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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행(무박)후기 스크랩 동네 뒷산에서 즐겨보는 에코힐링, 계족산-성재산(`14.12.6)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121 14.12.10 05: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계족산(鷄足山, 423.6m)-성재산(398.7m)

 

산행일 : ‘14. 12. 6()

소재지 : 대전시 동구와 대덕구의 경계

산행코스 : 굴다리(제월당의 위)용화사계족산봉황정임도 삼거리성재산계족산성임도갈림길장동산림욕장(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계족산은 도심(都心) 인근에 위치한 산이다. 거기다 나지막하기 때문에 산이라기보다는 동네 뒷동산이라는 느낌이 더 강한 편이다. 그래선지 대전시에서는 대전 둘레 산길’, ‘스토리가 흐르는 녹색 길’ ‘에코힐링 맨발코스(eco healing road)’, ‘명품 숲길 100등 수많은 둘레길을 얽히듯이 조성해 놓았다. 정자(亭子)나 체육시설, 벤치, 화장실 등 시민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 놓았음은 물론이다. 시에서는 이보다 한 발작 더 나가 계족산성까지 복원(復原)해 놓았다. 이제는 대전지역을 넘어 타 지역에서도 계족산을 찾아오도록 만든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대덕구 읍내동)

경부고속도로 대전 I.C에서 내려와 동부네거리(동구 가양동)’에서 우회전하여 한밭대로를 따라 잠깐 들어가면 첫 번째 사거리인 중리네거리(대덕구 중리동)’가 나온다. 중리네거리에서 오른편 계족로를 따라 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왼편에 현대아파트단지(대덕구 읍내동)가 보인다. 현대아파트 조금 못미처 오른편에 있는 후곡공원 바로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게 된다. 이곳 굴다리 근처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굴다리에서 계족로 740번 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산행을 이곳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덕구 노인종합복지관앞을 지나, 그러니까 이곳에서 5분쯤 되는 지점에 제법 널따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굴다리 근처에 스토리가 흐르는 녹색길이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안내판을 보면 이곳에서 봉황마당을 거쳐 봉황정에 이르는 구간의 이름이 덕을 품은(회덕 : 懷德) 이란다. 아마 요 아래에 있는 제월당(霽月堂)과 옥오재(玉吾齋)로 인해 얻게 된 이름이 아닐까 싶다.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9호인 제월당은 조선 숙종 때 대사헌을 지낸 송규렴(宋奎濂 : 1630-1709)1676년에 자신의 호를 따 지은 별당이고, 옥오재는 제월당 송규렴의 아들로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지낸 송상기(宋相琦 : 1657-1723)가 안채에 붙여지은 사랑채 건물이다. 건물을 지은 제월당(霽月堂) 송규렴은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에게 학문을 배웠고 송상기는 송시열(尤庵 宋時烈)에게 배웠으니 덕()은 몰라도 학문(學問)만은 뛰어났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송규렴은 동종(同宗), 동향(同鄕)이었던 송시열, 송준길 등과 함께 삼송(三宋)으로 불렸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그런 연유로 회덕(懷德)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참고로 제월당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는 쌍청당雙淸堂에 연원을 두고 있다. 쌍청당은 송규렴의 선조인 조선초 유학자 송유(宋愉)가 지었으며 박팽년이 쓴 쌍청당 당기(堂記)에 있는 쌍청(雙淸=淸風+霽月)중 제월을 따온 것으로 선조의 맑은 기품을 닮고자 하는 뜻이며 옥오(玉吾)'깨어지더라도 나는 옥을 택하겠다.'는 뜻으로 충성스러운 말과 옳은 뜻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아무튼 두 건물은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고택(古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굴다리에서 출발할 경우 조금 걷는 대신 훌륭한 눈요깃거리를 즐길 수 있으니 그다지 손해는 아니다. 예쁘장한 우체동과 기발한 발상의 의자(椅子)를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일(tile)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려놓은 멋스런 축대(築臺)를 구경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 또한 스토리가 흐르는 녹색길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계족산을 중심으로 동춘당 생애길, 덕을 품은(懷德), 산디마을 산신제길 등 3개의 세부 길로 구성된 스토리가 흐르는 녹색길은 기존 계족산 산책로(14km)에다 스토리가 입혀진 조형물(造形物)과 벤치. 안내판 그리고 벽화타일 등의 시설물을 길 곳곳에 세운 관광사업으로 이해하면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그러니까 굴다리에서 5분쯤 올라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대형버스의 주차도 가능할 정도로 제법 널따랗다. 서두(序頭)에서 구태여 굴다리 근처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한 이유이다. 만일 이곳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했더라면 몇 가지 해프닝(happening)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첫 번째 해프닝은 이곳으로 오는 중간에 왼편으로 잘못 들어섰다가 이 동네 주민의 지적에 따라 다시 되돌아 나온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登山) 방면에 베테랑(veteran)인 어느 분께서 들어갔던 곳에 오늘 산행코스에 있던 용화사가 있다고 알려준 점이다. 이로 인해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지도와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 초반에 많이 애를 먹었다.

