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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의 울프 독 -제 1 편 -
썰매 개는 인류가 이용하는 가축으로서 최악,
또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에게 봉사한 최강의 생존력을
가진 동물이다.
예로서 네발 동물로서 남극과 북극의 양극을 다녀온 동물은
이 에스키모의 썰매 개들이 유일하다.
1907년 영국 탐험가 색클턴과 함께 남극 탐험에 도전하다가 비참하게
일생을 마친 몽골 말들을 보면 이 에스키모 개들이 다녀온 그곳이
[아래 클릭]
얼마나 가혹한 곳이고 그곳까지 갈 수있었던 에스키모 개들이
에스키모개들로서 잘 알려진 개 종류로 한국 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개들은 허스키 종과 마라뮤트종이 있다.
지금은 먼 이국인 한국에까지 와서 가정견이 됐지만 이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이 엄혹했기 때문에 그들 조상들은
강인 할대로 강인해야 했고 거칠 대로 거칠어야 했다.
영하 30도를 넘는 혹한에도 하루 종일 수 십 킬로를 달리고도
눈보라의 속의 야간에는 꼬리로 코를 감싸고 편히 자고 다음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는 개가 이들
에스키모개들이었다.
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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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강인한 에스키모개들을 순한 집안 강아지쯤으로
보이게 만든 개들이 있었다.
알래스카의 거친 황야를 마음대로 노니는 이리와 에스키모개가
결합해서 탄생한 늑대 개, 즉 울프 독이다.
늑대 개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번역되어 온 미국
작가 잭 런던의 저서, 야생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을 바탕으로
만든 늑대 개라는 영화가 10년도 훨씬 전에 한국에 소개되어 나왔으니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아직도 그 비디오나 DVD가 시중에 돌아
다니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잭 런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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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늑대라는 말은 한반도 남부에 살았던 고유의 이리를 말한다.
늑대가 중국 북부나 한반도 북부에 사는 승냥이들과 달랐음에
대해서 쓴 글을 참조 해주시기를 바란다.[click!]
따라서 늑대 개라는 말은 틀리고 이리 개라는 이름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늑대개로 명칭이 굳어진 오늘날의 입장에서 어쩐지
이리 개라는 말을 쓰기가 어색해서 이글에서는
울프 독으로 부르기로 한다.
울프 독은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생겼었다.
야생의 이리와 집의 개가 결합하여 자손을 낳는 것은 야생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졌거나 인간들의 의사에 의해서 타의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여기에는 진도에 내려오는 진돗개 늑대 후손설도 한 몫 한다.
그러나 특기할 것이 있다.
일정 시대에 창경원 수의사 팀의 실험에 의해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조선 늑대와 일반개의 후손은 노새나 버새처럼 생식 능력이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래서 세계의 모든 울프 독들이 그런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알래스카의 울프 독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혼혈 울프 독도 얼마든지 수태할 수가 있었다.
한국 늑대는 멸종이 의심되는 단계지만 이 점에 대한 연구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 각국에서 탄생했던 울프 독들이 20세기 초반까지 자연 상태에서
개와 이리라는 같은 견족(犬族)끼리의 우연한 결합해서
생긴 종자였거나 인간들의 세상에서 좀 더 나은 사냥개나
경비견의 탄생을 바라보고 인간들의 호기심 수준으로
시험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면 알래스카의 울프 독은
가혹한 자연 조건에서 좀 더 더 나은 썰매 개들을 절실하게
바라는 인간들의 욕구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개발되어
생겨난 품종이었다.
[물론 세파드 품종 개발과 같이 이리의 혈통이 긴한 용도로
사용된 예외적인 일도 적지 않았다.]
시장의 욕구가 컸기에 소수지만 알래스카의 썰매 개 분양업자중에는
울프 독을 상업적으로 분양하는 전문 브리더들도 있었다.
