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건지소서
시 31: 1-5
어떤 사람이 간증하기를 반려견같은 믿음을 주옵소서 하는 간증을 했습니다.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를 보면서 믿음이 이런 것인데 하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이냐 자그마한 강아지인데 이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면 지나가는 큰 개를 보면 짖는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강아지가 자기보다 훨씬 큰 개를 보면 도리어 무섭지 짖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강아지를 살 바닥에 내려놓으면 그냥 낑낑대며 주인 뒤에 숨고 큰 개를 잘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주인이 안아주기만 하면 그냥 큰 개던 작은 개던 보이는 족족 짖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야 이 놈이 내가 지를 지켜줄 줄 알고 이렇게 짖는구나 내가 이런 믿음이 있다면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의지하고 신뢰하고 있다면 세상의 두려운 것과 두려움 없이 맞서 싸울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내게 반려견 같은 믿음을 주옵소서 그런 간증을 했던 겁니다.
사실 키우는 동물들을 보면서 우리가 위로도 많이 받지만 이렇게 믿음의 도전도 많이 받습니다. 나는 이런 개보다도 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하며 사는가 하는 도전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개보다 더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개보다 못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시편 31편은 고난 중에 간구하는 기도시입니다. 어떤 고난이 있었느냐는 알 수 없지만 고난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심한 고난 속에 있습니다.
4절에 그들이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합니다 이미 그물에 걸려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며 이 그물에서 빼내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도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합니다. 고통 중에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10절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니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고 탄식으로 세월을 보낸 것 같아 지금 내 뼈다 쇠하여졌습니다 그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는 11절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과거에도 고난이 많았는데 지금도 고난이 있어서 친구들이 놀라고 길에서 보는 사람들이 다 피한다고 합니다.
그렇죠 사울왕이 다윗을 도와주기만 하면 잡아서 죽이니 다윗을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고, 만나서 몇 마디 말이라도 나누면 그것으로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르니, 아예 길에서부터 피한다는 겁니다.
얼마나 고통중에 있는 다윗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베푸소서 건지소서 빼내주옵소서 합니다
그런데 그런 간구하는 기도이지만 전체적인 기도의 분위기를 보면 너무 괴로워서 이제 견디기가 힘드니 나를 구해주옵소서 하는 탄식이라기보다는 고난이 있는데 그래서 힘드니 구해 주십시오 하며 어떻게 보면 좀 당당한 간구,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그런 간구의 기도 자세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산성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하는 간구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이런 간구를 합니다. 3절이죠.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어떻게 보면 좀 당당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그런 기도를 합니다. 더 특이한 것은 7-8절
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8.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아니 지금 고난 속에 있는데 어떻게 이런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이웃들은 만나주지도 않고 아는체도 안하는 그런 지경에서도,, 다윗은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겁니까?
고난속에서도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즐거워할 것이다 합니다..
지금 고난을 겪고 있고 고난 중에 있는데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넓은 곳에 서 있는 겁니다.
확신이죠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 하나님은 내 산성이시다 내 구원자이시다 확신하다보니 그런 고난 속에서도 나는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그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 아니겠습니까? 이런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믿음으로 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도 내 주인만 있으면 나는 무엇이던 무섭지가 않습니다 하며 큰 개에게도 큰 소리치고 당당하게 걷는 그런 모습이 이 시 31편의 모습인거죠
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8.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그럼 무엇이 다윗으로 이런 기쁨,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게 하고 이런 기도를 하게 한 것이냐 무엇이냐
하나님에 대한 앎,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그것을 알고 깨닫고 확신했기에 나는 이런 고난속에서도 이미 넓은 곳에 사는 마음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한 것입니다.
그럼 다윗이 깨달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2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합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함께
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이미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의 반석과 산성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다윗은 믿고 확신 했기 때문에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나를 인도하소서 지도하소서 한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반석과 산성은 특별합니다.
이스라엘은 메마른 땅입니다. 그래서 그 땅에는 나무가 많지 않고 숨을 만한 곳이 많지 않은 땅입니다. 나무도 잎사귀가 크지도 않고 작은 가시나무 같은 나무들이 많은데 그러다보니 도망가다가 큰 바위가 있다 하면 그 뒤는 숨기에 아주 좋은 장소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큰 도움을 이야기할 때 바위를 말했습니다 .