 

 

주차장을 지나자마자 오른편에 자그마한 저수지(貯水池 : 읍내방죽) 하나가 나타난다. 그리고 저수지 끄트머리 근처의 왼편 산자락에 산악회 시그널(signal) 몇 개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우리의 선두대장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산자락으로 들어붙고 본다. 그러나 이 선택은 잘못된 것이다. 제대로 된 코스는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는 것이다. 도로를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용화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왼편 산자락이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용화사 앞에서 두 길이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왼편 산자락으로 올라갈 경우에는 가파른 산길에서 헛힘을 써는 것만 다를 뿐이다.

 

 

 

아무튼 산자락으로 들어붙으면 10분 후에는 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서 능선을 따라 4분 정도를 더 걸으며 임도(林道)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임도를 따라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사유지(私有地)라는 이유로 맞은편 능선이 철조망(鐵條網)으로 막혀있기 때문이다. 임도를 따라 3분 정도를 더 내려오면 용화사이니 15분 정도를 더 걸은 셈이다. 참고로 임도로 내려서서 왼편으로 진행할 경우에는 죽림정사(竹林精舍)라는 자그만 사찰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봉황정으로 곧장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전각(殿閣) 몇 채가 왼편에 나타난다. 바로 용화사(龍華寺)이다. 용화사 앞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 봉황마당 0.4Km, 비래사 2.6Km/ 죽림정사 1.8Km/ 읍내도 0.9Km)로 나뉜다. 이곳에서 난 용화사를 들러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왼편에 보이는 사찰(寺刹)이 용화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게 다 산행 들머리에서 잘못 들어가려 했던 곳에 용화사가 있다는 어느 분의 말을 가감 없이 믿어버린 탓이다. 이미 용화사를 지나왔다는 선입감(先入感) 때문에 왼편에 보이는 전각을 일반 민가(民家)로 오인(誤認)해 버린 것이다. 하긴 그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일반 민가로 잘못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남매 벌꿀 농장등의 민가들이 사찰 옆에 버젓이 버티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참고로 용화사는 계족산입구에 있는 작은 사찰(寺刹)이다. 그러나 그 역사만은 꽤 오래되었다고 한다. 비록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사찰의 유일한 법당(法堂)인 대웅전 옆에 있는 용화사석불입상(대전광역시유형문화재: 26)10세기 초 후백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석불입상이 모셔져 있던 용화전이라는 전각과 불 탄 초가(草家) 한 채만 덩그러니 있던 것을 1962년부터 대웅전과 요사 채를 짓는 등 여러 번의 중수(重修)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절에는 옛이야기 한토막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 어느 왕비의 꿈에 노승(老僧)이 나타났고, 그의 암시(暗示)대로 절을 짓고 백일기도를 한 끝에 왕자를 얻게 되었단다. 그때 태어난 왕자의 이름을 청룡(靑龍)이라 지어졌고, 절 이름 또한 용화사라고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용화사 앞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7분쯤 더 걸으면 정자(亭子)와 체육시설, 벤치 그리고 두 손으로 봉황(鳳凰)을 받치고 있는 조형물이 세워진 공간을 만나게 된다. 바로 봉황마당이다. 봉황마당 역시 스토리가 흐르는 길차원에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아니 그 중심축이다. 스토리가 흐르는 3개의 녹색길이 만나는 중심마당이 바로 봉황마당인 것이다. 이 고장이 나은 출중한 선비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 1606-1672) 등 선비들의 얼이 깃든 곳이라고 해서 이곳에다 조성했다고 한다. 송준길은 중앙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 설치되었던 문묘(文廟 : 공자를 모시는 묘우, 廟宇)에 배향(配享)된 해동18(海東十八賢)의 한 사람일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중추적으로 서인 노론을 이끌었었고, 그들이 만들어낸 당파싸움이 얼마나 나라를 피폐(疲弊)하게 만들었는지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봉황마당에서 왼편에 보이는 산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이정표(봉황정 : 0.7Km/ 비래사 2.2Km/ 용화사 0.4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계족산 정상으로 올라가려면 봉황정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한마디로 가파르다. 