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33 章 최후의 행로
냉운 앞쪽은 폐허였다.
이 장 깊이 도랑은 천마인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고, 그 끝은 수 장
반경을 가진 거대한 웅덩이였다.
서 있는 사람은 서른이 되지 않았다.
오백이 넘었던 홍의인들 중의 생존자들이 그들이었다.
다른 모든 사람은 도랑과 웅덩이 근처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고 있었
다.
머리통이 으스러져 죽은 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죽은 자, 한 줌
혈사(血沙)로 화해 있는 자들의 수는 오백에 달했다.
가히 공전절후한 살상이었다.
운 좋게 살아난 홍의인들은 사지를 벌벌 떨며 도망가려 했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냉, 냉운…… 네, 네가 마공을 익혔었구나."
저 멀리서 겁먹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 장 밖으로 도망쳐 있는 신비마제 범중안의 공포에 젖은 목소리였
다.
"혈, 혈화천지참은 다음에 알려 주겠다."
신비마제는 벌벌 떨며 위로 날아오르려 했다.
"흥!"
냉운이 어찌 그를 놓치겠는가!
"범중안! 너는 도망가지 못한다. 너는 냉가장 안에서 뼈를 묻어야 한
다."
냉운의 몸이 빛살같이 빨리 날아 범중안이 이십 장 가기 전 이미 그
의 퇴로를 봉쇄했다.
범중안은 한 번쯤은 손을 맞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악을
쓰며 혼신공력을 일으켜 혈화천지참을 시전해 냈다.
우르르르릉 ―!
핓빛 기류가 일어나 냉운의 몸을 휘감는 찰나, 한 줄기 금광(金光)이
일어나며 핏빛 기류를 간단히 태워 버리며 마의 화신 범중안의 몸을
향해 검기를 일으켜 냈다.
스슥 ―.
"크으윽……!"
범중안이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움켜쥐고 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가 서 있던 곳은 옷자락으로 싸여 있는 팔 한 개가 떨어져 돌 위로
꺼내진 잉어 마냥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혈, 혈화천지참을 제압하다니……."
신비마제 범중안은 자신이 단 일 검으로 팔을 잃을 줄은 상상하지 못
했다.
냉운이 시전한 수법이 천하의 마공과 극성이 되는 불사기검(不死 劍
)이라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사검제의 무공 중 가장 높은 단계의 무공이었다.
냉운은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 오묘한 신기를 자신의 것으로
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신비마제가 냉운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준 셈이었다.
"범중안! 네게 물을 죄가 수천 가지다."
냉운은 어느 틈엔가 불사검을 검집 안으로 거둬놓고 있었다.
"냉가장을 혈세(血洗)한 죄, 비룡신군을 죽인 죄, 무수한 사람들을
해하고 신비마궁을 세운 죄……."
냉운은 피가 끓어올라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신비마제를 잡아 어떻게 죽여야 할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쉽게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처참한 죽음을 주어야 그의 더러운 몸과 악에 물든 혼백을 완전
히 사라지게 할지 쉽게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신비마제는 곧 죽을 듯 몸을 휘청거렸다.
"제, 제발……."
그의 입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소리가 나올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목, 목숨을 살려 다오!"
신비마제가 무릎을 꿇었다.
"가증스러운 놈!"
냉운은 분기를 이기지 못하고 그의 머리통에 일 장을 쳐내 박살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꾹 눌러 참았다.
'공적으로 만인의 손에 의해 처단시켜야 한다. 이놈을 죽이는 일은
나 혼자 할 수 없는 무림대사다.'
냉운은 복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감격해하며 눈꺼풀을 슬쩍 내
리감았다.
'아버님, 원흉을 제압했습니다.'
냉운은 냉엽문의 고혼이 이제야 위로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였다.
속죄하는 듯 무릎을 꿇고 있던 신비마제 범중안의 오른팔이 번개같이
위로 쳐들려졌다.
"죽어라!"
파파파팍!
소매 속에서 열여덟 개 기형독표(奇形毒 )가 폭사되어 나왔다. 성형
표(星形 ) 같기도 하고 작은 비발 같기도 한 나선형의 독표는 그의
소매 속을 떠나는 찰나 열여덟 방위로 흩어져 냉운의 위아래를 완전
히 에워쌌다.
"암수를……."
냉운은 노해 왼손에 쥐고 있던 백관계도를 들어 열여덟 개 동그라미
를 만들어 검강(劍 )을 일으켰다.
