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는 피카소에 의해서도 보들레르나 빅토르 위고에 의해서도 심지어는 본인 스스로에게도 존경받지 못했다.
우리는 성지 순례지의 로마 시대 성모상들을 우상처럼 숭배하지만 19세기 사람들은 이것을 숭배하지 않았다.
이 성모상들을 조각한 사람들 역시 이것을 숭배하지는 않았으나 그 앞에서 기도를 했다.
소포클레스는 분명 우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안티고네를 숭배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 문명처럼 자신의 숭배 이유를 모르는 문명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발굴된 수많은 걸작들, 바로크식 원형에서 나온 수많은 중세식 부조들을 보았다.
호머의 일리아스와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 이 두 서사시를 동등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문학이 송두리째 침몰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 비극이 그 합창대와 함께 일제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뛰어난 품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고전주의가 모방했던 이 그리스 비극의 왕자들은 그저 연극의 주인공들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연극 속에서 구현한 것은 자기들의 감정이 아니라 도시국가였기 때문이다.
볼테르가 오이디푸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자기 종족 과 기질에 취한 샤먼의 천재적인 작품으로, 가면을 쓴 배우들이 공연한)은 검은 성모상들을 예술 작품으로 보게 된 시대에 와서야 겨우 변신으로 지워져버렸다.
20세기 초부터 상상 박물관은 수천 년 된 조각들, 그중에서도 특히 중세 기독교의 조각을 부활시켰다.
우리는 어떤 시인, 어떤 프랑스 작가(라틴어 작가라도)를 부활시켰나?
문학에 관한 한 어째서 전문가용 역사가 원시 예술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대체해버렸을까?
그와는 달리 고대인들의 부활은 너무도 충실하게 고대 예술의 부활과 함께 이루어지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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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 이라는 말은 이것을 아주 잘못 표현하고 있다.
특히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와 19세기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미신으로 인해 타락하고 암흑으로 인해 탁해져버린 기독교는 신교 국가에서 복원되었고, 종교 회의 후에 가톨릭 국가에서 지속되었다.
경제 발전, 발명과 발견, 의식의 개혁 등이 종종 개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속은 단지 하나의 경계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가설로 내세운 것에 불과하다. 루터는 교회와 대결한 것이 아니라 로마의 바티칸과 대결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루터적 개념을 성 루이의 개념과 대립시켜볼 때, 교회가 단 한 번도 면죄부를 판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독교인의 본질이 위협받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진실의 상상계'는 곧 성 루이 신앙의 한 형태로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실'의 이미지는 성 루이에게는 진실 그 자체였고 루터에게는 상상계였다.
그리고 프랑스 국왕에게 있어서 기독교적 상상계는 공인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성 루이는 로마 교황청의 '상상(루터는 그것이 허위라고 분노했지만)계’를 진실로 취급하지 않았다.
라파엘로의 견해로도 이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모든 미의 상상계는 허구의 상에 대한 끊임없는 환영(꿈)은 오직 성스러운 언어 앞에서만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루터는 작가로서의 천재성을 《성경〉을 해석하는 데 적용함으로써 운명의 논리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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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회화의 영광에 접근하게 되는 것은 서정시도 책도 아닌 바로 연극이다.
모든 것이 거짓인 시대에 오직 성당에서만큼은 모든 것이 진실이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사람들은 16세기 중 반 무렵 성당 앞 광장 위에 신비화를 그리는 것을 금지시켰다.
신비는 연극만의 독특한 양식은 아니었지만, 픽션과는 확실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특유성, 영혼, 장식으로 인해 성스러운 장소에서, 신부는 미사를 통해 무한히 재경험되고 또 모든 인생에 스며들어 있는 가장 고귀한 '희생'을 경하한다.
이것은 한 해의 여러 축일들 중 절정에 해당한다.
상상에 충실한 그 장소에서 배우들은 비극이나 희극을 공연한다.
이 극들은 대체되었거나, 아니면 꿈이나 수면과 마찬가지로 삶과는 분리된 것이며, 또 관중에 의해 평가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동일한 기독교성을 탈피하게 된 유럽은 예수의 강생과 모든 것이 진실이었던 의식으로부터, 연극이라고 하는 구현된 허구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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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학 작품들, 고대 조각품들은 언제 모델로서 위상을 과시 하였는가?