그 가파름을 배겨내지 못한 산길은 끝내 계단을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아마 오늘 산행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거리가 짧은 덕택에 20분이 채 안되어서 능선안부 삼거리(이정표 : 봉황정 0.2Km, 죽림정사 1.4Km/ 임도3거리 0.9Km, 계족산성 3.7Km/ 용화사입구 1.1Km)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다음 행선지인 성재산으로 가려면 정상과 봉황정을 둘러보고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삼거리에서 계족산 정상은 금방이다. 제법 가파른 산길을 5분 남짓 오르면 계족산 정상이다. 20평도 넘는 널찍한 분지(盆地)에는 반듯하게 쓴 무덤 한 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고, 대전의 한 산악회에서 세워놓은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정상표지석은 흡사 손님으로라도 밀려난 양 한쪽 귀퉁이로 밀려나있다. 정상은 왠지 어수선한 느낌이다. 이정표(죽림정사/ 와동수자원공사/ 계족산성, 용화사입구) 외에도 계족산성과 봉황정에 대한 설명판, 그리고 2개나 되는 대전둘레산길 이정표등 이런저런 시설물들이 너무 많이 세워져 있는 탓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정상에 서면 북동쪽 산디마을 계곡 건너로 마주보는 계족산성 능선마루금이 거의 일자(一字)로 보인다. 참고로 계족산은 이 산의 풍수지리가 닭의 다리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려사(高麗史)'의 회덕군편과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회덕현조에 실려 있다. 또한 지금의 송촌 일대에 지네가 많아서 지네와 천적인 닭을 빌어 지네를 없애기 위해 계족산이라 불렸다고 하는 설()도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정상에서 정상표지석 뒤쪽, 그러니까 서쪽으로 약 50m쯤 더 가면 대전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는 봉황정(鳳凰亭)이 있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조망(眺望)이 뛰어난 곳일 것이다. 계족산은 봉황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을 정도로 봉황(鳳凰)의 기운을 가진 산으로 알려져 있다. 봉황은 신비한 기운을 가진 성스러운 동물이다. 그런 좋은 테마(Thema)를 그냥 지나칠 대전시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요 아래에 있는 봉황마당으로도 부족하여 이곳 정상 부근 전망 좋은 곳에다 봉황정이라는 정자까지 지어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봉황정에 오르면 남으로는 식장산이 멀리 서대산과 함께 보인다. 그리고 보문산 뒤로는 만인산 태봉이 멀리 대둔산과 함께 조망된다. 대전시가지가 발아래 펼쳐짐은 물론이다.

 

 

안부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계족산성 방향으로 진행한다. 능선을 따라 난 길을 걷다보면 심심찮게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할지를 갖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두 길은 얼마 안 있어 다시 하나로 만나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는 능선의 꼭짓점을 잇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나있을 따름이니 마음 내키는 길로 들어서면 될 일이다. 삼거리를 출발한지 15분 정도가 지나면 임도사거리(지도에는 임도삼거리로 표기되어 있다)에 내려서게 된다.

 

 

 

임도에 내려서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참 어지럽다이다. 대전과 충남지역의 산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정자(亭子)와 이정표(계족산성 2.8Km) 외에도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수많은 안내판들 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안내판이 하나 보인다. 바로 계족산공원 에코힐링 맨발코스라는 안내판이다. 이 안내판이 얘기하고 있는 산길은 계족산 중턱을 도는 임도에다 황토를 깔아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한 길을 말한다. 2006년에 조성된 이 길에서 매년 511일과 12일 양일간 계족산맨발축제가 열린다. 황톳길 걷기 체험은 축제 기간이 아니어도 언제나 가능하다. 특히 맑고 화창한 날이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만일 나무 사이로 햇빛이라도 쏟아진다면 황톳길은 금가루가 뿌려진 것 같이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왠지 몸이 더 가뿐해지는 느낌이다. 황톳길 걷기는 늦봄에서 초가을까지가 제격일 것이다. 제대로 즐기려면 맨발로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족산은 여름이 제격인 산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참고로 에코힐링은 ecology(자연과 생태)healing(치유)의 합성어로, ‘자연을 통해 몸을 치유한다.’는 의미이다. 맨발로 흙을 밟고 걸으며 숲속에서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흠뻑 들이마시면 건강은 보너스(bonus)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자연을 통한 치유(治癒), 즉 에코힐링인 것이다.

