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봄의 그 활기가 나하고는 영 관계가 없이 흘러가는 일 같고 사람들이 들떠 하는 모습이 괜실히 그런 무리에 끼지도 못할 나의 마음까지도 흔들어 놓는 통에 봄이 후딱 지나가길 바라곤 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봄이 매년 조금씩 마음에 다가오니 별일이다.
그것은 아마 봄이 가진 그 화려함이 결국은 금방 사그라질 운명을 안고 발하는 단발마적인 아름다움이기에 그 유한함에 특별하게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꽃들은 그 활짝 핀 마음들을 나 보란 듯이 자랑하며 뽐내지만 그것은 일순간의 허세일 뿐 따지고 보면 그 아름다움이란 시장터 아낙이 입고 있는 ‘몸빼’ 바지에 박힌 꽃무늬 이상이 아닐 런지도 모른다.
특히나 난 냄새에 둔하다 보니 꽃의 생동감이란 애당초 나와는 별개이니 더욱 그러리라.
그래도 올 봄에는 그 꽃들의 흐트러짐 한 가운데에 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되물어 보고 싶었다.
설령 그것이 다 지나갔다손 치더라도 남은 찌꺼기라도 잘 간수하여 남은 나의 생을 갈무리하려면 그것이 무엇인지 꽃들한테 물어 보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화려함과는 어질 적부터 거리가 있게 자라온 인생이기에 그걸 거푸 물어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화려함의 반대로 살아 왔냐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럭저럭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특별히 비참할 것 까지는 없겠지만 그 밋밋함이 오히려 더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오고 있다.
성경에도 덥지도 차지도 않은 물은 입에서 뱉어 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 여기 까지 온 마당에 다시 되돌려서 일부러 비참함을 연출하여 살기에는 주변의 사람들이 피곤 할 것이니 그 반대인 화려함의 의미를 알고 싶었고 그걸 빗대어 내안에서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올 봄은 유독 꽃타령을 하다 크게 마음먹고 거제도에 갔다.
거제도는 분당에서 먼 곳이다.
거기다 나는 그날 만리포에서 떠나야 할 상황이라 더욱 그랬다.
하지만 천안에서 일행과 합류하여 한참을 가다 운전도 바꿔가며 하고 차도 아직은 새 차고 덜덜거림도 적은 지라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거제도에 들어섰지만 우리는 적극적인 꽃들의 행진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동백꽃이나 밭에 핀 작은 무더기의 유채하고 멀리 살짝 보이는 산수유가 전부였다.
그것은 나야 꽃이 목표였지만 일행의 다른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장애들을 돕기 위한 하이텔 인터넷 불교 동호회의 행사가 먼저 였기에 꽃마차는 뒷전이었다.
나만 꽃을 되 뇌일 뿐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일찍 떠난 보람도 없이 시간들 일없이 까먹고는 얼쩡거리다 비빔밥 얻어먹고 시간이 되니 행사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모아 놓고 공연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 여러 사람 중에 아까부터 눈에 띄는 이가 있었는데 박원장님이시다.
곱게 차려 입은 한복에 길게 땋아져 있던 머리는 틀어 말려져서 비녀로 꽂아지고 걸음 거리는 사뿐한데 복잡한 일에 피곤도 잊은 양 열심이다.
나는 세 번 그녀를 만났다.
처음은 예인들과 여행 중에 거제도에서 만났고
그다음은 저번 주 김석환씨의 작업실 오픈 기념장에서 만났다.
굴 25킬로그램과 해물들을 거제도에서 안중까지 지어 날라온 것도 모자라 내 머리의 두 배도 더 되는 치렁치렁한 머리를 긴 마후라로 감싸고는 손을 걷어 부치고 잔일을 하는데 손님인지 주인집 식구인지 구별이 안 갔다.
부창부수라고 그 남편도 가지고 온 조개를 불에 구우며 그 방법을 설명하며 일일이 시범을 보이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난 내가 그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괜 실히 미안할 정도였다. 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그 집 자녀들을 위시해서 식구들이 가지는 따뜻함이나 가족애나 삶에 열심인 모습들은 내가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만으로도 감동되어 그 뒤로 가끔씩 그 식구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작은 기쁨이었던 바이다.
오늘의 이 행사의 많은 부분을 그 내외가 맡은 모양이다.
전국에서 이백 명 내외의 사람들이 모인 이 큰 행사를 열심히 왔다 갔다 하면서 분주한 그 내외의 모습이 처음부터 눈에 들어 왔는데 거기다가 박 원장님이 사회까지 본다.