혹은 이 예술품들이 언제 메디치 가가 집권한 피렌체나 교황이 군림하는 로마의 추앙에 부응하게 되었는가?
16세기까지는 고대인들의 우월성에 대해 전혀 반론이 제기된 바 없다.
그러나 고귀한 가치가 되는 것은 '체계화된' 미의 행동이다.
형상들, 사고들의 재흥은 흔히 선호나 자유로운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미켈란젤로가 프랑수아 드 올랑드에게 "당신 나라에선 오직 눈속임만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소!"라고 말한 것은, 그가 예술의 여러 가지 기능들 중 한 가지만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다.
위대한 예술과 미의 상관관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를 옹호하는 이론들 때문이 아니라, 서양이 전세계의 예술을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그 위대함을 인식하게 되는 '예술의 발견'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탈리아가 찬양하는 이 미란 한편으로 곧 불멸성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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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의 상상계는, 오직 문학이 회화와 동등하게 된 후 비로소 종교적 상상계의 존엄성에 이르게 된다.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의 계승자들은 화가가 아니라 셰익스피어. 몬테베르디, 코르네유 같은 작가들이다.
아프로디테가 성모와 겨루게 되고, 영웅이 성인과 겨루게 된 것은 바로 플루타르코스가 인권의 위대함을 드러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대군주제 시대의 극장이 생겨난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해졌다.
극장의 탄생은 성당 탄생의 모작에 가까운, 그리고 그와 겨룰 만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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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가 경합하고 있는 대상은 효적부가 아니라 일리아스이다.
그의 혁명은 바로 그 혁명이 미래의 드카즈 공작의 야심에서 아킬레스의 분노를 구현하는 데 도달하면서 성공하게 된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상상의 드카즈 공작을 더 잘 그려내고 있어서가 아니다.
보트랭이 비도크 형사가 아닌 것 처럼 드카즈 공작 역시 실존의 어느 장관이 아니다.
나폴레옹에 대한 그의 집착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이유는 등장 인물들이 그 어떤 열정보다 강한 바로 야망이라고 하는 열정에 의해 정돈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차 개인주의의 세기가 될 것을 야망의 세계로 느낀다는 것은, 지칠 때까지 다나이데스의 계획을 따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그 세계에 자신의 영혼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스탕달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 이르기까지, 내놓고 혹은 비밀리에 개인주의를 키워가는 인물은 바로 보나파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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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소설이라고 해도, 톨스토이는 성서에 의존하지 않고 파리나 런던의 강한 남자들을 평가하고 잣대질한다.
라스콜리니코프를 보고 나면, 쥘리앵 소렐과 라스티냑을 절대 같은 눈으로 볼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서양 소설에 공통된 신앙의 계율 준수(신앙 생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진실에 의해 현실과 상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리스도의 진실, 또한 종교적 정신의 세기말적 불안, 거리감, 구약이 셰익스피어에게 전해주고 또 셰익스피어가 다시 파우스트에게 전해준 삶 앞에서의 도피적 경악이(프랑스 문학에서는 매우 드문) 그것이다.
유럽은 <악령>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상당 부분을 삭제 했고, 톨스토이의 글을 절대 출간하지 않았다.
그의 글들은 선고 받은 전 인생, 즉 인간의 삶을 고유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유럽은 안나 카레리나를 통해 유감스럽게도 어렴풋한 부르제의 인물을 오랫동안 보게 될 것인가?
유럽은 계속해서 톨스토이에 의해 형성된 사랑에 대한 생각, 문학의 가장 비극적인 것 중 하나인 이 생각이 속된 간통에 대한 고찰에서 생겨났다고 믿을 것인가?
그리스정교의 정신적 지도자 조짐.
세르주 신부 가 투르 시의 신부들이라는 사실을?
삶이란 곧 우리가 보고, 상상하는 그것이라는 사실을?