 

 

 

 

이정표(계족산성 2.8Km)가 세워진 지점에서 임도를 벗어나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은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임도삼거리를 출발한지 10분 정도가 지나면 갈림길(이정표 : 계족산성 2.2Km, 장동산림욕장 4.4Km/ 절고개 0.4Km, 가양공원 3.7Km)을 만나게 된다. 오른편에 보이는 길은 비래골에서 절고개를 거쳐 올라오는 길이니 개의치 말고 맞은편 능선을 따라 곧장 진행하면 된다.

 

 

삼거리에서 다시 북쪽 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능선을 빼꼭하게 채우고 있는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들이 볼만한 구간이다. 능선을 따라 7~8분 정도 진행하면 지형도 상의 성재산에 닿는다. 그러나 성재산은 정상표지석이 없는 탓에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본디부터 능선 자체가 고만고만한 봉우리들로 연결되는데다가 정상석까지 없다보니 어디가 성재산 정상인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일행들의 말로는 정상에 삼각점이 있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하고야 말았다. 삼거리에서 5분쯤 되는 지점에 무인산불감시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봉우리가 있는데, 이곳이 정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계족산성으로 가는 능선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듬성듬성 혼재해 있다. 산림은 별로 우거진 편이 아니다. 그러나 그 단점이 다른 한편으로는 장점이 된다. 듬성듬성한 나무 덕분으로 심심찮게 조망(眺望)이 트이기 때문이다. 산불감시탑이 있는 봉우리에서 10분쯤 걸으면 다시 낙엽송 숲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나무가 거의 없는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오른편에는 대청호가 그리고 왼편에는 대전시가지 시원스럽게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눈이 호사(豪奢)를 누리는 산행이 이어진다. 물론 진행방향에는 계족산성이 시야에 잡힌다.

 

 

 

 

 

 

조망을 즐기면서 15분 정도를 걷다보면 드디어 계족산성이다. 남문(南門)을 지나 산성의 안으로 들어선다. 성안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성안 곳곳에는 봉수대(烽燧臺), 집수지(集水池) 등 옛 시설들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시간에 ?기지 않는 일정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고 갈 일이다. 사적 355호인 계족산성은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1.5km 지점에 있다. 정상부에 테를 두르듯 돌을 쌓아 만든 삼국시대 산성으로 성 둘레가 1,037m(높이는 710.5m)인 이 고장 최대의 산성이다. 성벽(城壁)은 대부분 흙을 깎아내고 바깥쪽에만 돌을 쌓는 방법으로 만들었으나 동벽(東壁) 일부는 안팎으로 모두 돌을 쌓고 내부를 흙으로 채우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성내 시설로는 남문터 부근에서 봉수대, 동벽 쪽 낮은 지대에서 우물과 저수지가 각각 확인됐다고 한다. 그 외에 장수의 지휘소로 사용하던 장대지(將臺址)를 포함해 10여 개의 건물터가 발견되었다. 이 산성은 백제 부흥군(復興軍)이 활동하던 옹산성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산성(山城)은 능선을 따라 축조(築造)되어 있다. 그런데 성벽은 왼쪽, 그러니까 서쪽 방향으로만 축조되어 있다. 동쪽에는 성벽은 보이지 않고 그저 물을 모으는 못 비슷한 시설을 복원하고 있는 현장만 보인다. 아마 아직까지 성벽을 복원(復原)하지 못한 모양이다. 성곽(城郭) 안은 평평한 분지(盆地)의 형태, 생각보다 넓지는 않다.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트이기 때문에 전략적(戰略的)으로 중요한 위치이기는 하지만 많은 병력이 주둔하기는 어려웠을 듯 싶다.

