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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본의 신조어 중 하나가 '표류 노인' 입니다.
집주인들이 60세 이상 노인들에겐 집을 임대해주려 하지 않아
살 곳이 없는 노인이란 의미로 대개 독거노인들입니다.
기족이 없는 독거 상태에서 치매 상태가 되었다고 해봐요.
월세 미납을 이유로 갈 곳이 없는 치매 상태의 노인을
함부로 퇴거시키기 어렵겠죠.
이외에도 고독사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임대인들만 탓할 수 없는지라 독거노인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란 요구가 많다는데,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재원이겠죠.
곧 우리에게도 다가올 현실로 여겨집니다.
당장 내년이면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인
초고령 사회가 된다지만
사회는 물론 개인들도 별다른 준비들이 없는 상태니까요.
지난 주일에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웃었어요.
나가복음, 니가복음, 너가복음~~~식으로 게속 연상이 되어져서요. ㅎ
자신이 주님을 제끼고 중심이 되어지는
'나'가복음의 피해는 참으로 크죠.
마귀가 교활하는 것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비록 부분의 부분 외엔 알지 못하나
속이기의 명수라는 것을 아는지라 치를 떨게 됩니다.
마귀를 미워한다고 하여
살인의 죄라고 하실리는 없으시니 다행입니당~
'마귀가 강한가?' 란 물음이 던져진다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역사한다면 그 이유의 상당부분이
바로 자신에게 있기 때문일테니까요.
결국은 죄의 문제와 결부되겠죠.
그러니 자유케 하여주시는 주님에 대해 감사할 밖에요.
가끔은 벼랑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할 때가 있습니다.
죄라는 것을 아는데도
여러 이유와 상황을 빌미로 무엇인가를 강요받을 때 그러합니다.
강요를 받는다는 것은 조종의 문제와 결부될 수 있겠죠.
조종을 한다는 것, 조종을 당한다는 것은
모두 주님을 부인하는 것으로 끔찍한 죄에 속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순종이 따르지 않는 사랑이 어찌 사랑이겠습니까.
때로는 입으로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불신자들보다도 훨씬 못한 것을 보곤 합니다.
방금 전에 들었던 오늘 올려주신 복음 성가를 통한 미혹 내용과도
맥락이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복음성가를 접해도 어떤 이에게는 은혜가 되어지고
어떤 이에게는 독이 되어지는 공평하지 못함이 늘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를 어찌 불공평이라고 하겠나 합니다.
간혹 미혹이 강한 이들을 대할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러한가~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수록
아마도 '교만' 이 가장 큰 이유이겠다 싶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주님을 믿었어~~'
'나는 당신 혹은 저 사람보다 믿음이 바르고 깊어~~' 와 같은.
이외에도 미혹된 이의 말을 들었을 때
미혹이 침투하여 자리를 잡기도 하고요.
만일 제가 새나라(신~~)를 바로 잡기 위해
일단 내부로 침투하여 들어간다~라고 하면
죽을라꼬~~~썩은 똥물을 퍼먹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겁니다.
그와 같은 미혹을 따라가는 이들에겐
나름의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주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였기에 그런 것이겠죠.
주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이가
마음을 주님에게로 되돌이킨다는 것은 흔한 일 또한
아닐테고요.
어떤 종류의 미혹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개인들에게 임하시는 것이 아닌
특정 장소 또는 특정 모임에 임하신다는 미혹.
이런 종류의 미혹이
어쩌면 광범위 (?) 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컨대 주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선
특정 장소에 가야 하고,특정 사람들을 만나야만 하고 등
물론 은혜를 나누어 줄 수 있는
불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은혜가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필요충분조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압니다.
에를 들어 아브라함이나 모세의 주변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던 것이 아니죠.
실화에 기반한 미스테리 영화라는 것을 잠깐 봤어요.
리차드 기어가 주인공이던데, 줄거리는 대략 이러합니다.
미국에서 초대형 사건이 일어나려 할 때
나타나는 존재가 있다는 겁니다.
날개달린 악마의 형상 비슷한 존재를 보는 이들이 있다대요.
개인적으로 내용이 1도 신기하지 않았다는~~~
속이는데 능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다,
많은 이들이 숨지는 대형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
축복하심의 결과물로 인한 것이 아닐 것이니
얼마든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러한 형상으로
악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는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나
두려움,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함이 아닌가라고
추측을 해볼 뿐입니다.
