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의 인구론에서 볼때 ‘항아리’ 도표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세대가 전후 세대인 '베이비 붐' 세대로 '베이비
부머'라고도 한다. 이들 세대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 그 어느 세대보다 치열했다.
'베이비 붐'이란 출산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뜻하는 용어다. 어느 나라든지 전쟁 이후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 왔고 대한민국에선 주로 6.25 전쟁 이후 세대다.
우리나라의 베이비 붐 세대는 1953년 6.25전쟁인 한국전쟁이 휴전하고 한 해를 건너 뛰고 1955~1974 년생을
가르키는 반면, 대부분의 외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후 태어난 세대다.
이 기준은 출생아 수가 한 해 90만명이 넘던 시기를 뜻한다. 인구학적으로는 3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전기
1955년~ 19 63년생, 중기 1964년~1967년생, 후기 1968년~1974년생으로 구분한다.
전기를 1차 베이비 부머, 후기를 2차 베이비 부머라고 하며 통계청은 전후세대의 베이비 붐 세대는 1차 베이비
붐 세대만 뜻하며 사회적 문화적으론 1955-1959년생은 산업화세대나 유신세대다.
1960~1969년생은 86세대, 1970~1974년생은 X세대다. 북미에선 1946년~1964년생이 베이비 부머고 서구
베이비 부머들의 자녀 세대는 X세대부터이고 에코 현상은 1977~1994년까지다.
'58년 개띠', 한국전쟁 이후 출산율이 정점을 기록했던 1958년생을 이르는 말로 99만명으로 최다 출산 기록
했고 1차 베이비 붐 세대의 대명사로 올해 만 예순다섯 살 '공식 노인' 대열에 합류했다.
'57년 닭띠'인 나는 한살 앞뒤까지 친구가 많다. 병영국가 체제에서 나고 자란 내 또래는 국가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 중심의 가족과 사회 속에서 규율에 엄격했고, 체제와 제도에 충실한 편이었다.
한 예로 초교 시절 동무와 함께 쓰는 책상 한가운데 분단선이 굵고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고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해야만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교복을 입기 시작했고 고교 시절에는 교련 훈련을 받아야 했다. 오후 6시가 되면 국기
하강식에 맞춰 가던 걸음을 멈추고 국기를 향해서 오른 손을 왼쪽 가슴에 얹어 놓아야 했다.
영화 관람 전에 대한뉴스를 시청해야 했고, 두발 상태는 단발머리가 기본이다. 이렇게 병영국가 체제 속에
살다가 학교 졸업하면 성인으로 가정보다 회사가 우선인 기업국가 체제에 맞춰 살아었다.
국민학교란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선 미국의 원조 물자로 옥수수죽과 옥수수빵이 배급됐는데 옥수수빵 하나를
더 먹기 위해 운동부에 든 친구가 많았고 교실이 없어 2부제(오전과 오후반) 수업했다.
중학교 2학년때 전파사에서 흑백 TV을 첫 시청했다. 레슬링의 영웅 김일의 박치기, 배삼룡 코미디가 우리의
고달픈 하루를 위무해 주던 그 시절 학교는 교과 이외의 과제물로 우리들을 괴롭혀 댔다.
퇴비 해 오기, 쥐꼬리 짤라 오기, 송충이 잡기, 채변 봉투, 등등. 하굣길 부락반장의 인솔하에 대통령이 직접
작사했다는 새마을노래를 부르며 구령에 맞춰 구호를 외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등교할때 지도부 선배가 교복과 모자 등 단정 한지 점검했고 교가를 불러었다. 영어
단어장을 외웠야 했으며 영어 선생님은 문법 위주로 가르켰는데 회화가 뒷전인 이유는 뭘까?
정선중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이 사신 서울로 고등학교를 다녔다. 처음 보는 도시는 무엇이나 낯설고 생소
했다. 누군가가 이런 나를 보았다면 영락없이 장날 팔러 나온 수탁을 연상했을 것 같다.
고교 시절에 징글징글했던 것은 교련으로 고교생을 대상으로 당시에는 교련실기 대회가 있었고 그 기간이
돌아오면 학사 일정이 예사로 바뀌고는 했는데 감수성 예민한 여학생들도 예외는 없었다.
학도호국단 중대장인 나는 사열할때 '우으로 봐'를 외쳐야 했다. 초교때 손수건을 가슴에 단 것은 콧물닦기용
으로 영양이 부족때문인데 조회와 교련과 체육시간 등에 빈혈로 쓰러진 친구가 제법 됬다.
