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의 비둘기 손 원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비둘기가 자주 날아든다. 얇은 유리창을 두고 마주하기에 다소 거슬린다. 커튼을 젖히면 난간에 앉아있던 비둘기가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커튼으로 실내가 가려진 난간은 그들만의 안식처가 된다. 아파트 층층히 돌출 된 난간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놓여있다. 밖에서 보면 수직 벽면에 층층히 큰 상자를 붙여 놓은 듯 앙증맞은 공간이다. 햇볕이 잘 들고 전망도 좋은 명당이다. 그 곳은 비둘기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장소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중간층으로 비둘기가 가장 붐비는 것으로 보아 날아들기가 편한 높이인 것 같다. 앉아 있던 한 쌍이 떠나면 다른 한 쌍이 이어서 날아들어 종일 저들의 공간이 된다. 그들은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난간 철봉에 두발을 딛고 짹짹거린다. 베란다 바닥이나 실외기 위에는 비둘기 배설물이 수두룩하다.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장소로 직접적인 생활공간이 아니라서 당장은 참을만하여 지내고 있지만 때로는 한계에 이르기도 한다. 첫째로 두쪽 미닫이 문짝의 한쪽을 사용할 수가 없다. 조금만 열려도 틈새로 먼지나 배설물이 방안으로 들어 오기 때문이다. 남미의 어느 섬나라는 오래도록 쌓인 새똥을 비료로 팔아 부를 누린 나라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새똥은 농도가 진하고 독하여 유해하기도 하다. 그러기에 오물이 실내로 들어 올까 봐 긴장하기도 했다. 다음은 미관으로 불쾌하기도 하다.
상생이 미덕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열고있지만 수북히 쌓여가는 배설물을 보면 인내심이 바닥이 나기가 일쑤다.
언제부터인가 집집마다 비둘기를 퇴치하기 시작했다. 입주민들이 공동으로 퇴치히는 마땅한 방법이 없기에 세대별로 각자의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탱자나무 가시를 걸쳐 둔 세대, 수시로 조류퇴치용 방향제를 뿌리는 세대가 있는가하면 일부 세대는 그물망 샷시로 출입 공간을 아예 가려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 세대는 여전히 비둘기에게 공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고 푸근해 지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생물은 공존함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위아래층은 별도로 비둘기 막이를 하지 않아 에어컨 실외기만 덩실히 놓여있다. 그래서 비둘기들이 자유롭게 날아들고 있다. 한번은 실외기가 고장이 나서 교체를 해야만 했다. 교체에 앞서 스스로 비둘기 배설물을 청소했다. 난간 바닥에 겨우 발을 디디고 모종삽으로 배설물을 끍어 비닐봉지에 쓸어담아야 했다. 드러낸 배설물이 만만치가 않았다.
또 한 번은 한여름 소낙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오후에 일어난 일이다. 방에 있던 딸 아이가 기겁을 하며 나를 불렀다. 강한 소낙비가 배란다를 적시자 윗 층에서 비둘기 배설물을 난간밖으로 쓸어 내렸는데 일부가 딸애 방으로 튀어 들어 온 것이다. 다급해서 위층집으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 하니 미처 생각지 못한 부주의라며 사과를 했다. 윗층 아저씨가 내려와서 피해 상황을 살펴보고는 청소 비용을 부담해 주기로 했다. 이튿날 청소업체에 알아보니 청소비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업체청소까지 맡기려니 이웃끼리 야속하게 여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우 속에 시커멓게 쏟아졌던 배설물이 었는데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는 심하게 오염되지 않아서 스스로 청소 했다.
예로부터 집으로 들어오는 생명은 날짐승일지라도 소중히 해야 한다고 했다. 흥부가 부상당한 제비를 치료해 주고 복을 받았다는 내용에서도 그런 점을 엿볼 수가 있다. 어릴 때 시골 초가지붕 아래는 매년 봄에 제비가 찾아와 집을 짓고 새끼를 길러 가을이 되면 강남으로 떠났다. 매년 되풀이 되다 보니 제비 빈집이 처마 밑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가끔은 빈 집을 때고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새집을 짓곤 했다. 제비집은 마루 디딤돌 바로 위에 짓는 경우가 많았다. 디딤돌은 가장 요긴한 자리에 놓였고 집을 드나들 때 꼭 딛고 실내로 들어 갔다. 그 위에 제비집이 있었기에 제비 배설물로 디딤돌과 마루 끝부분에 배설물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생각 같아서는 제비집만 제거하면 디딤돌 오염을 방지 할 수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비도 한 가족인양 떠 안고 지냈다. 제비집을 널판지로 받쳐주어 배설물 낙하를 막고 제비가족 앞마당으로 사용토록 배려했던 것이다. 제비는 각종 해충을 잡아먹는 길조다. 알을 깬 제비새끼가 제비집 밖으로 주둥이를 내밀면 아버지는 집안의 경사인양 덕담을 하시고 보살피셨다. 요즘은 초가지붕이 사라지고 무분별한 농약사용으로 환경도 열악해져 제비가 찾는 주택도 거의 없을 정도다. 인간의 무관심과 오만함으로 제비가 줄고 있는 것이다.
국토 전역이 도시화 되고 현대식 주택으로 변모함에 따라 제비 대신에 비둘기가 판을 치고 있는 모양새다. 그들은 우리의 생활공간 일부를 사용하고저 하나 인심이 과거 같지가 않다. 창밖 여유 공간에 냘아드는 것 자체를 경계하여 방해를 해 오고 있다. 처마 밑이 아닌 에어컨 실외기 자리 쯤은 비둘기에 양보하면 좋겠다. 실외기를 더럽히기 전에 앙증맞은 비둘기집을 올려두면 어떨까?
가끔 마을 소공원에 가보면 비둘기떼들이 먹이를 찾아 잰걸음을 하고 있다. 시멘트 바닥에 떨머져 있는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먹고 있다. 그들의 원래 먹이는 지렁이나 벌레였으나 인공건조물로 인해 원래의 먹이는 사라지고 과자부스러기가 그들의 주된 먹이가 되고 있다. 인간은 개발이란 명목으로 생태계를 파괴만 일삼고있고 배려하는 마음은 없다. 생태계를 위한 최소한의 터전을 마련해 줌이 도리이고 상생하는 길이다. 망가진 자연은 결국 우리의 삶도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벚꽃이 지고난 소공원에는 비둘기떼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콘크리트 바닥위에 떨어진 과자부스러기를 쫒고 있다. 도시에는 풀숲이 거의 없어 그들이 찾는 벌레는 없다. 음식물 쓰레기나 과자부스러기만이 그들의 배를 채울 수 있기에 영양 불균형을 가져온 듯하다. 대부분 비대해져 뒤뚱거리며 걷기만 하고 잘 날지를 못한다. 올들어 아파트 난간의 비둘기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듯하다. 결국 인간에의해 그들의 서식지를 잃고 비정상적으로 되어 소멸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2022.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