따당!
날아들던 독표가 검강에 격중되어 산산이 흩어졌다.
그와 같은 순간, 독표가 깨어지며 나타난 콩알만한 붉은 구슬들이 허
공을 난무하며 멋대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암기 속의 암기였다.
콩알만한 독탄이 터져 주위를 독연기로 휩싸는 동시에 다시 아주 가
는 독침이 폭우같이 뿌려졌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암기였다. 냉운은 앞가슴에 짜릿한 감을 느끼며
세 걸음 뒤로 물러나 신형을 안정시켰다.
벌거벗은 앞가슴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신비마제가 몸을 되돌려 석옥 있는 쪽으로 도망쳐 간다는 외에는.
"범중안! 과연 너다운 솜씨다."
냉운은 그의 철저한 마성에 혀를 내두르며 범중안을 따라 무영신법을
시전했다.
휘익!
독연기를 뚫고 나와 석옥 가로 이르는 데는 탄지지간이 걸렸을 뿐이
었다. 하나, 신비마제 범중안보다 한 발 늦게 당도했다는 것도 사실
이었다.
신비마제는 그가 처단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던 협맹 고수들 틈으로
끼어들어 한 사람의 목을 잡고 비틀어대는 중이었다.
"이 계집이 너를 구했겠지?"
신비마제의 팔에 목을 움켜잡힌 사람은 바로 냉혈미인이었다.
냉운은 신비마제가 냉혈미인을 잡은 직후 냉혈미인에게서 일 장 떨어
진 곳으로 사뿐히 떨어져 내렸다.
"흐흐……."
신비마제는 냉혈미인이 숨을 쉬지 못하게 목을 꽉 조이며 잔혹히 웃
어댔다.
광소(狂笑)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잔혹한 웃음소리였다.
"나는 이미 살기를 포기했다. 길동무로 이 계집을 데려간다면 죽는다
해도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계집이 요사한 수법을 써서 네놈을
구했을 것이니, 죽여 길동무로 삼아 원한을 조금이나마 씻겠다."
그가 말하는 사이 냉혈미인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잘 익은 대춧빛으로 물들어 가는 이유는 피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
다.
"놓, 놓아 드려라!"
냉운은 들이닥치던 기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냉혈미인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몸짓을 지었다.
자신을 죽여도 좋으니 범중안을 죽이라는 하소연인 것이다.
"흐흐……, 어쩔 생각이냐?"
범중안은 자신이 칼자루를 잡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냉운, 설마…… 이 더러운 계집의 생명 때문에 나를, 나를 이대로
놓아 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지?"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음!"
냉운은 대답할 말을 잃었다.
"네놈이 마공을 익힌 줄 몰랐기에 어처구니없이 당했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있다면 네놈을 실력으로 죽일 수 있다."
범중안이 냉운을 유혹하는 투로 말하며 눈치를 살폈다.
냉운은 그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범중안, 네가 세 가지를 약속한다면 여기서 놓아 주겠다."
"무, 무엇을 약속하란 말인가?"
범중안이 흠칫 몸을 떨었다.
냉운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런 찰나지간의 허점을 이용해 냉혈미인을
구할 수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암습은 상상도 못하는 광명정대한 사람인 때문이다.
"첫째, 네가 저지른 죄를 만천하에 알리라는 것!"
"흐흐……,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가 있겠느냐?"
"약속하겠느냐?"
"손해볼 것은 없지."
범중안이 첫째 조건에 쾌히 응낙했다.
"둘째, 풀어 주는 즉시 네 수하들을 해산시키라는 것."
"그것은 아주 쉽다. 해산시키는 것이야 어려울 것이 있겠느냐? 나의
목숨이 건재 하는 한 지금까지의 세력을 수 배 능가하는 세력을 만들
수 있으니……."
범중안이 다시 응낙했다.
"셋째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 누구도 너를 찾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약속하겠느냐?"
"네놈은 범중안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구나. 나는 무림을 떠날 사람
이 아니다. 나는 천하제일인이 되는 꿈을 버릴 사람이 아니다."
범중안이 쾌재를 부르자 냉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제 가도 좋다. 어서 그분을 풀어 드려라!"
"네놈을 믿겠다."
범중안은 망설이지 않고 냉혈미인을 풀어 주었다.
순간, 냉혈미인이 부르짖는 소리와 함께 범중안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펑!
폭음과 함께 비명 소리가 뒤따랐다.