이들은 씨받이 수컷 이리를 길들여서 에스키모개와 교배시켜
울프 독을 분양했었다.
교미에 이용된 이리는 알래스카의 얼어붙은 황야를
안방 삼아 사는 회색 이리였고 썰매 개는 주로 마라뮤트였다.
그러니까 잭 런던의 야생의 부름에 나온 벅크도 어쩌다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상업적인 인간의 욕구로 탄생한 개였다.
회색 이리- 지금도 울프 독 만들기의 최고 인기 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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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도 훨씬 전에 알래스카에서 한 때 울프 독과 이리에 대해서
최고의 전문지식을 가졌던 사람으로 소문났었던 사람이 있었다.
프랭크 그래이저[1889-1974]라는 사람인데 그는 미 서해안
와싱턴 주 태생으로 27살인 1915년에 알래스카에 들어가서
1955년 은퇴 할 때까지 알래스카의 야생에서 살았다.
프랭크 그래이저 - 1952년 그가 페어뱅크스 시에 거주 할 때
들고있는 생선은 민물 생선이 아니라 북극해에서 잡은 생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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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20년대 후반부터 맥켄리 국립공원 인접 근처 새비지 강가에
오두막을 짓고 십 여년 간 살며 사냥과 덫의 야생의 생활을 했는데
그는 그 곳에 많은 이리들의 생태도 지켜봤고 사냥도 했으며
야생 이리도 길러 보고 울프 독도 만들어 부려 보면서 이리의
전문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래에 그가 십년 넘게 길렀던 최고의 울프 독 이야기를 옮겨본다
나는 1927년 덫으로 잡은 어린 이리를 길들여서 일 년 반 정도
기르다가 내가 가진 마라뮤트 암캐인 넬리와 교배시켜
그 해 삼월 울프 독 5 마리를 얻었다.
여기서 부언 한다면 울프 독은 수컷 이리와 암컷 개를 교미시켜야
성공할 확률이 크지 수컷 개와 암컷 이리를 교미시키면 거의 실패했다.
암 이리가 수캐에게 몸을 주기를 단호히 거부하기 일쑤고
어떻게 임신이 되더라도 해산 할 때부터 안전부절을 하다가
새끼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때로는 죽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이리 암컷이 개와 교미해서 성공적으로
새끼를 낳은 것은 단 한건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이리가 개를 앞서는 그런 좋은 재주를 부린다면
이리를 썰매개로 길들여서 쓰지 왜 개와 결합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느냐고 할지 모른다.
나는 진짜 이리를 길들여 썰매개로 사용해보는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나 잘 길든 이리조차도 썰매를 끌지를 않았었다.
다른 개나 울프독과 팀을 이루어서 썰매를 억지로 끌게 하면
주둥이와 꼬리를 땅에 내려뜨리고 마지못해 끌려가다시피 갔다.
단지 먼 앞에 순록이 보일 때는 사냥 본능을 나타내며 스피드를 냈다.
나는 여러 번 길이 잘든 이리로 썰매 끌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이리의 생리에는 썰매 개에게 몇 만년동안 내려오면서 형성된
썰매 끌기라는 사역 본능의 유전인자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회색 이리와 마라무트 개에서 태어난 이 다섯 마리의 강아지로
한 팀의 썰매 개를 만들기로 하였다.
다섯 마리 중에 수컷이 네 마리, 그리고 암 컷이 한 마리였다.
수컷들은 농도에 차이가 있지만 거의 회색 계통의 색깔이었다.
그러나 암컷 한마리만은 전신이 검고 단지 가슴과 목 부분만
백색이었다.
나는 수컷들의 이름을 탄생 순에 따라서 버스터,울프, 코북,
그리고 데나리라고 이름 지었다.
암컷은 퀴니[Queenie]라고 명명했다.
나는 암컷의 울프 독을 원하지 않아서 퀴니를 처분해버릴 것을
한참 생각했었다.