대학에 진학한 우리 또래들은 수업시간보다는 술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장발하여 단속을 받았고
(여성들은 미니스커트 단속) 담배를 꼬나물고 통행금지 시간이 가깝도록 거리를 배회했다.
음악다방 구석에 몸을 부리고 앉아 뜻도 모르는 팝송을 들으며 영양가 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죽여 댔다.
서울 생활한지가 내가 50년 조금 넘었는데 나는 여전히 정선 사투리를 쓰고 있는 촌놈이다.
지금 내 또래들은 어른이 된지가 한참이나 됬고 다수가 조부모로 살고 있다. 한때 한국 사회의 한 축으로
생의 중심과 변방에서 아랫와 윗세대의 가교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던 '자랑스러운 세대'다.
https://youtu.be/BnOpCMUO80w
국민의힘과 국토부는 어제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당정 협의회한 결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고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다.
집 구매를 원하지 않는 피해자의 주택에 대해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에서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주택을 낙찰받은 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장기간 공공임대주택 제공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세 사기 피해가 인천 미추홀을 넘어 전국적으로 속출하고 있는데 집값 급등기 '갭투자' 유행에 따른
부작용이다. 피해가 집중된 강서구가 최근 3년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갭투자 발생 지역이다.
서울 강서구가 5910건으로 이 중에 화곡동에서 4373건이 발생했고 인천 부평동이 1659건, '건축왕'의 조직적
전세 사기 범죄가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에서 1646건의 갭투자가 이루어 졌다.
갭투자 거래가 연립 다세대 주택 등에서 주로 이루어 졌다. 갭투자자들이 구입한 주택 평균 가격은 2억
5267만원으로 임대인의 부채비율이 80% 이상인 '깡통주택' 수준도 강서구가 전국 최고였다.
올해 1분기 서울 빌라 전세 거래 중 절반 이상이 하락 거래였고 전셋값이 꾸준히 하락과 전세사기 여파에 더해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으로 전세보증 사고가 급증했다.
KOPRA가 지난 13∼18일 만 20∼39세 성인남녀 100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결과 61%는 ‘통일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꼭 필요하다’는 답변은 24%였으며 14%는 ‘잘 모르겠다’고 응답하였다.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외교 상대국으로 비호감도에선 중국 91%, 북한 88%, 미국 33%, 일본
37%이고 위협에서는 북한은 83%, 중국 77%이었고 미국은 안보에 도움을 준다는 74%였다.
일본의 경우에는 안보 위협은 53%,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37%이었다. 노조는 ‘긍정’(34%) 보다는 ‘부정’(42%)
적 인식이 높았고 파업(‘긍정’ 38%, ‘부정’43%)에 대해서도 비슷한 추이를 나타났다.
통계청의 지수를 보면 지난 3월 의류 및 신발 물가는 1년 전보다 6 .1% 상승해 11년 4개월 만에 최고치다.
코로나19 확산기까지 줄곧 0∼1%대의 낮은 상승률이었고 한때 0.1∼ 0.2% 내린적도 있다.
어제 오후 3시 40분, 절친을 잠실역에서 만나 신도림역 1번출구에서 셔틀버스타고 '라마다 호텔'내 2층 예식장에서 아우라지출신 친구의 아들 결혼식을 축하한 후 신부 입장보고 피로연 장소에 갔다.
올해 2월 퇴직한 안양사는 친구와 셋이 한잔하던 중, 울산우체국에서 정년 퇴직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넷이서 한잔했다. 혼주나 우체국다닌 친구는 여랑초. 중학교 출신으로 나와 학연이 없다.
혼주의 절친이 SK건설 현장출신으로 퇴직하고 충주에서 소를 키우고 있는데 소때문에 오지 못하고 화환에
성명과 대표만 기재되어 있어 웃었고 초대를 제한적으로 해 친구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
내가 일산살때 혼주가 가까운 곳에 살았고 내가 재경중고 동기 모임 회장할때 혼주가 총무를 맡아 주었다.
절친이 오늘 근무로 뒷풀이없이 잠실역에서 헤어지고 오후 8시전 귀가했다.
오늘 전국이 구름 많고 흐린 날씨를 보이겠고 일부 지역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15도 안팎으로 크게 나서
건강관리에 유의하시기 바라며(서울 낮 기온 21도) 한주를 시작하는 오늘은 웃으면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