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 이준경 淸風神命
갑자사화로 1504년 4월4일 이세좌는 유배지를 거재도로 옮기는 중에, 연산왕은 이세좌가 사천남포에 지날 때 자진하여 죽으라는 어명이 도착한다. 이세좌는 군관이 보는 앞에서 한양을 향해 사은숙배를 올리며, 내 몸이 토막으로 잘려지지 않고 훼손되어 죽지 않음에 감사한다는 말을 남기고 나무에 목메었다. 네 째 며느리 신 씨가 시아버지의 시신을 거두우려 떠났으나 5월 2일 의금부에 분이 안 풀린 연산왕이 이세좌의 머리와 사지를 베어서 사방에 매달아 찌를 붙여 날리도록 하라는 참혹한명을 내린다. 5월 13일에는 옥에 갇힌 이세좌의 네 아들들을 모두 참형에 처하고 효수하여 시체를 돌리라는 명도 내린다. 죄인의 집은 못을 치고 죄명을 새기며, 종친들은 참혹하게 형벌하여 죽이고 출가한 여식의 사촌까지는 모두 연좌하여 벌하고 재산을 적몰시킨다.
이세좌는 과연 무슨 죄인가? 연산왕의 어머니 폐비 윤 씨의 사약을 들고 간 형방승지였다는 것이 이유다. 본관은 광주이고, 세조 때 형조판서를 지닌 이 극감의 장자이다. 그리고 차남이 이 세우다. 이준경은 이세좌의 손자고 아버지는 이세좌의 4남으로 홍문관수찬이수정이다. 어머니는 신승연의 딸이다. 그리고 8살의 이윤경과 7살의 이준경은 어리다는 이유로 목숨을 부지하고 청풍으로 유배를 간다. 그 후 적소는 괴산의 청안으로 이배된다. 어머니 신 씨는 장녹수의 몸종으로 배치된다. 적소의 고생은 상상이상으로 나무를 하려가고 물도 길러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볼 수 없기에 가져간 사자소학은 담돌 밑에 숨기고 군관병사가 없을 시 읽었다. 밥은 유모가 따라와 지어준 모양이다. 언제 나라에서 처형하라는 명이 내려올지 모르는 것이니, 그 때까지 죽지 않고 살게 하는 것이 청안현감의 책임이다. 어느 날 배도 고프고 몸에 생긴 이를 형이 잡는다고 겉저고리를 벗어 이를 잡자, 동생인 이준경이 어차피 죽을 것인데 얼어 죽으나 사약을 받고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무슨 이를 잡느냐! 그냥 고래에 벗어 태워버리자고 하자, 형제는 옷을 벗어 태워버리고 알몸으로 떨고 있다가, 관리 군관이 놀래서 현감에 보고하여 새 옷을 가져다 줘 버티는 선생의 강단 있는 얘기가 있다.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형제는 괴산에서 서울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만난다. 선생의 집은 연화방인데 주위에 한 살 아래 남명 조식이 이사와 같이 친구로 지낸다. 1507년 외조부 신승연이 상주 목의 교수로 임명되어 이준경 형제를 데리고 부임한다. 판관 김윤호의 집이 비어서 그곳에 거처한다. 상주목사 손중돈은 신승연과 이준경 형제를 많이 도와준다. 그곳에서 손중돈 목사의 생질 이언적 선생을 만나 교우를 한다. 손목사가 한양으로 올라간 뒤, 후임 목사가 부임이 늦어져 경상감사 강혼과 도사 윤탕이 상주에 거주하며 일을 본다. 이윤경 형제는 황효헌에게 학문을 배우고, 칼 쓰기와 말 타기도 배운다. 1502년 상주에서 한양으로 온 이준경 형제는 학문에 열성하고, 어머니는 홀로 아들 둘을 키우느라 고생을 한다. 늘 배가 고픈 시절에 이준경이 복숭아를 서리해서 형도주고 같이 먹었는데 어머니가 방에서 과일냄새가 나자 담 밑에 묻은 복숭아씨를 발견하고 매를 든다. 사춘기의 아들을 어머니가 울면서 매로 훈계를 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을 찾아가 사과를 올린다. 복숭아주인 박 진사는 이준경이 찾아와 잘못을 비는 것이나, 어머니의 투지와 심성을 부러워한다. 1514년 이준경 나이 16세에 어머니는 봄에 형을 혼인을 시키고 이준경의 혼처를 찾는다. 한양에 복직한 외조부 신승연은 경상감사 안당이 추천하여 사재감에서 일을 한다. 경상도 도사 김양진의 딸이 배필이 된다. 김양진은 학문이 깊고 서책도 많은데 집도 넓어서 많은 도움을 이준경에게 준다.
