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구멍이 없는 소
경허선사는 동학사 강원을 철폐하고, ‘영운 지근’선사의 ‘나귀의 일이 다 끝나지도 않아서 말의 일이 왔구나.’라는 화두를 움켜잡고 용맹정진 했다. 3개월이 지났을 때, ‘학명 도일’스님이 아랫마을에 내려갔다가 사미승의 아버지인 이 거사를 만나 잠시 다담(茶談)을 나누었다.
“스님이 중노릇 잘못하면 스님이 마침내 소가 됩니다.”
“스님이 되어 마음을 밝게 하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됩니다.”
“어찌 사문의 대답이 이렇게 꽉 막혀 도리에 맞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 그러하니, 어떻게 대답하여야 옳습니까.”
“어찌 ‘소가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습니까?”
학명 도일스님은 더 이상 대답을 못하고 동학사로 돌아와서는 경허선사를 찾아가서 이 거사의 말을 전했다. 선사는 ‘소가 되어도 콧구멍이 없는 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참구하다 활연대오(豁然大悟)하고, ‘태평가’라는 노래를 하였다. 나이 31세였다. “문득 ‘콧구멍이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온 우주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은 연암산에 있다. 콧구멍이 없으면 고삐를 채울 수 없으니, 끌려 다닐 일 또한 없다. 영원한 자유를 얻었음을 말한다.
『임제록』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법다운 견해와 참다운 지혜를 터득하려면 남에게 끌려 다니면서 속임(迷惑)을 당하지 말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마주치는 대로 곧바로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속을 만나면 친속을 죽여라. 그래야 비로소 그와 같은 모든 것으로부터 다 벗어나서 다른 경계에 구애되지 않고, 철저하게 벗어나서 자유자재하게 된다.”
‘죽이라’는 말은 온갖 경계가 오거든, ‘경계에 끌려가거나 흔들리지 말라’는 뜻이다. 나를 욕하고 때리고 모함하고 손해를 입히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을 흔드는 부처님이나 부모님 등 ‘내 마음에 드는 대상에게도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이미 나로서 완전한 존재이므로 달리 부처님이나 부모님 등에 끌려가거나 흔들릴 이유가 없다. 그 어떤 권위나 관념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부처님보다 못할 이유가 없음을 알아야 하고, 역(逆)경계나 순(順)경계를 가리지 말고 모든 경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좋고 싫음은 본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그동안 형성되어온 업에 의해 일어난다. 형성된 업보다 내 의지가 강하면 얼마든지 업을 바꿀 수 있지만, 내 의지가 약하면 업을 바꿀 수 없게 된다.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어디에도 없다(no where)’는 부정적인 생각을,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now here)’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세상에는 어려운 일도 많지만,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