언젠가는 러시아의 대소설이 바로 죽음을 통해 바라본 유럽 소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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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가 <부바르와 페퀴셰> 초안에 의해 지시된 에피소드들을 아무렇게나 문단으로 전개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 제작자 또한 '아무' 영상들의 연속에 의해 시나리오의 장면들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안나 카레리나>의 두 종류 각색에서, 감독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결박된 관현악 작곡자이다.
죽음으로 끝나는 거장의 작품을 완성하려 할 때마다 공허 혹은 모작을 발견했다.
예술에서 매우 흔한 모작이 문학에서는 드물다는 사실은 교훈적이다.
반면에 아이러니컬한 모작은 결코 박물관에 전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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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한 그리고 가장 최근의 환상주의(llusionnisme)는 언제나 진실되어 보인다.
우리는 유성 영화를 통해 영화의 무언을 자각했고 소설이 이야기의 서술보다는 오히려 서로 연결되는 복잡한 방법임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은 우리의 행동과 감정의 반영, 그리고 사실이 연결되는 방식이다.
박물관의 작품들처럼 말이다.
모든 서술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보다 서술 이전의 것과 더 가깝다.
그리고 분산된 작품들이 박물관이나 총서에 모이게 되는 것은 사실과의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품들 간의 관계에 의해서 가능하다.
재능과 마찬가지로 사실성 역시 유형이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 부여하는 관계들의 체제를 총괄적으로 사실이라고 부른다.
창작이 타인들 위에 세워짐에도 불구하고, 조형 예술과 언어 예술에서의 창작은 이 관계들의 충실한 혹은 이상화된 전사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요소들 간의 다른 관계들 또 한편으로는 그 관계의 총체이다.
이 총체는 세상도 사실도 아닌 예술의 세계이며, 시간이 아닌 시간, 공간이 아닌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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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 창작은 소설이 그 이야기와 분리되는 바로 그 틈새에서 탄생한다.
하지만 소설의 이야기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작가와 글쓰기를 통한 작가의 상상 간의 대화이다.
수정한 흔적과 첨가는 그 해석도, 구어적 서술도, 기억도 제한할 수 없는 자유이다.
오직 작가와 인물들 사이를 오가는 배, 인물들이 늘어나는 여지는 소설가가 그 대화 상대자나 관중이 아닌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과 불가분의 것이다.
어떻게 고대인 들은 소설을 알게 되었을까?
고대적 음성이 오이디푸스를 울부짖게 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고대적 침묵마저도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외면할 수 없었다.
소설을 창조하는 데 고대에 없었던 것은 기계도 신문도 아니다.
그리고 상상은 분명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총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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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소설 작가는 가장 설득력 있는 난폭성으로 가장 유혹적인 수수께끼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스탕달이 〈파름므의 수도원〉을 집필하면서 실제로 원한 바는 무엇일까?
전형적인 예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필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살해, 사랑 등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소련에서는 이 작품을 "꽤 괘찮은 탐정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관례이다
(물론 우리 프랑스인들은 이국주의로 말미암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하지만 이것은 전혀 탐정 소설이 아니다.
사랑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연애 소설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범죄의 정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범죄의 정체란 사랑과 마찬가지로 무언가, 즉 그 어떤 스토리도 해결되지 않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진정한 주제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주인공은 이반이 아닌 바로 '악'이다.
그리고 악은 소설의 재미 한 가운데에 머물러 있다.
무죄 혹은 유죄, 선고받거나 혹은 사면된 미티아다.
왜냐하면 진정한 소설에는 오직 단 하나의 진정한 주제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주제는 부지불식간에 가장 깊이 작가의 관심을 끈다.
프루스트 작품의 진정한 주제가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애호가 유파는 실수하지 않는다.
문학의 질서는 그 믿음과 규칙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도원 안에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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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을 무고하게 재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은 임의적인 합의에 의해 그 모델을 재현한다.
왜냐하면 영상은 인간이 세상 속으로 침잠하는 것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화면의 시간과 간, 이 보편적인 규약은 우주와 무언의 대화를 재흥한다.
이 대화는 스타와의 사이에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스타와는 아주 가까우면서도 접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 힘도 없는 대중은 허구적인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이 스타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있어 '진실의 상상계'란 무엇인가?