성혼과 이항과 교우하여 친하게 지낸다. 이항은 무술이 높고 기개가 큰 사람인데 당시에 왜인들이 조선 침범을 위해 염탐을 하는 무리를 이항이 잠복하여 찾아 무리와 칼싸움 끝에 체포한다. 1514년 이준경 형제는 사촌형 탄수 이연경의 충주 집으로 가서 공부를 한다. 이연경은 정암 조광조 선생과 교우한 학식이 높은 분이다. 여기에 남명 조식도 와서 같이 공부를 한다. 정암이 충주근처에 지내니, 같이 만나자는 전갈을 탄수에 보내고, 이준경 형제와 조식이 잠시 글을 같이 배운다. 글공부에 집중한 이준경은 1522년 생원시에 합격한다. 모친 삼년상을 마치고 첫아들을 본다.1529년 이준경 손아래 동서가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장인이 황해감사가 된다. 이준경선생은 세마를 하여 동서와 같이 장인을 찾아가 인사를 한다. 장모는 작은 사위만 좋아하고, 장인은 선생을 귀여워하여 밤이 깊도록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다. 해주에서 돌아와 1531년 이준경은 과거에 합격한다. 예문관 검열이 된다. 그리고 세마하여 충주 탄수 이연경 사촌형에 인사를 갔다, 생도로 공부하는 노수신을 만난다. 그 해 형 이윤경이 진사과에 장원급제한다. 1533년 파직되어 충주 종형 탄수를 뵈려가다 보련산 산 거지를 만나 말을 빼앗기고 묶인다. 산적대장은 두 명의 후계자를 설명하며 누구를 정하는 게 좋은가 물었다. 듣고 한명을 선정해주자 탈락된 거지는 이튿날 죽였는지 없어졌고 선생은 풀어 주여 충주로 간다. 그리고 반성한다. 누가 더 좋다는 비교 평가하는 말은 그 후부터는 하지 않았다.
1536년 장인 장례를 치루고 파직 3년차에 조식과 이지함과 같이 송도의 화담 서경덕을 만나러 갔다. 조식은 집에 급한 전갈이 와 귀가하고 이지함과 같이 송도기생 황진이를 만난다. 서경덕은 많은 집필을 하여 이준경이 감동을 받았고 책을 통해 읽고 만나러 간 것이다. 1537년에 복직이 됐다. 호조와 이조의 정랑이 됐고 군기시 첨정이 되었다. 조선의 모든 정사는 이기가 휘둘렀다. 그를 반대하면 지위고하 숙청이 된다. 1549년 병조판서 이준경은 재종질 이홍윤의 역모사건으로 시련을 겪는다. 이홍윤은 작은 할아버지 이세우의 손자 이약빙의 작은 아들로 대윤 윤임의 사위이다. 큰아들 이홍남과 작은 아들 이홍윤이 사이가 나빠서 제 동생을 제가 살기 위해 역모로 얽고 거짓고변을 한 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자는 80명이며 충주가 역도의 소굴로 낙인 찍혀져 목사와 판관을 파직시켰다. 충주관장을 6계급 강등시켜서 정3품 목사에서 정6품 현감으로 교체하고, 충주 목을 維新縣으로 개명하고 충청도는 청홍도로 개명시킨다. 이 청홍도와 유신현은 임란이 일어나지 전까지 근20년이나 계속된다.