암컷은 나중에 썰매를 끌게 되면 교미 철이 되면 팀의
분위기를 깨버릴 가능성이 있어서 가능하면
암컷을 배제하는 것이 나의 방침이었다.
그러나 차마 어린것을 그렇게 할 수 없어 생각을 바꾸어서
기르기로 하였다.[이 퀴니가 명견이 되었다.]
강아지들은 토실토실하고 팔팔해서 귀여웠다.
비록 이리의 핏줄이 절반이나 섞였지만 어린 울프 독 강아지들의
외모는 아직 순종 마라뮤트 종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커 가면서 확연히 달라 질 것이었다.
나는 다음 해에 이리를 다시 넬리에게 교배시켜서 그해 5월에
강아지 한 마리를 얻었다.
또 다음해인 1929년, 암컷 퀴니가 두 살이 되었을 때 퀴니를
이웃에 사는 덫 사냥꾼 빌 그린의 수컷 울프 독에 교미시켜서
무려 열세 마리의 강아지를 얻었다.
이중 열 마리가 암컷이었고 수컷이 세 마리였다.
나는 암컷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분양하고 수컷 세 마리만 길렀다.
세 마리의 이름은 케나이, 유콘, 그리고 또 다른 울프였다.
나는 1926년부터 정부 기관에 고용되어 새비지 강을 떠났던
1937년까지 손에 넣을 수 있는 최고 품성을 가진 울프 독
일곱 마리에서 열 한 마리를 항상 확보하여 인근에 소문이 났던
최고의 썰매개 팀을 운영했었다.
내가 가졌던 울프 독들은 절반 혈통의 이리에서부터 사분지 삼의
이리 혈통까지 여러 가지였다.
명견이라 소문났었던 두어 마리는 단지 사분지 일만이 울프 독이었다.
이리의 혈통 정도는 각각 달랐지만 모두 최고의 썰매 울프 독들이었다.
울프 독들은 여름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목을 묶이거나 견사에 가두어져 매일 매일 쉴 뿐이었다.
나는 어린 울프 독들을 이 한가한 여름부터 가을까지의 기간에
훈련을 시키기로 하였다.
훈련 대상의 울프 독들은 대개 삼월 하순에서
오월 초순에 태어난 단지 4개월에서 5개월의 나이에
아직 강아지였었다.
울프 독들의 탄생 시기는 개보다도 이리의 그것과 일치한다.
나는 처음 울프 독 강아지들을 썰매개로 훈련시키면서 이내
이들 강아지들이 이리의 영리함과 개의 순종성을 같이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품성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울프 독들은 훈련과 지시에 마라뮤트나
허스키 개들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마라무트 같은 썰매 개들 보다 울프 독 훈련시키기가
더 쉬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최고의 울프 독들을 소유했던
행운을 가졌던 것 같다.
나는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기르는 사납고 길이 잘 들지 않은
울프 독들을 많이 보아왔다.
내 개라면 그런 개들은 오 분 이상 옆에 두고 보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나는 울프 독들이 그렇게 망쳐진 이유를 알 수 있다
주인이 함부로 다루어서 길러낸 울프 독들은 그렇게 거칠고
반항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오다가다 알게 된 얼래스카 내륙에서 온 덫 사냥꾼은 자신이
알래스카의 황야에서 썰매를 끌던 울프 독 세 마리가 갑자기
그에게 떼로 덤벼드는 봉변을 당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위기를 느낀 그는 썰매에서 뽑아낸 몽둥이로 이들을 때려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문제를 야기한 책임이 그에게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평소에도 썰매 개들을 매우 함부로 다루었었다.
위의 사례가 암시하듯 내가 최고 품성의 울프 독들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나의 울프 독들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었던 듯하다.
나는 내 울프 독들에게 엄격하게 다루기는 했지만 가혹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나의 울프 독들은 내가 나무라거나 회초리로 가볍게 휘두르면
자기들이 먼저 알아서 말을 듣고 복종했다.