기도나 교회가 삶의 한 부분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 '진실의 상상계’ 역시 삶의 한 부분이며, 아무리 총서를 동반하는 꿈이라 하더라도 이외는 매우 다르다.
이제 TV는 인간에게 상상계를 강요한다.
시계가 발명되기 이전에 종소리로 시간을 가늠하던 시절에는 시간을 들었고, 축제 행사에서 삼종기도 기념제를 통해 현재를 과거와 연결시키는 것을 들었다.
이제 하루는 아침, 저녁 뉴스에 리듬이 맞추어져 있으며, 현재는 내일을 살피기 위해 감금되어 있다.
그리고 영원성과 대립되는 기념들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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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를 운명, 즉 의존감과 불가분의 것으로 느낀다.
무신론자는 신자 혹은 불가지론자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자각을 경험한다.
세상은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로인해 세상에 가져오게 된 흠이지만), 인간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의존성에 있다.
이것이 부조리한 것일까.
인간은 죽게 되어 있으므로 기도가 결코 신도들을 불멸로 이끌어주지는 못하지만, 이들을 죽음이 군림하지 않는 세상에 이르도록 해준다.
마찬가지로 문학은 그 애호가들을 불멸하도록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아울러 문학은 너무도 강력한 힘으로 문제들을 제기한다.
만일 개가 이런 문제들을 제기 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개를 동물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이 영성체는 종파로 하여금 맥배스나 신곡 앞에서 시인을 마음껏 찬미하도록 해준다.
우리는 인간이 신과 함께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닐까 혼동하게 된다.
물론 인간이 신 없이 단독으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해서 부담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물리칠 수 없는 '동시에 진행하는 창작’, '조물주로서의 예술'에 대해 자각하기 때 문이다.
마치 소설에서 '운명의 지배가 운명의 경험에 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생존은 인간의 의존성에 부응한다.
물론 모든 총서들은 먼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수세기에 걸쳐 세상은 그 세상이 불러일으키는 찬미와 세상이 소유하고 있는 생존과, 물 체들의 존재도 피조물들의 존재도 아닌. 그리고 종교 문학에서의 존성 자체를 위해 뚜렷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이는 애매모호한 존재에 의해 그 의존성이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교부들이나, 성 아우구스티누스, 파스칼이 오직 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때, 사실 이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야기하도록 한다.
문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자.
문학은 꿈을 꾸게 한다.
그러면서도 문학은 과거를 따라 여행하는 거울, 나아가 하나의 힘을 암시한다.
그 힘을 통해 인간은 신, 영웅, 성인들을 거쳐 스스로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즉, 그 힘을 통해 자신의 종속으로부터 빠져나와 미지의 목표에 이르는 셈이다.
역사라는 궁지에 몰리면서 동시에 모든 상상계와의 대화를 수정해야 하는 문명은, 그것이 변형시킨 예술과의 관계(이 관계는 19세기가 확립시킨 것인데)를 유지해 나갈 것인가?
이 문명은, 처음으로, 그것이 인간에게서 기대하는 바를 모르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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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예술은 르네상스 시대에 존재와 미가 연결되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미는 합법적이고 독점적인 가치이다.
변형을 자각한 대군주제 시대는 상상하기 어렵다.
상상 박물관은 문학에 대한 우리의 개념, 그리고 소설에 대한 개념과 마찬가지로 오직 불확실성 위에서만 구상될 수 있다.
다른 몇 몇 영역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역에서 예술은 때때로 중개 역할을 한다.
세잔의 그림들은 지하철의 등장을 예고하기보다는 마천루를 예고한다.
<인간 희극>은 발자크가 그리고 있는 왕정복고 시대보다는 그가 보지 못한 제2제정 시대와 더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 박물관, 우리의 문학은 르네상스가 기독교의 침식에 연결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낭만주의가 인간 개인으로의 변이와 연결되었던 것처럼, 불확실성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무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세상의 과거를 정복하지 못했다.
어떤 종교가 자기 예술이 아닌 다른 종교 예술을 찬양하겠는가?
예술들이 서로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은 공허, 소외, 기다림 안에서이다.
