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앞서-
먼저 오늘은 "오야마 마스타츠"(大山倍達) 최영의 총재의 극진회가 만들어지기 까지
또한 제가 평소 최영의 선생님의 업적과 그의 무도관에 대해 논하지 않었던 것은
============================================================================================================================================================== 우선 가라데 자체의 계보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가라데 북파 기원설?*
가라데의 기원이 중국 남파권법이 류쿠왕국(오끼나와)으로 전해져 내려와 집대성 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 입니다.
하지만 알려진 것 과는 다르게 가라데라고 하여 그 모두가 남파권법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본래 가라데란 이름으로 집대성 되기 전까지의 오끼나와데라는 것은
이중 수리수(데)의 시초는 바로 가라데 명인으로 잘 알려진 "마츠무라 조공"선생에 의해서입니다.이 마츠무라 명인은 중국북파권법가에게 권법을 익히게 되었는데 이때 배웠던 중국의 권법과 오끼나와 고유의 토착무술이 병합되어 수리수(데의) 근원이 되었던 거죠.
이 시점을 계기로 문파라는 개념이 잡히기 시작해 그는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게 되는데
그의 제자중 한 사람인 "이토스 야스츠네"는 마츠무라 명인의 수리수를 좀 더 집대성 하여 많은 제자를 길러내게 되는데 그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인 "기친 후나고시"가 송도관(쇼토칸)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고
그의 가라데는 근대가라데의 체계와 그 기초를 잡은 몇안되는 유파로 평가받게되어
<근대가라데의 아버지 "기친 후나고시">
이 북파의 영향을 받은 가라데 유파들은 송도관(쇼토칸)외에도 마츠무라 명인의 유명한 제자였던 쿠와에 요시마사,이토스,야사토 야스츠네 형제 등에 의해 집대성 되어 또 다시 그의 제자들에 의해 수갈래로 나뉘게 되어 실동류,현우류,고바야시류등의 수많은 가라데 유파가 만들어 졌고 이중 이토스 계열의
결론적으로 극진회를 제외한 나머지 유파중 가장 널리알려진 송도관(쇼토칸)은
============================================================================================
이 나하데(수),수리데(수),박수로 불리던 오끼나와데 3대 오끼나와데 중에 남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 바로 나하데(수)입니다.
나하데(수)는 중국무술가에 의해 권법을 배운 "히가시온나 간료"에 의해 만들어져 그의 관문제자 "미야기 초준"이 강유류로 집대성 하였는데 또 다시 그의 제자들에 의해
미야기 초준의 제자 중 한사람인 "야마구치 고겐"은 미야기의 강유류를 현대적으로 체계화
<강유류의 시초 "미야기 초준"> <전일본강유회 "고겐 야마구치">
"야마구치 고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최총재와는 같은 조선출신의 강유류 선배
최영의 총재가 강유류를 접한 것도 야마구치의 관문 수제자인 조영주 때문이며
본 까폐회원이신 paleway님이 보내주신 메일의 의하면
이 조일삼 조태언 형제의 어머니는 바로 kbs수요기획에서 최영의 총재의 절친한 누나로 하는데요..
최영의 총재에게 조영주 선생은 힘든 객지생활에서 터놓고 지낼수 있는 몇안되는 사람이었으며 강유류를 접하며 자신의 무도철학을 심어준 스승과는 다름 없는 정신적 지주와도 같었다고 합니다.
<강유류의 선배 "조영주">
사실 최총재는 방학기 화백의 원작 만화와 소설인 "바람의 파이터",고우영 화백의 "대야망" 실제론 모르는 부분에 대해선 겸허히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노력파 중에 한 사람이셨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최총재는 야마나시 소년 항공학교에 다닐 당시 송도관 가라데와 고도관(강도관)유도를 익히면서 각각 초단을 획득했고 후에 기친 후나고시의 아들 "요시타카 후나고시"의 사설 도장에서 유도장에 나가 단기간에 4단을 따내기도 했고 대동류합기유술에도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는 이런 저런 생활을 하던 중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최총재는 학도병 차출 당시 대일본무덕회에서 내린 송도관 가라데4단을 받고 게릴라정탐부대 사범과 가미가재 특공대에 지원한 것 처럼 묘사한 만화와 실제사실과는 많이 다르죠.
