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老人의 獨白
(2020년 한국 문학세상 최고스타 문예대상 수필 부문 선정 작)
동 회관에 나갔더니 어떤 할멈 한분이 왜 집 할매 아직 안 나와요 묻는다. 내가 대답했다. 그 할멈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몇 해 전부터 사랑이 식었는가 어디를 가면 간다하나, 갔다 오면 어디를 다녀 왔다하나, 노래를 들어도 즐거운 표현을 하나, 꽃을 봐도 예쁘다하나, TV 드라마에만 눈을 고정하여 그 시간만 되면 절대적 자기 자리에 찾아와 앉는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화면 폭이 맘에 드는 안방 TV 드라마 채널에만 목숨 걸고 집중한다. 때문에 영감은 울고 겨자 먹기로 덜 따뜻한 응접실 TV 스포츠 채널 여기저기를 찾다가 드라마 끝나는 9시면 그 제사 안방 컴퓨터로 들어오며 귀한 시간 낭비한 느낌을 느끼지만 그래도 할멈 눈치 못 채게 시치미를 땐다.
냉장고에는 매일 새로운 식재료들이 쌓이고 있다. 오는 순서대로 그 안에 던져 넣다보니 구석진 냉동실 안에는 2년 넘도록 숨겨진 식품들이 무질서하게 쌓여도 신경 쓸 줄도 모르고 지내오고 있다.
집구석 구석에 먼지, 머리카락, 티끌들이 눈에 선히 보이며 쌓이고 컴퓨터나 책상 위에도 하얀 먼지들이 얌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남 보듯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늙은이들의 삶의 현장이다.
아들 딸 며느리들이 꽤나 자주 들린다. 아들과 사위들은 문과 출신들로 집 관리나 수리 같은 부분에는 소질이 없다. 딸도 넷에다 며느리도 하나 있지만 모두 문과 출신들로 집 관리 부분엔 관심도 흥미도 없어 울진에 오면 덕구 온천에나 울진 대개 시식 같은 곳에나 관심을 가지고 그들만의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게 주 방문 목적이다.
금년 설 연휴 때는 색다른 일이 생겨났다. 이공계를 졸업한 막네 사위, 응접실 오래된 형광등을 사다 교체해 주고 싱크대 물이 새는 부분을 실리콘으로 꼼꼼히 처리하여 우리를 놀랍고 기쁘게 했다. 또 딸들 중 가장 실용적이며 행동으로 효도하는 둘째가 자기 집에서 미리 냉장고 청소하기로 구상하고 와 그 힘든 작업계획을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멈에게 보고를 한다.
다음 날 단 하루 머무는 귀중한 시간, 덕구 온천을 다녀오면서 울진 다이소 매점 앞에 차를 세우고 냉장고 정리를 위한 물품을 많이도 구입했다. 할멈이 아깝다 생각한 물건조차 오래되고 유통기한이 지난 모든 것들 다 골라내고 쓸 만한 물건만 꼼꼼하게 선별하여 다이소에서 구입해 온 유리그릇에 옮겨 담고 라벨로 일일이 유리병 전면에 식품 이름을 표시하여 보관하라며, 그 금 같이 귀한 시간을 여섯 시간 동안 수고하고 지쳐 잠자리에 들어가더니, 다음 날 차 체증이 없는 이른 시간에 베푼 효도의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떠나갔다.
나이 80을 넘으면 인생이 80키로의 속도로 달려간다는 말이 실감난다. 어찌 세월이 그리도 빨리 달려가는지 미쳐 정신 차리고 조용할 여유가 없다. 오늘은 이 병원, 내일은 약국, 다음 날은 노인회 행사, 또 다른 날엔 지자체나 지역의 여러 모임에서 불러 댄다.
노인은 진정 조용하고 편안하기를 원한다. 시끄럽고 다툼이 있는 곳은 정말 싫다. 각자의 취미와 개성은 다르겠지만 노인은 어쨌든 시끄러운 곳을 피하는 게 좋다. 가능하면 칭찬하고 칭찬할 이유를 찾아 칭찬하는 시니어의 너그러운 모습을 실현하며 살면 그게 바로 남은 인생의 바로메타리라. 자고 일어나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며 감사함을 느끼고 공기의 고마움과 대소변 색깔을 보며 별 탈 없으면 감사하는 게 만족한 하루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는 가지 말라는 시구처럼. 노인은 되도록 다툼이 있는 곳은 피하는 게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지름길이다. 되도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고 칭찬하는 말과 남의 이야기 잘 들으며, 옛날에 있었던 자기 이야기 같은 것은 누가 꼭 알려 하지 않거든 꺼내지 말자. 젊은 사람들 옛날이야기 듣기 싫어한다.
아프지 말자, 그렇게 외치고 조심하건만 병마는 거칠 날 없고, 육체의 기능마다 능력이 약해져 인생의 추수기를 신호해 온다. 인생은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가는 나그네 같다. 매일 배우고 또 새로운 것을 배우며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인생의 끝자락에 도달하여 잘 익은 인생 추수를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가져가거나, 까치밥으로 사용되거나 혹은 조롱조롱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추운 겨울을 만나 떨어지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겠지!
그래서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 까지 배우며 실행하며 죽음을 향하여 열심히 익어가는 긴 여행이라 결론하고 싶다.
2020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