사무엘이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무엘하 22: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바위뇨
또 22:3에서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땅에서 큰 바위를 만나는 것은 큰 피난처를 만난다는 뜻이기에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의 바위이십니다 고백하며 살았던 겁니다.
그리고 산성, 이스라엘 땅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지면은 홍수가 나버립니다.
평범 한 날들에는 그냥 메마른 땅이다가 비가 쏟아지면 갑자기 물이 불어나서 홍수가 나기에 대부분의 집들은 산에 있습니다. 마을도 산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새도 산에 짓습니다. 그리고 튼튼한 산성은 산위에 있기에 난공불락의 요새가 됩니다. 전쟁에서 쫓기다가 그런 튼튼한 산성을 만나서 그곳에 들어가 숨는다 는 것은 큰 피난처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며 기도를 한 것이 기도인데 주는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늘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이미 내게 바위며 산성이시다 확신하게 되니 기도가 바뀐 겁니다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한 겁니다.
그래서 어떤 기도를 하느냐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합니다.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인도하고 지도하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때의 장면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곳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으로 인도해 주셨고 그곳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며 내가 지금 고난을 벗어나고 싶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그렇게 해 달라고 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시지 않고 지도해 주시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해 주시고 지도해 주옵소서 기도를 하는 겁니다.
이것은 확신입니다.
하나님은 해 주신다 해 주실 수밖에 없다 그것을 확신하기에 이 기도를 한 겁니다.
아예 어떤 기도를 하느냐 5절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기도까지 합니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미 내 영의 문제는 내 손에서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내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기도까지 합니다.,
확신이죠 하나님은 해 주실 것이다 해 주실 수 밖에 없다 확신하니 이런 기도를 한 겁니다
그래서 고난 중에서도 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8. 나를 원수의 수중에 가두지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고백한 것인데 우리 이런 믿음으로 삽시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들 수많은 고난들 겪어내고 겪어내도 끝이 없는 어려운 일들 그래서 그것 겪어내느라, 내 뼈가 상하고, 내 눈과 몸까지 쇠하여지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어도, 나는 확신한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이다 나의 길을 지도하실 것이다 확신하며 믿음으로 삽시다
그래서 늘 우리 마음은 이미 이 고난이 지나가서 넓은 땅에 살고 있는 그런 마음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삽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시며 산성이십니다. 환란날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하나님이 누구시냐 어떤 분이냐 그것을 아는 사람이 이 확신속에 삽니다.
누가 이런 확신 속에 사느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아는 알아서는 안됩니다. 아는 것에만 만족하면 안됩니다.
그 하나님을 경험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경험하여 알게 될 때 이런 확신을 하게 되고 그러면 이런 고백을하며 사는 겁니다.
사람은 어떤 존재냐 내게 체험될 때,, 무너가 느껴질 때 안정이 되는 존재입니다.
동물은 밥만 먹으면 안정적이게 됩니다. 배만 부르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밥만 먹고 살지 않습니다. 내 피부로 내 온 몸으로 안전이 느껴져야 안정감을 누리고,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이 느껴져야 평안해 지는 존재입니다.
가장 쉽게는 애기때가 확실히 드러납니다
엄마는 애기를 어루만져주고 안아주고 품어줍니다. 잘 때나 깰 때나 밤이나 낮이나 엄마는 아기를 어루만져주고 안아주고 품어줍니다. 그러면 애기들은 평안을 누립니다.
애기가 태어날 때 웁니다. 왜 우느냐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어떤 의사들이 말하기를 아기가 태어날 때 엄마 품으로 다시 돌려 보내달라고 운다고 합니다.
엄마 품이 따뜻하고 편안했는데 세상에 나오니까 전혀 다른 세상이다보니 이제 큰일났구나 싶어서 운다고 합니다. 그것을 “출생 충격”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애기가 우는데 울면 간호원이 빨리 아기를 안아줍니다.
엄마 뱃속으로 돌려 보낼 수 없으니까 간호원이 빨리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는데 절대 무서워하지 마라 내가 있다 우리가 있다 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울음을 그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꼭 안아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엄마 품을 떠나면 아기는 웁니다.
