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차 과역산악회 9월 북한산 산행
긴 추석연휴 동안 집에만 머물려니 술병을 기울리는 일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PC는 벌써 아이들에게 점령당하고 TV 리모콘은 집사람에게 빼앗긴지라
가끔 아파트 뒤 벤치에 앉아 담배를 질끈 꼬나물고 친구가 한가위 문자로 보내온
“천년지기”노래를 재탕 삼탕 듣거나, 부지런한 개미들이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재미없으면 다시 들어와 술잔을 홀짝거리다가 이내 잠이 들고는 하였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추석연휴동안 적지 않게 위안이 된 것은
지난밤 베란다 한쪽에 아무렇게나 방치해 두었던 난이 꽃대를 밀어 올린 것이다.
기쁜 마음에 물을 한바가지 떠다가 부어 주고는 화분을 붙잡고 시심을 돋우어 급조한 시를 나직이 읊어 봤다.
늦은 밤 취기어려 창문을 열었더니
교교한 달빛 만 저 홀로 눈부시고
은은한 난초향기 달빛에 배었던가
코끝을 간지렵혀 단잠을 깨우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위로가 되었던 것은 과역산악회 북한산 산행을 다녀 온 것이었다.
망향제를 겸한 산행이라 이번 추석에 고향을 가지 못한 선후배들이 참석할 것 같아 기대되었고 한편으로는 고향에서 올라왔을 먹거리를 상상하니 흥분되었다.
집결지인 불광역에 9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도착했다.
역 구내엔 배낭을 둘러멘 사람들로 가득 찼었다.
이 사람들이 다 산에 간다니, 올 1월 태백산 산행이 생각났다.
이번에도 완전 기차놀이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2번 출구를 나서니 송선태 회장님을 비롯해 낯익은 얼굴이 서너 분 보일 뿐 처음 보는 분이 많았다.
얼떨결에 인사를 건넸다가 ‘처음 보는 분이네요’ 하며 외면하기를 두어 번 당하니 뻘쭘해져서는 얼른 자리를 옮겨 근처 가게로 들어갔다.
생수 두통과 막걸리 두통, 김밥 두줄을 배낭에 넣고는 마음 든든해 하며 돌아왔다.
대충 헤아려도 60명 가까이 참석한 것 같았다
사실 30년 넘게 북한산 자락을 보며 살아왔으면서도 제대로 된 등반을 해본 기억이 없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늘 소홀하듯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다’라는 생각에 머물다보면 집 앞에 금강산이 있다한들 한평생 발 길 한번 주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지요.
그래도 몇 번은 도봉산, 사패산, 향로봉, 북한산성 쪽 몇 봉우리는 올라본 적도 있었는데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 산행이라 아무런 흔적도 감흥도 남아있지 않다.
일단 우리 일행은 구기터널 방향으로 오르다가 둘레길이 만나는 곳에서 모여, 오늘 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둘레길 따라 좌측 족두리 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추석이 지났는데도 날이 무척 덥고 바람조차 없었다.
술에 찌들어서인지 출발한 지 10분도 안돼서 얼굴이 땀범벅이다.
그리고 20분이 지나자 옷을 쥐어짜면 물이 줄줄 흐를 지경이다.
앞사람과의 보폭을 맞추는게 힘에 겨웠다.
에휴 이 저질 체력! 내 두 다리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 않았다.
둘레 길에서 다시 산 정상 쪽으로 20분가량 오르니 평평한 평지가 나타났다.
오늘 망향제를 지낼 장소였다.
일단 등산용 스틱을 양쪽에 세워 망향 제 기원 플랜카드를 설치한 다음 제사 음식을 진설하고 약식 망향 제를 올렸다.
제례는 송선태 회장님과 맏형이신 송희종 선배님이 산신과 조상님께 재배를 드리고 우리 일행은 각기 편한 자리에 엎드려 재배를 올렸다.
11시 30분경 망향제가 끝난 다음 다시 족두리 봉 등정 산행에 나섰다.
평소에도 그 닥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힘에 겹다.
우스게소리 같지만 “두 다리가 의사선생이라던데, 우체국 사무원보다 집배원이 장수하고, 우유도 받아 먹는사람보다 배달하는 사람이 훨 건강하다”던데... 나는 어째 그럴까, 나도 자동차를 파는 사람이니까 훨 많이 걷고 많이 움직여 두 다리가 튼실해야하는데, 외투는 벌써 배낭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고 막걸리와 생수를 한 병씩만 담을 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왔다.
어렵사리 족두리봉 바로 아래 평지에 도착했을 때 일행 몇 명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친 탓에 염치 불구하고 밀치듯 그늘을 찾아 주저앉았다. 그리고 건내 준 나주배를 넙죽넙죽 받아먹고 답례할 게 없던 차, 짐이라도 줄일 생각에 막걸리 한 병과 생수 한 병을 얼른 꺼내 한 잔씩 권하였다. 휴우~ 이제 짐이 줄었다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다시 힘을 내 족두리봉을 향해 오르는데, 우리 회장님은 산행을 마치고 하산을 서두르고 있었다. 회장님과 마주치자 한마디 건네셨다. 꼭 족두리봉 까지 올라가서 인증샷을 하고 오라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건성으로 나마 대답하고 정상을 향했다.
