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길상사’
무소유 정신과 맑음,
향기로움을 표방하는 도심 속 사찰
도심 속에서 평안함과 힐링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곳
길상사(吉祥寺)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사찰이다. 1997년 12월에 창건해 26년 남짓 된 절이다.
역사는 미천하지만 길상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서울 삼각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길상사는 절 이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는다.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를 뜻한다.
길상사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과 맑음, 그리고 향기로움을 표방하는 도심 속 사찰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있다.
‘삼각산 길상사’ 현판을 내건 일주문으로 들어서면 경내다.
정문을 지나면 기둥과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는 기와집 한 채가 서 있다. 대웅전 격인 극락전이다.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지장전은 범종각과 함께 사찰 기능을 보완하려는 차원에서 지은 건물이지만
한국 전통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일반적인 절과 차별되는 건축물,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조경 외에도
길상사는 이례적인 모습을 품고 있는 절이다.
경내에는 극락전, 지장전, 설법전 등의 전각이 있으며 행지실, 청향당, 길상헌 등의 요사가 존재한다.
2011년 이후 불교 자선재단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 도량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사업을 펼치고 있다.
길상사 경내는 울창하지 않아도 숲의 느낌이 제법 진하고, 잘 가꾼 정원을 보는 듯하다.
보호수를 비롯한 고목이 많고, 철 따라 들꽃이 피고 진다. 곳곳에 있는 벤치도 이색적이다.
고목이나 계곡과 어우러진 숲에 놓인 벤치에서 길상사를 찾은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계속해서 경내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키가 큰 관음보살상이 눈에 띈다.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가 종교 간 화해와 화합을 염원하며 기증한 작품이다.
창건 법회 때 김수환 추기경이 축사를 했고,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에는 서로 축하 현수막을 내건다.
종교적 갈등을 벗어나 진정으로 참 선을 추구하는 공간인 것이다.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다.
고급 요정이 절집으로 탈바꿈한 데는 법정 스님과 김영한의 이야기가 있다.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56년 효봉 스님의 제자로 출가했으며, 2010년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무소유》 《맑고 향기롭게》 《산방한담》 《오두막 편지》 《버리고 떠나기》 등 스님이 쓴 책이 많은 독자에게 감명과
울림을 전했다.
대원각을 시주한 김영한(1916~1999, 법명 길상화)도 그렇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시주를 결심했다.
건물 40여채와 대지 2만3,140㎡로, 시가 1천억원이 넘는 규모였다.
대원각을 시주하려는 김영한과 무소유가 삶의 철학인 법정 스님 사이에 권유와 거절이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결국 법정 스님이 시주를 받아들이고, 2년 동안 개·보수를 거쳐 길상사가 탄생한 것이다.
김영한은 기생 교육기관이자 조합인 권번에 들어 수업을 받고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입문했다.
1950년대 청암장이라는 별장을 사들여 운영하기 시작한 대원각은 군사독재 시절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으로
이름을 떨쳤다. 김영한은 대원각을 시주할 때 “그까짓 1천억원은 백석의 시(詩) 한 줄만 못하다”며
한 치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백석은 그녀가 사랑한 시인 백석이다. 백석은 김영한에게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지어줄 정도로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백석은 만주로 떠났다.
백석과 김영한의 만남은 여기까지다. 6·25전쟁으로 남과 북이 나뉘며 서로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
백석은 1996년 북한에서, 김영한은 1999년 길상사 길상헌에서 눈감았다.
김영한은 평생 백석의 생일인 7월1일에는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백석을 그리워한 김영한은 1999년 11월14일에 세상을 떠나면서
“내가 죽거든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유골을 길상사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길상사 경내의 길상헌 뒤쪽 언덕에는 김영한의 공덕비가 세워졌다.
길상화는 길상사 창건 법회 때 법정 스님이 염주와 함께 전해준 법명이다.
공덕비 옆 안내판에 김영한의 생애와 백석의 시 한 편이 새겨졌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로 시작하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법정 스님은 불문에 귀의한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었고, 김영한 사후에도 길상사에서 정기법회를 열었으며,
2010년 3월11일 길상사에서 78세(법랍 54세)로 입적했다.
길상사의 개원 법회가 열리던 1997년 12월에 고 김수환 추기경이 법회에 참석해 법정과 함께 나란히 축사를 했고
법정 또한 이에 답하여 1998년 2월에 명동성당을 찾아 법문을 설법했다.
길상사 경내에는 공덕주 김영한의 공덕비와 함께, 법정의 영정과 그 생전 유품들을 전시한 기념관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김영한씨와 법정스님의 인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김씨는 1987년 미국에 체류할 당시 설법 차 로스앤젤레스에 들른 법정을 만나
대원각 7천여평(당시 시가 1천억원)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줄곧 시주를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다가 1995년 마침내 청을 받아들여
법정 스님의 출가 본사인 송광사 말사로 조계종에 ‘대법사’를 등록한다.
이후 1997년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꿔 12월14일 창건 법회를 갖는다.
길상사 창건 법회 날 김영한씨는 법정 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당시 그는 수천명의 대중 앞에서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인 1999년 11월14일 목욕재계 후 절에 와서 참배하고 길상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유골은 49재 후 유언대로 길상헌 뒤쪽 언덕에 뿌려졌다.
길상사는 유골이 뿌려진 자리에 조그만 돌로 소박한 공덕비를 세우고 매년 음력 10월7일 기재를 지낸다.
길상사는 김영한 보살의 숭고한 뜻과 그 뜻을 수행 공동체로 구현한 법정 스님의 발자취가 유형무형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 길상사는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수행하는 도량이다.
길상사는 나 자신뿐 아니라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수행하는 도심 속 청정 사찰이다.
1000억에 달하는 재산도 시인의 시 한 줄에 견줄 수 없다는 길상화(김영한) 보살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에 감화를 받아
지금의 아름다운 길상사로 거듭난 것이다.
법정 스님의 흔적은 길상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진영각에 있다.
전각에는 스님의 영정과 친필 원고, 유언장 등이 전시된다. 법정 스님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준비하지 말며,
승복을 입은 채로 다비하라”고 유언했다. 유골은 진영각 오른편 담장 아래 모셨다. 진영각 옆에는 생전에 스님이 줄곧 앉은
나무 의자가 흔적을 대신한다.
번잡한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길상사.
길상사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참선과 사색, 수행의 공간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가 한층 가까워지도록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길상사 고유의 맑고 향기로움은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경내를 산책하듯 조용조용 걸으면
마음 속 번뇌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길상사 관람 안내>
*대중교통 :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성북 02번 마을버스(평일 8~12분 간격, 주말 10~12분 간격 운행) 이용,
길상사 정류장 하차.
*문의 : 길상사 02)3672-5945
*방문일 : 2023년 10월16일(월)
첫댓글 조금 전에 길상사 사진을 보고 많은 생각에 잠겼는데
용타기 방장님의 잘 짜여진 답사기를 읽으면서
그 어느 날 길상사 경내 길을 따라 발걸음도 죽이며 구경하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비록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편안하게 경내를 산책하며 힐링할 수 있는 사찰이지요.
가끔씩 들리는 곳입니다. ^_^
두분다,
기억 하고픈 분입니다.
50여년전 정릉 동방주택 에서 15년을 살면서,
북악스카이 웨이를 지나다.
계절마다 찾은곳 입니다.
세월이 무었인지...
그러셨군요.
한 시절, 무소유의 철학을 깨닫게 해준
법정 스님의 발자취는 아직도 길상사 곳곳에
남아 있음을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