"크으으……!"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사람은 냉혈미인이었다.
범중안은 냉혈미인이 손을 쓰리라 짐작하고 호신강기를 일으켜 두었
던 것이다.
가히 천하의 효웅(梟雄)이었다.
"네 입으로 뱉은 말을 어기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범중안은 냉운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뒤로 다섯 걸음 걷다가 석
옥의 지붕을 넘으며 모습을 감췄다.
그를 쫓는 사람은 없었다.
"냉, 냉 맹주! 어이하자고 이 천한 계집의 목숨과 범중안의 목숨을
맞바꾼단 말인가? 그 자가 약속을 지킬 위인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범중안의 반탄진기에 쓰러졌던 냉혈미인이 상반신을 일으키며 원망스
럽다는 듯 외쳐댔다.
"이 늙은이를 더한 죄인으로 만들다니……."
냉혈미인은 피눈물을 흘리다가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찌르려 했다.
그녀의 손이 목 속으로 파고들기 직전이었다.
멀리 서 있던 냉운이 번개같이 날아들어 우회 금룡수법(金龍手法)을
시전해 냈다.
팍!
냉혈미인의 손이 허공에서 정지되었다.
냉운이 그녀의 손을 잡아낸 것이다.
"어이하여 저를 죄인으로 만들려 하십니까?"
"냉, 냉 맹주! 그게 무슨 소리인가?"
"범중안이란 자를 놓아 주었다고는 하나 다시 잡을 수 있습니다. 하
나, 한 번 죽은 사람은 되살리지 못합니다. 제가 어찌 더러운 자의
목숨을 얻기 위해 궁주의 깨끗한 영혼을 희생시키겠습니까?"
"맹, 맹주! 이 몸의 혼백은 깨끗하지 않네. 악에 물든 혼백이네."
냉혈미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냉운이 정색을 했다.
"아미타불……, 시주를 욕할 사람은 여기 한 사람도 없소. 죄책감을
갖지 마시오. 모두 시주의 벗이오."
소림 장문인 오공선사가 다가서며 자비스러운 미소를 던졌다.
"저, 저를 용서해 주시렵니까?"
냉혈미인이 일그러진 얼굴 가운데 희열에 젖은 표정이 되어 말을 더
듬었다.
"비, 비룡협 범중안을 마도로 끌어들인 장본인이 바로 접니다. 그런
데…… 저를 용서해 주신단 말씀입니까?"
"아미타불……, 빈승은 시주의 죄가 이미 씻어졌음을 말하고 싶소.
시주는 더 이상 마도 사람이 아니오.“
"감, 감사합니다."
냉혈미인이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 사이, 협맹의 가장 연장자인 망망신니는 제일 먼저 신비마제의 독
수 아래 쓰러진 제소옥이 누워 있는 근처로 가 그의 상세를 보고 있
었다.
제소옥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한 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신니!"
제소옥은 자신과 귀검사가 신비마제를 막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
다는 듯 부끄러워했다. 그는 극심한 내상(內傷)과 외상(外傷)을 입어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참 훌륭한 일을 해냈다."
망망신니는 합장해 불호성을 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 곁으로 온 이유는 한 가지 긴히 시킬 일이 있어서이다. 지금 괴
로운 중이라는 것을 아나, 네 손으로 해야 할 일이기에 너를 찾은 것
이다."
"어떤 일이지요?"
제소옥은 비틀거리며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렸으나 쓰러지지는 않았다.
명가의 후손답게 인내심이 강하고 의지가 대단한 청년이었기에 신체
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한 분의 시신을 네 손으로 처리해야 한다."
망망신니는 손을 들어 사지가 끊어져 죽어 있는 홍의인의 시신을 가
리켰다.
반쯤 탄 후 능지처참되어 죽은 시체의 임자는 청성파의 배반자 청성
신협 방호였다.
평생을 배반으로 끝낸 사람이었다. 하되, 최후의 배반은 값진 배반이
었다. 신비마제를 배반한 일이 그 일이었다.
"저분은 너와 특별한 관계다. 네 손으로 저분의 시신을 정성껏 염해
야 한다. 그 일을 시키기 위해 네 앞으로 왔다."
"저, 저분은 제게 사숙(師叔)이 되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소옥이 다 안다는 눈치를 했다.
"저분은 배반으로 청성의 영명(英名)에 누가 되었으나, 이제는 말끔
히 씻어진 셈입니다. 저는 저분을 존경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사질의 신분으로 시신을 거두라는 것은 아니다
."