족두리봉에 오르니 불광역에서 봤던 그 많은 등산객 인파가 다시 느껴진다. 둘렛길을 돌아오는 우리 코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산 정상엔 사람들로 넘쳐 났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는지 궁금했다. 사실 우리가 망향제 때문에 우회해서 오는 바람에 오히려 한산한 길을 택하게 된 것 같다. 직행으로 오나 우회해서 오나 결국 산 정상에서 다시 만나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옛 일이 생각났다.
전직 모 대통령이 ‘대도무문’이란 시계를 대선홍보용으로 배포한 적이 있었다. 우리 직원 중 한 명이 그 시계를 차고 어찌나 폼을 잡는지 밉기도 하고 내심 부럽기도 했지만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라 애써 태연한 척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대도무문이 뭔가 싶어 찾아봤던 기억도 난다.
一法萬象 萬法歸一 到處有法 大道無門
하나의 진리는 만가지 모습으로 비쳐지지만
만가지 형상은 결국 한나의 진리로 수렴된다
세상 모든곳에 진리가 있으니
진리를 구하는 길은 어디에나 있다(제자백가 문파를 가리지 않는다)
아 그렇구나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산정은 하나지만 오르는 길은 수백이라, 이미 만들어 진 길도 있고, 새로 만들어 가는 길도 있으며, 암벽을 타고 오르는 길도 있고, 헬기를 타고 오는 길도 있겠다.
(무슨 뜻인가? 나도모름 ㅋㅋㅋ)
그 많은 길 중 안전하고 가장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하나를 선택해서 인도해주는 우리 집행부의 노고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산 아래서 보던 모습과 달리 산정에 오르니 서울 시가지 모습과 주변 도시들 그리고 북악산 인왕산 남산 한강 건너 관악산 청계산 까지 조망할 수있었지만 아직도 방향감각을 찾을 수 없어 두리번 거리는데, 뒤에서 어이 종진이~하고 부르는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송선태 회장님이었다.
사실 다시 올라오신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 했는데 북동 방면을 가르키며 “요 앞 봉우리가 향로봉이고 그 옆에 있는 것이 비봉이네 그라고 옆으로 승가봉 문수봉 나한봉이고 여기서는 안보이지만 저그 비봉 넘어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있네 “하면서 삼각산에 대해 이거 저거 설명하셨다.
먼 곳에서 보면 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았 던 북한산이 예서보니 삼각산을 향해 뻣은 산능선을 따라 솟고 또 솟아오른 봉우리들의 기상과 기암절벽이 빚어낸 작품은 산 아래에선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비껴 보면 고갯마루 옆으로 보면 봉우리,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에 따라 그 모양이 제 각각‘이다.
그리고 산아래서 보고 짐작했던 북한산의 규모를 예서보니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향로봉 비봉을 등지고 인증사진을 촬영해주셨다. 회장님께서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주시니 감읍할 뿐이고 또 묻지 않아도 불문가지, 책임감이 크게 느껴졌다.
족두리봉을 뒤로하고 하산하는데 올라올 때 내가 쉬었었던 평지에 삼삼오오 모여 한참 점심을 들고 있었다.
슬쩍 곁눈질로 인심 좋고 부담 없는 자리를 찾다가 마침 김숙희고문이 눈에 띄였다. 슬쩍 옆으로 가니 어서 앉으라 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지요.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모시 잎 송편과 김밥 두 줄 그리고 막걸리 한 병이라 주저하며 꺼내 놓고는 눈치 볼 새도 없이 옆에 있는 음식부터 젓가락이 갔다.
그리고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 음식이 동이났다.
사실 내가 식성이 그렇게 좋은편도 아니고 특히 소심해서 미인 옆에서는 식사를 잘 못합니다.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거든요.
그것 보면 우리 숙희고문님은 인정 많고 마음씨 최고지만 이쁜 것은 아닌가 봐요. ㅎㅎㅎ
과역산악회 15차 북한산 산행은 추석연휴 기간이라 이렇게 많은 고향 선후배님이 참석하리라 예상 못했습니다.
저 역시 과역산악회의 똑같은 회원의 자격이지만 이번 산행에 참석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리며 처음 참석하신 분들이 많다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 과역 산악회의 새 지평을 엿본 듯하여 기쁩니다.
길지 않은 산행 코스였지만 망향제 참석했던 전원이 족두리봉까지 한사람 낙오 없이 함께 등정했다는데도 큰 의미를 두고 싶고, 앞으로도 매월 셋째주 토요일 산행에서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추석연휴로 인해 많은 집행부 인원이 참석할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진행에 차질 없도록 힘써주신 우리 과역산악회 회장님 이하 전 집행부에도 감사를 올립니다.
2013년 9월 23일
송종진 올림
첫댓글 종진오빠
문학소년이네요
역시 잘생긴분은
글도 잘 쓰요
그 정성의 감사할 뿐이요.
