라가기를 포기했다. 승패는 이미 갈린 것이다. 그러나 양준혁은 계속 달렸다. 1루를 지나 2루까지, 뒤늦게 날아온 공을 2루수가 잡아내 더 이상 뛸 수 없을 때까지. 그가 2루 베이스에서 두 손을 번쩍 든 순간 비로소 경기는 끝이 났다. 7월 1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롯데전. 삼성은 양준혁의 끝내기 2루타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대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계속 이 경기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타자들은 끝내기 안타를 치면 으레 1루에서 멈춘다. 승부가 결정됐으니 더 이상 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양준혁은 달렸다. 마치 1회 초 첫 타격에 나선 것처럼.”
필자도 평범한 땅볼이나 내야 플라이 볼을 치고 뻔히 아웃이 될 줄 알면서도 항상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하던 양준혁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는 진정한 프로였으며, 후배 야구 선수들에게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성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준 선수였다. 이것은 “단 한번도 야구를 즐긴 적 없다, 오직 죽자 사자 뛰었을 뿐...”이라는 그의 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삼성은 양준혁의 등번호 10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하고, 은퇴식 예산으로 약 1억원을 책정해 놓았으며, 또 양준혁에게는 격려금, 관중에게는 기념품을 지급할 예정이란다.
필자는 사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그가 세운 대단한 기록들보다도 야구장에서 항상 성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뛰던 인간 양준혁의 모습에 더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9월 19일 대구구장에서 열리는 SK전에서 각 포지션을 섭렵하며 마지막으로 녹색의 그라운드를 누빌 양준혁의 모습을 그려본다.
마흔한 살 나이지만 성실한 자기 관리로 아직은 더 뛸 수 있을 텐데 후배들을 위해 은퇴한다는 어려운 결단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2010년 9월 19일 이후 다시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양준혁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엇갈리는 감정을 추스르며,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 첫 연을 양준혁 선수에게 선물로 보낸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인, 예술촌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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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랑스러운 대학의 후배, 양준혁! 그의 이름 한국의 야구사에서 영원하리라! 뒷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늠름한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가.. 역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