병판 이준경은 군사훈련 강도를 높이기 위해 청홍도 아산에 있는 방진을 데려온다. 군기시 첨정 때 발굴한 인재로 방진은 활의 명사수다. 을묘왜변은 1955년 70여척의 배로 6천여 명의 왜구들이 전라도 보성일대 남해안을 침투한 사건이다. 이 전쟁에서 조선은 허겁지겁하면서 얻어 터졌다. 달량진, 영암, 나주일대에서의 전투다. 1560년 이준경은 좌의정이 된다. 형님 댁을 갔다 오다 젊은 훈장이 아이들 가르치는 소리를 듣는다. 15세의 젊은이가 아이들은 정확하게 잘 가르쳐 들어가 구경을 한다. 젊은 선생의 부친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젊은이는 좌의정 이준경에게 알아 뵙지 못해 죄송하다면 큰절을 한다. 앞날의 희망이 높이 보이는 젊은이였다. 그는 이순신이라고 인사를 했다. 1561년 임꺽정의 난이 일어난다. 방진이 이준경을 찾아와 외동딸이 나이가 들어가니 중신을 부탁한다. 이에 이준경은 즉시 아산 방진에 이순신을 중매하여 성사시킨다. 몰락한 가문후손으로 훈장으로 연명하던 이순신, 그리하여 아산으로 낙향하고 장인을 버팀목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우리나라를 구하는 위대한 성웅 이순신으로 변모한다. 이윤경이 평안도 관찰사로 나간다. 병환 중에 평안절도사까지 겸직하다 현지에서 형 이윤경이 순직한다. 1563년 이준경은 영의정이 된다. 이양과 윤형원의 세력 갈등에 이양은 별별 수단을 다써가며 눈밖에 아니꼬운 사람을 초토화 시킨다. 사림의 근원인 조식과 이황을 제거하려 든다. 이양의 외 조카 심의겸이 반문을 하여 이양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양은 심의겸을 除去者 명단에 넣는데 심의겸아버지 심강이 이를 발견하여 왕비 인순왕후에 고변한다. 외숙부 이양이 오라비 심의겸을 죽이려든다면 아니 될 일이다. 인순왕후는 명종에 고하여, 이양의 음모를 차단하고 삭탈관직 한다. 그러자 세상은 윤원형과 심통원의 세상이 되어버린다. 1563년 가을에 명종의 외동아들 순회세자가 죽는다. 명종은 낙심하고 문정왕후도 큰 병을 얻는다. 요승 보우가 문정왕후의 복을 기원한다며 흉패함을 형언키 어렵게 한다. 왕후 승하 시 임종에 비상대기를 하고, 1565년 4월 6일 사시에 대왕대비 문정왕후는 “세자가 탄생하기를 내가 날마다 바랐었는데 뜻밖에 우연히 이 병을 얻어 내가 장차 보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 오직 조정의 대신들이 상에게 충성을 다하기를 바랄 뿐이요.”라는 유교를 내리고 죽는다. 영의정 윤원형이 체직되고 이준경이 다시 영의정이 된다. 1566년 새해가 되고 일가친척들이 세배를 왔다. 아비 이민성과 꼬마 이덕형이 인사를 한다. 명종은 이준경에게 젊은 인재를 추천하라고 한다. 사마시에 합격한 이원익을 추천한다. 명종이 후사 없이 임종을 맞는다. 외척 좌의정 심통원이 뒤따라오자 왕권지명은 인순왕후 심 씨가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켜본다. 심통원은 덕흥군의 큰아들을 지지한다. 외 작은 할아버지 심통원이 있으면 정순왕후 심 씨가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준경은 외척 심통원이 약방제조를 겸하기 때문에 어찌 왕의 탕약제조를 아랫사람을 사키냐며 심통원을 호통 쳐서 내의원 약방으로 보내자, 명종은 입을 열지 못하고 왕후에 눈으로 가리킨다. 왕후가 장막 뒤에서 “덕흥군의 제삼자“라고 명하니 이준경이 큰소리로 따라 복창한다. 주서 황대수가 큰 글자로 받아 써 등에 대고 나가자 명종은 1567년 6월 28일에 승하한다. 이로서 하성군이 즉위하니 그가 선조다.
2020.04.27.
청풍신명
이용두 지음
책과나무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