 

 

 

산성에선 동서남북으로 경관(京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확 트인 대청호(大淸湖)와 환산, 그리고 더 멀리로는 속리산까지 나타난다. 남쪽으로도 시야(視野)가 좋다. 식장산과 만인산, 대둔산이 바라다 보인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회덕분기점을 넘어 계룡산까지 시선에 잡히고,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신탄진의 빌딩숲이 눈에 들어온다.

 

 

 

성안을 둘러보다가 장동산림욕장 1이정표에서 산림욕장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산성을 벗어난다. 산성에서 조금만 내려서면 산길은 갑자기 가파르게 변한다. 그리고 13분쯤 후에는 정자(亭子)가 있는 임도(林道)에 내려서게 된다. ‘숲속 황톳길을 맨발로 걸어보세요라는 안내판이 세워진 것을 보면, 장동산림욕장에서 시작한 계족산공원 에코힐링 맨발코스황톳길이 이곳을 지나는 모양이다. 참고로 계족산 황톳길은 총 길이가 14.5km, 장동산림욕장 입구부터 시작해 산 중턱 순환 임도를 한 바퀴 돌아 나오도록 되어 있다. 임도에는 정자 말고도 또 하나의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한모쉼터라는 의젓한 이름까지 갖고 있는 포장마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뎅과 라면, 계란 등 간단한 요깃거리 외에도 캔맥주 등의 음료도 팔고 있으니 잠깐 쉬었다가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 또한 동네 뒷산 같은 산행에서나 맛볼 수 있는 모처럼의 낭만(浪漫)일 테니까 말이다.

 

 

임도에서 산림욕장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면 나무계단이 길손을 맞는다. 그리고 그 계단은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산림욕장에 이르러서야 끝을 맺는다. 자그마치 5분이나 걸리는 거리이다. 산림욕장에 들어서면 벤치 등 쉼터를 겸한 숲속 음악회장이 마중 나온다. ‘since 2007'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 2007년부터 매년 음악회를 개최해오고 있는 모양이다. 시설이 좋아서 잠깐 쉬어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만다. 앉아서 쉬기에는 쌀쌀한 날씨가 다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음악회장에서 길이 두 갈래(이정표 : 삼림욕장관리사무소 1.5Km/ 대청호 두메마을 4.0Km/ 계족산성 1.5Km)로 나뉘나 신경 쓸 것 없이 곧장 관리사무소로 내려가면 된다.

 

 

 

음악회장에서 관리사무소로 내려가는 길도 나무 데크로 만든 길이기는 매 한가지이다. 다만 이번의 길은 계단보다는 다리 모양을 한 평평한 길이 대부분인 것이 다를 뿐이다. 10분 가까이나 되는 긴 데크길이 끝나면 또 다시 황톳길이 나오고, 이어서 물놀이장에 이르게 된다. 물놀이장에서 삼림욕장 관리사무소는 금방이다. 참고로 1995년 개장한 장동산림욕장148ha 규모의 숲속에 산림욕장과 산책로, 잔디광장, 물놀이장, 순환 숲길과 체육시설 그리고 주차장, 매점 등 각종 편의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당연히 가족이나 단체 등의 자연휴양지및 탐방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산행날머리는 장동산림욕장로 들어가는 입구의 대로변

황톳길은 장동산림욕장관리사무소 근처에서 끝을 맺는다. ‘숲길 황톳길을 맨발로 걸어보세요라는 팻말을 봤다면 그곳이 황톳길의 시작이자. 끝 지점이다. 물론 우리는 황톳길이 아닌 나무계단을 이용했다. 맨발로 걷지 않을 바에는 구태여 황톳길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황톳길은 대한민국에서 맨발로 숲속 황톳길을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곳, 지구촌 유일의 맨발축제가 열리는 명소, 한국관광공사에 뽑은 꼭 가봐야 할 곳’, 여행전문기자들이 뽑은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33에 들었을 정도로 소문난 길이다. 그런 길을 못 걸어본 것이 못내 아쉬워 어느 여름날 다시 한 번 찾아와야만 할 것 같다. 아무튼 산림욕장 정문을 나서서 10분 정도를 더 걸으면 시내버스가 다니는 대로변이 나오면서 오늘 산행이 끝을 맺는다. 오늘 산행에 소요된 시간은 총 3시간이 걸렸다. 비록 천천히 걷기는 했지만 쉬지 않고 걸은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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