"예? 그럼 어떤 신분으로?"
"그, 그것은 나중에 이야기해 주겠다. 네가, 네가 건강한 몸이 되면
빈니가 너를 찾아 어떤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만 알
고 있거라."
망망신니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고개를 제소옥 쪽으로 하고 있을 경우 눈에 눈물이 떠오르는
것을 감출 수 없어서였다.
'얘야, 저분이 바로 너의 생부(生父)이시다.'
망망신니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제소옥과 제소청이 꼭 알아야 할 일이었다.
하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제소옥이 건강을 되찾고, 무림에 평화
가 오는 날, 망망신니는 그 모든 이야기를 해 줄 것이리라.
냉가장의 혈겁은 칠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끝이 난 셈이었다.
원래 삼기의 하나인 청성은옹의 장례식에 참가할 계획으로 온 사람들
이 장례식의 임자가 되어 버린 셈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소주성
안으로 흩어져 가 소주성 안의 관이란 관은 다 사들였고, 무수한 제
수를 준비했다.
저녁 무렵.
소주성 안으로 들어와 있던 강호의 군웅들은 냉가장의 협맹 고수들이
만든 소문 하나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신비마제는 냉가장 안에서 죽은 사람들의 장례식이 있기 전 잡혀 죽
을 것이다. 그날, 수년 만에 평화가 돌아오리라!>
그와 함께 아주 무서운 소문이 떠돌았다.
냉가장 안에서 각 파 고수 이백 인이 살해당했고, 신비마궁의 절정고
수가 거의 다 죽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냉가장이 피로 물들었고, 신비마제가 한 팔을 잃고 도망쳤다는 말도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신비마제의 한 팔을 자른 사람은 옥면살성자라고 했다.
그의 무공이 신비마제를 능가한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었다.
협맹이 신비마궁을 없앴고, 협맹의 제일인인 옥면살성자 냉운이 곧
천하의 제일고수라는 것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아직 암운(暗雲)이 가시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신비마제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
보름 후까지 그를 잡아 처단하겠다고 공약한 협맹의 고수들은 거짓말
쟁이로 여겨지게 될 것인지.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에 신비마제를 잡을 수 있을까?
무림인들은 이제 몸을 숨기기 바빴다.
최후의 일전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셈이기 때문이었다.
신비마제와 옥면살성자.
마도의 괴수와 정파의 영웅이 다시 겨루고 그 자리서 승자가 생겨나
야 모든 것이 확실해질 것이다.
그때까지는 미궁(迷宮)의 연속이 되지 않겠는가?
냉가장에 혈겁이 있던 날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대지를 적신 피를
씻기 위해 내리는 폭우인지, 앞으로 있을 혈겁을 슬퍼하기에 내리는
비인지…….
장대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사통팔통하던 소주의 거리는 물에 젖었고, 결국은 인적마저 끊이게
했다.
천지간이 수국으로 변한 그날.
휘휘휙! 휙!
언제부터인가 협도무림의 성지로 변한 냉가장 안에서 나는 듯 달려나
와 폭우 속으로 사라져 가는 일단의 무림인들이 있었다.
신비마제를 뒤쫓아 떠나는 협맹의 정예들이었다.
협맹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천하에 알리려 하는 무림의 기린아들이
기도 했다.
그들은 폭우에 아무런 장애도 느끼지 않는지 아주 빠른 속도로 냉가
장의 영역을 벗어나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갔다.
작렬하던 태양이 기세를 잃은 듯 더위가 한풀 꺾일 무렵.
절강성(浙江省)의 경내(境內)로 드는 관도(官道)를 따라 몸을 날리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특색 있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특이한 사람은 외팔에 한 발을 저는 흑삼청년이었다.
"팔이 하나면 어떻습니까? 속하는 이 팔로 장주님이 타실 말고삐를
잡을 수 있다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쾌활히 말하는 청년의 얼굴에는 오래 되지 않은 상처 자리가 역력했
다.
"흠! 과연 귀검사네. 자네를 병상에 두고 슬쩍 떠나려 했거늘……."
"장주! 속하는 장주를 따를 것입니다."
흑의청년이 가장 앞서 달렸고, 그 바로 뒤 지극히 영준한 흑삼청년
또 하나가 있었다. 그 곁에는 아름다운 백의여인 둘이 있고, 맨 뒤
상복 차림의 약관 청년 하나가 있었다.
