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베어낸 소나무와 양평과 장흥에서 난 황토를 버무려 벽을 세웠고 지붕은 지리산 청학동에서 가져온 산죽으로 이었다.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벽과 지붕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외관이 네모 반듯하지 않고 동그스름하다. 제 주장이 전혀 없이, 인공 구조물 같지 않게 자연 속에 한덩어리로 어우러지는 풍경을 이룬다. 그야말로 토종 우리 집이다.
이 집 주인은 스스로 '노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이상철(아내)씨와 남의 황토집 지어주는 데 앞장서 달려가는 홍명도(남편)씨. 둘은 산에서 만나 도봉산장에서 결혼한 산악인 부부다. 남편 홍씨는 오래 전 울산바위에서 암벽등반을 하다 실족해 한쪽 다리를 잃었다. 좌절한 그를 구해준 건 역시 산이었다.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하고 불편한 몸으로 계속 산에 올랐다. 산 속에서 희망을 다시 찾았다. 서울산악회 출신의 그가 부산산악회 출신의 처녀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됐으니 산이 중매쟁이 노릇까지 해준 셈이다. 늦은 나이에 만난 둘은 데이트를 언제나 산에서 했다. 산행을 마친 뒤면 산골마을에 있는 흙집을 찾아다녔다. 주인이 버리고 간 옛 흙집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어느 산, 어느 골에 가면 그게 있는지도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해졌다.
산에 미친 그들에게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사람사는 세상에는 늘 길이 있게 마련. 둘의 사는 모습을 어여삐 여긴 어느 고마운 분이 자기의 노는 땅 일부를 떼어 줬다. 느티나무들이 숲을 이룬 산자락, 햇볕이 유난히 맑게 모여드는 마을, 흙이 좋아서인지 이름조차 토다리인 이곳에 그들은 흙으로 된 둥지를 틀었다. 글자 그대로의 둥지였다. 흙벽을 두텁게 발라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했다. 실내에 들어서면 커다란 품 속에 안긴 듯 포근하고 안온했다. 거실에는 커다랗게 벽난로를 만들었다. 물론 황토를 두툼하게 이겨 발랐다. 여기에 소나무 장작을 때 실내를 덥히면 춥지 않음은 물론 웬만한 감기쯤은 거뜬히 자가치료가 가능했다.
그게 1997년의 일이었다. 그 이후 친구 많고 사람 좋아하는 이 집 내외에게는 손들이 줄줄이 찾아왔다. 아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괜히 지나가다 하룻밤 묵어 가는 싱거운 사람도 있었다. 때로 간장을 퍼가는 이도 있었지만 오죽 맛있었으면 가져가랴 싶어 내버려뒀다. 모든 것을 열어뒀다. 집을 완전 개방했다. 이 집 벽난로 앞에는 서로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사람들이 새처럼 빙 둘러앉는 풍경이 자주 연출된다.
국화철에는 국화를 따면서 놀고, 산에 가면 산삼씨를 심으면서 놀고, 연꽃철에는 연잎에 담긴 이슬을 받으면서 논다. 혼자서도 잘 놀고 여럿이서도 잘 논다. 마음이 동하면 훌쩍 고흥의 외나로도쯤에 가 한 보름 머물면서도 논다. 급기야 몇 달 전엔 '틈만 나면 노는 여자'란 책도 한권 써냈다. 발문을 쓴 개그맨 전유성은 "잘 노는 것도 재주고 재산이고 능력이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도 이제는 고쳐져야 한다. 열심히 일한 개미는 겨울에 잘 먹고 잘 살고 베짱이는 알거지가 되었다고 쓸 일이 아니다. 개미는 개미대로 잘 살고 노래 좋아하는 베짱이는 가수나 백댄서가 되어 또 잘 살았다고 써야만 한다"고 익살을 떨어놨다.
방이 둘에 거실과 부엌. 실내는 스무평 남짓 된다. 너르지 않지만 좁지도 않은 공간, 안주인이 만들거나 주워오거나 얻어온 그릇들이 다양하게 놓여 있다. 이 집 물건들은 들여다볼수록 재미있다. 격식과 경직을 완전히 벗은, 바라보면 웃음이 솟는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우선 거실 기둥에 그려진 시계. 둥근 나무의 단면에 시침과 분침을 만들어 붙였다. 물론 가지 않는 시계다.
그것은 때로 엄숙하게, 때론 장난스럽게 이 집 주인 내외에게 시간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천장에 대롱거리는 풀로 만든 메뚜기들, 하도 정교해서 만든 물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창문에 달아놓은 밀짚으로 만든 그 옛날의 여치집, 대추알 크기만하게 빚어 짚으로 매달아 놓은 메줏덩이들, 벽에 멀쑥하게 기대서 있는 고무신 파리채. 낡은 고무신의 밑창에 길다란 막대기를 붙여 천장까지 닿는 편리하고 조형적인 파리채로 되살려냈다.
이 집에서 반찬을 담는 그릇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사기접시다. 안주인의 친정어머니가 젊어서 쓰던 물건으로 원래는 무덤덤한 사기그릇이었겠건만 세월의 힘이 씌워져 골동같은 품위가 입혀졌다. 거실 한복판에 와불처럼 누워 있는 큼직한 떡갈나무 테이블은 스무 명이 한꺼번에 차를 마실 수 있다.
그러다 찻잔을 치우면 금방 식탁으로 변신한다. 바깥벽에 새침하게 걸린 댕댕이 소쿠리는 토담집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우편함이다. 집배원은 비어 있을 적이 많은 이 집 우편물을 여기다 넣어둔다. 마당엔 너럭바위같이 평평한 돌덩이가 있다.
얼마 전엔 여기에 돼지 한 마리를 잡아다 굽지 않았겠느냐고 이상철씨는 통크게 웃는다. "우리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재산도 없고 자식도 없고. 그러나 부족한 것도 없으니 우리가 진짜 부자지요? 더구나 산과 들과 나무와 들꽃이 여기 무진장으로 있잖아요."
나는 그날 토담집 냉장고에 붙어있던 글귀 하나를 베껴와 우리집 냉장고 문에 큼직한 자석으로 꽉 붙여뒀다.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흙집 짓는 비용은 평당 2백50만원쯤. 공사기간은 석달 정도. 이 집은 자재를 미리 마련해둬 한달 반만에 뚝딱 지었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었다.