곱게 차려 입은 한복만큼 사회가 매끄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의 정성으로 점철된 모습이라서 아름다움은 더 빛났다.
그녀의 말 한마디 마다에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의 시낭송 중에 뒤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눈물짓던 그녀의 숨은 모습을 누군가가 말 할 때는 그녀의 인간애가 뭉탱이로 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녀는 사회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부드러움 속에서 인간이 가지는 심연같은 사랑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러 가지 행사 중에 시조창이란 것이 좋았다.
그 이을락 끊어질락하면서 흐르는 곡조의 맛이 음악적이라기보다 회화적이었다.
나는 그 음들을 그럴 수만 있다면 화면에 풀어 놓고 싶었다.
또 트럼펫.
불기가 힘이 많이 들어서 대부분이 연주자가 젊단다. 하지만 부산에서 본인이 가장 나이가 많이 든 연주자 일거란다. 그러나 그것도 힘으로만 부는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기라도 할양 그 간드러짐이 폐부에 와 닿았다.
색소폰과 트럼펫이 어울러 질 때는 더욱 멋있었다.
거기에 피아노가 들어오니 아름다운 소리가 밤바다를 가로 질러 내 빼다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들소리'의 북소리 등의 타악기가 합하여 지니 멋있는 합주가 되어 밤새 들어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특별히 만나서 맞춰 본 것도 아닐 텐데 그 어울림이 그렇게 멋 날 수가 없었다.
듣는 이들도 추위를 잊은 채 넋을 놓고 듣노라니 연주들은 끝나고 우리의 친구 김석환씨가 퍼포먼스를 한단다.
이 추위에 썰렁함만 더 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무언의 연출과 적당히 섞인 시간의 간극과 요리와 끌림이 보는 이들을 오히려 숨죽이게 하였다.
퍼포먼스를 하는 이들을 마취시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것은 보는 이나 행위자나 한 선상에서 같이 숨쉬는 하나의 만남이었다.
그 만남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
그 긴장감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행위자의 독자적인 휘몰아 감은 예술의 또 다른 정점을 향해가는 나팔 소리 같은 것이었다.
그 뜻이나 내용이나 예술적 가치의 판단은 나중문제고 오로지 한 호흡으로 몰아가는 열정만이 찬 공기 속에서 촛불로 빛났다.
나는 그의 거친 손에 배어 있는 삶의 질곡과 시간과 예술성의 합일이 이루어 낸 그 처절함에 경이를 표하면서 백운지 씨의 라틴 음악과 간지럽게 두들기며 쳐대는 기타소리에 오늘의 공연의 감흥을 아쉽게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들 그런 모양이었다.
그런 아쉬움은 모닥불 주변에 쌓여 가고 방마다에 모여지고 골방에 “짱박혀지며” 밤이 깊어 갔다.
하지만 나는 오늘이나 내일 그저 아무것도 아닌 구경꾼 운전기사.
눈 덮개를 어떻게라도 포개놔야 내일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기에 이리저리 헤매는 중 우리의 박원장님이 방을 찾아 준다.
방은 옛날 집 구들장처럼 따끈하여 목에 땀이 자꾸 끼어 갔지만 잠은 청해야 했다.
나는 비장의 귀 마개를 꺼냈다. 와이프의 이태리 피아노 선생이 이 번 여행 때 나의 부탁으로 가져다 준 것이다.
벌써 어제 써 먹은 기억에 아주 성능이 흡족하였던 참이라 오늘도 나의 기대를 무너트리지 않은 것이란 확신으로 틀어막고는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자는 중에 자꾸 그 귀마개 면이 귀를 간질이는 바람에 자주 깨서는 손가락으로 후벼서 가려움을 쫓아야 하였기에 덤으로 잠도 자꾸 들락달락 했지만 그런 대로 만족한 수면을 취하고 깨서는 또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이빨 닦기와 얼굴 닦기와 아침 행사 치루기를 마치고 설렁탕을 후루룩 거려서 배까지 채워 넣으니 이 ‘아사리’판에서의 나의 한 몸 간수하기는 아주 만점의 경지였다.
내 몸이 어디 나 한 몸의 몸인가?
오늘 차에 싣고 달려야 할 어젯밤 꼬박 새운 이들의 몸이요 또 멀게는 집에 있는 우리 식속들의 몸이니 그리 한 것이 자랑스럽기까지야 안했지만 그래도 창피하단 생각을 덮을 만큼은 자위가 되었다.
이제 나의 주 목적인 ‘꽃 행사’만 챙기면 이번 여행은 대충 건지는 것인데.