강호 백도의 우두머리가 되는 젊은 영웅들이었다.
바로 냉운 일행이었다.
"의형! 이대로 달린다면 밤이 다 가기 전 주가점(周家店)에 이를 수
있습니다."
상복 차림의 청년의 말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사실 극심한 상처를 입고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였고,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를 붙잡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천외옥룡 제소옥이었다.
제소옥, 귀검사와 옥면살성자 냉운 이외 두 명의 여인은 천하삼미(天
下三美)에 끼이는 여인들이었다.
소의금랑과 유화선자 일타운이었다.
여기 강남미연자 제소청만 낀다면 천하삼미가 한자리에 있는 셈이 될
것이다.
제소청은 냉가장 안에 머물러 있었다.
휘휘휙!
다섯 사람이 나는 속도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빨랐다. 그들은
모두 기이한 운명의 소유자들이었다. 냉운이 살아난 것은 기적과 같
은 일이고, 제소옥과 귀검사도 마찬가지였다.
만에 하나, 냉운이 무림기인전 안에서 갖고 나온 삼선단을 복용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면 신비마제의 혈화천지참 아래 고혼(孤魂)이 되었
으리라.
귀검사는 한 팔을 잃고 얼굴에는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한 목숨 건
졌고, 천외옥룡은 다 죽게 되었다가 소림 태환단 다섯 알과 청허관의
오령신단 열 알을 한꺼번에 복용하고 원기를 되찾은 후였다.
그들을 구한 장본인은 냉운이었다.
냉운이 무림기인전 안에서 배운 의술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보
름 이상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을 것이다.
제소옥은 신비마제에게 보검을 잃은 후, 한 가지 놀라운 신병이기의
주인이 되는 영광을 얻었다. 그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시뻘건 계도
하나가 있었다.
바로 혈마도(血魔刀) 백관계도(百貫戒刀)였다.
그는 백관계도의 주인이 되는 동시에 혈마경(血魔經)을 익히게 되었
다.
모두 냉운의 배려였다.
냉운은 제소옥을 협맹의 맹주로 만들 생각을 하고 그에게 불귀객들의
무공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고 있었다.
혜택을 받은 사람은 제소옥에 국한되지 않았다.
마도에서 정도로 돌아선 유화선자 일타운은 무영천존의 전인이 되어
무영옥환(無影玉環)을 손가락에 꼈고, 염가장의 여장주 염방채는 무
당에서 실전된 천뢰비급(天雷秘 )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오대불귀
객의 무공 중 네 가지가 진정한 주인을 만난 셈이었다.
일행은 지금 주가점이라는 마을을 찾아 나는 듯 달리는 중이었다.
가장 유유히 움직이는 사람은 냉운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혼신공력을 다해 달리는 중이었으나 냉운은 단지 삼
성(成)의 진력을 사용할 뿐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자시(子時)가 되어갈 때, 일행은 산길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마을 안
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아주 조용히 잠들어 있는 마을 안, 오래 전에 세워진 관제묘(關帝廟)
하나가 있었다.
무너질 듯 위태로운 관제묘. 세월의 무게가 지붕 위의 잡초로 자라고
있었다.
"저깁니다."
귀검사에게서 뒤쳐져 있던 천외옥룡이 몸을 쭈욱 끌어내 앞장서서 관
제묘 안으로 날아들었다.
휘휘휙!
남은 네 사람이 급히 뒤쫓아 들어갔다.
천외옥룡이 옷자락 스치는 소리를 내며 날아드는 순간, 관제묘 안에
서 뛰쳐나오는 거지 하나가 있었다.
두 다리가 없는 백발의 거지노인으로 머리는 봉두난발이고, 걸치고
있는 옷은 구멍이 숭숭 난 흑의였다.
"아니? 벌, 벌써 오십니까?"
백발거지가 천외옥룡을 알아보고 포권지례를 취했다.
"개방( 幇)의 유일한 구결제자(九結弟子)이신 천풍신개(天風神 )
어르신네의 전갈을 받고 어찌 주저할 수 있겠습니까?"
천외옥룡과 인사를 나누는 백발거지는 개방의 장로(長老)이자 임시
방주인 천풍신개였다.
그는 강남(江南) 지방의 거지 두목이었고, 천하의 거지 중 절반가량
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비, 비합전서를 보냈으나…… 당도하시려면 빨라야 모레이려니 했소
이다."