"천사가 경고하기 위해 나타난 것은 아닐까?"
아닐걸요~~
굳이 날개달린 +
우덜이 저건 악마야~싶은 무서운 느낌으로 나타날리가 없고 +
불신자들에게 나타나 재앙을 경고를 한다고욧?
이처럼
이리저리 공포심을 심어두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단이를 두려워하는 것은
기실은
사단이의 능력을 찬양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신의 잘못까지도 사단이 탓을 하는 것 역시도
사단이를 찬양하는 것과 같은 것이겠죠.
사단이가 주님보다 훨씬 전지전능하여
주님도 어찌 하시지 못하는 자신을
사단이는 맘대로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것인지라 ~
인격적인 결합의 부분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은 내가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내가 행하고 판단한 모든 것들의 책임을
내가 지고 가야 하는 것이겠죠.
"그러믄 사단이는 뭐여~~~?"
계속 죄를 짓도록 충동질하는 존재요.
하와에게도 선악과를 따서 먹으라고 가져다 주지 않았더만요.
따서 먹어보라고 충동질을 했듯
끊임없이 생각으로 감정으로 파고들어 충동하는 존재~
결과 하와도 아담도 그리고 도구가 되어진 뱀도 저주를 받았으나
정작 꼬드긴 사단이는 안 받았슈~~~
죄가 없어서가 아닌, 이미 심판을 받아버린 존재이기에.
다윗도 보믄 그라요.
노년에 사단이의 충동으로 인구조사를 했을 때도
충동을 부어넣은 사단이를 탓하는 내용이 없시요.
역시도 같은 이유겠죠.
동시에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하게 되어집니다.
회개함으로 사하여주심을 받는다고 하여도
죄로 인한 대가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충동을 받아들인 것은 다윗인데,
정작 죽어나간 이들은 그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이라거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은
이단사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어집니다.
태생적 선민들조차도 그랬는데, 하물며 나는........입니다.
만일 진정 주님의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주님과 함께 행할 수 있기에
단지 특정 장소로 가야만 하고, 특정인들과 만나야만 하고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만일 특정인들과 만나야만 한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짐싸들고 파라과이로 이민을 가서리
새끼 오리마냥 목사님의 뒤라도 '쫄쫄~'
"(뒤뚱 뒤뚱~~~) 꽥꽥~~"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도 ㅋㅋ
일본의 어느 유튜버가
새끼고양이와 새끼 오리를 같이 키웠더니만,
새끼오리들이 태어난지 두달 정도 되어보이는
고영희~~군인지, 양인지를 엄마로 알고
열심히 따라다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ㅎ
그러한 종류의 미혹은
성령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고
성령님의 사역마저도 부인하는 것 같습니다.
미혹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누가
(그런 이들과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는 모습을 보았고
메시아닉쥬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그러한~~~)
슬쩍 슬쩍 자신의 지식으로
말씀을 해설하여 가르치려 하고
방언은 신사도의 것으로 미혹이다~라고 하는 것을
접했어요.
그 모습을 보며서 재미(?) 있었어요.
누구를 위한 서로를 비난하는 분열인가란 측면에서.
미혹된 자들끼리도 분열하는 듯 보이는 것은
믿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란책 같기에,
물론 제가 그리 여긴다는 것이지 정확한 것은 모릅니다만
그가 그것은 그렇고 이것은 이렇다면서
말씀을 자신의 판단 테두리에 가두려 함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일 다른 이의 생각을
제 판단 테두리 내로 가두려 한다고 해봐요.
저는 교만하기 이를데 없는 자에 불과합니다.
타인이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할지까지도
다 예상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라
그 사람 머리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제가 이해하는 선에 가두려한다면
저는 어떤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믄~ 그라요.
인도하심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나아가
강압까지도 하는 것이겠죠.
예전에 누군가가 그랬다죠.
자신이 건물을 지을 것인데 그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은혜가 펑펑 터질 것이라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미혹이나, 저 미혹이나 도진개진~
저도 판타스틱한 은혜의 장소란 곳이 있었으면 싶네요.
어떻게든 그곳으로 끌고 가기만 하면
은혜 넘치는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지는.
좀 더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란 말씀처럼
걍 주님의 것인 겁니다.