굳이 주인을 화나게 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울프 독들을 가지기 전부터 마라뮤트나 허스키 같은
썰매 개를 10여 년 동안이나 부려 보아 봤고 주변의 많은
썰매 개들을 보아 왔다.
마라뮤트나 허스키등의 썰매 개를 소유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와 인내심과 신경을 써야했다.
마라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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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울프 독 팀을 관리하는 것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고 더 신경을 써야만 한다.
내가 다른 곳에 업무가 있어서 긴 기간 집을 비울 때는 그렇게
다루기 힘들고 까다로운 울프 독을 누구에게 맡길 수가 없어서
큰 골치 아픈 문제가 되곤 했었다.
내 주위에는 이 영리하고 까다롭고 사나운 울프 독을 장기간
제대로 관리해 줄 솜씨 좋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울프 독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고 절대 다른 마라뮤트나
허스키 같은 보통 썰매 개처럼 다루어야 해서는 안 되었다.
내가 가끔 업무로 패어뱅크스 시로 갈 때에는 썰매를 타고 가서
최고의 노련한 솜씨를 가진 썰매 개 전문가에게만 맡기곤 했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내가 수시로 견사에 들려서 울프 독들을
첵크 해야만 했다.
나는 사실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을 이 울프 독들과 같이 보내며
이 울프 독들을 돌봤다.
나는 쉰 두 살 나이에 새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 할 때까지
어느 식구나 친구 같은 인간들보다 울프 독들과 보낸 시간이 더 길고,
더 신경을 쓰는 밀착된 생활을 했었다.
이렇게 정성을 쏟는 울프 독들도 야생의 이리들이 자신들의
두목에게 절대 복종하듯이 나를 자기들의 보호자며 큰 지도자로 알고
나를 따르고 나에게 복종했다.
나는 울프 독들에게 강에서 잡아서 말린 연어나 사냥해서
잡은 순록이나 뿔 사슴[moose]들의 고기를 먹였다.
썰매개들에게 가장 흔하게 먹였던 grayling. 알래스카의
맑은 강에서 많이 잡히는 담수어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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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독이 먹는 것을 보면 이리를 꼭 닮았다.
순록이나 뿔 사슴의 굵은 뼈를 앞 다리로 잡고 한쪽부터
이빨로 부수어 먹는다.
어떤 큰 뼈도 이들 이빨의 괴력에 거침없이 부수어 나간다.
그리고 울프 독들은 뼛속의 골수를 먹는다.
울프 독의 턱과 이빨에서 발휘되는 파괴의 괴력은 보통의
썰매 개들은 흉내도 낼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육류나 어류만 먹이지 않고 때로는 밀가루와 곰 기름으로
만든 핫 케이크를 별식으로 만들어서 먹이기도 하였다.
곰 기름은 내가 매년 가을 마다 살찐 곰을 잡았을 때마다 곰의
지방을 끓여서 만들어 놓은 식용 유지였다
핫 케익을 구우면 나는 개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울프 독들은 마치 선생 앞의 학생들처럼 일 열로 서서 자기 순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마리당 대 여섯 개의 핫 케익을 배급받고
집에 들어가서 먹었다.
울프 독을 만들고 기르고 부리던 11년간의 세월동안 나에게
유일하게 때때로 반항하고 대들던 울프 독은 명견 퀴니의 아들인
케나이 뿐이었다.
케나이는 개의 혈통보다도 이리의 피가 사분지 삼쯤 섞인
거친 놈이었다.
케나이는 생김생김도, 크기도,그리고 행태에서 그런 거친 이리의
꼭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의 어미 퀴니[Queenie], 검정 암컷인 울프 독은 내가 최초로 가진
울프 독이었으며 그리고 내가 길렀던 울프개중 가장 영리한
울프 독이었다.
그리고 어떤 개보다도 나를 따랐던 개이기도 했다.