천풍신개는 천외옥룡이 상상외로 급히 왔다는 데 놀라워했다.
"신개! 전갈을 따라왔소이다!"
천외옥룡은 곧 엄숙한 표정이 되었다.
천풍신개는 그에게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천외옥룡보다 약간 늦게 관
제묘 마당으로 떨어져 내린 이남이녀를 보고 흠칫 놀라워했다.
'모두 미끈한 젊은이들이군.'
천풍신개는 그 중 아주 수려하게 생긴 흑삼청년의 모습에 감탄했다.
가히 인중룡이라 할 수 있는 청년이 천외옥룡 뒤쪽에 서 있었다.
이제껏 천하제일 미남으로 알려졌던 제소옥이 흑삼청년 앞에 있음으
로 인해 범부 정도로 격하되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것 같지 않은 미청년의 입가에는 담담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제소옥은 천풍신개가 자신의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살피자 웃으며
하나하나 소개해 주었다.
"이분이 바로 옥면살성자이십니다."
순간.
"으으으…… 이, 이분이 바로 현재 협맹의 태상맹주이신 옥면살성자
냉 대협이란 말씀이시오?"
천풍신개가 아연실색해하며 급히 장읍을 취했다.
"죄송합니다. 이 늙은 화자가 눈이 멀어 태상맹주를 뵙고도 알지 못
했습니다."
"하하하……, 천풍신개께서 의로운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냉운이 마주 장읍을 취하며 소매를 슬쩍 흔들자 부드러운 힘이 일어
나 천풍신개의 몸을 가볍게 떠 받들었다.
'상승무공이다. 과연 명불허전이군.'
천풍신개는 문약하고 수려해 보이는 미청년이 신비마궁주의 팔을 자
른 장본인이라는 데 놀라고 또 놀랬다.
"노, 노화자(老化子)의 비합전서구가 협맹의 태상맹주를 부를 줄은
상상하지 못했소이다."
천풍신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냉운 일행을 관제묘 안으로 안내
했다.
쉬지 않고 수백 리를 달린 오인의 젊은 고수는 천풍신개를 따라 허
름한 관제묘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었다.
안은 매우 누추했다. 곰팡내 같은 퀴퀴한 냄새가 떠돌았고, 쥐가 찍
찍거리는 소리가 위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하나, 코를 찡그리며 혐오의 빛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었다.
일행은 촛불 하나를 두고 빙 둘러앉게 되었다.
천풍신개는 호로병을 하나 찾아와 마개를 따 우선 냉운에게 안의 내
용물을 섭취하기를 권했다.
아주 독한 술이 들어 있는 호로병이었다.
늙은 거지의 소박한 대접이 중인을 감동시킬 만했다.
일행은 술을 나누어 마시며 천풍신개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노화자가 냉가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알게 된 것은 두 시진
전이었소. 그리고 비합전서구에 적은 일을 목격한 것은 그 이전이었
소. 노화자는 냉가장의 일에 대해 알고 나서야 점심때 봤던 사람이
신비마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오. 그래서 급히 비합선서구를
날린 것이오."
천풍신개의 창노한 음성이 옛 이야기하는 할아버지의 음성같이 구수
하게 들렸다.
"신개를 믿고 왔습니다."
천외옥룡의 낭랑한 목소리가 관제묘 안에 쟁쟁 울렸다.
"노화자가 협도를 위해 한 일이 없어 부끄러웠거늘, 이번 일로 인해
공을 세우게 되었으니 실로 개방 모든 거지들의 영광이오."
천풍신개가 창노히 말을 이었다.
"오늘 낮, 노화자는 술을 받기 위해 마을 안 주점에 갔었소. 가서 술
을 호로에 담고 있는데, 주점 안으로 홍의인 하나가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겠소. 처음 보는 얼굴이고 외팔이었소. 몸이 피로 물들어 아주
흉악해 보였는데, 살기가 짙어 범접할 수 없는 자였소."
"신비마제군."
"범중안이 여기 왔었군."
일행이 귀를 기울이며 천풍신개의 말을 기다렸다.
"노화자는 그 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저 거만한 자구나 여기며 호기
심으로 그의 동태를 살피게 되었소. 그 자는 주점으로 들이닥치며 독
한 술을 주문해 냉수 들이키듯 하며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소."
"……."
