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별 올스타(24) --- 대구고
![]() ![]() 2005/03/03 17:13 |
24. 대구고
<황금사자기 : 83년 준우승>
@창단 - ? (1977년 재창단)
@우승 - 없음
@준우승 - 1회
@결승진출회수 - 1회
@프로선수배출 - 25명(전국 22위)
80 전용권 김강익 도이석
82 이성근 임순태
83 장태수 강기웅 전종화 박태호
84 홍성연
85 손경호
86 최현준 (장희현)
87 김기덕 강현철 권영진
89 김상엽
91 이상범
92 이동수 박근영
93 황성관
96 김기진 정성훈
98 김진웅 소소경
99 (이성훈)
00 (정승찬) 이범호 (김경완)
02 (윤길현)
대구고가 전국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해방직후인 47년 제2회 청룡기에서 준우승을 했던 대구중학시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오랜기간 야구부를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창단은 1977년으로 봐야 할 듯 합니다..
경북과 대구상고.. 지역내의 양웅의 위세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던 70년대 후반.. 뒤에 경북고감독으로 유명해지는 구수갑씨를 야구부장으로 내세워 지역내의 중학 유망주들을 스카웃하면서 의욕적인 창단을 했던 대구고는 창단맴버들이 3학년이 되는 79년.. 지역예선이 필요없는 봉황기에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대회에서 대구고는 13:7에서 9회말 대반격으로 14:13으로 기적같은 역전승을 거둔 서울고전으로 단번에 유명세를 탔던 팀이었습니다...
당시의 에이스였던 전용권은 같은 기수였던 대구상의 권기홍... 경북의 진동한과 함께 지역내 투수 3인방을 형성하던 선수로 뒤에 한양대에 진학해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던 선수입니다..
81년의 대통령배.. 세인의 관심은 혜성처럼 등장한 군산상의 1학년투수 조계현이었지만 타격에서의 신데렐라는 대구고의 톱타자 강기웅이었습니다...
작달만한 체구에 파워와 수비력, 심지어 기동력에 눈부신 야구센스까지 가졌던 이 야구천재는 고2시절인 81년부터 청소년대표팀의 주전으로 발탁된 이후 대학시절 내내.. 그리고 올림픽 참가를 위해 자의로 선택한 2년간의 실업팀 시절까지 대표팀의 2루수자리를 누구에게도 빼았긴 적이 없던 선수입니다..
같은 학년으로 역시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던 경북고의 유중일과 함께 대구지역에 동시에 나타난 두명의 괴물로 불렸습니다만... 하늘은 천부적인 재능만을 강기웅에게 주었을뿐.. 성실성까지는 주지않았나봅니다...
아마시절 배트를 거꾸로 쥐어도 3할은 기본이라던 강기웅은 프로입단초기에 몇번의 고타율을 보였을뿐.. 지극히 평범한 성적으로 일관했고 그나마 나태한 연습태도를 용납않는 백인천감독과의 트러블로 왕성한 나이에 야구계를 떠났습니다..
대구고는 강기웅이 졸업한 직후인 83년에 가장 좋은 성적을 보여줬습니다.. 홍성연이라는 장신투수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봉황기 4강.. 황금사자기 준우승이라는 창단이래 최고의 성적을 내더 때가 이때입니다...
이후 87년에 김상엽이 투타에서 주력으로 활약하던 해 그리고 97년에 김진웅이 주목받던 해에 정상권에 근접한 전력을 갖추었으나 아쉽게 안방에서 벌어진 대붕기 우승에 그쳤고 윤길현이라는 걸출한 투수가 등장했던 2001년에도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한채 여전히 중앙대회 정상의 꿈을 비원으로 남기고 있는 대구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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