명견 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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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니는 낯선 자를 다른 어느 개보다도 싫어하고 경계했었다.
퀴니가 나를 너무 잘 따라서 추운 겨울밤에 심심 할 때면 이 녀석을
내 통나무 오두막으로 불러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오두막의 더운 기운이 전신이 털 뭉치인 퀴니에게 더 버틸 수가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얌전하게 나와 잘 놀아 주었다.
나는 퀴니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싹수를 알아보고
썰매개 팀의 리더를 시켰다.
리더 썰매 개의 기능은 한국의 멧돼지 사냥개 리더인 썰개의
기능보다도 더 훨씬 중요하다.
주인과 호흡을 맞추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여러 마리의
개를 이끌고 힘든 지형을 찾아서 가야 했기 때문에 그 능력은
그야말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이리 떼 두목의 그것을 합쳐
놓은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
내가 울프 독들을 훈련시킬 때 처음 가르친 것은 울프 독들이
자기 이름을 기억시키고 부르면 달려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땅위에 놓인 썰매를 보여주고 거기에 달린 썰매 개를
묶는 줄[하네스- harness]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자기 이름을 알게 하고 하네스를 보여주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일이다.
개 썰매 - 북방의 자작나무로 만들었다.
실제로는 사람들은 잘 타지않고 개와 썰매
중간에서 걸으며 개들을 컨트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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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단계는 명령에 의해서 줄을 지어 자기 순서 자리에
개들에게 엎드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네스를 매게 하는 것인데 개들이 움직이면 안 된다.
이 단계에서 주의 할 것은 개를 함부로 끌어다가 줄에 묶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경우 개는 반발하여 돌출 행동을 한다.
어디까지나 개가 부르는 소리에 따라 스스로 자기 위치에 와서
엎드려 자발적으로 채비를 채워주기를 기다리게 만들어야한다.
그들이 이 단계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훈련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게 한다.
그리고 퀴니를 리더의 자리에 엎드리게 하고 하네스를 매게 한 뒤에
그 뒤에 두 줄로 각 개들을 한 줄로 묶게 하는 단계로 들어간다.
퀴니는 처음부터 얼른 눈치를 채고 시키는 대로 따라서 했다.
그 뒤를 따라서 다른 개들도 줄을 지어서 앉아서 얌전하게
하네스를 다 받게 하는 연습을 여러 번 되풀이 했다.
하네스로 묶었다가 다시 풀어주었다가 또 불러서
묶어주었다가 하는 훈련을 오랫동안 되풀이 했다.
나는 겨울철이면 울프 독들이 메인 줄에 다 묶여서 열을 지어 엎드려서
출발을 대기하는 동안 오두막에 들어가서 장갑과 모자와 파카를 찾아 입고 추운 날씨에 썰매 여행 차비를 하곤 했다.
그러나 울프 독들을 훈련하는 기간에는 오두막에 들어가서 문틈으로
이놈들이 무엇을 하는 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길이 어느 정도 들면 울프 독들은 이 단계에서 부산을 떨지 않고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내가 들어간 오두막 쪽을 쳐다보곤 했었다.
때때로 내가 들어간 오두막을 지켜 보다가 슬며시 일어나려고
하는 놈들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다시 나와서 엎드려 지시를 하고 서려고 하는
놈들을 강제로 앉혔다.
이런 반복 연습을 수없이 되풀이 하면서 이들 울프 독들을 겨울이
올 때쯤 되면 완벽한 썰매개 팀으로 만들었다.
내가 방한 장구를 다 찾아 입고 나와서 썰매위에서 "All Right!"하면
그들은 총알처럼 튀어 나가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울프 독들을 훈련시킬 때 ‘gee!' 또는 'whoa'라는 말로 왼쪽
오른쪽 정지 출발 등의 명령어를 알아듣는 것부터 훈련시켰었다.
열 마리 팀이 끄는 개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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