"아주 화가 난 모습인지라 한 번 보면 평생을 잊지 못할 정도로 인상
적인 모습이었소. 그 자가 술을 다섯 동이 비웠을 때 나는 듯 빨리
주점 안으로 들어오는 일단의 홍의인들이 있었소. 그 우두머리는 뜻
밖에도 한 팔이 없는 앳된 소녀였소."
"외팔이 소녀? 옥, 옥향(玉香)이 아닐까요?"
일타운이 냉운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하는 말이었다.
옥향은 백화궁주 냉혈미인의 전인이 되는 여인이었다.
일타운에게는 사질이 되고, 지금은 신비마궁의 사자로 화신해 있었다.
범중안은 냉가장에서 도망친 후 쉬지 않고 달려 주가점에 이르렀음에
틀림없었다.
천풍신개 말에 의하면 홍의여인이 나타나 외팔이 홍의인과 한참 밀담
을 주고받고 북쪽으로 떠났다는 것이었다.
바로 중인이 바라던 말이었다.
그들은 신비마제를 잡기 위해 냉가장을 나선 협맹의 우두머리들이 아
닌가!
신비마제가 옥향과 함께 북쪽으로 갔다는 말은 가뭄 속의 단비와 같
이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천풍신개는 처음 외팔이 홍의고수가 누구인지 간과했으나 주가점으로
날아든 개방의 급보에서 냉가장의 혈겁에 대해 알고 스쳐 지나간 홍
의고수가 바로 신비마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급히 냉가장에 비합전서구를 날려보내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
"북쪽이라면……."
강호 정세에 누구보다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천외옥룡이 잠깐
눈을 감고 궁리했다.
"오대산(五臺山) 수라천궁(修羅天宮)이나 하북(河北) 잔혼사(殘魂寺)
, 아니면 낭산(狼山) 백화궁(百花宮), 세 군데 중 하나겠군."
타당한 추측이었다.
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법이고, 사람은 벗을 떠나서는 적적해
견디지 못하는 이치가 아닌가!
냉운에게 호되게 당한 범중안은 필경 재정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삼대거파를 다시 일으켜 협맹에 복수하려 한다는 추측에 고개를 저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흠!"
냉운은 의심나는 것이 있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묵상에 들어갔다.
모두 그의 동태를 살피며 말을 끊고 있었다.
'삼대거파로 가려했다면 소주에서 굳이 이곳으로 오지는 않았으리라!'
냉운은 이렇게 생각하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감추기 위해 일부러 북쪽을 택했을 수도 있지
.'
하나, 그것은 타당한 생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럴 듯한 생각이었다.
신비마제는 부하들을 만나기 위해 여기 왔음에 틀림없었다.
부하들을 여기 대령시켜 둔 이유가 무엇일까?
'그놈은 자신이 패하리라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패한 후 도
망칠 곳을 찾기 위해 부하들을 대령시키지는 않았으리라.'
냉운은 신비마제가 강남의 심장부로 온 데 이유가 있다는 것을 확신
했다.
왜 이곳으로 왔을까?
바다 속에서 바늘을 찾는 듯 공허한 추측일 수도 있었다.
"교활한 놈! 대체 어디에 숨었지?"
귀검사가 정적이 싫은 듯 투덜거렸다.
그는 귀환검을 꺼내 표면을 문지르며 살기 있게 외쳤다.
"놈을 찾아 빚을 갚고야 말리라!"
그가 중얼거리는 찰나 냉운이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무릎을 탁, 쳤
다.
"그렇군. 놈이 갈 곳은 단 한 군데뿐이다."
냉운은 득의해하며 귀검사를 바라봤다.
"자네는 역시 충신이네!"
"예?"
"하하……, 곤란할 때마다 도움을 주니……."
"장, 장주! 속하가 어떤 도움을 드렸기에……?"
"그것은 나중에 말하겠네. 하여간 나는 놈이 어디로 갔는가 확실히
알았네. 다 자네 덕이네."
냉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이 귀검환을 슬쩍 살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귀검환이 나온 장소, 바로 그곳이다.'
냉운은 귀검사의 말에 단서를 잡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귀검사가 꺼내든 귀검환에서 한 가지 영감을 얻게 되었던 것이
다.
"호승심이 강한 자가 갈 곳은 단 한 군데뿐이오."
냉운은 중인을 향해 말하며 천풍신개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신개, 한 가지 물을 것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오, 맹주!"
"신비마제로 여겨지는 홍의고수를 찾아 이곳으로 온 일단의 홍의인이
많은 짐을 갖고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 아니? 그것을 어찌 아시오?"