사람들이 죄와 악으로 더렵혀놓아
사단이가 자신의 소유인 척~하는 사단의 터일지라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사단이가 부분적으로나마
주님보다 힘이 더 세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니 특정 터보다는
내가 주님의 사람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 같은데요.
내개 말씀을 전해줄 이가 없어서
내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에 불과할테고요.
지금처럼 쉽사리
여러 사역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던가요?
심지어 이미 소천하신 분들의 말씀까지도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바른 말씀을 전해주는가, 아닌가는 분별해야겠으나.
"갓 태어난 상태에서의 어린 사람이 워치케 분별을 한당가?
어려울 것 같은디~~~~~"
그럴 수도 있지만,
주님은 무능하신 분이 아니신지라
어리다고 하여도 보호하여주심과 이끌어주심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태어나는 족족 이리떼에게 물려갈 것 같은데요.
"열흘 정도 만에 나타나서리 왜 미혹에 대해 생각하는디~
뭔 일이라도 있었는감?"
걍 이리저리 소소하게 바빴을 뿐이고,
미혹은 늘 관심을 지닌 부분일 뿐입니다.
미혹이 워낙 넘실넘실 거려서리
분별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면 같이 쓸려가버리기 쉬운지라.
글고 동일한 죄여도
사람마다 같은 수준의 죄가 아닌 것을 압니다.
더 오랫동안 주님을 알아왔던 사람의 죄가 훨씬 더 가중되겠죠.
같은 죄여도 3살짜리 아기와 10살짜리가 범할 때
벌을 받는 수준이 다른 것 처럼요.
만일 오랫동안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에 대한 부분은 이미 말씀에 있더고 압니다.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불태우라 하셨던 것처럼
버려지는 길을 가게 되겠죠.
그러면 왜 믿음이 자라지 않는가를 살펴본다면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나
믿음은 시간과 함께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닌지라
그가 주님을 진실로 기뻐하지 않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자 얺겠나란 생각이 드네요.
주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아간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아니시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한 자신에 대해
깨달아가는 것이기도 하고요.
주님이 아니시면
이 세상을 그저 표류하다가 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사단이가 던져주는 것들이 이리저리 휘둘리면서요.
악이 강하여 마귀 역사가 강한 이들을 보곤 합니다.
대표적인 부류를 들라면 정치인들 중에 많을 것인데,
'아귀 다툼' '개싸움' 이란 표현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들에겐 그것이 세상의 전부일지 모르나 (부와 권력)
영원하지 못한 이 땅에서의 시간 속에서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말이죠.
이 땅에서의 삶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리도 중요한 것이었다면
예컨대 사도 요한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어찌 설명해야 하나? 합니다.
다수가 환호하는 해피엔딩한 삶과는 거리가 있는.
광야에서 겨우 몸을 가린 모습으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산다면
비루한 광인의 모습이나 진배 없었을 것인데요.
그리 살다가 겨우 춤값으로 죽기까지.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의 수명이 짧아진 것이 은혜라고 여깁니다.
겨우 요따만큼 사는 것에 불과한데도
이리저리 지지고 볶고 힘든 것이 많은지라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석 치치카포 사리사리 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하며
오래 전의 사람들처럼
오래 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감사합니다.
저 개그를 아는 사람은
저와 연식이 유사한 분들이겠죠 ㅋㅋ
오래 살라면서 이름을 길게 지었지만
너무 길어서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저 이름을 말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버린다는 내용이었죠.
당시 꼬맹이였던 저는 저 이름을 외우고 다녔는데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니라 리듬감을 타야 해
한 다리를 떨면서 외워댔는데
아침에 산책하다가 저 이름을 외울 때처럼 걸으면서
다리를 떠는 사람을 보았어요. 재미있어서 지켜보니
댄스 스텝을 밟으면서 걷는 사람이었던 듯.
중간에 빙그르 돌았던 것을 보면 군무로 추정되는.
"혹시 머리가 아픈 사람이 아니었을까?"
거까지는 모르겟씨유~~~
다만 괴거의 사람들이 지금에 비해 순박했던 것 같습니다.
성령님의 은혜도 있었던 때였고요.
나이가 드니 좋은 점 또한 많습니다.
앞을 향해 아등바등 달려가지 않고 멈추어 있어도 되는 등
주님을 영접하고 믿기 좋은 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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