그렇지 않다면 과연 수메르 현무암 왕자조각들이 피카소와 공존할 수 있었겠는가?
로트레아몽 또한 비용과 공존할 수 있었겠는가?
어떤 박물관, 어떤 대총서들이 변형의 성당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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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기독교적 죽음에 부응하는 최고의 신화는 플라톤이 전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우주, 초인간적 질세에 일치시킨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신의 질문을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제기했다는 사실(이 질문은 그리스도에게만 던져졌다)은 유감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볼테르의 대답이 지닌 이성적 한계(마르크스주의자는 부르주아적 한계라고 말할 것이다)를 무시하고 있다.
제자 크리톤(Criton)이 에스퀴라페(Esculape)에게 약속한 수탉을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신들이 거기에 있다.
하지만 '신들 이라는 표현이 소크라테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고 싶다.
그는 '유한한 생명들'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생각 속에서 ‘영원한 생명들'은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
아이스킬로스가 죽었을 때 그는 14살이었다. 우리는 어려움 없이, 에우메니데스를, 죽음을 안겨줄 델로스(Delos) 함선을 수백 년 동안 바라보던 현인의 평온한 시선과 일치시키지 않는가?
'경이'라는 단어에 위상을 부여해줄 만한 프랑스어 단어는 없다.
그렇지만 그 위상은 소크라테스의 태도가 무한한 의미를 갖는 데 필요하다.
그의 말의 메아리는 신의 메아리가 아니다.
그리고 올림푸스신들을 믿지 않는 우리들은, 신을 믿지 않았을 소크라테스를 듣는다.
플라톤이든 전기든 역사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고귀한 불의와 죽음과 직면해서(고통이 아니라) 소크라테스는 오직 단 한 번밖에는 사라지지 않는 세상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때 그의 운명, 그의 임박한 죽음, 아테네, 세상은 과연 어떻게 보였을까?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존재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경이라는 단어는 위상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불확실성의 인간에 의해 죽음 위에 던져진 시선은 바로 신이 없는 소크라테스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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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앞에서는 세상도 인간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 정의 자체가 의미의 불가능성(사상에 의해서나, 종교에 의해서나 마찬가지로)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신자들보다 무신론자들이 불확실성을 더 많이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어휘에 속기 쉽다.
어휘는 의미와 부조리 사이의 선택권을 우리에게 양도한다.
개인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독촉은 청동징의 깊이를 그 문화로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문명들은 이제 우리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유명한 불치성은 발레리 가 아니라 슈펭글러(Spengler)에게서 나온 것으로, 변형을 모르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다른 번데기들은 이제 우리가 임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최후의 심판의 신화 혹은 〈대혁명〉의 신화 모두에 낯선 의식이다.
하지만 인간과 죽음의 관계는 문명들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특성이 아니다.
우리 문명은 우리 눈 밑에서 변형된다.
불확실성과 연결되어 있건 아니건 간에, 우리 이전 문명들을 광활한 형이상학적 시대, 죽음의 기원의 문명으로 만들게 될 하나의 문명은, 그 깊이로 볼 때 진실의 상상계를 허구의 상상계로 대체한 문명과 비교될 만한 변형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문명은 변형이 우리 시대에 불어넣는 서사적 덧없음에 의해서 은밀히 존재한다.
또 다른 정신적 변형 역시 생각해볼 수 있다.
그 변형은 아주 미세해야 하나 한편으로는 우리 문명이 응집성 있는 인류의 모험에, 또는 니체나 슈펭글러적인 혹은 미지의 영원한 회귀에 꼼짝없이 갇히지 않을 만큼은 충분해야 한다.
불확실성은 부조리가 아니라, 영혼의 불가지론를 강요한다.
비극은 불확실성의 최종 재판이 아니다.
그리고 불확실성은 분명 그 자체말고는 다른 비극이 없다.
불확실성에 있어서 인간은 오직 의문의 대상이다.
세계가 과학에게 있어서 의문의 대상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기독교가 기독교인을 낳은 그러한 가혹함으로,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문명은 덧없는 인간을 낳게 되리라.
우리는 인간에게서, 그 특성상,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동물을 보아야만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주요한 정신적 사건들이 모든 예측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