천풍신개가 매우 놀라워했다.
냉운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들은 많은 짐 꾸러미를 들고 있었소. 그리고 그들은 홍의인이
다쳐 있다는 데 경악했었소. 어떤 자는 들고 있던 짐을 떨어뜨리기
조차 했었소. 그때 주루의 나무 바닥에 흠이 생긴 것으로 보아 짐 속
에 무거운 것이 있음에 틀림없는 일이오."
"그렇군. 짐작대로군."
냉운이 자신 있는 표정이 되자 모두 의아해 마지않았다.
냉운과 가장 친하다 할 수 있는 귀검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속하가 알 수 없을까요?"
"걱정 말게. 여기까지 온 이상 자네를 두고 떠나지는 않을 것이니."
"헤헤헤……."
귀검사는 그제서야 안심하는 표정이 되었다.
냉운은 호로병을 주워 들어 바닥을 적시고 있는 술을 깨끗이 비우며
소매로 입술을 닦아냈다.
중인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신비마제 범중안은…… 창오산(蒼梧山)으로 갔소!"
"예? 창오산이라고요?"
"그, 그곳에는 무림의 문파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비마제가 그 안에 소굴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모두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신비마제는 냉가장 안에서 협맹을 멸망시키리라 확신했을 것이오.
그리고 나서 가장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 했음에 틀림없소."
냉운이 또박또박 말했다.
독한 술을 많이 마셨으나 취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호로병 안에 들어 있던 술 정도라면 백 일 내내 마신다 해도 취하지
않을 내공의 소유자가 옥면살성자 냉운이었다.
여인이 탐을 낼 정도로 탐스러운 그의 입술이 가볍게 벌어졌다.
"그 자는 무림기인전(武林奇人殿)을 찾아갔음에 틀림없소!"
"기, 기인전!"
모두 경악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림기인전은 삼백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금지로 되어 있는 불회
지처(不廻之處)였다.
천하삼기도 들어가지 못한 절대금지(絶對禁地)였고, 한 번 발을 들이
면 살아 나올 수 없는 장소였다.
"그 자는 사대마경을 모두 익히자 천하에 겁나는 것이 없어져 무림기
인전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야욕에 불탔을 것이오. 그래서 협맹을 제
압해 천하제일인이 된 후 무림기인전의 비밀을 풀려 했을 게요. 하나
, 냉가장에서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절박해질 대로 절박해져 몸소
시험대에 들려 함에 거의 확실하오."
"그, 그럴 수가……?"
"그 자가 무림기인전 안으로 들어간다면 복수할 꿈이 사라지게 됩니
다. 놈이 그 안에서 백골이 된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모두 무림기인전에 들어가면 죽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무공이 무림기인전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것을 아
직 알지 못하기에 무림기인전을 하늘 밖의 장소로 여기는 것이다.
'확실하다. 놈은 무림기인전 안으로 갔다! 그놈은 나를 꺾기 위해서
라도 그 안으로 들어갈 독종(毒種)이다. 원래대로라면 부하를 시켰을
테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니, 자신이 직접 들어갈 마음을
먹게 되었으리라.'
냉운의 눈에서 신광이 흘러나왔다.
"하하……!"
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놈이 무덤으로는 아주 적당한 장소를 택했군. 사대마경의 원주인을
제압하자 불사검제의 영역 안에서 죽게 되었으니……."
냉운은 자신의 추측이 확실하다는 데 의심할 수 없는 듯했다.
하나, 다른 사람들은 일말의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기인전은 곧 죽음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신비마제가 죽고 싶어하는 자가 아닐 텐데, 그 안으로 들어가 굳이
죽음을 자초하겠다는 건가?
범인이 상상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했다.
냉운 정도의 심지를 가진 사람만이 추측해 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사람은 희귀했다.
당금 천하에 있다면 한 사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신비마제 범중안!
그 자야말로 냉운 정도의 지혜와 심지를 가진 자였다.
그것은 냉운도 인정하는 바였다.
"이곳에서 창오산까지는 멀지 않았다. 우리가 당도하기 네 시간 전
여기를 떠났다면 지금쯤 귀금곡(鬼昑谷) 안으로 들어갔겠군."
냉운은 조급해져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함께 창오산으로 갑시다."
냉운은 대답을 듣지 않고 훌쩍 밖으로 빠져나갔다.
모두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첫댓글 rr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