아무래도 분위기를 보건데 꽃 건지기가 만만치가 않다.
우선 일행이 그러기엔 잠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고 어디 먼 곳을 들려서 올라가야한다는 통에 불안한 마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기가 어디인가?
꽃들이 한창인 거제도가 아닌가?
-하긴 어제 거제도 관광 안내도를 시내에서 보는데 이 곳이 꽃으로 유명하기 보다는 누구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알고는 일말의 불안함이 그 안내도를 볼 때부터 전혀 상호 연계감이 없는데도 내 마음 속에 싹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꽃 무더기 앞에서 최소한의 사진 하나라고 전리품처럼 찍고 가야 했다.
나오는데 무작정 꽃을 찾아서 거제도를 헤맬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박원장에게 전화를 거니 수선화 단지는 안내자가 없이는 어렵고 동백단지는 학동 까막돌 수영장 쪽으로 가면 동백단지가 있단다.
아무것이나 하나라도 건지면 된다 싶어서 달려가는데 아뿔싸!
가스가 다 닳아 가고 있었다.
언덕을 오를 때는 노란 불도 들어오는 폼이 사뭇 위협적이었다.
가스는 현실이고 꽃은 꿈이었다.
서면 밀지도 못한다는 위협도 있었지만 ‘방구가스’라도 넣고 가면 된다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스님의 말씀에 용기백배하여 달려가다 동백단지를 지나친 것 같아(그럴 만큼 우리의 기대 밖이었다.) 물으니 지나 왔단다.
되돌아서 다시 가니 역시 입구는 아리송하고 단지는 의심쩍고 꽃은 루벤스 그림의 뚱뚱한 인물화 배꼽처럼 적은 크기로 알 박혀 있는 지라 또 다시 애매함에 지나쳐 버리고 가스바늘은 우리들 마음을 옥죄는 통에 할 수없이 물증사진도 포기하고 거제도를 도망치듯 나왔다.
방구가스로 채워 넣을 수 없다는 현실감이 우리를 그리 만들었는지 안타깝게도 그 먼 곳까지 간 나의 꽃 여행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먼 바다의 양식장 표식들의 알알이 박혀 있는 점들이 수련이니 어쩌니 하면서 차의 기름은 넣고(가스 주유소는 그만큼 기가 막힌 곳에 등대처럼 박혀 있었다.) 인간의 기름은 빼고 나서 다리를 건너 육지에 나와서는 한참을 가니 곧 마산이란다.
아니!
우리는 진주로 가야 는데 왠 갑작스런 마산이 튀어나온댜냐?
나도 미련하고 조수자리의 이선생도 주무시고 다른 이들도 어제의 잠을 채우느라 정신없는 통이고 나도 꽃 잔치 놓친 것의 아쉬움에 마음 털털거리느라 표지판을 놓친 모양이다.
거리로는 6-70킬로이고 시간으로 한 시간 넘게 쓸데없이 까먹고는 다시 진주로 접어들어 대전 쪽으로 오다 장수 팻말을 보고 빠져나가 전주로 달려서 거기서 일행 중의 한 분의 이사 갈 집 확인을 하고는 점심을 된장국으로 때우고는 또 달려서 호남선을 타고는 연무에서 천안으로 난 새 길을 냅다 내달려서 우리는 천안에 도착하였다.
원래 계획대로 집은 이틀 후에 진격하는 것으로 하고 나는 천안을 베이스캠프로 삼을 참이다
스님을 전주에 남기고 다른 이들은 천안에서 다른 차로 갈아타고들 뿔뿔이 헤어지니 요번의 여행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2번과 함께 내 마음에 또 하나의 추억창고로 쌓여지니 하늘만큼 큰 기쁨은 아닐 지언정 또 다른 작은 기쁨으로 오랫동안 각인 될 것이다.
그것은 결국 꽃은 산이나 들에서 피고 지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서 그리 된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이름 아는 꽃이나 이름 모를 꽃이나를 막론하고 그들은 단지 봄이 왔다 가는 것을 알릴뿐이지만 인간들의 마음에서 발견 되는 꽃은 계절의 시간을 뛰어 넘어 우리들의 영혼속에 오랫동안 각인 되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꽃 같은 마음씨의 사람들에게 하늘이 늘 미소로서 같이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첫댓글 어제오전에 님의 하루일보을 읽고 뭔가 꼬리글을 남기고 싶었습니다(월요일은 제가좀 바쁜척을 합니다)거제도 꽃구경 무지 부러웠구요.거기에서 만난 훈훈한사람들을 보고 따뜻한 표현을 해주신 부분에 저두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