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3:19-22) 고초와 재난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매우 씁니다. 그러나 주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므로 우리가 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무궁하신 주의 자비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운 가슴엔 오히려 소망이 피어날 겁니다. 그렇죠? 그건 성령의 역사에 의한 주의 성실하심입니다(애3:25)
땅의 자원은 늘 부족합니다. 특히 마스크는 왜 그리 귀한지? 이것 저것 결핍으로 인해 늘 근심하게 하지만 주의 자비는 결코 바닥나지 않으므로 우리를 끝까지 긍휼히 여기십니다(애3:32) 마스크 장사는 매점매석이 있지만 주의 자비는 비와 같이 모두에게 공평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애3:24) 쓰디쓴 인생 최악의 고통 속에서 주님을 바라고 있음은 주님이 나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전부입니다. 주님이 없으면 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를 바라리라...
주의 자비로 긍휼을 베푸실 것을 알기에 주의 구원을 간절히 구하고 기다립니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와 자신의 때를 기다립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6) 조급하고 충동받아 방방 뛰지 말고 여종이 주모의 손길을 기다리듯 주의 자비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고통 가운데 두시는 건 본심이 아닙니다(애3:33) 말도 안 되는 구조악과 부조리한 정치 사회 환경에 신음하는 것은 주님의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고 바벨론을 사용하셨지만 하나님은 마구 짓밟는 바벨론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징계할 힘과 무기를 가진 베벨론의 편이 아니라 징계를 당하는 이스라엘 편이십니다. 고난으로 인해 혼동하지 마세요. 화와 복은 하나님의 입의 말씀에 달렸습니다.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애3:38) 그렇다면 정답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과 사랑의 관계만 확립하면 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역경이나 순경이나 다 합산이 되어 우리에게 선이 됩니다(롬8:28) 그래서 고난이나 역경 속에서도 오히려 소망이 있는 겁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아맨.....
애3장 당장 읽어봐야겟슴다..
아멘
아멘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