<소년 시절과 야마나시 항공학교 재학시절>
최총재는 전쟁이 끝나고 1946년 와세다 대학 체육학부에 입학을 하게 되는데요..
(전쟁 이전엔 척식대학에서 학업을 한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만...잡지에서 최총재의
이 와세다 대학과의 인연은 후에 동문출신인 요시칸 아이키도의 "시오다 고조"와의
<"우헤시바 모리헤이"> <요시칸 아이키도 "시오다 고조">
이어서 최영의 총재는 대동류합기유술의 시초인 다케다집안의 관문 수제자인 최총재가 저술한 책중 셀프디펜스(호신술)에 관한 부분을 보면 극진 호신술의
<대동류 "요시다 키타로">
아무튼 최총재는
1946년에 "요시카와 에이지"의 미야모토 무사시를 읽고 입산수행을 결심하게 되는데
<身延山(미노부)산 입산 당시와 단련된 신체와 정권>
<강유류7단이라 나와있는 재적부>
그렇게 수행을 마치고 내려온 최총재는 1947년 교토 가루야마 체육관에서 열렸던 전후최초의 전일본 무도회 대회(가라데부분)에 출전하여 우승을 하게 되었고 출전 당시엔 조영주 선생과 야마구치 선생으로 부터 강유류를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최총재는 전일본 대회 우승후에도 자신의 무도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최영의"(중간)와 "고겐 야마구치"(오른쪽)> <"야마구치"선생과의 쿠미테(대련)>
이 엄청난 입산수행 속에서 산에서 뱀잡아 먹고 개구리 잡아먹으며 자급자족한 것은
그렇게 최총재는 자기만의 독특한 가라데를 확립하기에 이르러 입산수도를 끝내고 산에서 내려와 타테야마의 한 작은 해변가에 조금한 판자집을 짖고 살며
<소를 통한 가라데 위력 시범>
그렇게 최총재는 일본내에서 가라데계의 이단아로 평가절하를 받는 와중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총재의 행적에 관해 진실유무가 맞물려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
<당시의 기사들> <하와이 출신의 가라데 사범"리차드 김"과 함께(안경)>
<세계적인 力(역)사 스타인 보우와 최영의와 대전했던 레슬러들>
<에드 설리번쇼에 출연> <트로피>
<유도 명인 "기무라 마사히코"와 함께(왼쪽)>
이 몇년간의 피와 땀이 결실을 맺어 우여곡절 끝에 동경 메지로가의 한 귀퉁이에 세워진 곳이
최총재는 대산도장을 개관한 이래에도 수행을 멈추지 않고 유럽과 남미등의 순방길에
<대산도장 당시 제자들과 함께>
또한 대산도장을 운영하던 당시엔 최영의총재와 친분이 있던
<태기권 "사와이 켄이치"> <극진출신으로 태기권 관장이 된 "얀 칼렌파하">
이렇게 해외 각지를 돌며 고생했던 피와 땀들이 결국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아
<1923-1994> 大山倍達의 묘지
글쓴이: 이종격투기 까폐 " 오로치돗포" 날 짜 :2004년 11월3일 수요일
본까폐를 제외한 다른 곳에 퍼가는 것은 반드시 본인의 허가후에 가능함.(불펌금지)
==============================================================================
-출처- |
카페 이름 : 이종격투기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ssaumjil
카페 소개 : 격투기,PRIDE,K-1,UFC,만화,엽기,무술,오락,WWE
글쓴이 :오로치돗포
좋은글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혹시 다른분이 퍼가시더라도 출처에 대해서 밝혀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오로치돗포님에게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