그쟈
못생기지는 안했제
근데 향우회장님은 얼굴은 빼고
노란 머리카락만 찍었드라ㅎㅎㅎ
순숙동상
웃음소리 만 화통한 줄 알았는디
살림살이 까지 야무지네
그라고 산악회 살림까지 꾸리느라
고생이 많네
소설같은 긴 여정 잘 보았어요.
마음은 정말 참석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아무 일정이 없어
혼자두고 가기 뭐해서...둘이서 그 시간에 응봉에 올랐지요.
정말 바람도 없고 습기만 없다뿐, 한여름 날씨더군요.
눈길 마음길은 자꾸 향로봉쪽에 맴도는데,
워낙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라 문수봉으로 방향을 돌렸답니다.
많이들 참석하시고 여러모로 즐거우셨다니
보고 듣는 것 만으로도 행복입니다...
한편의 수필을 보듯...잘보앗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이 북한산 자락에 있었던 거네^^
우리 숙자 총무님 없으니 마음이 휑합디다
사실 연휴 때 머리도 좀 복잡하고 해서
숙자 총무에게 좀 의지하려 했는데...
회장님 하산하시다 말고
다시오르셔서
이산 저산 설명하신 까닭은
불문가지죠
그 정성을 어찌 모른다 하리까?
모자란 지식 총 동원해 올려봤네요ㅎㅎㅎ
늘 느끼는것이지만
참 유려한 문체에 놀라네
한가지 부족한것이 있다면
내이름이 한군데도 없다는것
ㅋㅋ
다음엔 꼭 써주소이
잘읽고가네
글씨
어째 회장님 존함이 빠졌디유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는 디유
이 번 산행엔 마주칠 일이 없었나 봐유
아니믄 사진에 내 얼굴은 다 빼고
내 노란 머리카락 만 올려서 그랬을 까유
잘모르겠구유
담엔 참말로 영님 할랍니다^^
" 술 한잔에 詩 한수라~ "
산행후기 詩를 써 주니,
어찌
술 한잔을 권하지 않고 서야
진사의 도리라 헐 수 없으니~ ㅋㅎ
운제
길일 택해서 기별할터니~
종진!
회장님
엎드려 절 받기 하신거 같아
돼례 송구하네요
후기 때문에 노심초사 하신 맘을
헤아렸으면 제가 올리겠습니다
해야하는데 사실 내 글에 자신이 없어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종진이 글솜씨
어떻게 봐야될까
넘 잘읽었는디~~
책이라도^_^
경태랑 칭구네요.가산이고요 .이름은 오정심이네요
가끔 경태랑 소식 전해요
숙희 고문님은
사실 내가 본 최고 미인입니다^^
근데 마음씨가 최고인데
이쁘기까지 한다고 해불믄
다른 산악회에서 스카웃 안해불것소
그래서 하나는 양보했으니 혜량 하세요^^
저두~~송종진선배님이 궁금합니다.
언젠가는 뵙겟지요??????
오장금씨는 누구신지?
잘몰라서
~~~
장금이 후배도
언제 시간되면 산행에 한 번 오소
이번 산행엔 가산 오씨네 오빠들이
많이 참석 하신거 같던데...
오빠의 마음이
흠뻑 베인
수려한 산행후기에
잠시,
넋을 놓아 버렸어요.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랄까
오르지 못한
족두리봉의 한을 담아
저도
열심히 노력할랍니다.
'세월이 약이겠지요.
"과역산악회
"파이팅!!!
고맙네 명숙 !
사실 글은 내가 올렸지만
그 동력은 과역산악회
그리고 우리 회장님 정성이 아니겠는가
열심히 하는 우리 명숙총무한테
힘이 못되어 줘서 늘 미안하시
같이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형님의 후기를 통해 정겨운 산행
생생하게 동참을 하게 되네요.
언제나 편하고 여유로운 미소속에
어쩌면 이렇듯 섬세한 감수성과
필력을 감추셨는지 대단하십니다.
종진형님 멋진 후기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고향 다녀오느니라 고생했네
만성이 빈자리가 너무 커 보이데
북한산 산행을 간접적으로도
느껴보는데 도움이 됐다니
보람을 느끼네^^
어이 마시 ~
종지니 친구
답글이 늦어서 미안하이
좋은 친구가 있어 좋은글을 읽을수 있음은
행복이시~
마음은 달려가고 싶었는데 육신은 다른곳은
헤메이고 있어서 사실은 마음이 조금 무거웠네
함께한 향우들과의 ~
힐링의 시간들은 좋은 추억거리가 되지않을까싶네
10월부터는 많은시간 내보도록 하세나
우리 민식부대장 만성후배 없으니
좀 서먹하기는 했네만
처음도 아니고 다 고향 선후배인지라
금방 분위기 전환되더구만
우리 회장님한테 하나 배운건데
등산은 후기는 올렸어도
자네 댓글이 올라올 때까지는
끝난것이 아나라는 것을
늦게나마 성의 보여줌에 감사하고
행여 신변에 무슨 변고가 있나
궁금했다네^^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