그렇게 사람이 엄마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듯이 인간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들의 불안도 우리들의 두려움도 우리들의 근심 걱정도 하나님의 어루만져주심 안아주심 품어주심이 느껴지게 될 때 진정이 되고 평안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져주심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느끼게 될 때 평안해 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시편처럼 고난중에서도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느냐
누가 고난 중에서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느냐
하나님의 그 어루만져주심 안아주심 품어주심을 지금 느끼고 있는 사람이 평안을 누리는 것이며 아니면 적어도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그 경험의 감격이 남아 있을 때 이런 확신을 가지고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체험 그 어루만져주심의 경험이 늘 우리에게 있어서 늘 평안하고 늘 행복해 하며 사는 어린아이같은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미국의 르네 스피츠(Spitz) 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고아들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는 의사였습니다. 그래서 국립병원의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아기 때부터 고아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영양분을 많이 공급하고 위생시설을 잘 했습니다.
아기들이 불쌍해서 스피츠 박사가 아기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아기들이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를 않았습니다. 아기들이 자꾸 병이 들었습니다. 제일 좋은 영양분을 공급하고 제일 좋은 시설을 공급해 줬는데도 자꾸 병이 드는 겁니다.
왜 아이들이 병이 들까? 이게 무슨 병일까? 그래서 스피츠 의사는 그 병을 “시드는 병” 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다가 스피츠 박사가 그 해 겨울 멕시코에 겨울 휴가를 갔습니다.
거기에도 고아들을 키우는 병원이 있었습니다. 그 병원에 가 보았는데 시설이 좋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영양분을 잘 공급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습니다. 병도 안 걸렸습니다.
왜 그럴까? 그 비결을 찾아보니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동네에 사는 부인들이 매일 병원에 와서 아이들하고 놀아주고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그네를 타고 이야기도 해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 스피츠 박사는 “아! 아이들은 안아줘야 행복하구나! 아! 아이들은 아무리 음식을 잘해주어도 행복하지 않구나! 아! 아이들은 안아주고 함께 놀아주어야 행복하구나!”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스피치 박사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접촉을 가진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유모차에서 피부의 접촉이 없이 자란 아이들은 점점 약해졌다. 점점 세포들이 죽어갔다. 우유병으로 키우면 병이 많아진다.
가장 강한 접촉은 입과 입술로 엄마의 젖을 빨아 먹는 것이다. 엄마의 젖을 빨아 먹지 못하고 엄마의 품에 안기지 못하는 아이들은 병에 많이 걸린다.”
애기들도 그렇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마찬가지이며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죄인들이 회개와 기도와 예배에 정성을 쏟으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와서 하나님의 품에 안김을 받을 때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받으면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귀중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접촉이 있을 때 우리는 영적인 평안을 누리고 영혼을 만족을 누리며 깊은 잠과 깊은 기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과의 접촉이 없으면 신앙은 자꾸 메말라가고, 사역은 힘들어져가고 하는 일마다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접촉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과의 접촉을 할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야죠 그래서 시 73편 2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시편 73:28 말씀입니다.
그리고 약 4:8절에서는 더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도 우리 가까이 다가와 주셔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의 영혼과 접촉해 주시니 우리가 살아나는 것이고 우리가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예배에 오는 겁니다.
예배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 가까이 와 있는 겁니다.
지금 하나님도 우리 가까이 와 계신 줄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느끼는 시간인 겁니다. 우리들의 상한 마음과 영혼까지 만져주시기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예배외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 하나님과 접촉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는 겁니다.
애기가 불안할 때 그냥 우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앞에 나아가서 하나님 하고 우는 겁니다.
그게 기도죠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할 때 울 때 하나님은 어머니처럼 왜 그러냐 왜 우냐 하시며 우리를 찾아와 주셔서 우리를 만져 주시고 안아주시는 겁니다.
울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험하지를 못합니다.
멀리 계신 하나님을 가까이 부르는 방법이 우는 것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삶의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여서 고난 중에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미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넓은 곳에 서 있는 겁니다.
이것을 경험하며 사는 모두가 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며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우리가 울면 만나러 오십니다 우리가 예배로서 하나님 가까이 가면 하나님도 가까이 다가오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며 삽시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이 고난 속에서도 기뻐합니다 늘 하나님을 경험하며 그 도우심을 확신하며 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